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서, 영문으로 제목 병기된 북한의 ‘마약관리법’
-1990년대 대규모 양귀비 재배 시작하며 주민 대상 설명회
-밭에서 양귀비 재배해 아편으로 팔면 “평소 수확량의 3배 알곡 살 수 있다”
-들에 널린 ‘아편’은 자연스럽게 주민들 생활에 침투
-대규모 양귀비 재배 금지 이후 아편에서 필로폰으로
[진행자]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바로 청취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북한입니다. 내부 문서를 통해 오늘이 북한을 만나보는 [문서로 보는 북한] 진행에 안창규입니다. 오늘도 김지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기자]안녕하세요. 오늘 다룰 문서는 법률출판사가 발행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마약관리법>이라는 책자입니다.
[진행자] 전체 28페이지로 되어 있는 소책자이지만 책 표지에 제목이 한글과 영어로 같이 병기된 것으로 보아 출판 용도가 내부용이 아닌 외부에 우리도 마약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용으로 보입니다. 김 기자, 이 책의 출판 용도, 목적 어떻게 보십니까?
[김지은 기자] 저도 비슷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 책자가 발행된 2010년대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국제적으로 심각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약에 대해 재배와 제조, 수출 등을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나름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북한도 법은 잘 갖춰져 있습니다. 다만 법에 서술된 내용과 실제 법의 집행, 법이 적용되는 계층 등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죠.
북한에 마약 남용이 심각해 당국이 단속 그루빠 (그룹)을 따로 조직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 지 오랜 만큼 당연히 마약과 관련한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마약 관리에 대한 법을 문건으로 접한 것은 처음입니다.
[김지은 기자] 그건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기한이 좀 지난 문건이지만 다뤄보는 것이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북한은 핵 개발 외에도 두 가지 문제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나쁜 국가로 낙인찍혔습니다. 하나는 슈퍼노트라고 불렸던 미국 100달러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의혹이고 다른 하나는 마약입니다.
1980~9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은 국가 차원에서 양귀비를 재배하고 마약을 제조, 밀매해 왔다는 의혹인데 안 기자도 아시겠지만 양귀비 등이 국영농장에서 재배됐고 여기에는 일반 주민뿐 아니라 학생들도 대대적으로 동원됐습니다. 그때의 상황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농촌지역이었는데 어느 날, 농장 밭 정비를 서둘러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어서 농장에서 가장 농사가 잘 되는 옥토의 기본 면적에 전부 아편을 심으라는 당의 지시가 하달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의 일로 기억합니다.
당에서는 재배를 시작하기에 앞서 주민들에게 이것을 왜 심는지에 대한 해설 사업을 먼저 조직했습니다. 왜 양귀비를 재배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농사를 지어야 하는 주민들에게 설명, 납득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당시 당에서 주민들에게 내세운 이유는 뭡니까?
[김지은 기자]당에서는 아편을 심는 이유가 '국제시장에서 입쌀을 사 오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아편을 심어 국제시장에 내다 팔면 아편을 심던 밭에 심어서 거두어들이던 3배 이상의 알곡을 사들일 수 있고 강냉이밥 대신 입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원래 강냉이 1정보에서 국가계획기준으로 7톤을 생산했다면 그 3배 즉, 21톤을 사들일 수 있고 그러면 식량문제가 절로 풀린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에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고 그렇게 설명을 하니 모든 주민들이 믿었고 아편 재배에 열심히 나섰습니다. 입쌀밥을 먹을 수 있다니까 더 의욕이 넘쳐서 참가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던 함경북도에서도 10대 초반의 학생들까지 아편 생산에 내몰렸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솎고 김을 매고 진을 채취하는 데 학생들이 동원됐습니다.
[진행자] 군대에서도 심었습니다. 당시엔 백도라지라고 하면서 심었는데 나중에 뭔지 알게 됐습니다.
[김지은 기자] 당에서는 양귀비를 심는 것이고 양귀비에서 진을 채취하면 그게 아편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때 상황을 보면, 농촌에는 사방이 밭이지 않습니까? 여름철 문만 열고 나서면 사방 천지가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습니다. 하얀 양귀비꽃으로 덮인 거죠. 한 고개를 넘어가면 또 하얀 눈밭이 아찔하게 펼쳐져 있고 한 굽이를 돌아가면 또 하얀 아편 밭이었습니다. 이상하고 기괴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렇게 농작물 대신 아편을 심었으나 쌀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아편을 팔아서 사 온다던 쌀은 지금까지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당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었고 아편을 재배한 이후 북한의 식량난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진행자] 그건 언제나 그렇지 않습니까?
[김지은 기자] 그러면서 그때부터 북한 주민들 생활 속에 아편이 들어왔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봄이면 아편을 심고 솎음하면서 아편 잎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상추 비슷한 맛인데 더 고소하면서 담백했고, 쌈을 싸먹으면 잎에 약 성분이 있어서인지 리질, 설사에도 효능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아편이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기 시작했고 아편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국가가 대중적으로 아편을 유행시킨 셈입니다.
가을에 아편 진을 채취한 다음, 아편 대는 집집의 상비약 또는 식량이 되었습니다. 아편씨가 먼지처럼 작지만 고소한 맛이 나기 때문에 주민들은 그것을 털어서 떡고물로 사용하기도 하고 간식처럼 그냥 먹기도 했습니다. 처마 밑에는 마늘을 걸어 말리듯 아편꽃 꼬투리가 집집 처마를 둘러 매달려 있었습니다.
농촌에는 어느 집이나 아편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였고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달랐죠. 일부 고위 간부들은 아편을 kg단위로 갖고 있었고 저들끼리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고 일반 주민들은 주먹만큼, 또는 그보다 작게, 가난한 주민들은 호두만큼, 콩알만큼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마약밀매가 문제가 되자 김정일은 아편의 광범위한 재배, 제조, 밀매를 형식상 금지했습니다. 일반 주민들과 교류가 차단된 군부대와 관리소와 같은 닫힌 구역으로 재배를 한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국가 밭에서 아편을 재배하지 않을 때에도 청진 라남제약공장에서는 계속하여 양귀비를 재료로 하는 모르핀 등을 제조했기 때문입니다. 제조공장의 사람들이 모두 아편 제조 생산에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공장 내부에 아편 생산 직장을 따로 내왔습니다. 국가가 아편을 제조한다는 사실을 공개하길 원치 않았겠죠. 군부와 특수 기관은 말할 것도 없이 직접 판매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북한 군인들이 제대할 때 집으로 가져오는 최고의 선물이 아편씨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이 재배하지는 못해도 농장의 드넓은 강냉이밭 속에 드문드문 심어 조금씩 재배하여 비상약 대용으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관련 기사>
[ [문서로 보는 북한] 강냉이와 밀보리의 싸움?Opens in new window ]
[ [문서로 보는 북한] ‘밭곡식의 왕’은 왜 ‘애물단지’가 됐나Opens in new window ]
[진행자] 북한에서 통용되는 마약은 크게 아편 계열의 마약과 메스암페타민 계열의 필로폰 같은 마약, 두 가지가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탈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지금은 아편 계열 마약보다 필로폰 계열의 마약이 더 성행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황은 어떻게 파악하십니까?
[김지은 기자]아편의 국가적인 재배가 금지되자 북한에서는 합성 마약, 북한에서 빙두나 얼음이라고 부르는 필로폰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약공장에서 화학물질로 마약 제조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제조 기술로 자체 돈벌이에 나섰습니다. 제약공장에서 생산하면 국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부 극소량을 빼돌릴 수 있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여 마약을 제조할 수 있는 물질을 따로 구입하고 제조 기술을 큰 돈을 주고 거래했습니다. 이게 2천년대 들어서의 일인데요, 그러면서 아편이 아닌 빙두가 북한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됐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진행자] 제가 살았던 지역이나 저희가 오늘 다루는 마약관리법이 지정된 2010년대 이후에는 아편보다 필로폰이 더 성행했던 것 같습니다.
북한 당국은 2004년과 2013년 등 수차 형법의 개정을 통해 마약 범죄 처벌 수위를 높였고 2021년에는 특별법 형태의 '마약범죄방지법'을 새로 제정했습니다.
김 기자가 입수한 자료는 2010년대 제정된 마약 관리법인데 사실 이 법도 2003년에 처음 제정된 후 2005년에 한 번 개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법의 내용은 다음 시간에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은 기자, 수고했습니다.
[김지은 기자] 고맙습니다.
진행에 안창규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