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에도 공중목욕탕이 있을까?
박소연 : 해연 씨,안녕하세요. 음력 설을 보내고 처음 보네요. 북한말로 작년에 보고 처음입니다. (웃음) 어떻게 설 명절 잘 보내셨어요?
이해연 : 그러네요. 제가 먼저 인사하려고 했는데... 올해는 특별히 더 추운 것 같아요. 남한에 와서 이렇게 추운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춥습니다. 선배님, 이번 연휴가 춥고 좀 길었잖아요. 이렇게 추울 때 생각나는 거 있잖아요?
박소연 : 뜨끈한 국물?
이해연 : 그거보다 더 좋은 게 있어요.
박소연 : 해연 씨가 생각한 건 뭐예요?
이해연 : 겨울이면 목욕탕!
박소연 : 아~ 목욕탕!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혹시 해연 씨는 한국에 와서 목욕탕에 가본 적이 있어요.
이해연 : 그럼요. 남한의 목욕탕이 어떤 건지 시설도 궁금했고, 기대가 커서 사회에 나오자마자 가보고 또 그 이후에도 자주 가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박소연: 해연 씨 그거 아세요? 남한에는 목욕탕도 있고, 찜질방도 있고, 사우나도 있고 한증막이라는 것도 있고...정말 다양합니다. 동네마다 있는 작은 대중목욕탕을 줄여서 목욕탕이라고 부르고, 대중목욕탕은 온탕도 있고 냉탕도 있는 게 북한 목욕탕과 비슷해요.
이해연 : 북한 목욕탕에도온탕이 있었어요?
박소연 : 당연히... 저희가 어릴 때는 목욕탕 안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온탕이 있었어요.
이해연 : 제가 다닐 때 온탕은 없고 냉탕만 있었습니다. 온탕은 아무래도 전기값도 그렇고 물값도, 돈이 많이 들어가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럼 한겨울에 얼음물에다 목욕했다는 얘기예요?
이해연 : 아, 사우나가 있습니다.사우나실 따뜻한 데 가서 몸을 녹이다가 밖에 나와서 냉탕에 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씻어요,
박소연 : 오늘 할 얘기가 진짜 많아 보이는데요. (웃음) 남한 목욕탕은 방식에 따라 이름만 약간씩 다르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목욕탕은 온탕, 냉탕이 있고 때를 미는 그런, 북한에서 생각하는 옛날 '목욕탕'과 같은 곳이고요. 사우나는 증기로 하는 곳으로 찜질방은 말 그대로 뜨거운 찜질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가보면 보석방, 쑥방, 옥방, 산소방... 특이한 건 보석방이라는 곳은 안에 들어가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보석을 박아놓고, 쑥 찜질방엔 쑥을 피워 놓았어요. 산소방은 산소가 나오는데 다 공통점이 있어요. 뜨겁게 온도를 높여서 찜질할 수 있다는 거예요. 찜질을 해서 땀이 많이 나니 보통의 옷을 입고 들어가면 안 돼요. 땀을 잘 흡수하는 재질의 헐렁한 큰 옷을 입고 들어가서 이용하거든요. 그래서 남한의 찜질방에 가면 옷을 다 줍니다.
이해연 : 남녀노소 다 단체복이죠. (웃음)
박소연 : 맞아요.찜질방 같은 경우에는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는 목욕탕이나 사우나와는 달리 온 가족들이 함께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있어요.
이해연 : 저도 찜질방을 다녀오긴 했는데 생소한 이름의 방들이 많아요. 흙방도 있고 아이스 방도 있는데요. '아이스'라는 말은 영어로 얼음이니 얼음 방이란 말이죠. 찜질하다 열을 식히는 용도입니다.
박소연 : 한증막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게 뭔고 하니 북한에도 비슷한 게 있어요.
이해연 : 한증이라는 말은 북한에서도 씁니다.
박소연 : 천장을 둥글게 만든 방에 나무를 때서 그 안을 정말 뜨겁게 만들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갈 때는 멍석 같은 거적때기를 쓰고 들어가야 하는데, 일단 그 안에 들어가면 1~2분을 버티기가 힘들어요. 그런데도 멍석을 틀고 그 안에 들어가서 땀을 내고 나오면 몸이 엄청 개운하다면서 남한에서도 어머니들이 좋아하죠.
북한 주민 생활의 지혜, 한증 주머니를 아십니까?
이해연 : 북한에는 두꺼운 비밀로 만든 '한증 주머니'라는 게 있는데 선배님 혹시 아세요? 중국에서 넘어온 제품인데요. 목욕할 때 집이 상당히 춥잖아요. 그래서 따뜻한 물을 담은 대야를 한증 주머니로 감싸죠. 주머니의 위쪽은 빨랫줄에 고정하고요. 그러면 대야에서 김이 올라 주머니가 빵빵해지면 하나의 작은 방이 되는 거죠. 그렇게 목욕하는 걸 '한증한다'고 했어요.
박소연 : 맞아요. 저도 남한에 와서 몸이 찌뿌둥하다고 말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같이 한증막에 가서 1~2분만 들어갔다 나오면 개운해진다는 거예요. 그 말 듣고 따라가 시도했다가 아니 목숨 걸고 남한에 왔는데 목숨 걸고 뜨거운데 왜 들어가는지 믿기지 않는 거예요. 너무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저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얼굴이 빨개 가자고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는 듯이 버티는 모습이 정말 영웅처럼 보였어요. 이런 모습을 보고 남조선 사람들은 정말 쓸데없는 데 목숨 건다는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웃음)
이해연 : 선배님은 목욕탕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박소연 : 솔직히 찜질방이고 한증탕이고 잘 안 갑니다. 툭 까놓고 말해서 아니 해연 씨 집이나 내 집에 샤워기가 없습니까? 목욕탕이 없습니까? 화장실에 가면 욕조도 있잖아요. 근데 왜 그런 데 굳이 돈을 내고 가냐고요.
이해연 : 북한에 있을 때 남한 드라마에서 항상 배우들이 더운물에 웃통을 벗고 샤워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남한에 가면 매일 샤워할 거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진짜 남한 집에는 샤워기가 있고 더운물, 찬물 다 나오고 심지어는 옆에 욕조도 있어서 더운물을 가득 채우고 드라마처럼 와인 잔 하나 들고 영화 한 편 찍어도 됩니다. 그러니 목욕탕이나 찜질방 같은 데를 반드시 가지 않아도 되죠.
박소연 : 해연 씨도 남한 와서 드라마 흉내 내본 적 있습니까? 거품 가득 풀어놓은 욕조에 들어가서 와인 한 잔 들이키는 장면 드라마에서 많이 봤잖아요.
이해연 : 저희 집에는 욕조는 없어요. 그래서드라마 한 편 찍고 싶을 때는 친구들과 돈을 좀 써서 호텔 예약합니다.(웃음)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목욕탕은 씻으러 간다라는 의미가 더 컸잖아요? 이런 이유로 남한의 묙욕탕, 찜질방은 '씻으러 간다'는 의미보다는 가족끼리, 친구끼리 놀러 가는 것 같습니다. 찜질방 가서 수건으로도 양머리도 만들어 쓰고 음식도 시켜 먹지 않습니까?
박소연 : 수건을동글동글하게 만들어서 귀마개처럼 쓰는 것 말이죠? 저는 양머리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동그랗게 양쪽으로 말리는 양의 뿔을 닮았다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더라고요.
이해연 : 귀엽지 않나요? (웃음) 그런 것을 체험해 보는 것도 재미있고, 친구들과 같이 가서 온종일 앉아서 수다도 떨 수 있고, 또 매점도 있어서 한 끼 식사도 거뜬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도 삶아 먹을 수 있는 달걀이지만 찜질방에서 파는 달걀은 차원이 다르게 맛있습니다. 여기에다가 북한에서 '감주'라도 부르는 식혜를 함께 먹으면 단연 으뜸이죠. 한증막이나 사우나 같은 걸 하고 나서 먹는 식혜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박소연 : 맞아요.저는 찜질방을 잘 안 가긴 하는데정착한 지 5~6년쯤 돼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가본 일이 있습니다. 그 집이 애가 셋이거든요, 왜 하필 찜질방으로 놀러 가냐니까 그냥 한번 가보잡니다. 싫었지만 할 수 없이 끌려가듯 갔는데, 글쎄... 그 안에는 목욕할 수 있는 데도 있지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방 같은 게 있는 거예요. 거기에다 구운 달걀에 라면도 끓이고 아예 음식점이 그 안에 들어와 있어요. 아이들을 놀이방에서 놀고 엄마들끼리 서로 앉아서 수다 떠는데, 이거는 목욕탕이라기보다 뭔가 여가 시설 개념이 더 크더라고요. 그리고 조금 전 해연 씨가 말했던 양머리... 저도 북한에 있을 때는 남한 드라마 보면서 혹시 내가 남조선 가면 저것부터 제일 먼저 해야겠다고 했는데 막상 오니까 안 하게 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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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어떤 가족은 한 일곱 명이 왔는데 아예 거기 나와서 밥을 다 먹고 도시락까지 싸서 온 거예요. 저 사람들 왜 저 돈을 저렇게 낭비할까? 집에서 대충 끓여 먹지 생각했는데 이게 또다른 멋이 있더라고요. 막 웃고 떠들면서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그래서 나도 훗날 아들이 장가가서 며느리가 들어오고 손자가 생기면 그때 다 우르르 끌고 여기로 와야겠다 다짐했죠.
이해연 :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드님이 장가가면 그때 가족끼리 같이 가서 수다 떨며 귀엽게 양머리를 양쪽으로 눌러 쓰고 달걀 드세요. (웃음)
박소연 : 드라마에서 봤던 그대로 말이죠?
이해연 : 맞습니다. 저는 그냥 귀여우니까 하는 줄 알았는데 찜질방 같은 데 가면 더워서 땀이 흘러서 그것 때문에 만들어 쓰는 거라고 합니다.
박소연 : 저도 이번 방송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이해연 : 저 역시 방송을 준비하면서 검색을 해봤는데요. 남한의 찜질방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전국에 생겼다고 해요. 요즘은 점점 더 고급화되고 조명이나 실내장식이 특색 있게 잘 돼서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도 도입이 시급, 찜질방
박소연 : 해연 씨가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고급 찜질방 사진을 보냈는데 정말 휘황찬란하더라고요.
이해연 : 저도 나중에 가야지 하고 저장만 해놓고 아직 가보지는 못했는데요, 한번 가보시라고 공유해드렸어요. 확실히 남한의 찜질방이나 목욕탕은 청결이나 위생보다 사회 문화적인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박소연 : 북한에도 이런 찜질방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한의 목욕탕 이용요금은 성인이 7달러 정도로 밥 한 끼 사 먹을 수 있는 금액이고, 찜질방은 약 9달러 정도 하는데 수면실도 있고, 큰 홀에 나가면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는데 찜질을 하고 나서 잠도 잘 수가 있어요. 저도 여행 가게 되면 모텔이나 호텔보다 찜질방에서 자기도 하는데, 사실 북한에는 달리기 장사꾼들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쉴 마땅한 곳이 없어서 역전 대합실에서 쭈그리고 자다가 내쫓으면 추운 바깥에 쭈그려 앉아 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북한에 만약 이런 찜질방 같은 것들이 있으면 장사꾼들이 얼마나 유용하게 이용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연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요. 장사하는 사람이든 평범한 주민들이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이 생기게 되면 다들 좋아할 것 같고, 따뜻한 곳에서 수다도 떨고 가족들도 함께 즐기고...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 클로징] 1980년대 동네마다 있었던 목욕탕은 일요일만 되면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세수수건, 비누, 갈아입을 속옷이 든 빨강 소랭이(대야)를 들고 골목길을 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는 엄마가 목욕하러 가라면 왜 그렇게 거가 싫던지... 어떤 날은 압록강에서 가서 머리에 물을 묻히고 엄마에겐 목욕갔었다고 거짓말까지 했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추억이 있으십니까?
목욕탕에 깃든 그 시절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전하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혜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