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날씨도 춥지만 마음이 추운 요즘입니다. 바깥 활동이 자유로워지나 싶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변이비루스가 다시 나타나면서 코로나비루스가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까요. 다들 노력하고 있지만 경제상황은 물론이고 취업시장도 찬바람이 부는데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돌파구를 잘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감한 판로개척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기도 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아낸 분들이 있는데요. 탈북민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서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우리 탈북민들 중에도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내고 새로운 방법으로 사업을 개척해 나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식당에서 손님들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도시락 형태의 배달로 코로나 이전과 다름없이 사업을 잘해 나가는 사장님도 계셨고요. 북한음식을 전문으로 하던 식당에서 한국음식을 함께 병행하면서 소비자의 폭을 넓힌 사장님도 계셨습니다. 또 가까운 거리의 배달로만 안주하지 않고 택배를 통해 전국 어디서나 북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사장님까지, 다양한 음식점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성공시대에서도 소개했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주인공도 자신만의 사업을 개척해 나가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해 나가고 있는 강채경 씨인데요. 채경 씨는 2003년에 탈북해 중국에서 6년 정도 살다가 2010년에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강채경 씨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 간 기본적인 한국생활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강원도 춘천을 거주지로 정하고 지금까지 춘천지역에서 살고 있는데요. 탈북민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랍니다.
김인선: 성공시대를 통해서 한국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하고 있는 여러 탈북민을 만나게 되는데요.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북한에 있을 때는 생존이 우선이었고 아무런 꿈과 보람 없이 살았는데 한국에 와서 꿈도 생기고 목표가 생겼다'라고 말이죠. 채경 씨의 경우 탈북민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살고 있다고 했는데요. 북한을 떠날 때에도 채경 씨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면서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강채경 씨 역시 생존을 위한 탈북을 했지만 그보다 더 확고한 탈북 이유와 목표가 있었습니다. 원래 채경 씨의 아버님은 일제 강점 시기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서 고역을 당하다가 해방 후 북한에 귀국선을 타고 들어오신 귀국자였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1960년대 초에 수많은 재일 동포들이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는 북한당국과 조총련의 선전에 속아서 귀국선에 몸을 실었는데요. 강채경 씨의 아버지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채경 씨의 아버지는 늘 남한의 고향을 잊지 못 하시고 언제든 통일이 되면 꼭 한 번 가보겠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나 채경 씨 아버지는 그 소원을 이루지 못 하고 돌아가셨고 눈을 감기 전 자식들에게 '통일이 되면 너희들이라도 아버지의 고향으로 꼭 찾아가 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당시 채경 씨의 나이는 12살로 어렸지만 채경 씨는 아버지의 유언을 늘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통일이 되면 반드시 아버지의 고향에 가 보리라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채경 씨는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남한이지만 아버지의 고향을 마음속에 안고 살았다는데요.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보통의 여성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던 채경 씨에게 변화가 생긴 건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사실 채경 씨는 북한에서 도 체육단의 농구선수로 일반 주민들보다는 좀 나은 생활을 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그런 채경 씨 역시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 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빠와 조카들이 거지가 되어 채경 씨를 찾아왔고 홀시아버님과 시누이까지 다섯이나 되는 식구들을 더 돌봐야 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그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점점 지쳐가던 채경 씨에게 더 큰 아픔이 생겼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큰 조카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겁니다. 더는 북한에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채경 씨는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돈을 벌려면 중국으로 가야 했으니까요. 무사히 탈북을 할 수 있을지 과연 중국에서 잘 살아낼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했지만 채경 씨는 막다른 골목이라는 생각으로 2003년에 탈북을 했습니다. 다행히 채경 씨는 큰 문제없이 중국에 도착했고 6년 동안 식당에서 일을 하며 북한의 가족들에게 돈이며 물건들을 보냈습니다.
김인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했다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하지만 기대와 달리 불안한 신분 때문에 중국에서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데요. 식당일을 했다는 채경 씨의 삶은 조금 달랐을까요?
마순희: 채경 씨의 삶도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불안의 연속이었고 공안 차의 사이렌 소리나 정복을 입은 사람만 보아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하더라고요. 더구나 채경 씨는 북한에서 15살 어린 아들을 데려와서 중국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채경 씨가 중국에서 3년 정도 일하다가 아들을 데려 왔다고 하더라고요. 채경 씨가 번 돈의 일부를 북한에 보내도 딸린 식구들이 많다 보니 금방 없어졌고 무엇보다 그 돈을 시댁에서 쉽게 써버려서 아들이 북한에 있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밥이라도 배불리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들을 중국으로 오게 한 거죠. 채경 씨 예상대로 아들이 배는 곯지 않았지만 신변에 대한 위험은 늘 함께 했습니다. 채경 씨는 식당의 주방에서 일하고 아들은 식당 내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을 했다는데요. 주방에서 일하는 채경 씨도 위험하긴 했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아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국으로 오기까지 3년 사이에 채경 씨 아들은 두 번이나 중국 공안에 잡혀갈 정도로 위험했다고 하는데요. 식당 사장님이 아들이 한 번 잡혀 갈 때마다 빼내는데 쓰는 돈이 두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더 든다면서 이렇게 고생하지 말고 한국으로 가라고 권유할 정도였습니다. 눈앞에서 아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두 번이나 목격한 채경 씨는 사장님 말대로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유언도 있었기에 돈을 벌어서 아버지의 고향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에 가 봐야 한다는 생각이 채경 씨의 한국행 결심을 더 굳게 다지게 했고 중국생활 6년 후인 2010년, 채경 씨는 한국 땅을 밝았습니다.
김인선: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사회적응 교육을 받고요. 각자 원하는 거주지를 배정받은 후 본격적으로 한국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무작정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또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건강을 돌보는 경우도 있는데요. 강채경 씨는 하나원을 나온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고요?
마순희: 채경 씨는 마흔두 살 되던 해인 2010년에 그렇게 그리던 대한민국에 입국했는데요. 하나원을 나와 채경 씨는 가장 먼저 아버지의 고향인 경상남도 하동으로 향했습니다. 고향에서부터 챙겨온 흙 한줌을 챙겨서 말입니다. 채경 씨는 아버지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고향, 경상남도 하동을 찾아가서 부모님의 묘에서 가져 온 한 줌의 흙을 아버지의 고향, 선조들의 묘역에 함께 묻었습니다. 북녘 땅의 흙을 묻으면서 채경 씨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김인선: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까요. 아버지의 고향을 30년 동안 가슴 속에 담아둔 강채경 씨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기를 바래봅니다. 채경 씨의 남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 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