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칼국수 대표, 김향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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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남한에서는 맛있는 식당을 알고 싶으면 택시기사들이 즐겨찾는 곳을 가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만큼 기사식당으로 유명한 곳은 대부분 '맛'과 저렴한 가격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인공도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충청북도 충주 터미널 근처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제법 소문난 맛집, 평양손칼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향숙 씨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충주에서는 택시를 타고 평양손칼국수집 가자고 하면 바로 알아들을 정도로 유명하답니다.

김인선: 그런데요. 평양만두, 평양냉면. 이 두 음식은 많이 들어봤는데요. 평양칼국수는 많이 못 들어 봤거든요. 평양에서 칼국수도, 그러니까 칼제비가 유명한가요?

마순희: 평양이 칼국수가 유명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다만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평양이라는 지명으로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는 해요. 향숙 씨에게 칼국수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어떤 메뉴로 식당을 할까 생각하면서 시장조사를 많이 해보았는데 칼국수가 밑반찬이 적게 나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잔반이 가장 적게 나오고 식자재도 비교적 간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칼국수집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그럼 정착 초기부터 충주에서 칼국수 집을 시작한 거예요?

마순희: 아니에요. 향숙 씨는 2002년에 한국에 입국했으니까 올해로 한국 정착 16년차가 되겠네요. 처음 향숙 씨가 자리를 잡은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정착 초기에 그녀는 잠을 줄이고 하루에 일자리 세 곳을 동시에 다니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답니다. 그리고 만원이 넘는 옷이나 화장품은 한 번도 안 샀을 정도였다는데요. 덕분에 제법 많은 돈을 모아서 본인의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힘들게 모은 재산과 집을 한 순간의 실수로 모두 잃게 됐습니다.

김인선: 한 순간의 실수라면요?

마순희: 네. 가족과 같았던 가까운 사람이 향숙 씨의 전 재산을 탕진해 버렸기 때문인데요. 집문서까지 다 맡긴 게 화근이 됐답니다. 이렇게 가장 어려웠을 때 하나원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지금의 남편을 따라서 단돈 몇 십 만원을 들고 충주에 내려갔다는데요. 그런데 남편 역시 무일푼이었고 심지어 부채까지 있었답니다. 하지만 향숙 씨 부부는 한국에 올 때도 빈손으로 왔는데 지금부터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하면서 함께 힘을 합쳐서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처럼 식당을 하고 싶었지만 가진 돈이 얼마 없다 보니 가장 싼 가게를 찾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장사가 잘 안돼서 문을 닫는 상가를 싼 값에 인수했다는데요. 그곳이 바로 충주 터미널 근처였던 겁니다.

김인선: 장사가 잘 안됐던 곳에 가게를 차린다는 게 굉장히 위험한 일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런 곳에 가게를 열 생각을 했을까요?

마순희: 김향숙 사장이 처음 음식점을 내올 때 주변 사람들이 얼마 못 가서 문을 닫는다고 극구 말리기도 했답니다. 식당은 무엇보다 위치도 좋고 인맥도 많아서 단골도 있어야 하는데 아는 사람도 없이 어떻게 식당을 시작하는가 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향숙 씨의 생각은 달랐답니다. 음식 장사는 위치가 좋고 지인이 많다고 해서 장사가 성공하고 지인이 없다고 망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좋은 식당이라고 소문이 나면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또 두 사람이 왔다가 스무 사람이 오는 식으로 단골이 된다는 것을 이미 서울에서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치가 좀 안 좋더라도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면 자가용이 다 있다 보니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 아닌가요? 결국 향숙 씨의 평양손칼국수집은 이름에 이끌려 호기심에 한 번 찾아오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했지만 하루하루 단골이 늘어났고 그럴수록 더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친절 봉사를 했답니다. 그래서 김향숙 씨의 노력으로 식당은 개업 1년여 만에 단골손님들도 많아지고 식당 수익도 나날이 늘어났습니다. 그 덕에 30평 새 아파트도 장만하게 됐고 남편과 함께 새집에 입주도 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집을 장만할 정도면 매출이 좋을 것 같긴 한데요. 일단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을 볼 때 얼마나 많이 팔리나,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되나, 이 점이 참 궁금하거든요. 평양칼국수집은 어떤가요?

마순희: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요. 정작 매출이 얼마냐고 물어도 선뜻 얼마라고 말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웃으면서 점심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이 온다고 했습니다. 제가 찾아가던 날 택시를 이용했는데요. 기사님이 가는 길에 마치 자기 일처럼 가게 자랑을 하더라고요. 10년 전의 가격을 한 번도 올린 적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가격이 싸다고 음식 맛도 싸구려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평양 손칼국수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고 다시 안 오는 사람은 없다고 그런 농담까지 섞어서 홍보하시더라고요.

점심시간을 넘기고 저녁 영업하기 전 한 숨 돌리는 시간을 제가 택해서 찾아 갔거든요. 시간이 지나서 미안했지만 그래도 그 유명하다는 손칼국수를 먹어보지 않을 수 없어서 식사를 주문했는데요. 뽀얗게 국물이 우러난 해물 칼국수며 보리밥에 열무김치까지 정말 손님들이 한 번 왔다가 왜 단골이 되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10년 전 가격이 지금도 그대로라면 어느 누군들 환영하지 않겠어요?

김인선: 맞아요. 그런데 10년 전 가격이 그대로라면 얼마일까요?

마순희: 해물 손칼국수, 짬뽕, 보리밥 정식 이런 모든 음식들이 다 5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나오거든요. 게다가 칼국수를 주문하면 보리밥은 덤이었습니다. 그 보리밥과 열무김치는 옛날 엄마가 해주시던 맛 그대로여서 지금도 생각만 해도 먹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김인선: 음식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장사가 잘될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장사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하잖아요. 향숙 씨에도 몇 번의 어려움이 있었다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서울에서 장사할 때 가까운 사람에게 돈을 떼이면서 무일푼이 된 어려움이 있었고요. 서울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충주로 빈손으로 내려 갔잖아요. 그래서 평양칼국수집을 운영하면서 조금 돈이 모이자 이번에는 주방에서 가스사고로 화재가 나 향숙 씨는 온 몸에 화상을 입게 되고 일을 못하게 됐죠. 결국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과 부를 다같이 안겨 주었던 자식같이 아끼던 고마운 식당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만 했던 거죠. 그녀는 화상으로 망가진 팔 근육을 회복해서 다시 식당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그래서 하루에 수천 번 이상씩 젖은 수건을 짜면서 재활훈련을 했고 몇 년은 걸려야 된다는 의사선생님들의 말을 무색하게 하면서 향숙 씨는 몇 달 후 더 큰 규모로 다시 새 식당을 열게 됐는데 그것이 지금의 평양 손칼국수집 입니다.

김인선: 사기도 당하고 화상도 입고. 보통 사람들 같으면 포기하거나 취업을 했을 텐데 어떻게 향숙 씨는 그렇게 힘든 일을 겪고도 포기 하지 않았을까요?

마순희: 저도 향숙 씨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순간의 주저도 없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겨도 자신을 항상 믿어주고 함께 하는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더군요. 그리고 북에서 데리고 오지 못한 자식들 앞에 떳떳한 엄마로 나서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아무리 어려워도 주저앉을 수 없는 이유였다고 했습니다. 반팔 티셔츠 사이로 아직 가셔지지 않은 화상 흉터가 보였는데 그것이 어쩌면 철의 여인 향숙 씨를 대변하는 훈장처럼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향숙 씨의 소망은 소박했는데요. 저렴한 가격으로 정성을 담은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향숙 씨의 소망이자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김인선: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향숙 씨의 소망이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성공은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충주의 ‘평양손칼국수’ 김향숙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지금까지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