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금희 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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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금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금희 씨는 고난의 행군 이후 친척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중국행을 선택했는데요. 중국에서 몇 달간 일하고 돈을 벌어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중국에 다녀온 것이 불법행위로 되어 군 복무하던 두 아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면서 금희 씨는 완전한 탈북을 결심했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북한에서 잘 나가는 간부였던 남편과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금희 씨에게도 고난의 행군 시절 이후의 삶은 어려웠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중국에 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으로 금희 씨는 여권 수속을 했고 합법적으로 중국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 처음 가본 금희 씨는 북한 외부의 현실을 접하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하루만 일해도 북한에서 일하는 것의 거의 몇 십 배의 돈을 벌 수 있었기에 금희 씨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세상 형편을 너무도 모르고 살아온 자신에 대해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한 번 더 여권 없이 중국에 다녀왔던 것이 불법행위로 적발되어 군대에 잘 복무하던 두 아들이 감정제대를 하게 됐습니다. 금희 씨는 자식들의 앞길을 망쳐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바엔 돈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보태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금희 씨는 완전히 북한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금희 씨는 남편과 함께 2009년 가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김인선: 네. 당시 금희 씨는 5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북한에서 여성 현역군인으로 살아왔기에 한국에서의 정착생활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어요. 남편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정착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이죠.

마순희: 맞습니다. 실제로 금희 씨 부부는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와서 춘천에 거주하게 됐는데요. 5일이 지난 후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금희 씨의 남편은 60이 넘은 나이라 정규직 회사보다는 하루 일하고 일한 만큼의 로임을 받는 일용직을 선택해 거주지를 배정 받은 후 바로 건설 현장에 다니며 경제활동을 했고 금희 씨는 제대로 된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인들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봤습니다. 탈북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지역의 봉사단체 회장님의 소개로 금희 씨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회사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요. 회사측에서는 45세 미만까지 받는다며 58세의 금희 씨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사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금희 씨는 포기하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결정해 달라며, 일단 받아만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금희 씨는 최종적으로 취직을 하게 됐습니다.

김인선: 누구에게나 일할 권리가 있고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일할 수 있는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는 업무에 따라 나이제한이나 학력제한이 있어요. 회사의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입사요건에 명시된 내용을 보고 자격요건이 안 되면 원하는 회사라 할지라도 포기하게 되거나,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죠. 하지만 이금희 씨는 불가능했던 회사 입사에 성공하셨어요. 우여곡절을 겪고 입사한 회사생활은 어땠을까요?

마순희: 네. 사실 금희 씨가 취직한 회사는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회사로, 생산 공정도 복잡하고 영어와 외래어가 많아서 젊은 사람이 일하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금희 씨가 ‘나를 받아서 한 달 정도만 일을 시켜 보다가 그래도 안 된다 싶으면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해서 회사 측에서는 고심 끝에 승낙을 했고 금희 씨는 어렵게 입사한 회사였기에 더 열심히 일을 배우고 노력했습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외래어를 익혔고 알아들을 수 없었던 영어는 남한사람들을 쫓아 다니며 발음을 묻고 그것을 한글로 적어가면서 익혔습니다. 외래어나 영어 문제뿐 아니라 생산현장에 적응하는 것도, 동료들과의 관계 문제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금희 씨는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익혔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기술도, 인간관계도 하나하나 적응해 나갔습니다. 자신의 특기인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대접하기도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동료들과의 사이를 돈독하게 했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남들이 안 하는 청소를 도맡아 하면서 솔선수범했습니다. 그런 점들이 금희 씨가 회사 내에 정착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희 씨는 한 달이 아니라 우수사원 표창까지 받으면서 5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금희 씨는 더 일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김인선: 잘 해오던 회사생활을 그만 둔 이유는 남편의 폐암 진단 때문이었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금희 씨는 하늘같이 믿었던 남편의 폐암 진단 소식을 받은 날 남편의 병수발을 위해 망설임 없이 회사를 퇴직했습니다.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이 가능했고 금희 씨는 퇴직이 아니라 휴직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희 씨는 남편을 위해 퇴사를 했고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병원에 내원하는 것은 물론 병원에서 요구하는 대로 남편을 위해 건강식을 만들고 함께 운동요법을 지켰습니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을 세라 금희 씨는 하나하나 신경을 썼습니다. 수술 경과도 좋았고 정부의 지원과 탈북민 의료지원 프로그램도 있어서 진료비 걱정 없이 무사히 치료를 받았습니다. 금희 씨는 한국에 와서 받은 혜택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며 앞으로 자신이 받은 것만큼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희 씨는 65세까지 건강하게 몸 관리를 하면서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파트 청소는 물론이고 요양원의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기도 하면서 남편이 가정경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도록 열심히 경제활동을 했습니다. 금희 씨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력이 있기에 한국에 와서 대학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고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심리상담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해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금희 씨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음식 만들기에 자신 있는 금희 씨는 북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고, 봉사가 끝난 후에는 함께 봉사활동을 한 동료 탈북민들에게 집에서 손수 장만한 저녁식사를 대접하면서 춘천지역 탈북민들의 어머니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금희 씨는 65세가 되면서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급자 등록이 됐고 지금은 남편과 함께 여가생활을 즐기며 도시미화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며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김인선: 봉사활동도 하고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삶,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노후생활인데요. 이금희 씨는 그런 삶을 살고 있기에 성공한 삶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희 씨에게도 지금의 생활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저와 만났을 때 이금희 씨는 “한국에 와서 다 좋은데 남한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살고 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그날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는다는 금희 씨입니다. 나이 드신 탈북민 중엔 살아생전에 통일이 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금희 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건강관리만 잘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고 싶다고 말합니다. 금희 씨의 믿음이 현실로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역시 생각해 봅니다.

김인선: 나이가 많아서 취업이 불가능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잡은 이금희 씨! 그녀의 삶을 통해 나이 때문에 무언가를 못한다는 말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에는 아직 하지 못할 일보다 해보지 못한 일들이 더 많으니까요. 나이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그 말, 청취자 여러분도 동의하시나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