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유롭고 싶다', 직장인들이 늘 하는 말인데요.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에 가고 저녁에 퇴근해 집에 와서 잠깐 쉬다 자면 다시 아침,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힘들고 지겹다는 거죠. 하지만 회사 때려치우고 자기 사업 시작한 분들이 또 이런 말을 합니다. 평범한 그때가 좋았다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작은 가게라도 자기 사업은 신경 쓰고 할 일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사람은 만족이 없다는 말이 생겨 났나 봅니다. 요즘은 저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다 보니 일하던 그때가 참 좋았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러면서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느끼고 있답니다. 요즘은 텔레비전 보는 시간도 많아서 세계적으로 전쟁이며 테러 같은 소식과 함께 온갖 사건사고 소식들까지 접하다 보니 반복되는 일상이 절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최근에서야 평범함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데요. 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는 이전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성공한 정착이라고 말하는 허지유 씨인데요. 오늘 성공시대 주인공으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지유 씨는 올해 38살 된 젊은 탈북청년으로 2012년에 북한을 떠나 중국에 가 있던 언니와 함께 지내다가 2014년에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행복하고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친구랍니다.
평범한 일상이 소원인 탈북청년
김인선: 오랜만에 젊은 탈북청년을 소개해드리네요. 그런데 젊은 청년이 평범함의 소중함을 벌써 알고 있다면 반대로 과거에 고난도 그만큼 컸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지유 씨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나요?
마순희: 네, 지유 씨는 성장하는 동안에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기에 졸업하자마자 군 선전대에 가수로 취직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상하시고 지유 씨에게 우상이었다고 하는데요. 군행정위원회에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자식 사랑이 남달랐던 어머니와 두 살 위 언니와 함께 부러운 것 하나 없는 생활을 해 왔던 지유 씨였습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모두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에도 지유 씨는 부모님과 온 가족이 함께여서 어려운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지유 씨의 삶은 한순간에 달라졌습니다. 군 행정위원회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정치범으로 낙인 찍혀 연행되어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모든 분야에서 불법과 파탄이 일상이 되었지만 상급조직에서 검열이라도 내려오면 그 모든 책임은 만만한 아래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감투를 씌워서 책임지게 하고 잡아가는 것이 다반사이다 보니 행정위원회 지도원이었던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 일로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가족의 평온하던 일상이 삽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유 씨와 언니가 받은 충격도 컸지만 몸져누운 어머님을 돌보는 게 급 선무였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에 안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일 나가지 않으면 또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지유 씨는 살얼음판 같은 직장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집안의 몰락
미래가 없어진 북한 미련없이 떠나
김인선: 가족 중에 누구라도 정치범으로 잡혀가면 나머지 가족들의 신변에도 변화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지유 씨의 경우 계속 선전대에서 활동을 했던 거예요?
마순희: 원래는 아버지가 정치범으로 잡혀가면 딸인 지유 씨는 선전대에서 가수로 활동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워낙 착하고 성실한데다가 갑자기 그만한 실력의 가수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선전대 대장이 자신이 보증한다고 나서서 지유 씨는 선전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유 씨는 북한에서 정치범 가족이라 하면 모든 면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마저 몸져눕자 가정의 생계는 더욱 더 막막해졌습니다. 얼마 후 두 살 위인 언니가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아버지 문제로 앞날의 희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어머니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가끔 인편으로 생활에 보탬을 주었고 2년 정도 더 선전대 생활을 한 후 지유 씨도 중국에 먼저 간 언니의 안내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건너 간 탈북민들 거의 다 그러하듯이 지유 씨의 중국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은 되겠지만 불법 체류자로 숨어 사는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은 한국으로 가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지유 씨 자매는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언제나 동생의 안전이 자신의 안전보다 먼저였던 언니는 한국행도 동생보다 먼저 떠났습니다. 혹여라도 붙잡히거나 북송의 위험은 없는지 자신이 먼저 가 보고 안전하다고 생각이 되면 동생에게 뒤따라오도록 했던 것입니다.
김인선: 탈북과정 만큼이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게 북송이죠. 특히 중국에 있다 발각돼서 북송되는 것보다 한국으로 가는 과정 중에 북송을 당하는 경우 더 처벌이 강하다고 알고 있기에 걱정이 앞서는데요. 지유 씨 언니의 한국행은 성공했을까요?
탈북 후
한국행도 복불복?
마순희: 네. 지유 씨의 언니는 무사히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자신이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한 후 지유 씨에게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한국행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그렇겠지만 한국행 역시 복불복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제3자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기에 앞일을 장담을 할 수 없으니까요. 탈북민들이 한국행을 할 때 매 노정마다 안내하는 브로커가 서로 다른데요. 지유 씨가 오는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사히 잘 가는가 싶었는데 곤명에서 안내하던 브로커가 마약사범으로 공안의 수배범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함께 차에 탔던 일행 모두가 체포되었던 것입니다. 북송되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에 지유 씨는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너무도 간절히 애원하는 지유 씨의 모습 덕분이었는지, 집으로 돌아간다는 조건으로 일행 모두가 풀려났다고 합니다. 돌아가는 버스표까지 사 주었으나 일행은 그들의 눈을 피해 다시 그 버스에서 내려 도망을 쳤고 한국행을 계속했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지유 씨는 힘겹게 2014년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김인선: 얘기를 들으면서도 조마조마했네요. 목숨을 걸고 온 한국, 탈북민들마다 한국 땅을 밟은 첫 느낌은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안도감을 느꼈다는 분도 있고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놀랐다는 분도 있는데요. 허지유 씨에게 한국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요?
한국땅을 밟은 탈북민의 첫 느낌
마순희: 지유 씨의 경우 한국의 모습에 가장 먼저 놀라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에 대해 어지간히는 알게 됐고 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유 씨는 한국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새로움 그 자체였다고 말했습니다. 어렵게 도착한 만큼 한국에서 지유 씨는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들에 열심이었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예술단체에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유 씨는 오랜 고민 끝에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유 씨는 언니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의 안산시로 거주지를 신청했고 첫 정착을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누구라도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 분야의 일을 선택한다면 준비과정이나 시작이 수월할 수 있어요. 반대로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려면 몇 배로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장기적으로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더라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니까요. 지유 씨가 참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할 수 있거든요. 한국생활에 첫 발을 내딛은 지유 씨는 어떤 과정을 경험하게 될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