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1월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어요. 해연 씨의 신년 계획은 어떻게 돼요?
이해연 : 올해는 돈을 절약해서 많이 모으는 게 신년 계획이에요. 근데 선배님, 남한에선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하나요? (웃음)
박소연 : 북한과 많은 면에서 다르죠. 북한은 최대한 절약하고 장사로 돈을 굴립니다. 돈이 생기면 달러나 중국 돈으로 바꿔서 갖고 있다가 돈 댓수(환율)가 올라가면 되파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단순한 방법이었어요. 즉, 돈이 있어야 돈을 벌었어요. 물론 한국도 돈이 있으면 돈을 벌지만 남한과 북한의 돈 버는 방법은 다릅니다. 해연 씨, 어떻게 돈 관리를 하고 있어요?
이해연 : 경제에 관해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편이에요. 현재 남한 경제 상황과 미래 전망에 대한 신문 방송을 챙겨 보면서 돈을 저축하거나 다른 투자 방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월급을 타면 먼저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 지출, 예를 들어서 월세, 관리비, 통신비를 빼고 다음으로 생활비를 남기고 나머지 돈은 은행에 적금해요. 간혹 여윳돈이 생기면 주식을 조금씩 삽니다. 매달 들었던 적금이 만기 돼 통 돈이 생기면 예금으로 전환하고요. 그리도 다시 또 새 적금을 들고... 생활비 같은 경우에는 파킹 통장이라고 해서 하루만 넣어도 이자가 나오는 통장에 넣어둡니다.
박소연 : 해연 씨가 말한 적금, 예금, 파킹 통장은 전부 은행에 돈을 넣고 빼는 것과 연관이 있잖아요. 북한 기준으로 봤을 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북한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원할 때 찾지 못합니다. 왜냐? 은행에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도 한 때 남한의 적금과 예금과 비슷한 저금이 있었어요. 평양에 중앙은행이 있고 각 도마다 은행이 하나씩 있고 동마다 '저금소'라는 게 있었어요. '저금소'에 달마다 일정 금액을 저축하거나 통 돈을 맡기는 경우는 모두 그냥 '저금'이라고 불렀고요. 남한에서는 이 용어가 다르죠. 은행에 그냥 돈을 넣는 것은 저금, 저축이라고 하지만 달마다 일정 금액을 저축하는 건 적금, 통 돈을 일정 기한 맡겨 놓는 것을 예금이라고 합니다.
이해연 : 아니, 북한에서도 적금이나 예금을 했다는 거예요?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도마다 한 개 정도 은행이 있었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어요. 2017년 쯤에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는데 송금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북한의 은행에 송금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주민들은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타지방으로 돈을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이용했어요. 반면에 돈이 있어도 은행에 맡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요, 은행을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소연 :해연 씨는 '고난의 행군'에 태어난 세대잖아요. 저는 1990년대 초반에 월급으로 북한 돈 85원을 탔어요. 당시 공장에서 제일 높은 간부인 지배인은 120원을 탔습니다. 월급에서 사로청 맹비, 부조금, 산재 보험비를 제하면 70원을 손에 쥘 수 있었어요. 그중에서 35만 원을 저금소에 저금하고 한 달에 10원씩 계를 넣어서 1년이면 120원을 찾는 법으로 결혼 준비를 했어요. 1990년 초반만 해도 북한 돈 120원이면 중국 공작새 이불 등(이불커버) 3개를 살 수 있었거든요.(웃음) 근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어머니가 언니를 시집보내려고 저금소에 돈을 찾으려고 갔더니 돈이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더래요. 당시 북한은 경제가 침체하면서 은행에 돈이 없어 저금을 돌려주지 못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저금소에 돈을 저금하지 않았어요. 90년도 후반에 인민반 별로 은행 사람이 와서 '여러분, 집 농짝 밑에 있는 돈을 은행에 저금해야 나라가 돌아가고, 나라 금고에 돈이 있어야 잘살 수 있다'고 강연했어요. 주민들은 코웃음을 쳤죠.
이해연 : 북한에도 월급으로 저금하는 시대가 있었다는 게 저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라 많이 놀랍습니다.
박소연 : 그럼 해연 씨는 북한에서 은행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나요?
이해연 : 한두 번 정도 갔는데 계좌이체 때문에 갔었어요. 북한은 계좌이체를 할 때 카드나 통장 대신 현금을 직접 갖고 은행에 가서 은행직원에게 받는 사람 계좌번호와 이름을 알려주면 그 자리에서 계좌이체를 해줬어요.
박소연 : 과거보다 많이 발전했네! 90년대에는 저금을 하면 은행원이 통장에 까만 원주필(볼펜)로 금액을 쓰고 그 옆에 확인용으로 빨간 도장을 찍어줬어요. 지금은 엄청나게 발전한 거네요.
이해연 : 지금은 카드도 있어요. 특히 엄마들은 카드를 엄청나게 애지중지해요. 일상에서 자주 이용할 일은 거의 없고 돈을 이체할 때만 사용해요. 그러니 사람들은 카드를 소중한 물건처럼 꽁꽁 싸매고 다녔어요.
박소연 : 지금은 계좌이체 때문에 은행을 찾아간다는 얘기군요. 혹시 저금하러 가는 사람은 없나요.?
이해연 :없어요. 대신에 계좌이체 같은 은행 일을 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엄청나게 깁니다. 문을 여는 시간이 9시인데 7시부터 가서 줄을 서요. 북한 은행은 남한처럼 컴퓨터로 업무를 빨리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씩 공민증(신분증)을 검사하고 이체하고...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려요. 업무를 보는 시간이 길어서 초반에는 은행이 엄청나게 붐비고 그랬죠.
박소연 : 듣다 보니 지금 북한 은행은 적금이나 예금을 하는 곳이 아니라 돈을 보내주는 곳이네요. 생각해 보면 차를 타고 장사하는 '달리기 장사꾼'은 돈을 돈주머니에 넣어 배에 찹니다. 이동 중에 강도를 만나서 강탈당하는 사례도 많거든요. 은행에서 돈을 보내주고 하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잖아요?
이해연 : 네, 그리고 예전에는 장사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떼이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직접 가져다 주기보다 주로 중간에 사람을 통해 전달하는데 전달 사고가 많아요. 전달하지 않고 돈을 떼먹고 사라지거나 액수가 비거나... 지금은 바로 눈앞에서 은행원이 계좌 이체를 해주기 때문에 사기를 피할 수 있어 많은 주민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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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그랬군요. 그런데 해연 씨는 이렇게 은행 업무를 거의 몰랐으면 남한에 와서 은행을 이용하는 건 괜찮았어요?
이해연 : 힘들었죠. (웃음) 정착 초기에는 은행에 대한 신뢰가 없었습니다. 은행이 내 돈을 떼먹지 않을까, 정말 맡겨도 되는지 의심했어요. 부끄럽지만 정착 초반에 제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아세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은행에 넣지 않고 장롱 속에 계속 쌓아 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바보 같은 짓이죠. 통장에 넣었으면 이자라도 들어왔을 텐데...
박소연 : 탈북민들은 남한에 정착하기 전 하나원에서 사회 정착 교육을 3개월 동안 받습니다. 특히 은행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해줬어요. 집에 현금을 보관하면 도둑맞을 수 있고 위험한데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도 붙고 나라의 경제가 돌아간다고 설명했지만 솔직히 현실감은 없었어요. 속으로는 저렇게 말한다고 따라 할 줄 알고 저러는가 하며 소홀히 들었어요. 하나원에서 탈북민들에게 농협 카드를 하나씩 주고 거기에 정착금 몇천 달러를 넣어줘요. 사회에 나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은행에 가서 카드에 진짜 그 돈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북한에서 나라를 믿지 못하고 돈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을 지켜왔던 습관 때문이죠. 정착 연도가 늘어가면서 돈을 엉덩이 밑에 깔고 있는 것보다 은행에 맡기면 2%든 3%든 이자가 붙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이해연 : 처음 남한에 정착하면 사회정착금을 카드에 넣어주잖아요? 다행히 저는 휴대전화에 은행 앱을 깔아서 매번 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신기해서 자꾸 들어가 봤거든요. 상점이나 시장에서 카드를 긁었어요. 그러면 쓴 만큼 카드에서 돈이 나갔는지 확인하고, 은행의 실수로 누락돼 금액이 안 줄어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웃음)
박소연 : 맞아요. 썼어도 금액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해연 씨와 저는 정착 초기 은행에 관한 생각은 똑같았네요. 북한에서 은행을 다양하게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못한 데다 내 돈은 내가 딱 틀어쥐고 국가 비밀처럼 목숨 바쳐 지켰죠. 지금은 예금도 하고 적금도 하고, 해연 씨는 주식도 한다고 했는데 남한에 와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나라를 믿고 돈을 맡기기까지 몇 년이 걸렸잖아요. 청취자분들이 방송을 들으시며 '저 사람들이 남조선에 가더니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은행을 이용해 돈을 모은 과정을 아시게 되면 금방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클로징] 북한 당국은 남한을 돈밖에 모르는 세상이라고 비난하지만 북한에서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더 절실하고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열심히 살아도 점점 쪼들려 가는 삶 속에 잊어버렸던 '돈 모으는 재미와 기쁨'을 남한에 정착하면서 다시 느낍니다. 그 기쁨이 제 기억보다 더 컸다는 걸 그리고 모으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