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내 인생 최악이자 최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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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인생은 선택의 결과라는 말이 있는데요. 매번 먹는 끼니부터 그래요. 밥을 먹을지, 국수를 먹을지, 집에서 먹을 것인지, 식당으로 갈지, 또 식당은 어떤 식당으로 갈지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디 먹는 것 뿐인가요. 물건을 고를 때, 휴가지를 고를 때, 진로 방향을 잡을 때 등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가끔은 누가 결정지어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더라고요. 특히 저는 평소 선택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까 주변에서 '결정장애'가 있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는데요. 구박을 받아도 쉽게 고쳐지지 않네요.

마순희: 우리 탈북민들이야말로 북한에선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선택이 늘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많은 선택 중에서도 정든 고향을 등지고 탈북을 결심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거든요. 오늘 이 시간에는 매 순간 현명한 판단과 선택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2009년 대한민국에 입국해 경기도의 한 지방도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김명길 씨의 이야기입니다. 제대군인인 명길 씨는 북한 함경남도의 한 군의 원료기지사업소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일로 갑자기 탈북을 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남한에서 들여보낸 낙하물 때문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국에서 날아온 낙하물

명길 씨의 고향에는 간혹 남한에서 날려 보낸 풍선이 떨어졌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풍선에 실려서 날아오는 물건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요. 북한에서는 그 물건들이 위험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독이 발려 있다고 먹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만지지도 말고 신고하라고 했거든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낙하물을 접해도 공포스러운 물건으로 생각해 신고를 했지만 명길 씨는 남한이 가까운 황해남도 지역에서 군사복무를 해 왔던 지라 그 모든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산길을 가다가 떨어진 낙하물을 발견했는데요. 명길 씨는 지침을 지키지 않고 낙하물 안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졌습니다.

김인선: 남북분단 이후로 남쪽이나 북쪽 모두 풍선을 이용한 전단을 살포하다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서로 중단하기로 약속을 했는데요. 한국의 몇몇 탈북민 단체에서 북쪽으로 미국 달러나 라면, 쌀 등의 생필품과 함께 북한체제의 진실을 알리는 전단을 풍선에 넣어 계속 띄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저도 취재하면서 북한에 있을 때 한국에서 보낸 물품을 접해봤다는 탈북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김명길 씨도 그분들 중에 한 분이시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도 한국에 와서 북쪽을 향해 풍선을 날리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요. 당시엔 저것들이 진짜로 북한까지 날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날리는 건 제 눈으로 똑똑히 봤지만 북한에 있을 때 낙하물을 받아본 적도 없고 받아봤다는 사람도 없었기에 잘 믿어지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명길 씨를 만나고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그런 물건을 직접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 이전에는 쌀이나 라면 등 식료품들과 화장품을 비롯한 생필품 등을 풍선 속에 넣었다면 2010년 이후로는 미국돈 달러와 비상약을 포함해 한국드라마와 노래가 담긴 CD, USB까지 넣어서 북한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낙하물 속 한국 화장품 나눠줬다가 체포될 위기에 처해

탈북을 선택한 명길 씨

2009년에 한국에 입국한 명길 씨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 식료품과 생필품만을 접했습니다. 라면이나 과자 같은 식품은 명길 씨가 먹었지만 다른 생필품들이 고민됐습니다. 화장품을 비롯한 질 좋은 필수품이라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작업반장이었던 명길 씨는 비닐로 포장된 화장품의 상표를 떼고 작업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는데 그 일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남한제품을 사용하고 그에 대해 선전까지 했다는 이유로 김명길 씨는 체포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피해 탈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김명길 씨는 1993년에 혜산 쪽으로 해서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살기 위해 급박하게 선택한 중국행이었네요. 하지만 중국은 탈북민들에게 어쩌면 북한보다 더 가혹한 곳이죠. 명길 씨가 잘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살고자 간 중국이지만 불법체류자로 살아야 하기에 그곳에서의 삶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탈북 여성들인 경우 불법체류자 신세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중국의 남성들과 함께 살게 되기에 최소한 가족 내에서라도 신변의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지만 남성들의 경우에는 다르거든요. 탈북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실컷 일을 시키고 급여는 제대로 주지도 않았고, 제대로 달라고 요구하면 탈북민이라고 고발해서 잡혀가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요. 명길 씨는 처음엔 탈북해서 공안의 눈을 피해 산 속에 숨어 있었는데 마지막엔 이러다가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을 위해서는 위험하더라도 인가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명길 씨는 산길을 헤맸고 마침 중국인 노인이 혼자 살고 있는 산막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인이라 말 한 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명길 씨의 행색을 보고 모든 것을 짐작한 노인은 서슴지 않고 집안으로 불러 배불리 먹여주고 잠자리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탈북민을 숨겨 주었다는 것이 탄로 나면 노인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명길 씨는 지금도 그 어르신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산 속의 한 마을에서 오직 근면성실함으로

13년을 숨어서 버틴 탈북생활

김인선: 변방대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많다는데, 명길 씨는 마음 좋은 어르신을 만나셨네요. 어르신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명길 씨가 뭔가 특별한 행동을 했다면서요?

마순희: 맞습니다. 기력을 회복한 명길 씨는 사경에서 헤어 나오게 해 준 고마운 노인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마당 한 켠에 이겨 놓은 진흙덩어리가 있는 것을 보고 겨울나기를 위해 벽을 바르려고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눈치 챈 명길 씨는 정성 들여 벽을 발라주었습니다. 밥값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생각에 겨울에 땔 장작을 패서 마당 한 켠에 가지런히 쌓아 놓았고 산막의 구석구석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알뜰히 손질해 주었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는 그의 성실한 모습을 본 노인은 명길 씨를 진심으로 믿게 되었고, 동네에서도 일손이 필요한 집이 있으면 소개해 주면서 명길 씨가 산막에서 지낼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김인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가장 어려운 건데, 명길 씨는 어르신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들까지 사로 잡으셨네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신뢰감을 얻은 명길 씨인데요. 명길 씨에 대한 신임은 이게 다가 아니었죠?

중국 공안의 보호까지 받았던 탈북민

왜 한국으로 가게 됐을까?

마순희: 그렇습니다.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명길 씨는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명길 씨를 믿었고 그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이집 저집 일을 하다 보니 나중엔 그 지역의 공안 간부의 집 일까지 하게 됐는데 그 간부도 명길 씨의 성실성에 감탄해서 믿고 일을 맡기게 됐습니다. 명길 씨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굉장했는데요. 혹시라도 탈북민 검거 명령이 내려 올 때면 먼저 소식을 알려서 명길 씨가 피신하도록 해 줄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위험 부담까지 감수해 가면서 그를 보호했던 것입니다. 젊고 일 잘하고 눈썰미 있는 명길 씨는 마을사람 전체에게 신뢰를 얻게 되면서 이른바 관리업무까지 맡게 되었고 아래에 사람들을 두고 작업을 지시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명길 씨는 중국에 정착하여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어서 탈북민 대다수가 중국에서 신임을 받고 살다가도 누군가의 고발로 북송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명길 씨처럼 오랫동안 중국에서 정착해 잘 사는 탈북민 얘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랜 시간 중국에서 살았던 명길 씨가 어떤 이유로 13년의 중국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오게 됐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봅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