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등대같은 사람, 기술자 김현 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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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네. 안녕하세요.

김인선:북한은 음력설 보다는 양력설을 지내지만 한국은 대부분 음력설을 지내잖아요. 지난 2월 1일이 음력으로 1월 1일이었는데, 설 명절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마순희:저는 한 마디로 잘 보냈습니다. 이번 설 연휴는 주말을 포함해 5일이다 보니 서울에서 충청도를 오가야 하는 저의 경우 여유가 생긴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소 금요일 저녁에 서울에 올라와 일요일 저녁에 다시 충청도로 내려가야 해서 늘 시간이 빠듯했는데 오랜만에 긴 휴식이라 마음 편하게 서울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딸들이 모두 음식을 제법 하는 편이라 떡이며 전, 떡국에 갈비찜까지 푸짐한 명절음식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쉽게도 다른 지인들과는 시간을 보내진 못했고, 대신 타치폰을 통해 문자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먼저 보내온 문자에 답하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리더라고요.

김인선:명절 때가 되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처럼 덕담과 안부 연락으로 타치폰이 쉴 새 없이 울리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거든요. 저도 이번 설명절을 보내면서 특별한 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노력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통보문 답장을 언제 다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는 탈북민들도 많죠?

마순희:그럼요. 참 많습니다. 저도 그동안 잘 살았다고 자부하지 못 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안부 인사를 받으면서 '언제 다 회신을 하지?' 하는 기분 좋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를 다시금 돌이켜 보기도 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우리 탈북민들 경우에는 서로 피를 나눈 형제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이상의 정으로 끈끈히 연결되어 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오늘은 명절처럼 특별한 날이면 타치폰이 방전될 정도로 안부문자나 전화 연락을 많이 받는 분을 소개해 드릴게요.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탈북민 중 한 분으로 2002년에 한국에 정착한 김현 씨입니다.

김인선:사람이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는 감정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사랑, 그리고 존경인 것 같아요. 특히 누군가로부터 존경받는 삶이야말로 성공한 분 아닐까 싶은데요. 탈북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김현 씨는 어떤 분일지, 어떤 삶을 살아온 분일지 궁금한데요?

마순희:네. 김현 씨는 살아오면서 어려움은 있었어도 부끄러움은 없이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분입니다. 북한에서는 시병원의 치과의사라는 좋은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요. 그런 김현 씨에게도 고난의 행군은 어려운 고비였습니다. 갓 결혼해서 장인, 장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라 온 가족의 생계가 김현 씨에게 달렸는데 배급이 안 나왔습니다. 시병원의 의사이다 보니 출근을 하루도 안 하면 안 되었기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허기진 몸으로 진료를 할 때도 많아졌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 때도 생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본분인 의사로서의 업무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김현 씨는 중국에 가기만 하면 먹고 살 걱정은 없다는 소문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차라리 가다가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김현 씨는 탈북을 결심했고 가족들에게 함께 북한을 떠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다행히 오랜 인테리였던 장인, 장모님도 더는 북한에 미련이 없다며 흔쾌히 응해 주셨습니다. 김현 씨는 가족과 함께 2000년에 북한을 떠나 2002년에 한국에 도착했는데요. 지금도 김현 씨는 당시 자신의 선택을 믿고 따라준 장인, 장모님과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김인선:다행이네요. 그런데 북한에서 의사였던 분들이 한국에서도 의사가 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북한에서 의사였어도 한국에서는 체계가 달라서 다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의사는 한국에서 최고의 엘리트 직업 중 하나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마순희:네, 맞습니다. 김현 씨도 처음에는 북한에서의 자격이나 경력을 살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치과의사를 해 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남한에서도 치과의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의 학력이나 경력, 의사자격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김현 씨가 치과의사가 되려면 한국 교육과정에 맞게 다시 대학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의료 분야는 남북한의 차이가 커서 의사 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김현 씨는 치과 관련 일이 그나마 익숙하기에 보조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치과 의사의 진료에 필요한 작업 모형이나 교정 장치 등을 전문적으로 만들고 수리하는 일을 하는 치기공사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김현 씨는 도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치기공사 역시 나이는 상관없었지만 대학공부를 다시 해야 하고 국가고시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김현 씨의 이력으로 치기공사 보조일을 시작할 수는 있었는데요. 안 해봤던 일이기에 배움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김현 씨의 나이가 50을 바라보는 때였고 20-30대 청년들 밑에서 그 일을 새롭게 배우면서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루벌이가 가능한 일용직을 시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건설현장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김현 씨는 막노동을 할 체력도 아니라서 결국 자격증만 있으면 비교적 취업이 잘 된다는 전기부문의 일을 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인선:기술 분야 쪽도 전공자 아니면 쉽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조금만 공부해서 합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증이 아니니까요. 도전을 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김현 씨는 어땠을까요?

마순희:한국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북한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한 분이기에 공부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의대에 진학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하려면 무조건 최소 4년 이상 공부를 해야 했지만 기술분야 자격증은 개인에 따라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었기에 김현 씨는 먼저 학원부터 찾아봤습니다. 탈북민들 중 상당수가 자격증 과정이나 입시 준비를 하면서 영어로 된 용어가 많아서 공부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하는데요. 김현 씨의 경우 북한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기본적인 영어실력이 뒷받침이 되기에 수업을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교재를 보고 독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빨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김현 씨는 서울에 있는 한 전기기술 전문학원에 입학했습니다. 탈북민 취업 장려를 위해 교육비와 교재비 등 전액을 한국 정부에서 지원해줬기에 경제적인 부담 없이 관련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은 후 김현 씨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김인선:자격증을 따서 바로 취업이 돼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그만두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김현 씨는 이 일이 적성에 잘 맞았을까요?

마순희:김현 씨 경우는 좀 특별했어요. 자격증을 취득한 후 곧바로 전기부문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긴 했는데요. 일반 건물이나 업체의 전기실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에서 하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학원 측에서 김현 씨에게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고 제안을 했던 겁니다. 김현 씨는 그때부터 자신이 배우던 전기학원의 강사로 취직돼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기학원의 취업준비 과정에는 정원이 80명 정도였는데요. 그 중 30%가량이 탈북민이었습니다. 대부분 탈북남성이었고 그들 모두가 탈북민 강사인 김현 씨의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김인선:전기학원에 다니는 탈북민들이 굉장히 많네요. 그렇다면 김현 씨는 탈북민 수강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강의를 하는 최고의 강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과연 제 예상이 맞을까요? 전기학원에서 강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김현 씨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네. 감사합니다.

김인선: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