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남북 목욕탕엔 모두 초록 때타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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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지난주부터 목욕탕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목욕탕을 가본 지가 거의 20년이 됐네요. 고향 목욕탕이 어떻게 변했을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북한에도 사우나, 찜질방 있을까


이해연 : 아마 선배님 있을 때보다 많이 변했을 거예요. 개인이 운영하는 목욕탕이 있고, 국가가 운영하는 목욕탕도 있고 특히 무역회사가 직원들 복지를 위해 돈벌이 수단으로 운영하는 목욕탕들이 있어요. 국가가 운영하는 목욕탕은 별로 크지 않고 시설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규모는 작지만 1인실로 된 곳이 많아요. 큰 집에서 사는 주민이 방 하나를 돈 벌기 위해 개조해서 찜질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곳들은 간판 없이 아는 사람들 위주로, 전화로만 예약을 받습니다. 방안 내부는 목재로 꾸리고 밖에서 불을 때서 방 온도를 높여서 찜질을 하고 또 물로 목욕도 가능하게 시설을 해놓았습니다.


박소연 : 와... 그런 곳도 있군요?과거에는 개인이 한증막이나 목욕탕을 운영하는 것이 불법이었어요. 국가가 운영하는 대중목욕탕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2008년경에 청진이라는 대도시로 장사하러 갔다가 제가 신세계를 경험한 일이 있어요. 폐가가 된 국가 건물을 개인이 통째로 임대받아서 개인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물론 그곳도 간판은 없었습니다. 북한은 간판이 없이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간판을 걸고 국가가 운영하는 곳보다 더 고급스러워요. 결국, 합법적인 게 질이 좀 떨어지고 비합법적인 게 질이 더 높다는 얘기죠. 청진이면 북한에서 제법 큰 도시 중의 하나잖아요. 그때 가보니까 방이 여러 개가 있는데, 한증탕도 있고, 부부탕, 가족탕 등이 있어요. 연료는 무연탄을 쓰더라고요. 남한의 찜질방처럼 여럿이 누워있을 만한 넓은 공간은 없었지만 휴게실에 냉장고가 있고 그 안에 맥주와 오징어가 있는데 엄청 비싼 거예요. 시장에서 파는 가격보다 거의 두 배로 파는데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걸 느꼈죠. 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 도시 주변에 그런 시설들이 있었고 일부 돈 있는 사람은 이용했던 거죠.


이해연 : 지금도 비슷합니다. 지금도 가격이 눅은 곳도 있고 비싼 곳도 있는데 경제력에 따라 골라 가는 거죠. 일반적으로는 돈을 아끼기 위해 눅은 곳을 데를 많이 갑니다.


박소연 : 보통 가격이 어느 정도예요?

이해연 : 2017년 기준으로 당시 쌀 1kg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어요. 북한 돈으로 6,500원이었고요. 중국 돈으로는 5원 정도였어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목욕탕은 국정 가격을 받지 않겠냐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국정 가격으로는 운영이 어려워서 시중에서 운영하는 목욕탕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최소 중국 돈으로 1원에서 7원까지 받는데, 최근에는 1.22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박소연 :눅은가격은 아니네요. 1달러면 현재 북한 돈 2만 원 정도입니다.

이해연 :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가고요. 일반 사람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곳이나 시설이 조금 낙후된 곳, 아니면 무역회사가 운영하는 목욕탕을 이용합니다. 북한에 있는 기업들, 특히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운영하는 기업들은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샤워실을 설치해서 운영하는데요, 직원들만 쓰기엔 아까우니까 돈벌이 수단으로도 운영하거든요. 그래서 가격이 눅습니다. 시설은 아주 좋은데 금액은 생각보다 눅어서 저도 자주 이용했습니다.

박소연 : 주로 누구랑 같이 갔어요?

이해연 : 친구랑 자주 갔어요. 엄마랑은 시설이 좋다고 구경시켜 드리려고 한번 갔었고.. 다 컸는데 엄마랑 목욕탕 가는 게 좀 창피해서 대부분은 친구랑 자주 갔습니다.


박소연 : 일단 중고등학생이 되면 이젠 컸다고 친구랑은 같이 가도 엄마랑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더라고요. (웃음) 저도 그랬네요...

아이 나이 속이고 목욕탕 공짜로 들어가기?

목욕비 꿍쳐서 과자 사먹기?

남북이 같거나, 다르거나... 목욕 문화

박소연 : 1980년대 후반을 생각해 보면, 북한에는 동마다 목욕탕이 있었어요. 집 주변에 제지공장, 방직공장, 편직 공장이 있는데 공장마다 목욕탕이 있었고 거기가 동네 목욕탕이었죠.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엄마가 회초리를 들고 먼지 털 듯이 목욕탕 가라고 우리를 쫓았어요.

저희가 형제가 많아 언니 뒤를 따라 줄줄이 다 같이 갔어요. 그때는 세숫비누나 수건이 귀했어요. 한 번 갈 때 수건과 비누 한 장 가지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목욕도 다 하는 거죠. 지금도 기억나는데 당시 요금이 국정 가격으로 어른은 5전이고 아이는 3전이었어요. 노동자 월급이 50원에서 70원 할 때죠. 그리고 젖먹이들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됐어요.

우리 막내가 4살인데 엄마가 막내 목욕 돈까지 다 주면, 큰 언니가 꼭 그 아이를 업고 모자를 씌워 2살이라고 속여 공짜로 들어갔어요. (웃음) 등에 식은땀 나게 사기 친 돈으로 목욕하고 오면서 할머니들이 길에서 파는 맛있는 들쭉 열매를 사 먹는 거죠. 아...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추억이 있었네요.

이해연 : 살던 때가 달라고 이런 풍경은 어떻게 하나도 변하지 않고 너무 똑같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머리 쓰는 것도 있지만, 엄마 돈을 몰래 꿍쳐서 딴짓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우리는 어릴 때 엄마 속이는 맛에 살았잖아요. 솔직해집시다. (웃음)

이해연 :저도 엄마한테 돈을 탈 때는 개인이 운영하는 목욕탕 가격으로 타서는 몰래 집에 하던가 아니면 싼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나머지 돈으로 과자를 사 먹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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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저는 목욕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사람들이 너무 많고, 목욕탕 바닥도 물때 때문에 찐득찐득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그런 게 싫어서 안 가려고 하는데 엄마는 가라고 쫓아요. 목욕은 안 가고 머리를 압록강에서 적시고 목욕 돈은 할머니들이 술잔같이 작은 고뿌(컵)에 1~2전 하는 다래 열매를 사 먹었어요. 그러면 입가나 혓바닥에 풀색이 변하잖아요? 이걸 안 들키려고 종이로 열심히 닦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웃음)

이해연 :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는 그걸 속이려고 얼마나 가슴 졸이며 애를 썼을까요...

북한도 남한처럼 때를 밀까?

때 수건 유입 전에는 현무암으로

박소연 : 목욕탕에 대한 추억은 끝이 없는데 사실 남한도 비슷하더라고요. 남한에는 가운데 탕이라고 하는 큰 물탱크가 있고 주변에 작은 플라스틱 물바가지와 의자를 깔고 앉아서 목욕하는 것이 80년대 후반의 북한 목욕탕과 구조가 비슷했어요. 지난번에 우리가 목욕탕에 관해 얘기한다고 하니까 남한 출신 피디님이 북한도 때수건으로 때를 미느냐고 물어봤어요. 그게 다들 궁금한 가봐요. 밀긴해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북한에 그 까끌까끌한 '때수건'이라는 게 들어온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그전에는 없었어요. 엄마가 구멍 숭숭 난 바닷가 돌을 갖고 저희들 등을 박박 밀어줬죠.


이해연 : 숭숭 돌 혹은백두산 부석이라고 불렀어요.

박소연 : 맞아요! 중국과 무역이 시작되면서 풀색 때밀이 수건이 북한에 들어오면서 드디어 백두산 부석돌에서 해방될 수 있었어요.

이해연 : 저는 어릴 때부터 이태리 수건으로 때밀었던 같은데...

박소연 : 아, 맞아.남한에서는 풀색 때밀이 수건을 이태리 수건이라고 하더라고요.

이해연 : 저는 중국에서 들어와서 중국 수건인 줄 알았어요. 근데 남한에 와서 알고 보니까 이태리 수건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박소연 : 북한에서 풀 색깔 나는 이태리 때 밀개를 썼잖아요. 처음엔 그게 집집마다 다 있지 않았어요. 동네 이웃이 때밀이 수건을 서로 빌려 썼죠. (웃음) 그 까칠까칠했던 때 밀개가 돌고 돌아 주인에게 돌아올 때면 다 닳아서 와요. 뭘 그런 걸 빌려 썼나 하겠지만 그때는 귀했죠. 남한에 딱 왔는데... 북한에서 썼던 때 밀게 하고 똑같은 게 있어서 속으로 '야, 이 때 밀개를 세계에서 단체로 만들어 파는가 보다' 그랬습니다.

이해연 : 색깔도 여러 가지여서 골라서 쓰는 재미가 있잖아요.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좋아해서 색깔 별로 사놓고 양손에 끼고 썼습니다. (웃음)

박소연 : 그런데 해연 씨 그거 아세요?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걸 우리 민족만 하는 거래요.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문화가 없대요. 그냥 샤워만 한다는 거예요!

이해연 : 때수건 이름이 이태리 수건인데, 이태리 사람들은 때를 안 미는 거예요?

박소연 : 남한에서도 그 유래가 확실치 않은데요. 어쨌든 그 풀색깔 나는 때수건는 남한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중국을 통해서 북한에 대대적으로 유입이 된 걸로 봅니다.

이해연 : 역시 한민족이네요. 때를 미는 걸 좋아하는 문화는 어쩔 수가 없네요.

박소연 : 북한목욕탕에 가면 엄마들이 인민군대처럼 일렬종대로 앉아요. 등을 서로 밀어주고 다 밀면 다시 돌아앉아서 밀어주며 시끌벅적하죠. 남편 흉에 시어머니, 시누이 등 시댁 식구 흉을 보느라 웃고 떠는데... 장마당에서 보는 세파에 찌든 얼굴이 아닌 웃느라 마냥 즐거웠던 그 얼굴들, 생각해보니까 목욕탕 가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네요...

[ 클로징] 북한에서 목욕은 품을 들여 기회를 보면서 준비해야 하는 숙제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장사에 지친 아줌마들이 어둠이 깃든 강에서 몰래 목욕하면서 주변을 살피던 추억도 떠오르는데요. 지금도 여전하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웃었습니다. 남한에는 무더운 여름 강에서 몰래 목욕하는 문화가 없냐고요?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께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전하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