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아빠 하늘에서 잘 지내?
박소연 : 안녕하세요
이해연 : 네. 안녕하세요
박소연 : 한 주간 잘 지내셨어요?
이해연 : 네. 그동안 공부만 하다가 추석 연휴가 주말까지 합쳐 5일 정도 되잖아요, 그래서 여행을 준비했었는데...
박소연 : 그렇죠, 지난주에 자랑하셨죠.
이해연 : 여행은 아쉽게 못 가고 추석날 친척들을 만나 인사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보냈어요.
박소연 : 혹시 가족들이 먼저 한국에 오셨나요?
이해연 : 네. 이모랑 사촌오빠가 먼저 한국에 왔어요,
박소연 : 저는 해연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안쓰럽게 봤어요, 어린 처녀가 혼자 남한에 와서 얼마나 외로울까? 올 추석은 울면서 보내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거든요, 다행히 이모님이랑 가족들과 추석을 잘 보낸 것 같아 좋습니다.
이해연 : 선배님은 어떠세요? 한국에 가족이 있으세요?
박소연 : 저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해연 : 그래도 아들이 있어 외롭지 않겠네요.
박소연 : 다행이죠, 가족이 두 명이면 북한에서는 작은 식구에 속하지만, 한국에서는 크게 느껴지죠.
이해연 : 그렇죠, 많이 의지가 되니까요.
박소연 : 처음에는 많이 의지가 됐지만, 지금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웬수에요. (웃음) 그래도 추석날만큼은 아들이 있어 위로가 되더라고요.
박소연 : 해연 씨 이모님은 어디서 사세요?
이해연 : 충청북도 청주에서 살고 있어요.
박소연 : 그러면 어쨌거나 충청북도로 여행은 다녀오셨네요.
이해연 : 그런 셈이네요. 추석날 집에만 있기 싫어서 이모랑 같이 차를 타고 더 시골로 다녀왔어요, 그런데 이상한 게... 한국에 오니 산이 너무 좋습니다. 나무가 그렇고 좋고요. 북한에서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요.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서는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 자연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서 그럴까요?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1년 정도 됐을 때 산은 보기도 싫었어요, 북한에서는 먹고 살려고 감자 배낭을 메고 산을 넘었는데 한국분들이 등산하는 걸 보면서 이해가 안 돼 혀를 찼거든요. (웃음) 사실 우리가 추석 하면 고향이 떠오르는데요. 요즘 고향의 추석 풍경은 어때요?
이해연 : 북한 추석 하면 소랭이에 그릇들과 음식을 담아 머리에 이고 줄지어 산소까지 가는 행렬이 대단하죠. 그런데 대야를 산소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땅에 내려놓아서는 안 되고 돌 위에 놓아도 안 된다는 얘기가 있어요. 조상들께 예의가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힘들게 성묘를 하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님은 남한에 와서 추석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박소연 : 정착 초기에는 탈북민들이 모여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임진각에 갔댔어요, 그곳에 있는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며 눈물 콧물 흘리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러다가 3년이 지나면서 안 가게 되더라고요.(웃음)
이해연 : 추석에 임진각 간다는 것을 저는 처음 들어요!
박소연 : 10년 전만 해도 추석날 임진각에 가는 것이 당연한 행사였어요. 그것도 줄이 쳐서 같이 갔다 왔죠.
이해연 : 지금 탈북민들은 놀러 가거나 여행을 갑니다. 추석 첫날은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을 찾아뵙고 나머지는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박소연 : 해연 씨 친구들도 그렇게 보낸다는 얘긴가요?
이해연 : 네, 친한 친구 2명이 있는데 그 친구들 가족들도 모두 몇 년 전에 한국에 왔고요. 요즘 하나원에 오는 탈북민들의 70%는 가족들이 먼저 남한에 온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연고 없이 오는 분들이 적다 보니 추석 풍경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10년 전에는 150명 중 100명이 연고 없이 혼자 왔었는데 많이 달라졌네요.
이해연 : 외로운 분이 정말 많았겠네요.
박소연 : 어른은 그런대로 외로워도 받아들이는데 아들은 추석날 갈 데가 없어 아파트 놀이터에서 힘없이 노는데 그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던 아이도 엄마처럼 해가 늘어갈수록 서서히 적응하더니 이제는 추석이면 친구들과 운동하며 노는 날로 여기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해연 : 저는 지난 설날에는 많이 외로웠어요. 북한에서는 설이면 가족 친척들이 북적대며 증폭기도 틀어놓고 시끌벅적하게 오락회도 하니까 명절 분위기가 나잖아요. 명절에 혼자 적적하게 보내는 것이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박소연 : 저도 공감해요. 그런데 명절이라 이런 때 더 외로운 것이... 지인 집에 가서 울고 즐겁게 보내면 북의 가족들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가족들은 나를 걱정하고 있을 텐데 나는 막 웃어도 되나... 그래서 명절마다 울적해지고요. 그런데 이것도 세월이 약인 듯싶어요. 가족들도 내가 여기까지 와서 울면서 지내길 바라진 않아요.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점차 이런 마음들이 누그러지더라고요.
이해연 : 이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음식, 좋은 장소에 갈 때마다 가족들이 더 생각나요. 동생이랑 함께 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절로 이런 생각이 들죠. 식당 같은데 가면 남한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와있는 것이 눈에 띄잖아요? 그럴 때면 저는 돌아앉았어요. 북한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꾸죠, 그런데 여기서는 여유가 되는데 이제 같이 갈 가족이 없다는 것이 또 안타깝네요.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을 보면 부럽죠.
박소연 : 그래도 해가 갈수록 이런 마음들을 긍정적으로 바뀌게 돼요. 작년에 저는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제가 북한에 있었으면 어떻게 슬픔을 표현했을지 상상이 돼요. 통곡 치며 아버지 따라간다고 난리 났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오히려 그 비보에도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실 거라고 기도하며 베란다에서 조용히 울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빠, 나 왔어. 보이지. 하늘에서 잘 지내?”라고 하면서 대화를 하게 되고요. 한국에 와서 불행이나 죽음에 대해 너무 슬프게만 생각하지 않는 문화가 좋았어요. 10년이 지나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요.
이해연 : 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박소연 : 9년을 더 참으셔야겠는데요.(웃음)
이해연 : 그래야 할 것 같아요.(웃음)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