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김치냉장고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제가 북한을 떠나 온 2004년까지는 냉장고나 급동기라는 가전제품은 썼지만 김치냉장고는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월급이 당시 180만원 이었습니다. 그걸로 대형 냉장고가 118만원, 52인치 LCD 최신식 텔레비전을 45만원에 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가전제품 매장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저는 그랬어요. 냉장고가 있으면 되지 뭘 김치냉장고를 따로 놓을 필요가 있어?, 그런데 살면서 보니 김치냉장고가 꼭 있어야 되겠더라구요.
여러분들도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한민족은 김치를 먹지 않고는 안 되는 민족이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김치를 사철 쉬지 않고 금방 담그었을 때 그 맛대로 아삭하게 오래 보관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주부들의 큰 바람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 겨울 김장배추를 담그어 도시이건 농촌이건 땅에 독을 묻고 봄 3월경까지 먹었는데, 남한에서는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겨울이건, 봄이건 여름이건 통배추로 담그는 김치를 언제나 신선하게 먹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사실 북한에도 전문 식당에서는 냉장고의 온도를 김치를 익히고 보관하는데 적정한 온도로 맞추고 김치를 보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용 냉장고에는 잡다한 식품들이 들어갑니다. 온도를 너무 낮추면 육류 같은 것을 보관하는 데는 좋겠지만 김치는 얼어버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김치의 맛은 저온숙성에 그 비결이 습니다. 김치냉장고가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도시가 늘면서 땅집(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늘자 독에다 김치를 보관하는 과거의 보관법을 사용할 수 없는 주부들이 차선책으로 많이들 선택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김치냉장고는 금성사(현 LG전자)가 1984년에 GR-063이라는 모델명으로 내놓았으며, '김치냉장고'라는 단어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본격적인 대중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뤄졌는데 당시 주부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제품 1위에 뽑힐 정도였습니다. 2022년 현재 남한에는 김치냉장고를 만드는 회사들이 여러개 있는데 그 중 시장 점유율른 위니아 딤채와 삼성전자, LG전자가 각각 30%대를 나눠가지며 서로 1등을 겨룹니다.
그렇다면 김치냉장고는 일반 냉장고와는 다른 어떤 특유한 기술이 들어 있을까요? 가장 큰 특징은 정온 기능(동일한 온도를 유지시키는 기능)입니다. 일반 냉장고는 온도 변화에 따라 냉각을 반복하기 때문에 냉장고 안의 온도 차이가 큽니다. 김치냉장고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온도 변화를 최소화해 안정적인 숙성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김치냉장고는 온도 편차를 0.5도 이내로 맞추는 것으로 목표로 합니다. 삼성, LG의 김치냉장고는 온도 편차가 0.3도 이내이며, 위니아 딤채의 경우 온도편차가 0.1도 입니다. 온도 유지를 위해 김치냉장고는 일반냉장고 대비 냉각기가 두 배 이상 장착합니다. 또한 냉기 순환을 담당하는 냉기유로(냉기가 흘러가는 길) 설계도 일반 냉장고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일반 냉장고와 유사한 문짝형 김치냉장고의 경우 문을 열 경우 냉기가 한꺼번에 흘러나오기 때문에 칸별 구분과 냉기 보존 용기 등의 설비도 추가됩니다. 냉각 외의 기능성 부품 역시 김치냉장고가 더 많습니니다. 냉장고지만 숙성실에는 히터도 내장돼 있습니다. 단기 숙성을 위한 것이죠. 김치냉장고라고 해서 꼭 김치만 보관하는 것은 아니고 과일, 채소, 고기, 음료수, 술, 물 등 김치가 아닌 다른 식재료를 보관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김치냉장고 참 좋지요? 북한에서는 아직도 겨울 김장을 담근 다음 땅에다 독을 파묻어 3월까지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북한에도 백두산냉동기 공장이라고 하나 있는데 가정용 소형 냉장고는 좀 생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가정집들에 있는 냉장고의 대부분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파철로 들여 온 중고 냉장고이고 최근에는 전부 중국산으로 대체되는 것 같습니다.
노동당에서는 핵과 미사일을 만들었으니 그 기술로 머지않아 과학강국을 건설하고 나아가 경제강국을 만든다고 큰 소리 칩니다. 하지만 김치냉장고는 고사하고 가정용 냉장고 하나 제대로 만들자 해도 많은 과학기술이 들어야 하고 과학자들의 마음껏 열린 세상 속에서 자신들의 창조적 재능을 펼쳐야 과학과 기술도 빨리 발전하고 가정들에 설치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핵과 미사일만 있으면 김씨 왕조가 무너질 일이 없다고 여기면서 나라 안팎을 꽁꽁 닫아매고 자력갱생만을 외쳐보아야 여러분은 김치냉장고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냉장고도 전기가 없어 못 돌리는 삶을 세세년년 살아야 합니다. 너무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이고요. 하루빨리 여러분도 김치냉장고에서 사철 맛있는 김치를 마음 껏 드실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김흥광이었습니다.
진행 김흥광,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