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인천에서 북한음식 전문점, ‘호월일가’를 운영하고 있는 김인영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게요. 2012년에 한국 땅을 밟은 인영 씨는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이후 두 달 가량의 직장생활을 한 것이 전부라고 했는데요. 한국에 정착한지 2년 만인 2014년에 지금의 식당을 열었습니다.
마순희: 맞습니다. 인영 씨는 한국에 먼저 와서 정착하고 있던 동생과 친정어머니의 주선으로 2012년에 4살, 8살 두 아들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고 다음해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살 때 공업품 장사를 하면서 크게 어려움을 모르고 살던 그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마음대로 쓰면서 살다가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집에서 음식을 해서 주변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는데 음식 맛을 본 지인들이 그만한 솜씨면 식당을 해도 되겠다고 하더랍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 인영 씨는 그 일로 식당을 해 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식당 자리도 알아보고 음식 종류도 고민하고 또 식당을 하려면 회계사공부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학원을 다니면서 회계사 자격증도 취득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온지 2년 만인 2014년 7월에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결코 쉽지 않은 노정이었답니다. 무엇보다도 인영 씨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음식이 북한음식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더 많았다고 하는데요. 손님들이 ‘북한 음식이라더니 재료가 전부 중국산이잖아!’ 라고 한다면서 한국 음식점보다 장사하기가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북한 음식을 파는데 재료의 원산지 표시가 중국산으로 되어 있으니 손님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겠네요. 대북제재로 북한의 물품을 반입할 수 없게 되면서 만약에 북한의 재료를 들여왔다고 하더라도 북한산이라고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마순희: 네. 하지만 인영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당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 번 북한음식을 맛 본 사람들은 단골이 되어 계속 찾아오고 있는데 힘들다고 그만두면 기대하며 찾아 왔던 손님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지금은 남북정상이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하다 보면 단절되었던 남북교역도 풀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식당을 계속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원산지 표시에 ‘북한산’이라고 표기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이 원산지 표시 외에도 먹는 음식을 판매할 때 꼭 갖춰야 하는 게 있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식당영업을 위해선 식품위생교육필증, 보건증을 필수로 갖춰야 하는데요.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만 익숙하던 인영 씨에겐 그것도 복잡하고 어렵게만 여겨졌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이 사전 접수를 통해 교육을 받고 확인증을 발급받으면 되는 거라 많이 복잡한 건 아니었습니다.
김인선: 아무래도 먹는 음식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까 위생교육은 필수죠. 보통 식당 주인들이 위생교육을 잘 받았다는 보건증을 손님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두는데요. 그 보건증을 통해 손님들은 안심하기도 해요.
마순희: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들 경우에는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인데요. 북한은 세금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세금납부가 서툴거든요. 인영 씨는 회계사 교육을 받았기에 가게를 꾸려 나가는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는데요. 막상 닥치고 보니 생각보다 세금 관련 세법이 복잡하고 세금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그래서 다들 일정 비용을 내고 전문회계사를 고용하죠. 북한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다른 식당과 비교했을 때 인영 씨네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색이라고 할까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인영 씨네 식당에서는 진짜 북한에서 온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언 감자가루가 있다는 것도 모르시잖아요? 인영 씨네 식당에 가면 북한산 고사리로 만든 고사리 반찬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고사리는 그냥 산에서 꺾는 것인데 고사리도 북한산, 한국산, 중국산이 서로 다른가요?
마순희: 중국산 고사리나 한국산 고사리를 보면 데쳐서 말린 후에 둥글게 뭉그려서 포장을 하지만 북한에선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구분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영 씨네 가게에 가서 일자로 꼭꼭 묶은 고사리를 보게 된 거죠. 인영 씨네 가게에서는 한국의 유부초밥 비슷한 북한식 두부밥,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부르기도 하는 콩으로 만든 인조고기, 명태로 만든 식해나 언 감자가루로 빚어 당콩소를 넣은 송편이나 양배추나 배추 등 남새를 볶아서 빚은 남새송편까지 색다른 북한음식들을 맛볼 수 있답니다. 인영 씨네 식당은 매번 찾아 갈 때마다 손님으로 북적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북한음식 때문에 식당이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고 해요. 남북간의 물품 반출입금지라는 5.24조치 때문인데요.
김인선: 대북제재로 지금은 불가능할 텐데 예전에는 고사리도 그렇고 북한산으로 표기해서 팔았나 보네요?
마순희: 네. 5.24 조치라는 게 2010년부터 적용된 법인데 인영 씨는 그것을 모르고 북한산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팔았습니다. 결국, 인영 씨네 가게는 법을 위반한 것으로 되었고 거의 10여 차례 법원 걸음도 했다고 하더군요. 지난 5월 남북관계를 보고 5.24조치 해제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통일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아직은 먼 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어려움도 많았지만 인영 씨는 지금, 본점의 2층에 식품 판매점을 내왔고 평택과 분당에 각각 자기 점포(체인점)를 내면서 가게를 확장해 나가고 있답니다. 더욱이 날씨가 무더운 요즘 같은 때에는 북한식 냉면을 맛보러 오는 사람들로 길게 줄을 서고 있어서 숨 돌릴 틈도 없다면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답니다.
김인선: 그 행복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사업이 확장될 만큼 장사가 잘된다고 하니까 좋은데요. 인영 씨가 바빠진 만큼 아이들 돌보는 일에는 시간이 좀 줄지 않을까 싶네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식당일에 몰두하다 보면 자식들에게 소홀한 것 같아서 그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합니다.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다 보니 애들을 돌볼 새가 없대요. 친정어머니가 가까이에 계시기에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는 합니다. 어머니가 오셔서 밥과 빨래는 해주니까요. 그런데 요즘엔 할머니들도 다 자신들의 일정이 있어서 늘 손자들만 돌보아 줄 수는 없거든요. 사실 가장 큰 걱정은 교육문제였는데요. 두 아들은 탈북민 자녀혜택으로 저렴한 비용의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열심히 살면 그 모습을 보면서 애들도 일찍 셈이 드는 것 같다면서 그게 어찌 보면 더 안쓰러울 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남한에 오면 꽃길만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탈북민이 많다고 하는데요. 꽃길을 걷기 위해서는 꽃씨를 뿌려야 합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나만의 길에 꽃씨를 뿌리고 가꾸어 나가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거. 김인영 씨는 살면서 느끼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자신만의 꽃길, 행복을 심는 김인영 씨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