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북한 군인들에게 속아 뒤바뀐 인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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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살아가면서 굴곡진 시간을 안 겪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극복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결정되는데요. 지난주에 소개해 드렸던 오민정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거절하기 힘들었던 국경경비대 군인들의 제안

그 선택으로 일생이 달라진 오민정 씨

마순희: 맞습니다. 북한 국경지대의 읍내시장에서 자그마한 식품가게를 운영하던 오민정 씨는 외상값 대신 중국에 가서 돈을 벌 수 있게 도움을 주겠다는 군인들의 제안을 받게 됐는데요. 광산노동자들이 일하는 곳 인근 식당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선을 놓아주겠다는 협상 조건을 수락했습니다. 그 선택으로 민정 씨의 일생이 확 달라졌습니다. 중국에 도착해 보니 군인들이 민정 씨를 한족에게 팔아 넘긴 상태였던 겁니다. 한족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 시행되는 산아제한정책으로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아이를 낳은 경우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민정 씨는 '지성반'이라는 단속기관을 피해 사느라 시내에는 나가지도 못 하고 산속에서 애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숨어 살았습니다.

겨울이면 얼음을 녹여서 빨래도 하고 식수를 해결해야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깊은 산속도 안전한 피신처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지성반에서 민정 씨를 기어코 찾아냈고 민정 씨는 이곳 저곳의 산속을 옮겨 다니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아기가 5살이 되면서부터 몇 십리 떨어진 시내에 간혹 나가게 됐는데 이때 시내에 있는 교회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한국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민정 씨는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고 6개월에 걸친 험난한 여정을 거쳐 2010년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다양한 교육을 받게 되는데 민정 씨의 경우 교육 기간 중에 자궁근종으로 수술을 받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초기정착 교육을 덜 받게 됐습니다. 그런 채로 입국동기생들과 같이 퇴소를 하게 됐는데요. 민정 씨는 한국에서도 따뜻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대구시로 거주지를 배정받았습니다. 하나원을 나온 첫 날 밤, 민정 씨는 빈 방에 홑이불을 덮고 온 밤 잠을 이루지 못 하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원에서 자격증 취득도 하고 여러 가지 수업을 받았는데, 자신은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사회에 첫 발을 디딘 탈북민의 첫 날 밤

두려움과 막막함, 그리고 외로움

김인선: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에 나온 첫 날 밤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거 같아요. 이제 정말 낯선 곳에서 혼자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저도 막막할 거 같거든요. 하지만 우리 탈북여성들 공통점이 용감하다는 거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민정 씨도 수술이 잘 끝났기에 자신의 몸 상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용감하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에 남겨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들을 위해서 경제적 지원을 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지 못 한 상태였는지, 민정 씨가 시작한 일은 무리가 되었고 다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민정 씨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육체적인 일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그 시간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배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민정 씨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대구보건대학에 입학했고 밤을 새워 가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2년간 왕복 4시간을 다니는 통학 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등교했고 재학 기간 내내 근로 장학생으로 혜택까지 받았습니다. 밤에는 부업도 하고 학원도 다녀서 민정 씨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11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민정 씨는 몸을 추세우면서 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건강이 회복하면 취직해서 또 열심히 살기 위한 준비를 한 것입니다.

밤샘 공부에 왕복 4시간 통학으로

자격증 11개 취득하며 사회생활 준비 완료

김인선: 고난이 연속되면 나락으로 떨어졌다, 밑바닥까지 왔다... 이런 표현을 하는데요. 오민정 씨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것 같아요. 대학과정을 잘 마친 것처럼 민정 씨의 직장생활도 순탄해야 할 텐데.. 공부는 혼자 힘으로 해야 하는 비중이 크지만 사회생활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비중이 훨씬 크기에 살짝 염려되는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사람 관계는 탈북민들이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죠. 다행히 민정 씨는 항상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기에 회사생활도 잘 해 나갈 수 있었답니다. 대학졸업 후 민정 씨는 진영산업이라는 생산직에 취직해 일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경북대의 도서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생산직 일을 할 때엔 육체적인 어려움이 따랐고 도서관에서 일할 땐 외래어가 많아 업무를 보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영남 가족사랑지원센터에서 탈북민 동료상담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민정 씨는 몇 년간 센터에서 근무했습니다. 일하면서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는데요. 대학생활 중에 처음 접했던 봉사활동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내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보람있게 만들어주는 지 알게 됐던 민정 씨는 자신 뿐 아니라 주위의 다른 탈북민들도 하나, 둘 봉사활동에 동참하도록 이끌었고, 2014년부터는 '더불향'이라는 봉사단체를 정식으로 발족하기도 했습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업무에 열심인 민정 씨를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영남가족사랑지원센터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김인선: 민정 씨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고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알게 됐는데 아직 잘 모르는 분들도 많거든요. 한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또 살고 있는 탈북민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런 분들에게 민정 씨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요?

탈북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선택’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

마순희: 네. 오민정 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준비하고 노력해서 자신의 업무에 정통해야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민정 씨 역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정 씨는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중국의 남편을 위해서 도리를 다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산속에서 인삼 농사를 하고 있는 아이 아빠에게 새 차를 살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몇 년 전 민정 씨는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아껴주는 일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됐고 최근엔 자신의 사업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민정 씨는 지금 안동시에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농촌에 필요한 농기구와 농구들을 판매하는 가게를 새로 내오게 되었고 하루하루 벅찬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 도착 후 수술을 받게 되면서 수급자로, 어쩌면 국가의 혜택만 받을 수 있었던 오민정 씨. 하지만 민정 씨는 수급자의 삶 대신 봉사자의 삶, 일하는 삶을 선택했고 자신이 선택한 삶에 행복과 감사를 느끼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업무에 열심인 오민정 씨는 우리 탈북민들의 자랑이라는 말을 이 자리를 빌어 꼭 전하고 싶습니다.

김인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삶을 사는 오민정 씨처럼 우리 모두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