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명태사업을 하는 김도정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명태는 북한주민들의 대표 간식인 만큼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등 다른 나라에 정착한 탈북민들 모두가 가장 즐기는 간식인데요. 도정 씨 역시 처음엔 고향의 맛이 그리워서 명태를 말렸다고 했어요. 자기가 먹으려고 말렸던 명태를 지인들에게 나눠주면서 입소문을 탔고 그 일을 계기로 명태사업까지 시작했고요.
구속이 싫었던 북한 여자축구선수 도정 씨…
부모님께 탈북 허락을 받다
마순희: 그렇습니다. 탈북민들이 고향음식으로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 농마국수나 북한식 순대, 인조고기밥 등을 선택하는데 도정 씨는 남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도정 씨의 남다른 면은 북한에서부터 나타났는데요. 여자축구선수 출신으로 구속을 싫어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싶었던 도정 씨는 부모님에게 탈북을 승인받은 후 중국으로 향했고 4년간의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도정 씨는 또 다른 세계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지내면서 TV를 통해 한국에 대해 알게 된 거죠. 북한을 떠날 때 부모님의 승인을 받았던 것처럼 이번엔 중국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한국에 가면 정착금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도정 씨는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도 도정 씨는 브로커의 안내를 받으며 태국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도정 씨의 말에 따르면 태국의 국경지역에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타국에 와서 말이 통하는 조선족들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도정 씨는 그들을 믿었는데 여러 번 배신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돈을 주고 방콕으로 가는 차편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고는 차가 출발하면 도정 씨를 신고해서 다시 잡히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도정 씨는 태국 국경에서 방콕까지 가는 동안 이런 어려운 과정을 수없이 거쳤고 힘든 노정을 거쳐 2007년 드디어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도정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정착금을 중국으로 보내주고 사랑하는 아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일이었습니다.
정착금을 중국 남편에게 주고 찾아온 아들과
바닥부터 시작한 도정 씨의 인생
그녀의 첫 사회생활은?
김인선: 한국에서 지내는데 도움이 되라고 탈북민에게 지원하는 초기정착금인데, 그 돈을 남편에게 다 준 데다가 혼자 돈 벌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까지 데려왔으니 도정 씨의 한국생활은 여느 탈북민들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탈북 자녀들에게도 여러 가지 지원이 있긴 하지만 혼자 몸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아이까지 먹이고 챙기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일하면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도정 씨는 살아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식당에서 설거지도 했고 농사도 지어 보고, 또 장사도 해 보고, 회사 생활도 했습니다. 농사나 장사보다 회사 생활이 가장 안정적이고 일하는 여건도 좋았지만 당시는 탈북민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때라 회사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시선들이 무섭고 힘들어서 도정 씨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직접 자신의 장점인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가서 함께 먹으면서 자신의 상황과 어려움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차별에 대처하는 법
내가 바뀌어야 상대방도 바뀐다
그렇게 먼저 마음을 터놓고 동료들에게 다가갔더니 상황이 호전되었습니다. 회사 동료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져서 도정 씨는 마음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도정 씨는 자신의 경험이라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국에선 애를 키우는 주부들이 처녀처럼 자기 관리도 잘하잖아요. 그래서 아줌마로 불리는 걸 싫어하는 편이죠. 그런데 도정 씨는 그런 분위기를 모르고 처음에 다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해요. 그러다 나중에 호칭을 언니라고 불렀더니 누구나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김인선: 한국의 문화라고 할까요? 언제부턴가 저도 아줌마, 아저씨라는 표현을 안 쓰게 되더라고요. 음식점 가서도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고 언니, 혹은 이모라고 불러요.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요. 점원들 중엔 부업을 하는 학생들도 많은데요. 그때도 이모, 삼촌, 언니... 이런 호칭을 사용하거든요. 아줌마, 아저씨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언니나 이모는 훨씬 친근하고 친절한 느낌 아닌가요?
마순희: 사실 저는 그런 호칭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 딸들과 함께 식당에 갔을 때 일하시는 분을 아줌마라 하지 않고 이모라고 부르면 다들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택배 기사나 택시 기사, 그리고 제가 일하는 센터에 건물 관리 차 오시는 분들에게도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다들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요. 아마 도정 씨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도정 씨는 그렇게 아줌마라는 호칭 대신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동료들과 가까워지게 됐고 회사 생활도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온 지 1년 7개월 정도 되었을 때쯤 결혼도 했습니다. 도정 씨는 한국에 가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 했는데요. 회사에 다니면서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합니다. 도정 씨의 남편은 도정 씨가 원하는 걸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남자는 내가 고른다
청혼도 내가 먼저?
김인선: 남편 분이 이해심은 깊지만 두 분이 연애하는 동안 도정 씨를 그렇게 애타게 했다면서요?
마순희: 네. 소개팅을 한 후에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는데요. 두 사람이 가깝게 지내면서도 남편은 결혼 생각이 없는지 도정 씨에게 아무런 말도 없었다고 합니다. 도정 씨 남편은 지금 같이 있는 걸로 만족하면 되지 왜 부담을 줘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도정 씨가 먼저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1년간의 연애를 한 후 2008년에 결혼했습니다. 도정 씨 부부는 지금 슬하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명태사업을 하면서요. 대표자 명의는 김도정 씨이고 경기도 가평과 서울에 사업장이 있습니다.
김인선: 도정 씨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을 검색해 보니까요. 규모도 크고 취약계층과 고령자들에게 일자리 제공을 해주고 있는 사회적기업이네요?
마순희: 네. 사업을 시작할 때 소외계층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계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지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한 거죠. 그래서 도정 씨는 사업의 규모를 더 확장시켰습니다. 가평에서는 명태덕장을 만들고 질 좋은 마른명태를 생산해서 판매하고요. 서울에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코다리찜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농마국수 냉면으로도 유명해요. 북한식 만두나 순대, 그리고 말린 명태 가공품들도 판매하고 있기에 늘 일손이 바쁘답니다.
김인선: 사업하는 분들은 시대적인 흐름을 많이 타더라고요. 최근 몇 년간 코로나비루스로 인해서 문을 닫는 사업체들이 정말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도정 씨에게도 그런 위기가 생기진 않았을까 걱정이네요.
위기를 기회로…
명태사업부터 코다리찜 식당까지
마순희: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어 하고 있지만 도정 씨네 식당은 다행히도 계속 영업 중입니다.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북한 명태며 순대, 만두 등은 배달이나 택배 등으로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비루스인 오미크론으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도정 씨는 이 어려움도 강인한 의지와 타고난 성실성으로 잘 이겨나가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지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한 걸음 더 도약하는 김도정 씨! 결혼도 사업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가는 당찬 그녀의 더 힘찬 도약을 항상 응원합니다.
김인선: 도정 씨가 이런 말을 해주는 것 같아요. '내 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이다!' 라고요. 여러분은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김인선,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