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공군비행사였던 박정숙 씨의 한국정착이야기, 사랑의 힘으로 귀농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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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네. 안녕하세요.

김인선: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흑염소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숙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정숙 씨는 북한에서 공군 출신으로 염소 키우는 일과 전혀 관련이 없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주민들은 집집마다 염소를 키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정숙 씨 역시 염소가 낯설지는 않았다고 했었죠?

마순희:맞습니다. 염소 키우는 일이 낯설지 않았던 정숙 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강원도 춘천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흑염소 목장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가정에서 염소 한, 두 마리를 키울 때와는 달리 목장에서 수백 마리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텐데요. 정숙 씨는 그런 걱정도 두려움도 전혀 없었습니다. 기백이 남달랐다고나 할까요? 한국에서뿐 아니라 중국, 북한에서부터 정숙 씨의 대범함과 추진력은 대단했습니다. 배급이 잘 안 나오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싫다고 장사를 시작했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선뜻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인신매매단에게 잡혀가게 됐지만 팔려가기는커녕 그들에게 도망갈 방법을 듣고 돈까지 받아서 탈출을 했습니다. 정숙 씨는 일주일을 산에서 숨어 지낸 후 산동성으로 내려왔는데요. 이후 숨어든 곳이 청진에서 팔려 온 북한여성이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을 소개받아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로를 알게 됐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2009년 무사히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원산시가 고향이었던 정숙 씨는 고향이 한 걸음이라도 가까운 강원도 원주로 거주지를 배정받았습니다.

한국정착에 가장 큰 어려움은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김인선:당차게 인신매매자들에게 돈까지 받아서 중국을 벗어났던 정숙 씨였잖아요. 한국정착도 잘 해냈을 것 같은데요. 의외로 힘든 시간을 많이 보내셨다면서요?

마순희:네. 정숙 씨의 한국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 정숙 씨가 공군으로, 비행사의 아내로서 호강을 했다고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노동당에서 배급해 주는 모든 최고급 대우의 물건들도 한국에서는 누구나 어디 가든지 마음대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정숙 씨에게 혼란을 준 것은 이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사회에서는 짜여진 틀 안에서 생활하면 됐는데, 한국사회는 모든 것을 자신이 알아서 해야 했기에 정숙 씨는 너무나 힘들고 어렵고 또 외로웠다고 합니다.

사람들과의 소통 불가로 쌓인 불만과 분노, 우울…

특효약은 역시 사람?

한국에서 정착하고 살아가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지만 정숙 씨는 동료들과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치기만 하고 싸우기 일쑤였습니다. 모든 것이 불만이고 알 수 없는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그런 정숙 씨를 누군들 좋아했을까요. 대화를 할 사람조차 없으니 감정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정숙 씨는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밤이면 잠을 잘 수 없어 수면제를 먹으며 겨우 잠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기간만 3년 정도 됐다고 합니다. 정숙 씨는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정착 시기를 보냈던 것입니다.

김인선:우울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병이에요. 부정적인 기분이 많이 들고 무기력한 증상이 대표적인데요. 사람 관계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개선되거나 치유되기도 하거든요.

마순희:정말 맞는 말씀인데요. 박정숙 씨 역시 사람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남편입니다. 정숙 씨가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대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주위 사람들이 선을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아버지도, 자신도 모두 강원도가 고향이라 강원도 사람이 아니면 안 만난다고 했다는 정숙 씨인데요. 마침 강원도에 살고 있는 좋은 사람이 있다면서 소개를 하더랍니다. 큰 기대 없이 만났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정숙 씨는 이 사람이 내 희망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1시간반 거리를 매일 달려와주고 위로해주던 한 사람

그로 인해 달라진 세상, 달라진 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숙 씨를 위해 매일 한 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매일 저녁마다 출퇴근하듯이 와서 함께 해 주고 위로해 주는 지금의 남편 덕분에 정숙 씨는 달라졌습니다. 싸움닭이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 하고 늘 자신만의 울타리 속에 갇혀 지내던 정숙 씨는 점차 회사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시간이 되는 대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물론, 함께 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정숙 씨는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원주에 살던 정숙 씨는 남편과 함께 마식령 줄기에 흑염소 목장을 하기로 하고 춘천의 한 산골마을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김인선: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거주지를 배정받을 때 수도권을 더 선호하고 지방에서도 도심권에서 살기를 더 원하는 편인데 정숙 씨의 경우엔 사랑의 힘으로 농촌행을 선택했네요.

마순희:맞습니다. 3년 전쯤 정숙 씨네 흑염소목장에 찾아가 봤는데요. 가는 길에 고라니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 신기해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기도 했을 정도로 산골동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흑염소 목장에 도착해 보니 전원생활을 하는 근사한 별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장비 임대업을 하는 남편이 인부들과 함께 직접 집을 지었다고 하는데요. 근사한 전원주택이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그 곁에 있는 축사에는 수백 마리의 흑염소들이 자라고 있었고 청계닭을 키우는 사육장도 있었습니다. 정숙 씨는 지금의 생활이 힘들긴 해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른 아침에 흑염소먹이를 주고, 우리를 청소하고, 아픈 흑염소를 치료해 주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청계오리 사육과 과수원 사업까지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3천 평 규모로 복숭아 농장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요즘은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지경이라며 웃더라고요.

수백 마리의 흑염소와 닭 수십 마리

3천 평의 복숭아 농장까지

몸은 힘들어도 매일 알콩달콩한 부부

김인선:하는 일이 많은데 왜 안 힘들겠어요. 그런데도 몸이 힘든 지도 모르고 일한다는 얘기는 그만큼 행복하다는 걸 텐데요. 남편분과 그렇게 사이가 좋으시다면서요?

마순희:맞습니다. 정숙 씨네 부부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 있는 동안에도 부부는 힘든 일도 서로 자기가 한다고 실랑이하고, 힘들었겠다고 어깨를 주물러 주는 등 애정표현이 일상이더라고요.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정숙 씨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실 새가 없었답니다. 코로나로 수입이 줄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숙 씨의 경우 정반대로 일거리가 더 많아졌는데요. 면역력 향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숙 씨네 흑염소 농장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문 건수가 늘어남에 따라 가공과 택배 등 하는 일은 더 많아졌지만 부부는 늘 그 모든 일을 함께 하면서 알콩달콩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탈북민 제 2의 인생

저와 함께 농촌에서 시작하세요~

정숙 씨는 농촌에 와서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해 볼만 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정부에서 귀농정착금까지 지원해 주는 만큼 농촌으로 와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도 해 볼만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숙 씨의 말처럼 우리 탈북민들 중에 도시에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하지 못 할 바에는 차라리 농촌으로 가서 제2의 성공적인 정착도 생각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장을 잘 키워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마식령 줄기에 흑염소목장을 운영하며 탈북민들의 본보기가 되어 가고 있는 박정숙 씨! 정숙 씨의 더 힘찬 도약을 응원합니다.

김인선:누군가의 눈에는 힘들어 보이는 농촌생활이지만 정숙 씨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숙 씨가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삶을 만족하는 것이 아닐까요? 귀농으로 제2의 삶을 사는 박정숙 씨의 삶을 통해 행복의 기준이 뭘까 생각해봅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네. 감사합니다.

김인선: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