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네. 안녕하세요.
김인선: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탈북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김현 씨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김현 씨는 북한에서 치과의사였지만 고난의 행군을 피해갈 수 없었고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서 탈북을 결심한 분입니다. 가족과 함께 2000년 북한을 떠나 2002년에 한국에 도착했는데요. 북한에서처럼 치과의사를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죠?
마순희:네. 한국에서는 체계가 완전히 달라 북한의 학력이나 경력, 의사자격을 인정받지 못했기에 치과의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치과의사를 하려면 다시 전공 공부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김현 씨는 다른 일을 찾게 됐습니다. 한국에는 탈북민 취업 장려를 위한 정책으로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 취득과정이 개설되어 있는데요. 김현 씨는 전기설비 쪽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부의 국비지원 교육으로 경제적인 부담 없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탈북민들 중 상당수가 외래어가 가득한 교재를 보고 기술자격증 취득하는 것을 포기하는데요. 김현 씨는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은 후 곧바로 자격증을 취득했고 취업까지 바로 됐습니다. 김현 씨가 그동안 성실하게 교육과정에 임했고 함께 공부하던 다른 탈북민 동기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고 도움을 주는 모습에 학원 측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김현 씨는 자신이 교육받았던 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전기학원의 취업준비과정 정원이 80명 정도 됐다고 합니다. 그 중 30%가량이 탈북민으로 대부분 탈북남성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들 모두가 김현 씨의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김인선: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가나 선생님은 많은데요. 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까지 갖추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김현 씨는 특히 탈북민들에게 강사로서 굉장히 큰 장점이 됐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맞습니다. 김현 씨는 탈북민 수강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주는 최고의 강사였습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취업훈련도 받게 되는데요. 용어도 다르고 말투도 달라서 배울 때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같은 처지의 탈북민 강사라면 탙북민 수강생이 이해하기 쉽게 정보 설명을 해줄 수 있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해석을 겸비한 설명을 해주니 당연히 탈북민들의 성적은 월등하게 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자격증 취득율도 다른 학원들보다 훨씬 높았고 멀리 지방에서도 소문을 듣고 탈북민 수강생들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김현 씨는 수강생들에게 기술 분야의 전문지식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탈북수강생들의 맏형이 되어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진심어린 조언과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탈북수강생들 중 95%가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고, 학원에서는 김현 씨의 지도력을 보고 탈북민 전용 과정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그 학원은 중앙행정기관의 하나인 고용노동부를 통해 탈북민의 특성을 살린 학원으로 지정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지정을 받게 되면 정부의 지원금을 더 많이 받게 되기도 합니다. 탈북민 수강생들은 100% 국비지원으로 교육을 받을 뿐 아니라 매월 교육훈련수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취업을 위해 배움을 선택했는데, 돈을 받아가며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니 얼마나 좋아요. 게다가 자격증을 취득하면 자격증취득 장려금도 받을 수 있을 때여서 학원에 더 많은 교육생들이 모이기도 했을 겁니다. 김현 씨가 가르치는 수강생들의 자격증 취득율도 높고, 또 많은 졸업생들이 전문분야에 취직을 하게 되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김현 씨도 그 공로로 고용노동부의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인선:한국에서는 인기강사를 일등 스타강사라고 해서 '일타강사'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김현 씨야 말로 전기기능사 과정의 일타강사였네요. 학원 강사들의 경우 수강하는 학생 수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데요. 김현 씨는 어땠을까요?
마순희:인기강사는 맞지만 학생 수가 많다고 해서 김현 씨의 급여가 인상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반학원처럼 개인이 돈을 지불하고 수강하는 형태가 아니라 국비지원으로 공부하는 수강생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월급으로 매달 일정한 강사료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학원 강사로서의 수입은 일용직으로 일하는 다른 탈북민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원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후 현장에서 전기기술자로 근무하는 다른 탈북민들에 비하면 수입이 적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현 씨는 학원에 계속 있을 것인지, 아니면 일자리를 옮길 것인지 늘 고민이 됐다고 했는데요. 자신을 바라보는 탈북민 수강생들의 기대를 생각하면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낮에는 부업을 하고 저녁엔 강사로 탈북민 수강생들을 가르치며 열심히 살았는데요. 오랜 고민 끝에 김현 씨는 8년 동안 일했던 학원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김현 씨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전기 기능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인선:능력이 있으니까 다른 곳으로 바로 취업이 가능했네요. 워낙 기술이 좋으니까 일하는데 있어서는 어려운 점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 사람 관계가 조금 걱정돼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입주민 분들과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까요. 김현 씨는 어땠을까요?
마순희:김현 씨는 근무하는 초기에 주민들과의 마찰이 약간 있었다고 했는데요. 함께 일하는 분들은 그런 건 마찰이라고도 볼 수도 없는 수준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마찰은커녕 김현 씨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민들과 금세 가까워졌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주민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고 늘 먼저 다가가는 그의 성실한 태도가 상대방을 친구로 만드는 비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도 대화를 많이 하고 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자만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고 기술자들이 해야 할 업무도 솔선수범해서 진행했습니다. 이런 성실함 덕분에 김현 씨는 관리사무소에서 일한 지 4년 만에 80명의 직원 중 40여 명을 관리하는 전기과장이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체 80명 직원을 통솔하는 기술과장이라고 합니다. 김현 씨가 관리하는 직원 중에는 탈북민 후배들도 있다고 합니다. 김현 씨의 강의를 들으며 자격증을 취득했던 탈북민들이라고 하는데요. 그분들은 김현 씨를 지금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방황하지 않고 기술을 배우고 또 취직까지 시켜준 것이 너무 고맙고 또 나쁜 곳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었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제자들 덕에 항상 마음이 뿌듯하다는 김현 씨입니다.
김인선:역시 보석 같은 분이라 어딜 가도 능력을 인정받고,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자리에 오르시네요. 제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사는 김현 씨.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이미 충분히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김현 씨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잖아요. 김현 씨의 경우엔 어떨까요?
마순희:처음에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 돌아가서 다시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남한의 현대적인 치과기술과 설비로 북한사람들에게도 치과 치료의 혜택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희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한국에 와서 배우고 익힌 전기 기술자로서 북한의 낙후한 전기설비들을 모두 한국처럼 현대적인 기술로 바꾸어놓고 싶다는 마음이랍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응원과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사랑과 관심으로 가르쳐주었던 제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현 씨야 말로 진정으로 남한정착에 성공한, 아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김인선:제자들은 스승의 삶을 통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되는데요. 그런 면에서 김현 씨는 후배들에게 앞을 비춰주는 등대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곁에도 등대 같은 사람이 계신가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네. 감사합니다.
김인선: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