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지원금 그리고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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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 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코로나 지원금 그리고 고향

박소연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바쁘죠?

이해연 : 안녕하세요.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박소연 : 요즘 코로나 비루스 4차 유행이 장기화하며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5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어요. 해연 씨 받았어요?

이해연 : 저는 신기한 게 국가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한 번에 지급할 수 있지? 처음엔 이해가 안 갔어요, 이러다가 나랏돈이 다 나가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고요. 지금은 감사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박소연 : 앗싸! 공짜라서 좋다는 생각보다 걱정하셨다는 말씀이세요?

이해연 : 공짜라 좋긴 했죠. (웃음) 좋으면서도 이 많은 인구를 다 주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박소연 : 해연 씨와 저는 애국자인 것 같네요! 저도 비슷한 걱정했어요. (웃음) 좋기도 했지만… 그래서 해연 씨는 지원금 어떻게 썼어요?

이해연 : 뭐… 대형상점에서 생필품을 사고 미용실도 다녀왔습니다. 정말 요긴하게 잘 썼어요.

박소연 : 우리가 재난 지원금 이야기를 하면 북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사실 재난 상황은 북한이 더 많으니까… 북한에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재난지원금을 받은 적이 있던가요?

이해연 : 그런 기억이 없고 한 달 정도 쌀을 한 사람당 몇 킬로 정도 공급받은 적은 있어요.

박소연 : 그건 배급이잖아요?

이해연 : 아, 우리 때는 배급을 거의 몰라요. 받은 적이 없거든요. 90년대 초반에 사셨던 분들은 그런 말씀을 하시죠. 그래서 어느 해인가 한 달 정도 쌀 배급을 받은 적이 있는데 공짜 쌀이라고 엄청 좋아하면서 먹었습니다.

박소연 : 제가 70년대 생이거든요. 저희는 배급을 받다가 끊겨서 기억하는데 90년대 태어난 북한 주민들은 배급제도를 아예 모르겠네요. 한 달을 배급을 줬다고 고마워했다지만 그건 당연한 거예요. 원래 받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이해연 : 그렇게 생각 못 했죠.

박소연 : 우리가 지금 받는 재난지원금도 우리가 내는 세금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해연 씨는 온지 얼마 안 됐지만 마트 같은 상점에 가서 물 한 병을 사도 세금이 붙어있어요. 그걸 국가가 걷어서 재난 지원금 같은데 쓰는 것이고요. 북한 같은 경우 모든 주민이 국가가 필요한 일을 하고, 국가는 그 대가로 쌀을 배급해주는 거죠. 그런데 그걸 20년 동안 안 주고 있는 것이고요.

이해연 : 그렇게 몇 십 년 동안 흘러오다 보니까 주민들이 거기에 적응이 된 거죠. 그래 어쩌다 배급 한 번 공급하면 일한 대가라는 생각은 완전히 잊고 국가적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북한에서 살 수 있는 길은 개인 장사밖에 없어요. 자체로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겨 그 돈으로 살아가는 거죠.

박소연 : 국가에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걸 너무 안 주고 있으니 가끔 주면 당의 배려라고 생각하는 거네요.

이해연 : 그렇죠. 저도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맞습니다.

박소연 : 이번 5차 재난지원금은 어디에 쓰고 싶어요?

이해연 : 추석 연휴가 길게 있으니까 그 기간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좀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소연 : 해연 씨는 코로나 때문에 일상에서 어려움은 없어요?

이해연 : 첫째로 북한 가족들과 연계를 못 하는 게 제일 힘들죠. 예전에는 2-3달에 한 번씩은 연계를 했거든요. 북한이 국경경비를 강화하면서 가족과의 전화 통화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그립죠. 또 남한 정착 1년 차라 여기저기 다녀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배워야 하는 시기인데 그렇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죠.

박소연 : 사실 탈북민들이 이렇게 추석 같은 명절 즈음에는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사람이 많죠. 그런데 최근에는 북한에 송금을 못 하고 있어요, 해연 씨는 가족이 북한에 계시죠?

이해연 : 그렇죠. 올해 설에 가족과 연계를 했지만 그 후로는 진지하게 얘기를 못 했습니다. 북한 국경 지역에 설치된 전파탐지기에 수신자 위치가 잡히기 때문에 가족들은 손전화기를 켜놓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게 내가 먼저 전화를 할 수 없잖아요? 북한에서 먼저 전화가 와야 돈이라도 보내는 방식이라서요…

박소연 : 탈북민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올해 3월부터 북한으로 송금하는 게 힘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탈북민이 돈을 못 보내고 있죠.

이해연 : 저는 진짜 북한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송금을 왜 막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국가가 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보장을 해주면서 국경을 막는다면 몰라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단속만 강화하니 답답합니다.

박소연 : 북한이 국경을 막는 데는 이유가 있죠. 탈북민들이 북한 가족에게 돈을 보내준다는 것은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증거죠, 그렇게 되면 남한을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이해연 : 그럼 환상을 가지게 되니까...

박소연 : 네, 또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 때문에 단속을 강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 라디오 방송은 한 주일 전에 녹음을 합니다. 그래서 이 방송이 나가는 시기는 추석일 거예요.

이해연 : 이번 추석 연휴는 며칠 정도 되죠?

박소연 : 5일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럴 때 궁둥이 풀릴 때까지 논다고 표현하죠. (웃음)

이해연 : 5일이면 진짜 휴가처럼 느껴지네요. 저는 곧 시험이라 공부도 하겠지만 어쩌다 차려진 휴일이니까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거기서 좋은 추억도 만들고 싶습니다. 살면서 힘들었던 피로를 여행으로 날려버리고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박소연 : 제가 남한에 와서 1년 정도 생활했던 시기는 코로나가 없었어요, 눈을 뜨면 공부하고 돈을 버느냐 눈이 99자가 돼서 다녔는데… 그때 누리지 못했던 추억은 10년이 지난 뒤 돌아보니 돈 주고도 살 수 없더라고요. 많이 다니세요.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추석날이면 조상에게 드리는 음식을 커다란 소랭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산소로 가시면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으시던 어머니, 송편을 양손 가득 쥐고 산봉우리를 뛰어다니던 철없는 남동생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올 추석도 고향에 계시는 가족들과 함께 못하지만 언젠가 고향에서 추석을 보낼 수 있는 그 날을 그리며,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박소연 :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다음 시간에는 해연 씨가 추석을 얼마나 알차게 보냈는지, 한 주일 동안 해연 씨의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얘기 들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이해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