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저희가 연말을 맞아 우리에게 일어난 5대 뉴스, 국가적으로 꼽히는 주요 뉴스를 지난 시간부터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은 올해의 뉴스 마지막으로 대통령 사과를 꼽았습니다. 남한에서 제일 큰 TV 채널에서 동시에 대통령 사과 영상을 생방송으로 보도했어요. 남한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사사건건 얘기하면서 국민들에게 TV를 통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솔직히 꼭 저렇게 사과해야 하나… 최고 높은 사람인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해연 : 선배님 무슨 말씀이세요! 권력을 등에 업고 잘못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과를 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 북한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3대 독재가 이어지고 주민들은 그 밑에서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런 사회에서 살다 온 저로서는 이런 모습이 너무나 좋아요.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잘못하면 사과도 하고 국민의 눈치를 보면서 정치하는 사회가 좋은 나라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박소연 : 제대로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 의식을 갖고 있는 청년이네요. (웃음) 사실 한국 헌법에는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사실 북한도 헌법을 뒤져보면 비슷한 말이 있을걸요? '공민은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실상은 어때요? 당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면 정치범수용소로 갑니다. 한국은 법이 현실에서 실천되는 나라예요. 북한처럼 종잇장 위의 법으로 남아있지는 않거든요. 대통령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는 것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법한 일들이잖아요. 몇 년 전인가 김정은이 자신이 인민들의 노고를 따라서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며 얘기한 적이 있긴 하죠.
이해연 : 그만큼 북한 내부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 아닐까요? 오늘날 북한이 3대에 이어 독재정치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반항심도 생길 수 있잖아요. 김정은이 그런 걸 좀 느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소연 : 그런데 혜연 씨, 남한에서 대통령 사과 영상을 현지 실황 중계했잖아요. 보통 사과를 하면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야 되는데...더 내려갔어요.
이해연 : 국민들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는 거 아닐까요? 김정은이 반성하는 영상도 저는 남한에 와서 봤어요. 김정은이 연설을 하는 와중에 울면서 사과하는 모습을 봤지만 진심으로 안 보였습니다. 잔머리를 굴리거나 살아남기 위한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저처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사실 올 한 해 한국에서는 다양한 뉴스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는 따로 있어요. 올해 7월 14일, 남한에서 처음으로 북한 이탈 주민의 날을 기념하고 국가 명절로 제정했어요. 혜연 씨도 북한이탈주민의 날 행사 봤죠?
이해연 : 솔직히 말해 크게 와닿는 건 없었습니다. (웃음) 탈북민의 날이 정해진 건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는 남한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날이 있어도 없어도 우리는 잘 살고 있고요.
박소연 : 그럼요! 행사에 참여한 대통령은 탈북민들이 남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법적 조항들을 넓히고 더 풍부하게 넓혀 나가겠다고 했어요. 다수의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아이를 낳아 한국에 데리고 왔지만 제3국 출신으로 남한 정부의 법적 지원을 받지 못했어요. 이번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제3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대학 등록금을 비롯해 정착에 필요한 국가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법적 제도가 마련되게 되었어요. 또 그날 대통령은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오는 탈북민은 한 사람도 북한에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 순간, 행사에 참여한 300여 명의 탈북민들이 전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북 관계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그동안 참 많은 사건이 있었던 거죠. 탈북민 북송 소식을 보면서 많은 탈북민들이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았는데 그 모든 불안을 대통령의 한마디로 날려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해연 :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으로 '탈북민'임을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한 사회에서 탈북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열심히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남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박소연 : 해연 씨, 만약에 우리가 북한에 살고 있다면 연말에 한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마 돌아볼 여유는 없었겠죠?
이해연 : 못했을 것 같아요. 남한은 연말이면 올해는 잘 살아왔다. 부족했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또 잘할 것이다. 이렇게 결심도 하고 자신을 칭찬도 해주고 후회되는 일은 다음에 잘하면 돼!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도 해요. 북한에선 여유가 없기도 했고 결심을 해도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습 열의가 있는 학생들은 내년에 공부를 잘해서 몇 점을 받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있지만 흔치 않고요. 어른들 같은 경우에는 한 해 총화보다는 매일매일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을 많이 합니다. 올해는 김장을 다 하고 겨울 나이 준비도 끝나고....이렇게 내일을 살아갈 걱정 때문에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성장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박소연 : 맞아요. 겨울 나이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내년 봄까지 어떻게 살아갈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겨울 나이 준비가 제일 중요했어요. 출입문과 창문 방풍 장치가 다 끝나고 두툼한 동복(패딩)을 마련하면 한 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은 들었죠.
이해연 : 남한은 생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먹는 문제가 풀렸기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내년에는 자격증을 많이 취득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엇인가를 계속 배우려는 자세는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남과 북의 연말 사회 분위기 차이는 생활환경에 많이 좌우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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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이쯤에서 혜연 씨로부터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은 질문이 생각났어요. 저는 사실 남한 정착 초기 연말이면 한 해 동안 얼마의 돈을 모았는지 늘 총화했어요. 그때는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지금은 남한 정착 12년 차가 되지만 정착 초기 연말에 느꼈던 행복이 솔직히 더 컸습니다.
이해연 : 저도 솔직히 그런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모든 게 신기하잖아요. 북한에 살 때는 돈을 벌어도 나머지가 없었고 항상 모자랐기 때문에 남아있는 돈을 보고 기뻐할 틈이 없었어요. 지금은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살면서 저축도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 그 돈을 보면 가장 뿌듯했어요. 지금은 약간 분산하는 것 같아요.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것도 행복한 내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돈이 많다고 행복이 다 채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박소연 : 올 한 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요?
이해연 : 제가 자주 듣는 오디오북, 그러니까 책을 읽어주는 방송을 말합니다. 방송에서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온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행복은 정말 소소한 것에서 시작되더라고요. 아침에 막 눈을 떴을 때 아파트 아래 초록색 나무를 보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북한에 있을 때 어르신들이 날씨나 계절에 대해 이야기하며 좋아하실 때는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근데 남한에 와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주변을 살피게 됐어요. 지금은 집 주변에 자라는 초록색 나무도 예쁘고 가을에는 설악산으로 단풍 보러 가야겠다는 행복한 계획도 세우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치듯 지나가는 사소한 일상이 저에게는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
박소연 : 저는 정착 연도가 늘면서 소소한 행복이 다양해졌어요. 올해는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경치 좋은 곳을 보고 와서 행복했지만, 내년에 또 찾아갈 곳을 미리 확보해 놓은 게 더 행복한 거예요.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가보는 것,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보는 것 그러면서 행복의 범위도 넓혀가고 싶습니다.
[클로징] 남한의 나태주 시인은 시 ‘행복’의 구절에서 행복의 3가지 조건을 이렇게 말합니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행복은 어렵지 않다 다만 그걸 생각해 볼 시간만 있다면요.
저는 솔직히 북한에 살 때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행복’ 같은 걸 생각한 여유가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은데요. 청취자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