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균의 한반도 신무기 대백과] 정전 이후 70년, 2차 한국전쟁이 나면 승자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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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한반도의 군사 대치 상황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해 보려는 '신박한 한반도 신무기 대백과'입니다. 한국의 자주국방 네트워크의 신인균 대표와 함께 진행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균)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 군사력 차이는..전쟁 준비 집중했던 북의 우위

(진행자) 1950 년 한국 전쟁 발발 당시에 남북 군사력은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신인균) 대한민국이나 북한 할 것 없이 해군력은 그다지 볼 게 없었고 공군력에서 차기가 있었습니다. 한국군은 연락기 몇 대 정도밖에 없었지만 북한은 수호이 야크( Yak)-9이라고 하는 전투기가 150 대나 있었고, 그리고 IL-10이라고 하는 공격기가 무려 70 대나 있었어요. 문제는 지상군인데 한국군은 8 개 사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 병력이 6만 5천 명이었습니다. 서울에는 수경사, 수도 경비 사단이라고 해서, 지금의 수도 기계화 사단 맹호부대죠. 그리고 전방 지역에 경기도 좌측에는 1사단, 경기도 우측의 7사단, 강원도 좌측의 6사단 강원도 우측의 8사단이 방어했고 충청도의 2사단, 호남의 5사단, 영남 3사단, 이렇게 해서 총 8 개 사단, 6만 5천 명이 있었는데, 전쟁 발발 당시에는 전방에 있는 4 개 사단으로 전쟁을 치렀고 북한군 같은 경우는 10 개 사단에 6 개 여단 그리고 2 개 연대가 있었어요. 지상군 병역이 총 13만6천 명이었습니다. 거기에 서울을 짓밟고 대구까지 내려갔던 악몽의 T34 전차 그게 242 대 그리고 수호이 76 M이라고 하는 자주포가 150 대 등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선제공격을 했습니다. 거의 비교가 안된다는 말이 맞을 정도였습니다. 공군의 비행기 수와 군인도 거의 두 배가 차이가 나고요.

(진행자) 왜 이렇게 차이가 났던 겁니까?

(신인균) 북한은 애초 전쟁을 일키기 위해서 단기간에 병력을 육성을 했고 무기나 이런 것들을 소련에서 다 지원을 해 줬고 그러니까 소련에 지원해 줬기 때문에 이런 부대 많은 부대를 창설할 수 있었고, 그 많은 부대를 전부 휴전선 쪽에 집결를 시켰어요. 근데 한국은 미국의 입장이 2 차 대전 마치고 전쟁하고 싶지 않았겠죠. 당연히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한국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양성된 그런 군대가 아니었어요. 그냥 국내 치안 그리고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소요를 일으키고 했으니까. 그래서 충청, 호남, 영남에 각각 사단이 한 개씩 배치가 됐었거든요.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남침에 대해서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병력, 그 정도였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군사력을 조금 억제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엔 탱크가 없었어요. 왜 탱크가 없었냐면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틈만 나면 "북진해서 통일을 해야 된다." 이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혹시 탱크를 주면 북진할까 봐 미국이 한국군에 탱크를 지원해 주지 않았어요. 근데 소련의 스탈린은 북한이 남침을 해야 되기 때문에 T34 탱크를 무려 242대나 준 거죠.

(진행자)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이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의 포성은 멈췄습니다. 하지만 남북의 군사력 증강 경쟁은 조금의 쉼도 없었는데요. 현재 대한민국의 군사력 그리고 북한 인민군의 군사력은 70 년 전과 어떤 점에서 가장 큰 변화를 했다고 보십니까?

(신인균) 70년 전과 지금의 대한민국 군대는 천지개벽했죠. 상전벽해, 괄목상대, 이런 찬사를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변했습니다. 우선 재래식 전력의 현대화입니다. 냉전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군대를 보유했던 서독 지금의 독일이죠. 또 이탈리아 이런 나라들 다 지금 감군했고요, 영국 프랑스 이런 강대국들도 모두 군대 규모를 줄여서 병력이 10만 명 정도밖에 안 돼요. 근데 한국군은 50만 명이 넘죠 그래서 냉전 이후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현대화된 대형 군대를 보유한 나라다 라고 보시면, 될 정도로 엄청난 군대가 되었고 또 비슷한 규모나 비슷한 수준으로 터키 정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는 규모는 한국보다 더 크지만 현대화가 떨어지고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군사력을 증가하고 있는 중국 같은 경우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죠. 그래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핵을 빼고 누가 쎄냐 라는 것들을 비교한다면, 미국 다음에 이스라엘 그 다음이 터키나 한국 이 정도로 꼽을 정도로 엄청난 군대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1991 년 소련이 멸망하고 나서부터는 신형 무기를 도입한 적이 없어요. 그게 다 경제력이니까. 돈이 없으니까.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죠. 그리고 핵무기를 투발할 수 있는 다양한 자산들 예를 들어, 잠수함이라든지. ICBM이라든지. 또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들 이런 것들을 많이 만든 그런 전형적인 불량 국가가 되버렸습니다.

한국이 세계 1위인 무기는?

(진행자)지금 현재 한국이 전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넘버원 무기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북한의 최강 무기는 뭐라고 보세요?

(신인균) 일단 한국은 육군 강국이죠. 그중에서 최강 무기가 바로 탱크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최신 탱크가 K2 흑표 전찬데요. 성능과 전투력으로 봤을 때, 세계 2위 정도 된다고 봅니다. 1위는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전차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이스라엘 전차는 다른 나라에 안 팝니다. 그러니까 해외 수출하는 탱크 중에서는 한국의 K2 흑표 전차가 최고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독일의 전차 정도입니다. 그럴정도로 한국의 탱크가 엄청난 그런 능력입니다.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K9 자주포입니다. 초창기형 같은 경우는 세계 랭킹 1위가 독일 한국의 K9이 2위였는데, 독일은 육군을 감군하다 보니까, 자주포를 개량하지 못 했어요. 그런데 한국의 K9은 1천 문 이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개량을 계속하죠. 그래서 지금 K9A1버전까지 왔는데 세계 랭킹 1위라고 저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 최고 수준의 최강 무기가 없죠.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핵무기죠. 그렇지만 핵무기를 만든 것 때문에 북한이 전 세계 제재를 받고 그로 인해서 북한은 300만 명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절량세대라고 하는 식량이 없는 그런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비극이 바로 핵무기에 집착해서 생겨났습니다. 핵무기는 또 팔 수가 없죠. 한국은 무기를 수출할 수 있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팔 수 없습니다. 혹시 팔다가 걸리면 그때부터 멸망하는 겁니다.

(진행자)한반도의 군사력 하면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의 군사력도 간과할 수가 없는데요. 70 년 전 한반도의 미군전력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있겠네요.

(신인균) 전쟁이 끝나고 1954 년에 미국은 5 개 사단을 여기 대한민국에 주둔시켰어요. 지상군은 미 8군 그리고 공군은 7공군 이렇게 해서 해군은 7함대가 필리핀, 일본 이런 데 있었고, 그래서 8 군 예하에 5 개 사단이 주둔하다가 1956 년도에 1개 사단이 철수를 했고 그렇게 해서 7만 명 선을 유지를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줄었고 2사단만 주둔했습니다. 2사단도 3개 전투 여단이 있었는데, 그게 점점 감축이 되어서 최종적으로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시절 2000 년대 초반이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하고 협의하고 평택으로 주한 미군 기지를 다 옮기기로 하면서 이 전투 여단을 3개에서 1개로 줄이는 감군을 단행했습니다. 미군이 아라크전, 아프카니스탄전 등에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1개 전투여단 그리고 7공군에 F16 전투기 70여 대 그리고 아파치 공격헬기가 미 8군에 2 대 있고 로켓 포병 여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군은 일본 요코스카의 7함대가 지원하죠.

== 1950년 6사단의 외출, 외박 금지가 한국을 살렸다 ==

(진행자)한국 전쟁의 향방을 가뤘던 가장 중요한 전투가 어떤 것이었습니까?

(신인균) 이건 저한테뿐만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물어봐도 이 전투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바로 인천상륙 작전이죠. 북한의 남침에 의해서 우리 한국군이 그냥 정말 비참하게 패주를 하고 그래서 경상남도 일부 그리고 부산 마산까지 밀렸으니까요? 그리고 북쪽으론 대구까지 이렇게 해서 그야말로 낙동강 방어선이라고 해서 위기였던 상황에서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인천 상륙 작전을 했고 그게 성공을 하면서 북한의 보급로를 끊어버렸죠. 보급이 안 되니까. 북한군들이 전부 도망을 갔죠. 후퇴가 아니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도망가다가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북한군인들은 올라간 거고. 대부분 북한으로 못 올라가고 허리가 잘렸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산 지리산이나 이런 데서 숨어 있다가 포로가 되거나 아니면 빨치산이 되기도 했죠.

(진행자)그렇다면 전쟁 3년 동안 아 장면만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전쟁의 흐름이 달라졌고 역사가 바뀌었을거다는 장면이 있습니까?

(신인균) 제가 의외의 전투 이야기를 할게요 전쟁이 1950 년 6월25 일 시작됐죠. 6월 25일부터 29 일까지 벌어진 전투예요. 당시 강원도 서쪽을 6사단이 지키고 있었는데, 사단장이 김종호 장군이었습니다. 김 장군이 보기에 북한 쪽 낌새가 이상하다고 판단해서 그 주말 장병들의 외출,외박 다 금지하라고 명령을 내린 거예요. 그래서 6사단만 외출 외박을 가지 않고 전원이 대기를 한 겁니다. 거기가 순천 홍천 지역이었는데. 그 외 부대는 주말이라 자유롭게 외박, 외출 다 했죠. 그런 상태에서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했을 때 6사단이 그걸 막아내 버린 겁니다. 북한군 2사단 7사단 그리고 106전차연대 등 3 개 부대가 들어왔는데 그걸 3 일간 막아냈어요. 그러니까 인제 북한군이 추가로 15사단과 603 모터사이클 연대를 추가를 했어요. 그것까지 또 막아냈어요. 근데 그 사이에 서울이 함락됐지 않습니까? 이게 왜 중요하다고 하냐면은 다른 부대들처럼 서울 전방을 맡았던 1사단이나 7사단이나 또 이런 부대들처럼 순식간에 그냥 밀려버리고 패퇴를 하고 도주를 해 버렸다면 북한군이 춘천으로 쑥 들어와가지고 바로 왼쪽으로 들어와서 서울을 완전히 에워 쌀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6사단이 그나마 5일이나 버티면서 서울이 순식간에 함락되는 것을 막아준 거죠. 만약 6사단이 버티지 못했으면 김일성이 서울에서 3 일씩이나 대기하고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6사단이 어렵게 버텨준 것이 정말 역사를 바꿨다. 대한민국을 살렸다고 봅니다.

(진행자)절대 그래선 안 되겠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발발하게 된다면 결과가 어떨까요?

(신인균) 한국의 군사 전략이 선제 공격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전략이라면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한 보름 만에 평양을 점령할 수 있고 그리고 초기 함경북도 끝까지 모든 정리를 다 하는데 3 개월이면 가능하다 라고 생각이 되고, 과거에는 북한군이 전면 남침하면 한국군이 거의 충청남도까지 밀렸다가 그리고 이제 미군이 대거 들어와서 다시 역습에 올라가는 이런 개념이었는데. 지금은 휴전선에서 10km도 뒤로 밀리지 않아요. 바로 그냥 휴전선에서 북한 공격을 다 받아내고 다시 그냥 역습을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한국군 7 군단이 어마어마한 저력이거든요. 7 군단이 바로 그냥 평양을 보름 만에 충격하는 이런 전쟁은 양상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쓰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핵을 쓸 수가 없습니다. 지금 3축 체제 이렇게 해서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선제 타격해서 초기에 무력화시키는 이런 준비를 다 하고 있기 때문에 2차 한국전쟁이 발생한다면, 한국의 완승으로 끝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진행자)지금까지 자주국방 네트워크 신인균 대표였습니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기사 작성 김진국,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