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균의 한반도 신무기 대백과] 2차 연평해전 20주기, 남북 해군력은 어떻게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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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한반도의 군사 대치 상황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해 보려는 '신박한 한반도 신무기 대백과'입니다. 한국의 자주국방 네트워크의 신인균 대표와 함께 진행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균)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교전 규칙이 한국 전함의 발목을 잡았던 2차 연평해전

(진행자) 다들 기억이 생생할 텐데요. 2002년 6월 29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제2차 연평해전이 일어났는데 간략하게 배경 설명부터 해 주시죠.

(신인균) 2차 연평해전이라고 했으니까. 1차도 있었겠죠. 1차 연평해전은 꽃게 철에 NLL을 월선하는 북한 어선단을 북한 경비정이 단속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했고 한국 해군이 완전히 대승을 거뒀죠. 여기에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굉장히 분노했었고 (하지만) 당시 1차 연평해전 때 승전을 거두었던 2함대 사령관이 좌천을 당했습니다. 2함대 사령관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출세를 하는 자리 중에 하나라고 평가를 받아왔었는데 좌천을 당해서 뒷말이 많았습니다. 2차 연평해전은 1 차 연평해전의 패전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기획됐다라는 한국군의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고, 일부 탈북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시 김 국방위원장이 "해군에서도 영웅이 나와야 되지 않겠냐"라는 지시를 해서 이런 기획된 도발이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2002년 6월 말에는 "대한민국 짝짝짝짝"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집중하고 흥분했을 때였습니다. 저도 미국으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월드컵 개최국 한국을 너무너무 자랑스러워하며 집 앞에 태극기를 걸고 마음 졸이며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전쟁 나는 거 아니냐고 할만한 깜짝 놀랄 뉴스가 전해져서 이곳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너무 놀랐고요. 백악관도 그날 굉장히 긴밀하게 움직였던 기억이 나는데요. 북한이 세계적인 축제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 기간, 게다가 한반도에서 이런 거대한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이런 공격을 감행한 이유나 계산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신인균) 정말 월드컵도 그냥 월드컵 하는 날이 아니었고 한국 축구 국가대표가 당시 4강 진출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4강 진출해서 결승 진출 전에서 졌죠. 6월 29 일은 한국과 터키가 3-4위전을 대구에서 하던 날이었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은 월드컵 결승이 일본에서 벌어지는 날이었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한국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축제할 때 세계적인 관심이 한국에 쏠리고 있을 때 이런 그야말로 초를 치는 행동을 했을까? 북한은 전례가 있었습니다. 88올림픽을 앞두고도 한국의 안보 불안을 야기시켜서 88올림픽을 실패하게 만들려는 공작이 있었죠. 바로 대한항공(KAL)기 테러가 있었습니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고 축하를 받고 하는 걸 보기 싫었던 것이죠. 그리고 또 정치적으로 당시 북한과의 마찰을 피하려던 의지가 강했던 햇볕 정책으로 대변되는 김대중 정부가 공격을 해도 반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라고 판단해요. 김대중 정부 때 북한에 대한 교전 수칙을 바꿨습니다. 이전에는 일단 북한 해군 군함들이 뭐 월선을 할려고 한다든지 뭐 그렇게 되면 경고 방송을 하죠. 그래도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내려오면 경고 사격 등을 하죠. 경고 사격을 했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그때부터는 인제 격파 사격에 들어가는 게 그때까지 교전 수칙이었고 교전 수칙을 가지고 제 1 차 연평해전 때 대승을 거뒀죠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교전 수칙을 바꿨습니다. 어떻게 바꿨냐. 경고방송합니다. 그런데도 내려옵니다. 그러면 시위 기동합니다. 시위 기동 뭐냐 그냥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그래도 내려옵니다. 그럼 차단 기동합니다.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선수가 상대방 선수에게 바디체크를 하듯이 그 배로 그냥 밀어내는 이런 일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도 말을 듣지 않으면 경고사격을 합니다. 그리고 또 말을 안 들으면 격파 사격을 합니다.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북한은 이런 교전 수식이 바뀐 걸 알고 절대로 자기네들이 선제 공격받을 일은 없겠구나 라고 판단을 했을 것으로 저는 보고 그렇게 해서 북한이 완전히 과감하게 한국 군함을 향해 돌진을 한 거라고 봅니다.

(진행자) 남측의 피해가 꽤 컸었죠?

(신인균) 당시 한국이 참수리 357이라고 하는 고속정이 격침됐어요. 당시 윤영하 대위 전사를 했기 때문에 소령으로 추서가 됐는데 윤 소령 등 6 명이 전사를 했고 18 명이 부상 당했습니다. 그리고참수리 357은 격침되었고 정말 충격적인 그런 사실이었는데. 그 참수리 357를 인양할 때 비참한 모습을 지금도 저는 기억을 하고 그 참수리 357이 지금 평택에 있는 해군 2함대에 지금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참수리 357의 어마어마한 총판 자국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그런 정말 충격적인 피해를 당했죠.

(진행자)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하면 북한의 해군력과 남한의 해군력을 감히 견줄 수준이 못 되잖아요.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북한의 공격에 남한 해군이 큰 피해를 보게 됐습니까?

(신인균) 당시에 우리 전력은 참수리 357 그리고 참수리 358 이 2척이 편대를 이루어서 북한 해군에 대한 차단 기동을 하고 있었고요. 뒤에 백업을 4척이 붙어 있었고, 한 십여 킬로미터 뒤에 포항급 초계함, 천안함 아시죠. 천안암하고 똑같은 덩치의 군함을 포항급이라고 하는데 그런 1천톤짜리 초계함 2척이 후방에 또 백업이 있었습니다. 한국 전력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북한의 전력은 당시 등산곶 684라고 하는 경비정이었는데. 이게 215 톤, 덩치는 한국의 참수리보다 약간 더 커요. 하지만 무장은 형편없어요. 85 미리 전차포, 아주 구형 그러니까 T34 전차에 들어가는 전차포인데 이걸 장착을 했고 모든 것이 고색창연한 수동이에요. 근데 참수리는 자동이었죠. 버튼으로 사격을 할 수 있고 버튼으로 표적을 조준할 수 있는 그런 자동이었는데. 침몰당했다. 북한이 전차포로 선제 공격을 했습니다. 정상대로라면 파도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이 전차포가 일렁일렁하는 파도 속에서 명중을 할 수가 없는데 당시 차단 기동을 하기 위해서 이른바 바디체크를 하기 위해서, 밀어붙이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밀어붙이기를 하기 위해서 북한 경비정에 한국의 참수리가 완전히 그냥 거의 갖다 붙다시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전차포를 바로 옆에 있는데, 아무리 파도가 쳐도 그건 맞출 수가 있죠. 그래서 쏘았는데 그 초탄에 참수리 357의 함교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거기에 정장을 비롯한 지휘부가 타고 있었고, 그래서 지휘부가 없는 상태에서 함교가 없는 상태에서 참수리 357이 정말 고군분투 전투를 벌였던 거죠.

(진행자) 안타까운데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이후에 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했을 텐데 즉각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잖아요. 왜 그랬나요?

(신인균) 일단 참수리 358 그러니까 같은 편대를 이루었던 358정은 357하고 거의 평행을 이루면서 항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357에 가려서 북한 등산곶 684를 직사상으로 때릴 수가 없었어요. 순간적으로 그렇게 해서 357이 완전히 그냥 모든 포를 다 얻어맞았던 것이고. 그리고 포항급 초계함 두 척이 후방에 백업이 있었는데, 이 포항급 초계함에는 76 미리 함포가 있어서 한 15킬로미터까지도 아주 정확하게 때릴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 북한이 황해남도 지역에 있던 지대함 미사일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을 개방을 했어요. 그래서 레이더를 방사를 했습니다. 적의 지대함 미사일이 날아온다는 생각을 하니까 한국의 포항급 초계함들이 뒤로 후퇴를 해버렸죠 왜냐, 전방에 있다가는 적의 지대함 미사일을 맞으니까. 특히 포항급 초계함은 함포라든지. 이런 건 뭐 많이 있지만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요격 능력이 전혀 없거든요. 포항급 초계함은 뒤로 빠졌고 그래서 오직 참수리만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고 그러면은 상황에서 한국 공군도 있을 것이고. 미 공군도 있을 것인데 뭐 했냐. 오산 공군기지에서 전투기가 출격 준비를 했다라고 합니다. 당시에 김대중 정부가 당시 4대 지침을 내렸어요. 국방한계선을 반드시 지킬 것, 즉 NLL로는 올라가지 말라 그리고 우리가 먼저 발포하지 말 것. 상대가 발포하면 교전 수칙에 따라 격퇴할 것. 그리고 전쟁으로 확대하지 말 것. 김대중 대통령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만약에 전투기가 출격하고 이렇게 되면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으니까. 당시 한국군 수뇌부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서 그렇게 확전될 수 있는 그런 추가 조치를 못 했죠.

(진행자) 북한 측의 피해는 어땠습니까?

(신인균)당시 등산곶 684는 대파됐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보 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전사가 13명, 부상이 25명 그러니까 한국은 전사 6명 부상18 명이었는데. 한국보다 더 큰 인명 피해를 봤지만 그래도 한국은 참수리 357이 침몰했기 때문에 정말 뼈 아프죠

(진행자) 연평해전 관련 영화를 보면 좀 눈에 띄는 게요. 북한의 전투함을 보면 함포 대신 탱크 포탑 같은 걸 장착해 놨더라고요. 당시 실제로 그랬습니까? 당시 북한 해군의 장비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습니까?

(신인균)방금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북한의 탱크 그러면은 6·25 때 대한민국 강토를 짓밟았던 T34 전차를 먼저 떠올리죠. T34 전차는 소련이 2차 대전 때 독일하고 싸우게 해서 만든 전차인데 이게 초기형과 후기형이 있어요. 1943 년도까지는 76 미리 전차포가 달려 있었고, 이후에 독일이 티거나 판터 같은 아주 강력한 전차를 만드니까 76 미리 가지고는 독일의 판터, 티거 이런 걸 격파할 수 없었죠. 1943 년도부터 85 미리 전차포로 업건(Up Gun)을 한 신형전차 T34를 만들었어요. 나중에 2차 대전 끝나고 북한에 보급이 되었고 T34 85미리 버전을 가지고 북한이 6·25 때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되니까. 쓸 수 없죠. 그래서 T34 전차의 전차 포탑을 떼고 경비정에다가 장착한 겁니다. 그런데 전차포는 직사 화기인데 가만히 있어서 탱크라고 하는 것이 땅에 이렇게 고정이 돼서 쏘는 거니까 뭐 다른 스테빌라이징 이런 장비가 필요 없죠. 바다는 파도가 엄청나게 치지 않습니까? 파도가 일렁이는 데 따라서 포신을 고정을 하려면 굉장히 정밀한 스테빌라이징 어떤 장비가 필요한데 그런 거 전혀 없어요. 그런 아주 고색창연한 수동 포인데 정말 정상적이라면 한국의 참수리 357은 4킬로미터, 5킬로미터 바깥에서 쏠 수 있으니까. 절대 근접해서 전차포를 맞을 이유가 없는데 당시 교전 수칙에 의한 차단 기동 그걸 하기 위해서 옆에 붙어 있다 보니까, 정말 어이없이 그런 말도 안 되는 포에 맞아버린 겁니다.

(진행자) 스태블라이징이라고 하는 기술 북한 청취자분들에게는 어색한 용어일 수 있으니깐요. 파도가 울렁울렁하면 밑에야 어떻든 간에 위에서 쏘는 포는 안정적으로 쏠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 그런 기술과 장비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럼 남측의 장비도 살펴보고 싶은데요. 공격당했던 남측의 참수리호가 최근에 더 최신화가 됐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로 변모됐습니까?

(신인균)당시 싸웠던 참수리 고속정들은 지금 이제 다 퇴역하고 있는 중이고요. 새로운 PKMR(Patrol Killer Medium Rocket)이라고 하는 사업명을 가지고 참수리 고속정 신형을 만들었어요. 원래 참수리 고속정은 170톤인데 지금 만들고 있는 참수리 고속정은 250톤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참수리는 40 미리 주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76 미리 함포를 갖고 있어요. 76 미리 함포는, 서방 세계에서는 거의 5천 톤급 호위함에 장착하는 그런 정도의 함포인데 한국은 250톤짜리 참수리에 장착했습니다. 대함미사일 함대함 미사일, 미국의 하푼이나 한국의 해성 미사일, 한 발에 한 20억씩 하니까 비싸죠. 그래서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한 130 미리 로켓이 있는데, 이것을 유도 로켓으로 만들었어요. 사거리는 한 20킬로미터 됩니다. 이걸 참수리가 지금 열두 발을 장착을 했으니까. 유도 로켓이기 때문에 이거 한두 발 맞으면 과거 등산곶 같은 그런 경비정들은 바로 격침되죠. 그래서 이제는 참수리, 신형 참수리죠 이게 거의 뭐 한 15킬로미터, 20킬로미터 밖에서 북한 경비정들하고 마주 볼 이유도 전혀 없이 멀리서 유도 로켓으로 뭐 한 대여섯 척 격파를 하고 그리고 또 한 15킬로미터 사거리 76미리 한 포로 원거리에서 아주 정밀하게 파격을 할 수가 있으니까. 이제는 뭐 만약에 또 붙는다 그러면 정말 교전 수칙도 바꿨으니까.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연평해전 20년, 남북 해군전력의 차이는?

(진행자) 연평해전이 2002 년이고요. 지금은 2022년이니까. 20년 동안 한국의 해군 전력은 아이가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던 수준에서 스무 살 청년만큼이나 훌쩍 성장하고 자랐다. 첨단화됐다고 느껴지는데요. 그렇다면 북한의 해군력은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변모했습니까?

(신인균)북한 해군도 전력 증강은 좀 했어요. 특히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했는데 여기에 농어급이라고 하는 새로운 군함이 식별이 되었고 그리고 해삼급이라고 하는 또 새로운 군함이 전력화가 된 정황이 포착됐고 이건 뭐 팩트입니다. 이 농어급에는 역시 한국의 참수리호에 새로 장착하고 있는 76 미리 함포를 장착했어요. 생긴 게 한국군의 76 미리 함포하고 똑같이 생겨서 저는 감사 놀랐습니다. 어떻게 계속 한국 해군이 가지고 있는 76미리 함포하고 똑같은 걸 장착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농어급도 있고 또 해삼급은 함대함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어요. 함대함 미사일은 지금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우란 이라고 하는 함대함 미사일의 북한판이다. 이렇게 다들 평가를 하고 있는데, 아무튼 그런 농어급 해삼급이 있어서 사실은 연평해전 할 때보다 북한도 지금 발전을 한 건 맞는데 그러나 이 신형함들이 불과 한두 척씩밖에 안 되기 때문에 수적으로는 거의 뭐 만약에 교전하면 한국 미사일 고속정이 미사일로 쏘아버리면 원거리에서 미사일로 쏘아버리면 거의 역할을 못 할 것으로 봅니다.

(진행자) 2002년 2차 연평 해전을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돌아봤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예전에 말이 떠오르는데요. 군사 장비만 뛰어나서는 되는 게 아니고 작전이라든지. 준비 태세 등 국방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함께 준비될 때 평화가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한국의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와 함께했습니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기자 김진국,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