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 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혜산에서 서울 국수 먹는 날
박소연: 그리고 또 중요한 게 있잖아요. 간판 중에 이색적인 것이 눈에 띄지 않았나요?
이해연: 남한에 왔는데 간판에 ‘함흥냉면’이라고 써 붙인 집들이 있더라고요. 함흥이면 북한인데 왜 여기에 있지? (웃음) 그것도 크게 ‘함흥냉면’이라고 쓰여있어서 간판에 이끌려서 들어간 적도 있었어요.
박소연: 맛은 어땠어요?
이해연: 솔직히 기대보다는 맛이 없었어요. (웃음)
박소연: 저도 간판에 ‘평양면옥’, ‘함흥 국숫집’이라고 해서 자석처럼 끌려서 들어간 적이 많아요. 왜냐하면, 고향 이름이니까! 그런데 먹어보니 이건 그냥 남조선 냉면이에요. (웃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놀랐던 건 어떻게 북한 지역 이름으로 간판을 달 수 있지?
이해연: 그러니까요.
박소연: 북한 같으면 ‘혁명의 이름으로’ 처벌받기 딱 좋은데 말이죠. 북한 한복판에 ‘서울 국수’ ‘경기도 국숫집’ 했다가는 난리 나겠는데 북한 지역 이름으로 이렇게 간판을 달았는데 누구 하나 책임자를 닦달하지 않는 거예요.
이해연: 자유죠.
박소연: 그러니까요! 그런 것들에 제가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이해연: 여기는 식당이라고 해서 건물이 따로 있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식당이라고 하면 ‘강도식당’이 있고 그런 식당들 대부분은 개인 집에서 하잖아요. 간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소문을 듣고 찾아가죠. 간판 자체가 없으니까 그 지역을 모르는 사람들은 국숫집이 어딘지 모르죠. 그때는 그런 가보다… 하고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불편한 것 같아요.
박소연: 저는 오래간만에 공통점을 찾았어요. 지금까지는 해연 씨와 많이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식당 문제만큼은 10년 동안 북한이 천년 바위입니다. 저 있을 때와 변하지 않았어요. 북한에선 개인들이 한국처럼 간판을 걸고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위법이기 때문일 것이고요.
이해연: 맞아요. 숨어서 식당을 해 야하죠.
박소연: 개인이 음식을 국영 식당보다 맛있게 해도 식당 간판을 걸면 그곳 담당 안전원이나 보위지도원에게 계속 뇌물을 고이라 하는데 그러자면 본전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간판을 못 달고 결국 식당이 활성화가 될 수 없고요.
이해연: 이제는 북한 사람들도 안전원이 나와서 단속하면 일단 대답은 해놓고 하루 이틀만 쉬고 다시 식당을 열거든요.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박소연: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남한은 개인들이 식당을 할 때 식당을 여는 건 자유지만 국가가 요구하는 위생 방역 기준을 다 지켜야 해요, 어길 경우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제가 살 때는 개인 식당에 가면 물이 안 나왔어요. 압록강에서 물을 퍼다가 소독도 하지 않고 그 물로 국수를 그냥 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압록강에 가면 꼭대기에서 빨래를 하고 아래서는 그 물을 퍼서 식수로 이용하잖아요. 그러니 위생 상태는 말할 것이 없죠. 한국은 유통기한이 하루라도 지난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벌금이 어마어마하고요. 그만큼 자유도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 한국 사회인 것 같아요.
이해연: 선배님이 있을 때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서 강에 가서 물을 길어왔다 하는데 제가 있을 때는 강에서 물을 길어오는 경우는 많이 줄었어요. 이제 수도가 나오거든요. 지금은 수도 문제가 해결이 됐어요.
박소연: 해연 씨는 아랫동네에 살았구만. (웃음) 산 밑에 있는 동네는 수압이 낮아 물이 못 올라오잖아요?
이해연: 아니에요. 제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물 수압이 그렇게 낮지 않아요. 거의 맨날 수도가 나왔어요.
박소연: 북한이 10년 안에 그것 하나는 해결했네요. 공통점을 하나 깼습니다. 그런데 우리 수돗물 받는 노하우가 있잖아요. 일단 물이 올라오면 수도관에서 ‘쏴’하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러면 수도관을 입으로 냅다 빨아요. 옆집으로 나갈 물길을 우리 집으로 끌어들인다고… (웃음)
이해연: 진짜 그랬어요. (웃음)
박소연: 물이 똘랑똘랑 떨어지면 고무호스를 젖 먹던 힘을 다해 쫙 빨아요. 그러면 옆집으로 가던 물길이 우리 집으로 오는 거예요. (웃음) 저희는 10년 전에 그렇게 해결했거든요.
이해연: 지금은 강에서 물을 길어오지는 않아요.
박소연: 그럼 먹고 사는 문제는 어때요?
이해연: 솔직히 그냥 먹고사는 문제는 선배님 있을 때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고 시체가 더미 째로 있었다는 얘기도 했는데 제가 있을 때는 눈으로 보지는 못했어요.
박소연: 먹는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네요. 해연 씨와 얘기하며 북한도 변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네요. 주민들이 살아가는 데서 조금은 편리하게 변해간다는 것은 희소식인 것 같아요.
이해연: 조금 천천히 가서 그렇지 변하긴 합니다. 사실 굶는 것은 많이 적어졌지만 아직 풍족하지는 않아요. 하루 벌어서 하루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은 대다수입니다.
박소연: 때대끼?
이해연: 네. 때대끼라고도 하죠
박소연: 우리 때는 잡곡에다 감자를 주로 많이 넣어서 먹었는데, 지금 북한 주민들은 어떤 알곡을 주식으로 드시는지 궁금해요.
이해연: 지금도 역시 잡곡을 많이 먹죠. 그런데 저는 놀란 게 한국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잡곡을 드시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잡곡밥을 안 먹습니다. (웃음)
박소연: 제 아들도 지금까지 잡곡을 안 먹어요. 옥수수밥에 진저리가 난답니다. 그래서 아들은 꼭 이밥(쌀밥)을 해줘요. 저희가 지금 음식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오늘 밤이 새서 해도 끝이 안 날 것 같네요.
이해연: 그렇죠. 저는 아침도 안 먹고 왔는데 많이 배고프네요. (웃음)
박소연: 제가 눈치 없이... 저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네요. 저희가 먹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까 먹는 얘기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아요. 해연 씨는 남한에 와서 제일 먹고 싶은 고향 음식이 뭐예요?
이해연: 제일 생각이 나는 음식은 엄마가 해준 밥이 아닐까요? 된장국이요. 물론 여기도 된장국이 있긴 한데 북한이랑 맛이 달라요. 엄마 자랑을 하면 음식을 잘 하시거든요. 손맛이 있어서 아무렇게 버무려 놔도 맛있었어요. 여긴 김치 맛도 다르고… 그래도 북한에서 엄마가 해주던 된장국이랑 북한 김치를 먹고 싶네요.
박소연: 맞아요. 저도 10년 되지만, 가장 아플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고향 음식이에요. 한국에도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고향 음식점이 많이 생겼어요. 저는 거기에 직접 가서 먹는데 완전 고향 맛은 아니지만 비슷한 맛은 나거든요. 우리는 항상 고향이라는 이 두 글자가, 다른 감정도 있지만, 음식으로 인해서 더 각인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 방송 빨리 끝내고 맛있는 된장국 먹으러 갑시다.
이해연: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오늘 방송 함께 해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네. 감사합니다.
남한에는 어디에 가나 북한식 전통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습니다. 북한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하루빨리 북한에도 ‘서울 냉면집’, ‘제주도 횟집’이 생겨 함흥과 혜산 주민들이 남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