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밥 굶는 게 투쟁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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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이번 탄핵 시위를 보면서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정치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입니다. 선거도 그냥 했는데 좀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박소연 : 정답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정치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없었어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요. 거기다 먹고 살기에 바쁜데 뭔 정치입니까? 저도 정착 초기에 후보가 여러 명이니까 뭐로 선택해야 하는지 몰라서 일단 같은 여성이니까 투표를 했어요.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한국 지인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했더니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 아니라고 그리고 그런 이유로 뽑아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더라고요. 다음 선거부터는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남한에서 살려면 정치를 모르면 안 돼요. 왜냐하면, 정치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해연 씨는 그 깨달음을 얻은 것 같네요.

이해연 : 이번 계엄과 시위를 경험하지 못했으면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회계 공부만 열심히 했겠죠.(웃음) 이 과정을 통해 정치 공부를 해야겠다. 내가 뽑은 대통령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박소연 : 이번 계엄이 좀 황당하긴 했지만, 계엄을 통해 2030 혜연 씨 세대들이 지금까지 남한에서 일어났던 역사를 배우고 정치도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계엄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을 위한 각성제가 된 것이라 생각해요. 솔직히 개인적으로 요즘 2030 세대는 이기적이고 개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그런 세대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젊은 세대가 광장에 모이고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웃음)

이해연 :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또 제대로 하는 세대입니다. (웃음) 사실 요즘 젊은이들은 할 말을 너무 잘해서 걱정입니다. 학생들이 나서서 '나이가 어리다고 저희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당당하게 말하는데 자랑스러웠어요. 너무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와 역사에 대해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소연 : 그러나 이제 막 시작인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뒤 국회에서 탄핵을 의결했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최고 6개월까지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론이 날 때까지 찬반 시위가 이어질 것이고요. 그러나 한국 국민들의 민주 의식은 하루이틀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희도 이 소식들을 있는 그대로, 탈북민들의 관점에서 잘 보고 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취자분들도 이런 정보를 통해서 남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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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 선배님 세대에는 북한 9시 뉴스에서도 남한 시위 장면을 자주 보여줬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시위였어요.?

박소연 : 제가 기억나는 건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와 우유 가격이 올랐다고 시위를 하는 거예요. 화면을 보면서 미국 소고기가 싫으면 안 사면 되고 우유 가격이 비싸면 안 먹으면 되는데 왜 국가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화면에 나오는 남조선 남성들이 너무 잘 생겨서 놀랐고... (웃음) 반대로 여성들은 화장기가 없이 수수해 보여서 남한은 여성보다 남성이 잘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북한 매체는 시위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그냥 정부를 반대해 국민들이 투쟁을 벌인다고 보도했어요. 화면 속에 구호판(포스터)을 보고 시위 내용을 짐작하는 거죠. 그리고 북한에서 과거에도 남한의 민주화 시위 현장을 방영한 적이 있어요.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들에게 화염병을 던지는데 도로에 불이 퍼지고 연기가 나고... 저는 좀 무서웠는데 다음날 학교에 갔더니 학교가 난리였습니다. 남학생들이 화면에서 본 걸 따라 한다고 화염병을 만들어 산에서 던지며 놀다가 산불이 나서 사상투쟁회의에서 비판받고 난리였어요. 그때는 왜 남한에서 이런 시위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행동이나 분위기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저도 북한에서 그 영상을 봤다면 내용이 와닿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남한에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런 걸 알려주진 않았을 테니까요.

박소연 : 혜연 씨는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1989년, 한국 전대협에서 파견한 남한 대학생 림수경이 3국을 거쳐 제13차 청년학생축전에 참여하기 위해 평양에 왔어요. 임수경 학생은 남한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평양 축전에 참가해서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남한으로 가기 위해 임수경은 판문점에서 단식 투쟁을 한다고 그 모습을 TV를 통해 보냈는데.... 저는 사실 굶으면서 하는 '단식투쟁'이란 걸 처음 알았어요. 아니, 내가 굶으면 누가 무서워한다고 그게 시위가 되죠? 그런데 진짜 남한에 와보니까 '단식투쟁'이라는 게 있긴 하더라고요. 북한 할머니들은 남한의 시위 모습을 보면 배가 불러서 저런다고 욕을 했죠. (웃음)

이해연 :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시위도 배가 불러야 할 수 있지 않아요? 북한처럼 오늘 벌어 오늘 살고,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면 시위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박소연 : 그럼요. 배고픈데 누가 시위를 하겠어요? 이번에 보니까 노동신문이 탄핵 시위 사진을 20장 넘게 소개했는데 북한 주민들은 사진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솔직히 저는 어두운 밤 시위 현장이 너무 밝아서 놀랐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해연 : 할머니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배가 부르니까 저런다... 그런데 노동신문 사진이 거의 흑백이잖아요? 밝은지 어떤지 잘 모를 거예요. 천연색으로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알록달록 응원봉 색을 볼 수 없고... 그냥 사람들이 억지로 모여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박소연 : 맞아요. 북한 행사는 강제로 주민들을 모여 진행하다 보니 남한처럼 자발적으로 모인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다르게 보면 북한이 손해 보는 선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남한 국민들의 시위 모습 자체가 충격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 주민들은 세상이 확 뒤집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해요. 전쟁이나 콱났으면... 그러잖아요? 진짜 그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뭐가 되도 이 세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이해연 : 맞아요.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했어요. 준전시 상태가 선포되면 당국은 주민들을 정말 달달 볶으며 못살게 구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차라리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대로 사는 것보다 전쟁으로 뭔가 바뀌는 게 지금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박소연 : 남한은 시위를 통해 세상을 제대로 바꾸겠다는 목적이 있잖아요. 북한 주민들의 생각은 그냥 이 제도만 아니면 되는 거예요.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때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10년만 허리띠를 조이면 강성대국의 문이 활짝 열린다고 선전했어요. 그래서 기다렸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강성대국의 문이 열리지 않으니까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막 '강성대국 대문이 고장 났다' 그런 얘길 하면서 웃었죠.

[클로징] 북한에는 “짧은 혀 잘못 놀리다 긴 목 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과 국가에 대한 의견이나 불만을 입 밖으로 내서 표현하는 순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누구라도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시위, 집회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 우리 청취자들께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머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