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조민주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민주 씨는 아편중독에 빠진 남편을 치료하기 위해 중국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제대로 치료도 받아 보지도 못하고 북송됐습니다. 민주 씨는 북송된 후 탈북의 원인을 모두 민주 씨 탓으로 돌렸는데요. 민주 씨는 자녀들을 위한 남편의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민주 씨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했는데 북한 친척에게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었죠?
한국 오자마자 전해 들은 남편의 죽음
북한의 자녀들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
마순희: 네. 민주 씨가 북한에 돌아오면 민주 씨는 물론 온 가족이 다 잘못될 수 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민주 씨는 한국행을 결심했고 3국을 거쳐 2012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2-3개월 동안 한국생활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는데 민주 씨는 이 기간 중에 남편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됐습니다. 낯선 곳에서 감당해 내야만 했던 슬픔은 몇 배로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거주지를 배정받은 후까지 지속됐는데요. 북한에 남아있는 자녀들 생각에 민주 씨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남의 집 살림살이와 청소 등 집안 일을 돕는 가사도우미 일부터 식당 일까지 1년 동안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번 돈의 대부분은 북한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민주 씨는 최소한의 돈으로만 생활했습니다.
김인선: 청소 일이나 식당 일은 시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먹기에 따라 자격증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다른 일을 추가로 더 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개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에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보다 전문적인 일을 준비하고 시작하게 됐다는 탈북민들도 많으셨는데 어느 정도 한국생활이 익숙해진 후에야 가능한 것 같아요. 마음의 여유도 필요하니까요. 민주 씨는 한국생활이 익숙해졌을 때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까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컴퓨터 자격증 취득
마순희: 짧게는 2-3개월 후부터 좀 더 나은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탈북민들도 있지만 민주 씨의 경우 한국에 정착한 지 1년 정도 지나서야 가능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좀 더 많이 돈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과 이왕이면 최대한 빨리 자녀들을 한국에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알아보니 좀 더 보수도 좋고 안정적인 일을 하면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던지 컴퓨터를 모르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또 자격증을 취득하면 탈북민들을 위해 한국정부로부터 자격증 취득 장려금도 받을 수 있었기에 민주 씨는 식당 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컴퓨터 학원에 다녔습니다. 자격증도 취득했고 회사생활을 해도 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때마침 지인들의 소개로 고속도로 요금소 직원으로 취직도 하게 되었습니다. 민주 씨가 하는 일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에게 통행료는 받는 일이었습니다.
김인선: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받을 때 차종에 따라 통행료가 달라서 눈썰미도 있어야 하고 차에 대해서 기본적인 정보도 있어야 하거든요. 차종을 잘 모르면 일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데, 한국에서 생활한 지 1년 밖에 안 된 민주 씨가 잘해낼 수 있었을까요?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한국 돈 구별하기?
마순희: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받는 일이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차종을 구별하는 것부터 민주 씨에게 어려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에 비해 차종도 너무나 많았고 무엇보다 돈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주 업무인데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한국 돈은 지폐로 되어 있는 만원, 오천원, 천원부터 동전으로 만들어진 500원, 100원, 10원까지 다양했는데 민주 씨는 눈으로 돈을 보면서도 자꾸만 헷갈렸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가 요금소를 통과하면서 잠시 속도를 줄인 뒤 짧은 시간 내에 통행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라 계산도 빨라야 하고 거스름돈도 잘 챙겨야 하는데 민주 씨는 난생처음 해 보는 일에 당황하고 어렵기만 했습니다.
당시 민주 씨가 근무했던 곳은 경산지역 요금소인데요. 그곳엔 민주 씨처럼 탈북민이 꽤 여러 명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민주 씨와 같은 어려움을 경험했고 그 과정들을 이겨낸 후 잘 정착할 수 있었기에 진심어린 마음으로 민주 씨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민주 씨는 점차 회사생활에 익숙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먼저 정착한 탈북 선배였던 그분들은 탈북민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우리 새싹회’ 회원들이었습니다.
세상 막막한 탈북민의 첫 날 밤을 함께 해준
탈북민 봉사단체 ‘우리 새싹회’
제가 언젠가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우리 새싹회’ 회장도 지역에 배치되어 온 초반엔 막막함과 외로움으로, 그리고 정착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등으로 여러 날을 눈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는데도 말이죠. 그때의 감정을 지금도 잊지 못 하기에 ‘우리 새싹회’ 회장은 경산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하는 탈북민들에겐 외로운 밤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며 거주지 배정을 받은 첫날을 함께 보내준다고 하는데요. 민주 씨 역시 우리 새싹회 봉사단들과 함께, 배정받은 자신의 집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김인선: 정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여기가 어딘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장 막막하다고 하는 탈북민의 남한사회 첫 날 밤, 그런 분들이 계시면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그래서 민주 씨도 고마운 마음으로 봉사단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민주 씨는 정착의 어려움도, 성공의 기쁨도 그들과 함께 나누며 회사생활의 어려움도 이겨 나갔던 것입니다. 민주 씨는 한국생활 4년 만에 브로커 자금을 마련하고 아들과 딸을 한국으로 무사히 데려왔습니다. 두 자녀 모두를 한국에 데려왔을 때에는 엄마로서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지만 자식들의 보호자로서 민주 씨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또 있었습니다. 20살이 된 아들과 18살이 된 딸의 장래에 대해 고민해야 했고, 자식들의 학업부터 자신이 한국사회에서 맨 처음 느꼈던 때처럼 그 애들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어려움까지 어느 것 하나 민주 씨의 몫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두 자녀 모두 큰 문제없이 지냈고 민주 씨의 자녀들은 엄마의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어느새 전문대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고, 딸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계약직으로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일을 시작했던 민주 씨는 도로공사의 정직원이 되었고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회사일로 출장을 가느라 어쩔 수 없이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새싹회' 봉사단원으로도 변함없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환영해주고 함께 해주는 탈북민 봉사단체
김인선: 민주 씨가 한국생활에 이렇게까지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새싹회'라는 봉사단체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민주 씨 뿐 아니라 탈북민들 중 상당수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마음의 안정까지 얻는다고 하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생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숨은 공신이 바로 봉사단체인데요. 가장 외롭고 힘든 순간에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다'라고 찾아주고 환영해 주고 같이 살아가자고 손잡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지금 민주 씨는 '우리 새싹회'의 총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마음을 나누며 후배 탈북민들에게, '아무리 어려운 일이 많더라도 참고 인내하면서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알립니다. 평소 민주 씨는 고향을 등지고 온 우리가 이 땅에서 잘 사는 것만이 두고 온 식구들이나 지인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데요. 민주 씨의 그 말이 제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메아리로 다가옵니다.
김인선: 뭐든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해요. 자신을 탓하기보다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말이죠. 조민주 씨의 삶이 성공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스스로가 살아갈 이유를 찾아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