거북이 인생, 학원차량 부장 김정호 씨(2)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 중면 횡산리에서 학생을 태운 군내초등학교 통학버스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초소를 빠져 나오고 있다.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 중면 횡산리에서 학생을 태운 군내초등학교 통학버스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초소를 빠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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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국 사람들 중엔 뭐든지 ‘빨리빨리’가 입에 붙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가장 대표적인 게 배달음식 주문할 때 ‘빨리 갖다주세요’ 하는 말인데요. 오늘의 주인공, 김정호 씨는 이런 말을 한 번도 안 했을 것 같습니다. 1년 2개월 동안 걸어서 2002년 한국 땅을 밟았다는 김정호 씨의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 계속해보죠. 정호 씨는 한국에 와서도 빠른 정착을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고 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김정호 씨는 하나원을 나오면서 인생 마라톤의 출발선에 서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마라톤이라는 경기가 42. 195키로 즉 105리가 넘는 거리를 달리는 경기잖아요? 처음부터 무리하게 빨리 달리면 끝까지 완주할 수 없기에 처음부터 자신의 체력을 감안해서 달려야 하는 것처럼 자신도 천천히, 꾸준히 성실한 자세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정착하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정호 씨는 노점상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1톤 트럭부터 구매했던 것입니다. 트럭을 몰며 하나에 1달러가 채 안 되는 물건을 파는 모습에 사람들은 어느 세월에 돈을 모으겠느냐며 비웃었다는데요. 김정호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4년을 열심히 벌어서 집도 더 넓은 집으로 옮기고 15인승 승합차를 구매하여 학원차량을 운행하게 됐습니다. 사실 학원의 차량기사로 취직할 때에도 소개비를 주어야 했을 정도로 취업도 만만치 않았지만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니 그 돈이 아깝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네. 그런데 보통 학원차 운전하시는 분들을 뽑을 때 면허증과 무사고 경력, 학원차 운행 경험이 있는지를 보는데요. 그런 면에서 김정호 씨는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아마도 그래서 소개하는 분한테 소개비를 주면서 부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자신의 운전경력과 또 성실, 근면한 자신을 믿었기에 취직만 시켜주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취업했습니다. 그러나 학원 차량을 운행하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고 해요. 말투가 변하지 않다보니 탈북민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기도 했고, 경험도 없고 나이도 많은 김정호 씨를 처음부터 신뢰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통학거리가 먼 곳에, 그리고 학생들이 많아서 복잡한 노선을 배정받기가 일쑤였다는데요. 그래도 꾹 참고 견디었답니다. 그렇게 말없이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자연히 학원 직원들이나 학부형들, 그리고 학원생들까지 신뢰하고 좋아하게 됐고 지금은 두 개 학원 11대의 학원 차량을 총괄 운영하는 차량부장으로까지 승진하게 되었답니다.

김인선: 소개비를 주며 학원차량 운전자로 겨우 들어갔는데 이제는 학원차량 총괄부장까지 되셨네요. 거북이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가도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김정호 씨를 통해 알 것 같은데요. 그런 정호 씨에게도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고요?

마순희: 네. 어려운 정착의 길을 묵묵히 뒷받침하며 함께 해오던 아내의 건강이 악화된 것이었습니다. 신장과 비장 등 어려운 수술을 네 번이나 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김정호 씨는 가장인 자기가 버티어야 가정이 버틴다는 생각으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면서도 10년이 넘는 오늘까지 단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다고 해요. 남들처럼 놀러 다니지도 않았고 식당에서 외식도 자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돈은 어떻게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합니다.

김인선: 지금 아내분의 건강 상태는 좀 어떠신가요?

마순희: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다른 나라들에서도 병 고치겠다고 오고 있지 않아요? 아내분도 선진의료 덕분에 현재는 거의 아픈데 없이 완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만났을 때에도 말을 하지 않았으면 그런 수술을 네 번씩이나 받았다는 것을 전혀 모를 정도로 건강해 보였습니다. 남편과 함께 늘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던 아내였기에 남편이 일하러 나간 다음에는 조금씩이라도 일을 찾아서 하곤 했대요. 늘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김정호 씨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임대업을 하라고 자격증 공부를 하게 했고 그동안 모은 돈을 전부 투자해서 주거 겸용 사무실, 오피스텔을 사서 아내가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는 부동산 임대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답니다.

김인선: 남한 사람들이 노후대책으로 선망하는 것 중 하나가 주택을 사서 남들에게 빌려주고 돈을 받는 임대업인데, 부인에게 임대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정도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말인데요. 이제 일도 좀 쉬엄쉬엄 하셔도 되겠어요?

마순희: 네, 예전과 달리 가끔 쉬기도 한 답니다. 김정호 씨가 정기적으로 휴식일마다 하는 일이 낚시를 즐기는 거라는데요.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 있으면 일상의 온갖 잡념들이 다 사라지고 한 주일의 피곤도 다 풀리는,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치유가 되는 그런 시간이라고 해요.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가고 싶었던 여행지들을 여행하기도 하면서 살고 있는 오늘의 행복한 일상이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데 주일날이면 교회에서 차량봉사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정착 초기부터 10년이 넘는 시기까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근무를 했다는데 이 정도의 여유는 김정호 씨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김인선: 그럼요. 충분한 자격이 있으시죠. 그런데 아이 얘기가 궁금해요. 탈북 당시 김정호 씨 부인이 임신을 하셨다고 했었잖아요?

마순희: 네. 1년 2개월의 한국행을 위한 긴 여정에서 출산했던 아들이 이제 열아홉 살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들은 17살 고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용돈을 타 쓰는 법이 없이 동네에 있는 음식점에서 간간히 일하며 용돈을 벌고 있답니다. 김정호 씨는 ‘인생은 짧다. 잠깐인 그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말라’고 늘 아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요.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만큼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을 자신의 힘으로 튼튼히 다져 간다면 이 세상은 참 살아볼 만한 괜찮은 세상이라고 이야기해 준다고 합니다.

김인선: 그래서일까요? 남한에 와서 탈북 남성들이 가장 먼저 장만하는 것이 승용차라고 들었는데 김정호 씨는 한국에 온지 15년 만에 승용차를 장만하셨다면서요?

마순희: 맞습니다. 김정호 씨는 승용차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정호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젖 짜는 암소가 아니라고요. 스스로가 자립해서 살아나갈 수 있을 때 국민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김정호 씨에게는 자립하고 정착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행복을 누리는 것은 그 다음이라는 생각이다 보니 승용차를 제일 마지막에 구입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정호 씨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크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밑바닥에서 이겨나간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일은 하지 않고 공짜만 바라는 삶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고 처음부터 눈높이를 너무 높이다보면 잘 정착하기가 힘들다, 내 적성에 맞는 일자리라면 급여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취직하고 열심히 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인생은 거북이처럼’ 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김정호 씨. 지금도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주위를 살펴가면서 안전하게 바다로 가는 거북이처럼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느려보여도 큰 시행착오 없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계획대로 차근차근 정착해 나가고 있는 김정호 씨의 사례는 이 땅에 정착하는 많은 탈북민들, 아니 우리 모두가 따라 배울 수 있는 산 귀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선: 뜻하는 대로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꾸 뒤처지는 것 같아서 조급해졌는데요. 김정호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느려도 괜찮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천천히 목표를 향해 가는 거북이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김정호 씨처럼 말이죠. 마순희 성공시대, 거북이 인생을 살고 있는 학원차량 부장 김정호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