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 12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요. 이맘 때쯤이면 다들 올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1년을 되돌아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제대로 못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뒤늦게나마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갖는데요. 성공시대에서도 그런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2021년 성공시대에서는 옷가게를 운영하는 박경화 사장님을 시작으로 창업가 강채경 씨까지 총 24분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코로나비루스 여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분들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분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마순희: 네. 저 역시 코로나비루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비루스의 영향은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계별로 격상되면서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했고 그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많이 줄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영업제한 시간도 있고 인원제한까지, 장사를 하는 입장에선 어려움이 계속 됐고 견디다 못한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한다는 뉴스 보도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소식은 제 주변 가까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첫 번째 주인공으로 소개했던 박경화 사장님이 대표적입니다.
2007년에 한국에 입국한 경화 씨는 식당일부터 여러가지 일을 하며 단계적으로 직업이 달라졌습니다. 학력이나 자격증이 필요 없는 일부터 시작해서 전문교육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할 수 있는 일까지, 한국생활이 길어지면서 경화 씨가 할 수 있는 일에도 변화가 생겼으니까요. 처음엔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했다면, 경화 씨는 한국정착 6년 만에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는 일이었습니다. 평소 패션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경화 씨는 '가게 차릴 돈이 생기면 옷가게를 차려야지' 라고 늘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다는데요. 자신이 바라던 바를 이루어 낸 겁니다.
김인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경화 씨의 이야기가 저에게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월급쟁이에서 자영업자가 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않기에 제가 걱정스러운 말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옷가게를 하려면 유행에도 민감해야 하고 값싸면서도 품질이 좋은 옷을 잘 찾아야 하는데 남한 사람들 중에도 그런 일들이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도 처음엔, 경화 씨가 패션에 관심은 있었어도 옷장사를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걱정됐습니다. 아무리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 해도 밥벌이를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옷가게를 운영하려면 싸고 질 좋은 물건을 떼러 서울의 동대문시장에 적어도 일주일에 1-2번은 방문을 해야 하고 수많은 물건 중에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찾는 일, 그리고 단가 흥정 등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포항에 사는 경화 씨가 서울을 오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경화 씨는 재고가 쌓이는 일이 없도록 수량에 욕심을 내지 않고 가게에 늘 새로운 옷이 추가될 수 있도록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덕분에 옷가게는 순탄하게 자리를 잡았고 매출도 좋았습니다. 경화 씨의 가게엔 옷을 사려는 손님이 아니더라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는데요. 늘 사람들이 북적거렸던 경화 씨의 옷가게에도 코로나비루스의 여파로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여럿이 모일수도 없었고 외출과 여행을 자제하면서 옷을 사는 사람들도 크게 줄었습니다. 경화 씨는 겉옷을 줄이고 집에서도 편히 입을 수 있는 일상복으로 물건을 떼 오며 시대 변화에 대응했는데요. 아무리 경화 씨가 노력을 해도 타격은 계속됐습니다. 옷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경화 씨는 결국 폐업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지는 않더라고요. 박경화 씨는 지금 주로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코로나시대를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답니다.
김인선: 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코로나비루스로 인한 위기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겪고 있는데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에 따라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음식점 사장님들이 대표적이었죠?
마순희: 그렇습니다. 식당손님들을 보면 직장 동료들끼리,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인원 제한과 영업시간 제한까지 생기면서 장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바깥 활동이 줄었고 재택근무,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 있는 식당들은 식사시간 때에도 찾는 손님이 거의 없는 경우까지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돌파구를 찾아낸 분들이 많은데요. 우리 탈북민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식당에서 밥 먹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안 하던 배달을 시작하기도 하고, 직장 내에서도 먹을 수 있는 도시락 형태의 배달로 코로나 이전과 다름없이 매출을 올렸습니다. 다들 작은 생각의 차이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바꾼 주인공들인데요. 그 중에서도 허은미 씨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은미 씨는 경기도의 한 지방도시에서 5년차 북한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분으로 몇 년 전만 해도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워낙 많아서 배달사업까지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비루스 여파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줄면서 가까운 곳 배달은 물론이고 배달 소포사업인 전국 택배서비스까지 시작했습니다. 배달 사업을 시작하면 업주 입장에서 부담되는 게 포장용기 가격과 특히 배달비라고 하는데요. 은미 씨는 택배비가 조금 비싸더라도 고객이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장 빠른 배송업체를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 이익을 얻기보다 고객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크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아마 소비자들이 가장 잘 알 겁니다.
김인선: 맞아요. 먹는 음식의 경우엔 신선도라고 해야 할까요? 혹시라도 배송이 오래 걸리면 그동안 변질되는 건 아닌가 하고 염려스럽기도 하거든요. 유통기간이 여유 있다해도 음식은 출고 후 최단 시간에 받아야 안심이죠.
마순희: 맞습니다. 그래서 경험치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은미 씨는 북한에서부터 장사경험이 많은데요. 남한으로 말하자면 장판이라고, 자본이 꽤 있어야 할 수 있는 레자장사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레자를 살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북한 사람들에겐 고심을 여러 번 하고 살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은미 씨는 고객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경험치가 쌓였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한국에 와서도 은미 씨는 본인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장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밑천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기에 부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장사에 수완이 있었던 은미 씨는 부업을 하면서 자신도 음식장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국정착 8년 만에 북한음식점을 냈습니다. 콩고기밥, 두부밥, 농마국수를 주로 판매하고 짝태와 콩고기도 판매했는데요. 지금은 농마국수를 얼려서 양념장과 함께 소포로 배달하는 택배서비스까지 하고 식당에서는 남한 음식도 추가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짝태와 콩고기를 배달주문하는 고객도 꾸준해서 은미 씨는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김인선: 다들 힘들다고 말하는 요즘인데요. 은미 씨는 여전히 활기차고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고 계시네요. 은미 씨 덕분에 기분 좋은 웃음이 지어집니다. 성공시대 주인공을 통해 청취자 여러분도 긍정의 기운을 느꼈으면 좋겠네요. 2021년 성공시대를 빛내준 다른 주인공들은 다음 시간에 만나볼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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