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평범한 일상이 성공적인 정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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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허지유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지유 씨는 군선전대 가수로 활동하며 순탄한 삶을 살아왔는데요. 하루아침에 삶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군행정위원회에서 근무했던 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낙인 찍혀 연행됐으니까요. 지유 씨의 아버지는 억울하게 정치범이 됐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모든 분야에서 불법과 파탄이 일상이 되었지만 상급조직에서 검열이라도 내려오면 그 모든 책임은 만만한 아랫사람이 지게 되는데요. 지유 씨의 아버지에게도 그런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지유 씨 역시 그 영향으로 선전대 가수 생활을 더 할 수 없었지만 선전대 대장의 보증으로 버틸 수 있었죠.

김인선: 그럼에도 지유 씨가 친언니를 따라 탈북을 결심했던 건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이겠죠?

미래를 위해 선택한 탈북

마순희: 맞습니다. 북한에서 정치범 가족이라 하면 모든 면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북한을 떠날 생각을 했던 거죠. 친언니가 돈을 벌어 오겠다고 중국에 들어가서 지냈기에 언니에게 갔는데요. 의식주는 해결됐지만 불법 체류자로 가슴 졸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언제 북송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그 방법은 한국행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간에 북송될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유 씨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고 2014년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중국생활을 통해 한국에 대해 어지간히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유 씨는 발전된 한국의 모습에 놀랐고 어렵게 도착한 한국에서 잘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들에 열심이었고 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김인선: 탈북민이 한국에서 잘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원에서 다양한 정보는 물론 교육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탈북민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하나원 생활이 한국에서 살아갈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준비기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는데요. 지유 씨도 마찬가지였겠네요.

탈북민들의 고민 중 하나

북한에서 몰랐던 내 적성과 직업 선택

마순희: 네, 맞습니다. 원래 조용한 성격인 지유 씨는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했고 한국에서는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북한에서는 선전대에서 활동했지만 지유 씨가 그걸 선택했던 건 아닙니다. 북한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지유 씨의 노래실력이 좋아 선전대에 들어가게 됐지만 대중 앞에서 노래하고 선전하는 일이 지유 씨의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지유 씨는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했고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유 씨는 사무직의 기본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 조작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지유 씨는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싶다는 자신의 취업목표를 위해 하나센터 교육이 끝나자마자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고 시간제로 부업도 하면서 사무회계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김인선: 원하는 직장, 원하는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실력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각종 자격증에, 회사마다 다른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 등 서류준비에, 면접이라고 하는 회사 간부들과의 질의응답까지, 통과해야 할 관문이 많거든요. 탈북민들에게는 이런 한국의 취업문화가 익숙하지 않은데요. 지유 씨는 바라던 사무직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첫 취업 후 8년째

승진까지 한 비결

마순희: 네, 지유 씨는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단번에 사무직으로 취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남한 사람도 취업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은 뉴스를 통해 보기도 했고 주변에서 많이 들었으니까요. 지유 씨는 스스로 취업정보를 찾아보고 여러 회사를 찾아다니며 적당한 곳을 골라야 했습니다. 사무직의 경우 서류에 통과해도 최종 관문인 면접을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말에 지유 씨는 면접을 경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생산직 직원을 채용한다는 한 회사의 면접장을 찾아갔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운 좋게도 면접관이었던 사장 부인이 사무보조로 일해 보지 않겠는지 제안을 했고 사무직을 원했던 지유 씨는 그 자리에서 입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 회사는 직원 60여 명을 두고 있는 금속도금을 하는 회사였는데 지유 씨가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면접을 보았던, 그리고 지금까지 8년을 몸담고 있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지유 씨가 생산직이라고 지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회사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무직을 희망했던 지유 씨지만 사무직이 하루아침에 차례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유 씨의 인생에 있어 큰 선물이 됐습니다. 하지만 원하던 사무직을 운 좋게 시작하게 됐다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전대 가수로 무대에서 노래만 부르고 선전활동만 해 왔던 지유 씨에게 사무직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60여 명의 직원들 이름부터 사무실 집기들 이름을 기억하기도 버거웠고 사소한 사무용품 사용법, 일상적인 업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했습니다. 안 해봤던 일이라 어려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실제 업무는 예상보다 힘이 들었습니다. 영어나 외래어로 된 제품이나 부속의 이름도 몰랐고 일상적으로 쓰는 사무용품의 이름이나 용도도 하나하나 배워나가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3개월은 정말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들었기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도 내일 하루만 더, 하면서 지유 씨는 다시 용기를 내 출근했습니다.

탈북민들의 취업 고비

첫 3개월만 잘 넘겨라

김인선: 남한의 모든 직장인들도 첫 3개월이 고비라고 해요. 그걸 잘 버티면 그 다음 3년, 그러고 나면 어느새 적응은 물론이고 실력도 늘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마순희: 네. 저도 우리 탈북민들이 직장 취업 후 첫 3개월을 꼭 잘 버티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 안에 그만 두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지유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적응이 어려워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지유 씨에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준 숨은 공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에 와서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된 남편인데요. 지유 씨는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탈북 청년이라는 말에 신뢰가 가서 만나게 되었는데 첫 만남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 역시 참한 인상의 지유 씨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얼마 후 결혼했습니다. 한국에 먼저 정착한 남편은 지유 씨가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힘을 주고 조언을 주는 정착의 조력자였습니다. 지금도 지유 씨는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남편의 원칙적인 조언과 따뜻한 위로가 있어 이겨낼 수 있다고 합니다.

지유 씨는 안정된 일자리와 행복한 가정이 있으면 그게 곧 정착이고 성공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시청 다문화센터에서 방범순찰업무를 계속하고 있고 지유 씨는 한 회사에서 8년차로 회사의 회계업무를 맡아보는 대리가 되었습니다. 회사 돈 관리를 맡은 거죠. 원래는 회사 사장님의 부인이 하던 일인데 건강이 안 좋아서 지유 씨를 믿고 모두 맡긴 것입니다. 지유 씨 밑으로 서무를 맡아보는 직원도 있어서 감당할 정도의 업무량이라고 합니다.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지유 씨를 보고 사장님은 탈북여성들이 다 지유 씨 같다면 얼마든지 취업을 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는데요. 지유 씨는 그 말이 늘 고맙다고 합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찾아 온 대한민국에서 앞으로도 지유 씨의 행복한 정착이 쭈욱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인선: 지금보다 특별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굴곡을 겪고 나면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게 되죠. 어쩌면 지유 씨 얘기를 듣고 그런 평범함마저 특별하게 여기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일상은 평안하십니까?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