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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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살과 쌀

박소연: 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지요?

이해연: 네. 안녕하세요.

박소연: 오늘은 먹는 이야기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이해연: 네, 먹는 이야기 좋긴 한데요, 남한에 와서 저에게는 그것과 관련해서 난처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박소연: 먹는 게 어렵다고요?

이해연: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함께 갔던 지인이 음식 메뉴를 선택하라 하는데 메뉴가 생소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서 그냥 아무거나 주문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음식 종류가 너무 많아서 “형사님 그냥 드시고 싶은 거 주문해주세요. 저 아무거나 잘 먹어요”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웃음) 그다음부터 식당가서 주문하고 하면 약간 두려움이 있어요.

박소연: 저도 공감하는 데 북한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음식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데, 한국은 식당마다 메뉴가 얼마나 많은지 고르려면 혼이 다 나가요.

이해연: 언니는 식당 처음 갔을 때 어려운 일 없었어요?

박소연: 저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죠. 처음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이 메뉴판을 주는 거예요, 북한에서는 16절지, 여기서는 A4 용지에 메뉴가 가득 적혀있었는데 그걸 다 보자면 눈이 아플 정도죠. 하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앞부분은 눈에 안 띄고 뒷부분에서 5,500원짜리 설렁탕 가격을 보고 머리에서 번개가 딱 치더라고요. ‘세상에 내가 한 끼에 이 많은 금액의 식사를 어떻게 해’라는 생각에 같이 갔던 친구 옆구리를 찔러 식당을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싸서!

이해연: 지금은 아주 일반적인 국밥 가격인데 놀라셨군요. (웃음) 저도 식당에 가면 값이 얼마인가도 보는데요. 더 고민인 것은 입맛에 맞는 메뉴 선택인 것 같아요.

박소연: 확실히 저랑 생각 차이가 많이 나네요. 남한에 오신 지 1년밖에 안 되는데 가격보다 맛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니. 10년 전에 저는 맛이 뭐예요. 가격부터 보고 제일 눅은(싼) 가격에 눈이 머물렀죠. 그럼 해연 씨는 한국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어떤 맛을 느끼셨어요.

이해연: 제일 첫 느낌은 너무 달았어요.

박소연: 저도 설탕 가루가 흘러 넘친다는데... 반찬에 귀한 설탕 가루를 왜 이렇게 많이 넣는지 화가 납니다. (웃음)

이해연: 북한에서 설탕 가루는 잘사는 집에서나 주로 사용하죠.

박소연: 일반 사람들은 겨우 사카린을 넣어 먹는 정도죠. 어쨌든 남한 음식은 달고, 고춧가루도 얼마나 많이 넣는지, 북한에서는 고춧가루가 비싸서 음식에 조금씩 넣죠, 중요한 건 남한 식당은 반찬을 무한정 가져다 먹을 수 있어요.

이해연: 셀프죠. 반찬을 얼마든지 갖다 먹을 수 있어요. 북한에서 만일 알아서 갖다 먹으라 하면 아마 사장님들 다 망할 거에요. (웃음) 북한 식당은 음식이 모자라면 모자랐지 남기는 일은 없으니까요.

박소연: 그럼 저같이 위가 큰 사람은 엄청 이익이지만 사장은 얼마나 손해 볼까? 이렇게 생각했는데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운영하면 이렇게 해야겠다 싶어요. 남한 사람들은 위 크기가 일정한 것 같아요. 또 다이어트에도 신경 쓰잖아요.

이해연: 처음에는 ‘왜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지?’하며 이해가 안 됐어요.

박소연: 지금은 다이어트에 대해 이해를 하세요?

이해연: 그럼요. 저도 가끔은 다이어트를 하거든요.

박소연: 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는데 벌써 이해를 하신다고요?

이해연: 식단 관리를 좀 하죠.

박소연: 저는 처음에 다이어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북한은 다이어트는 고사하고 쌀 때문에 전쟁하는데 남한은 살과 전쟁을 하잖아요. ㅆ와 ㅅ의 차이로 이렇게 다르네요. 그게 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다이어트하지 말고, 남는 음식을 버리지 말고 북한으로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이해연: 같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 느껴지는데요. (웃음) 사실 아직도 저는 지인이 식사 초대를 하면 가서 무엇을 주문할까 항상 고민이 돼요. 이분들은 제가 온 지 얼마 안 되니까 안 먹어 본 음식을 대접한다고 식당에 데려가서 고르라고 하는데... 하루는 형사님이 스파게티를 하는 식당으로 초대했어요. 스파게티... 처음엔 스파게티와 그 뭐죠?? 스... 스테이크랑 헛갈렸어요.

박소연: 이런 음식은 한식이 아니고 양식이잖아요. 남한에는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다양하게 많죠.

이해연: 그런 부분에서 많이 당황했죠. 처음 만난 형사님과 앉아서 식사하는데 맛있게 먹긴 했는데 내내 불안했던 기억이 있네요.

박소연: 저도 처음에 음식을 많이 사준 것이 담당 형사였어요. 신변보호관이라고 하죠. 우리가 하나원에서 나와서 아파트를 받아서 거주 지역으로 가면 주로 해당 지역의 경찰서 보안 협력과 경찰들이 신변보호관으로 배치가 되죠. 이분들은 탈북민들을 24시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 5년 동안 우리가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역할을 해요, 사기를 당하지 않는 방법, 정착하는데 도움이 되는 생활 및 직업정보 등도 제공해 주고 우리가 남한 생활을 잘 모르니까 식사도 사주고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 물어봐 주고.

이해연: 사실 저는 처음에 신변보호관인데 형사라고 해서 약간 당황스럽고 불편했어요. 우리를 감시하나? 우리를 북한에서 감시를 많이 당해봐서... (웃음) 처음에는 많이 불편했죠. 알고보니까 저희들이 정착을 잘 하는데 있어서 고마운 분들인 것 같아요.

박소연: 저는 10년 전 식당일을 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서 119에 실려 간 적이 있었는데 제일 먼저 달려오신 분이 신변보호관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응급실에 갈 경우 보호자를 부르라고 하는데 혼자였잖아요? 병원에서 보호자를 물어보는데... 그분에게 전화를 하니까 제일 먼저 뛰어오셨어요. 그 인연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요. 북한의 안전원이랑 비교하시면 안되요! (웃음)

이해연: 그럼요. 처음 정착 생활을 시작할 때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같은 상황을 저희는 전혀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만날 때마다 주의하라고 조언도 하시고 사람을 만날 때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충고도 하고... 여러 면에서 고마워요.

박소연: 음식 얘기하다가 처음에는 형사님들이 음식을 워낙 많이 사주니까 (웃음) 자연스럽게 형사님 얘기를 하게 됐네요.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요. 우리가 식당에 가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있죠?

이해연: 간판!

박소연 : 그렇죠!

이해연 : 간판을 보면서도 진짜 어려웠어요... 쉬운 게 진짜 하나도 없네요.

박소연 : 먹는 것도 쉽지 않죠. (웃음)

이해연 : 그러니까요,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어요. (웃음)

10년 전 저는 식당을 가면 차림표에서 가격을 제일 먼저 봤습니다. 해연 씨는 음식 맛을 생각하며 주문했다니... 이런 건 세대 차이일까요?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고향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은 저나 해연 씨나 똑같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음식 이야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