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왜 한국의 해장국은 뜨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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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난이 만든 인조고기와 두부밥

-한국에도 가난이 만든 음식이 있는데 바로 이것

-유일하게 북한보다 남한이 싼 재료를 쓰는 이 음식?

박소연 : 저는 남한에서 인조고기밥이나 두부밥이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인식되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퍼요. 그건 가난이 만들어낸 음식이잖아요.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대부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배고픔을 참지 못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한국으로 왔어요. 그분들이 북한에서 고생하면서 즐겨 먹던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그때부터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지 않았더라면 남한과 비슷한 고급 음식들이 대표적인 북한 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해연 :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죠. 북한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역사까지 따지지 않았어요.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이고… 다만 북한에서도 차이는 있습니다. 술이나 맥주를 마실 때 서민들은 인조고기를 안주로 먹고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마른 명태나 낙지를 안주로 먹습니다. 어떤 안주를 먹느냐에 따라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차이를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선배님, 혹시 순대 좋아하세요?

박소연 : 좋아하죠. 순대는 남한에서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데…

이해연 : 이름은 같지만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북한과 너무 다릅니다.

박소연 : 해연 씨가 무슨 얘기 할지 벌써 알겠어요. (웃음) 저도 한국 순대는 안 먹습니다. 남한 순대는 찹쌀이 아니라 당면을 넣어서 먹을 때 플라스틱을 씹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해연 : 이게 참 이상했는데 대부분의 음식이 북한보다 남한이 고급인데 순대는 달라요. 남한 순대에는 당면이 들어가는데 이유를 들어보니까, 과거 남한도 힘들게 살았잖아요? 순대에 들어가는 재료 가격을 아끼려고 당면을 많이 넣었다고 해요.

박소연 : 맞습니다. 남한도 북한처럼 똑같이 전쟁을 겪고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그 시기의 얘기죠. 옛날에는 맛보다는 배부르게 먹으려고 순대에 당면을 넣기 시작했다가 사람들 입맛에 익숙되면서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해요. 그렇다고 남한에는 당면만 들어간 순대만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백암순대라는 건 남새, 찹쌀, 고기를 넣고 만든 순대로, 가격이 당면순대의 3배 정도 비쌉니다. 지금도 가끔 아파트 아래에 백암순대를 팔고 있는데 일인 분에 6달러 정도 합니다. 당면순대는 일 인분에 2달러로 많이 눅습니다.

이해연 : 남한 길거리 음식인 순대에도 북한의 인조 고기밥과 비슷한 사연이 있다는 게 흥미롭죠? 저는 남한에서 순대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북한에서 순대를 만들 때는 작은 플라스틱병 윗부분을 가위로 잘라 고깔을 만들어 돼지 내장에 순대 밥을 쉽게 넣을 수 있도록 고정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만 남한은 기계가 반죽하고 자동으로 순대의 속을 넣어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니까… 역시 남한은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구나 새삼 놀랐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그렇게 생각했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도 음식은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해연 : 남한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그렇고, 기계로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수량과 가격을 맞출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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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남한에서 아직도 손으로 순대를 만드는 분들이 계시죠. 바로 탈북민 어르신들이요. (웃음) 얼마 전에 83세 탈북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는데, 돈을 모아 순대 재료를 사서 한 집에 모여 함지를 놓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순대를 만들어 드신다고 해요. 한 동네에 북한 출신 어르신들이 서로 오가며 밥도 같이 먹고 북한 음식도 만들어 먹어서 너무 좋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집에 농마국수 분틀도 있고 큰 쇠 가마도 있다고 자랑하시는데, 만약 통일이 안 돼서 고향으로 가지 못하면 저도 훗날 저 어르신처럼 탈북민끼리 모여 순대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해연 : 고향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해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순대를 만들면서 수다를 떠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그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또래 친구들은 모여서 북한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하지는 않죠?

이해연 : 저희 또래는 굳이 그러진 않는 것 같습니다. 돈 내고 차라리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웃음)

박소연 : 탈북민들도 남한 문화에 익숙해 말투도 많이 변하잖아요? 입맛도 같은 것 같습니다. 말투처럼 서서히 바뀝니다.

이해연 : 바뀌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봐요.

-북한의 강냉이 국수와 같은 서양 음식, 바로 파스타

-서양 식당의 설익은 강냉이 국수 같은 파스타가 낯설지 않은 이유

박소연 : 정착 초기에 파스타를 먹었는데 북한에서 먹었던 굵은 강냉이 국수 맛이 났어요. 이걸 왜 이렇게 비싸게 먹지 그랬는데 지금은 해물 파스타가 너무 맛있습니다. (웃음)

이해연 : 저도 파스타를 좋아해요. 처음 먹었을 때는 이렇게 옥수수 국수를 설삶아 내놓으면 장사가 잘되겠나, 식당 장사를 걱정했는데 나중에 보니 파스타 면이 원래 그런 맛이었어요. (웃음) 지금은 진짜 맛있게 먹고 있고 스테이크도 좋아합니다.

박소연 : 소고기 구운 요리를 말하는 거죠? 해연 씨는 확실히 부르주아지… 저는 소고기보다는 돼지고기를 좋아해요. 소고기는 비쌉니다. 부루(상추)에 파와 마늘을 먹고 싸 먹는 삼겹살 구이가 아직까지 제일 좋습니다.

이해연 : 한국에 와서 입맛도 많이 변했지만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으세요?

박소연 : 맞아요. 북한에서는 음식을 먹고 나서 배가 부르면 배불리 잘 먹었다고 말하는 게 최고의 표현입니다. 남한에서 음식 평가는 참 많이 다릅니다. 맛도 중요하지만 식당 분위기, 직원들의 친절한 봉사의 질까지 평가해요. 정착 초기에는 눅은 음식만 골라 먹다가 지금은 아무리 맛있고 가격이 눅어도 불친절하면 잘 안 갑니다.

이해연 : 그만큼 남한 사람들은 음식을 대할 때 단순히 양보다 음식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먹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뿐인 줄 아세요. 맛을 표현하는 방법도 많이 다릅니다. 펄펄 끓는 장국을 먹으면서 '아~ 시원하다'고 표현합니다. 시원하다는 건 얼음을 먹을 때 시원한 거잖아요? 아니 왜 뜨거운 국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지…

이해연 : 맞아요. 남한 분들은 음식을 먹고 나서 시원하다는 말도 하지만 '맛이 예술'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아니 무슨 음식과 맛이 예술입니까?

박소연 : 또 있어요. 음식이 혀에서 살살 녹는다고도 표현합니다. 아니 음식이 얼음이냐고요. (웃음) 회사에 다닐 때 남한 직원이 소고기를 사 준 대표에게 "소고기가 혀에서 살살 녹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아니 고기는 이빨로 씹어서 넘기는데 뭐가 녹는다는 건지 아부를 너무한다, 저런 여자는 상종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니까요. (웃음) 지금은 저도 그런 표현을 자주 합니다. 확실히 남한 사람들은 맛에 대한 평가를 너무나 풍부하게 하더라고요.

이해연 : 무슨 작품을 평가하는 듯 말하니까 저도 처음에는 이질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따라 하게 됩니다. 특히 남한에서는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속을 푼다며 꼭 펄펄 끓은 해장국을 먹어요. 도대체 왜 뜨거운 걸 먹을까요? 북한은 김칫독에서 푼 시원한 김치 국물로 해장하잖아요?

박소연 : 저희 때는 김칫국이 없으면 고추장을 찬물에 풀어서 마셨어요.

이해연 : 남한 김치 국물은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서 걸쭉해요. 그래서 해장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지만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밥그릇 밑에서 인심이 난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지금도 음식의 맛보다 양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요. 남한처럼 맛으로 음식을 평가하고, 표현하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북한에서는 또 어떤 표현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음식으로부터 얻는 행복과 즐거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오늘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