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북한에는 지금도 돈을 은행이 맡기지 않고 돈 가방이나 농짝 밑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한에 살면서 돈도 현재와 미래의 가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은 만 원으로 고뿌(컵) 하나를 살 수 있지만 몇 년 후에는 물가가 올라서 만 원으로는 못 사거든요. 그러니 현금을 집에만 가지고 있으면 결국 돈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납니다. 돈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투자하고 은행에 넣어서 이자라도 받아야 하는 거죠.
박소연 : 눈사람을 만들 때 처음에는 작은 덩어리로 시작했다가 굴리면 점점 커지잖아요? 돈도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얘기했던 적금, 예금, 투자 등을 통해서 작은 눈덩이를 조금 더 크게, 크게 불려 가는 거죠. 해연 씨가 지금 이렇게 한다는 거잖아요?
이해연 : 맞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통돈이 없으니 예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요? 그래서 한 달에 내가 넣을 수 있는 금액을 모아가는 적금을 시작하고 그게 1년이 지나서 만기가 되면 예금으로 전환하고 이런 식으로 시작했는데요, 통장의 불어나는 잔액을 보면 얼마 되진 않아도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웃음)
박소연 : 돈을 모으는 것도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할 것 같아요. 월급 받는 날에 일정 금액이 자동으로 빠져나가게끔 은행에 자동이체를 신청해 놓으면 자동으로 빠져나가 때문에 많든 적든 나머지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게 돼요. 저는 남한 정착 1년, 2년 차는 돈을 벌어서 아들 데려오느라 진 빚, 브로커 비용을 물었어요. 3년째가 되는 해, 적금을 타서 1만 달러를 모았어요. 11월이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북한에서 1만 달러면 평생 굴리며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이 돈을 정기예금에 들려고 은행에 갔는데 3년 동안 예금해 놓으면 원금에 이자만 천 달러가 붙는다는 거예요!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돈이 들어온다는 거잖아요. 아무리 힘든 자본주의 세상이지만 이 돈이면 버틸 수 있다... (웃음) 그때 저에게 좋은 원동력이 됐어요.
이해연 : 선배님이 너무 뿌듯해하시는 게 눈으로 보이거든요, 그 기분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딱 그렇습니다. 저도 첫 만기 적금을 찾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벅찬 희열이 있었다니까요. (웃음)
박소연 : 그때 예금을 하면서 더 이익을 받을 수 있는 제도들을 알아보게 되었어요. 남한 은행에는 '복리'라는 좋은 제도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천 달러를 예금했는데 거기에 달마다 3% 이자가 붙는다고 하면, 이자가 붙은 금액에 또 이자를 얹어 주는 걸 '복리'라고 하더군요. 그런 것들을 검색해서 복리까지 챙겨 주는 은행을 제가 직접 가서 예금을 들었습니다. 돈이 불어나는 재미도 있지만 나 자신이 참 알뜰하게 사는 여자라고 느껴져서 자신에 대한 만족감도 정말 크더라고요.
이해연 : 성취감도 있고, 뭔가 나에게 남은 게 있다는 게 안도감을 느끼며 사는데...사실 북한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살고 그날 번 돈은 남는 게 없이 다 없어지고, 오히려 마이너스로 빚을 지며 살잖아요. 힘들게 온종일 일을 했는데도 남은 게 없어요. 그런 게 너무 허무하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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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지금까지 나눈 얘기는 은행과 관련된 얘기인데요. 남한은 돈을 관리하고 투자해서 불리는 게 은행만 있는 게 아니에요. 주식이라고 들어보셨죠? 은행에서 적금, 예금을 들어서 이자로 원금을 불리는 것처럼 주식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건데요. 저는 남한 정착 13년 차가 되는데도 주식은 너무 어렵습니다. 해연 씨는 어때요?
이해연 : 저도요. 파고들어 보려 해도 전문가가 아니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주식의 사전적인 정의는 기업소들이 발행하는 유가 증권입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보면 기업을 운영하려면 자금이 필요하잖아요?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통 기업소들에서 주식을 발행합니다. 발행한 주식은 증권사, 은행 같은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들이 사고파는데요, 아무 기업이나 주식을 발행할 수는 없어요. 국가 기관이 정한 일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박소연 : 남한에서는 누구나 이름을 아는 유명한 회사의 주식은 비싸요. 아마 북한 사람들이 아는 한국 회사들 주식이 제일 비쌀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잘 알려졌다는 얘기니까요. 처음 남한에 와서 간판을 보는데 괄호 안에 주식회사라고 쓴 거예요.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지금 알고 보니 주식과 관련이 있네요. 내가 산 주식이 그 회사가 성공해서 잘 나가면 주식값, 즉 주가가 오르잖아요. 처음에 주식을 1원에 샀다면 그 회사가 발전해서 10원으로 오르게 되면 내가 투자한 돈이 10배로 불어나는 거예요. 또 어떤 회사들은 한 해 이익이 많이 나면 자기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당금이라는 것도 줍니다. 사람들은 '내 이래 봐도 저 회사 주식을 몇 개를 샀다, 내가 그 회사 주주다'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해연 : 솔직히 큰 회사들은 주식이 얼마나 많은데요. 수십만 주 중의 하나일 수도 있고요. (웃음)
박소연 : 한 주를 사든 몇만 주를 사든 그 회사의 주주가 되는 건 맞죠. (웃음)
이해연 : 선배님이 방금 주식이 매우 어렵다고 하셨는데 막상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를 시작하기는 정말 쉬워졌습니다. 증권사에 직접 돈을 들고 가서 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휴대전화만 있으면 비대면으로 계좌 개설도 가능하고 클릭 한 번으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습니다. 주식을 팔고, 사고 이 모든 게 단 1분도 안 걸려요. 물론 선택하기 전에 고민은 하겠지만 버튼 하나로 쉽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또 주식은 국내 주식도 있지만,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주식도 막 사들이는 건 아니고요. 이 주식이 전망이 있어서 가격이 올라갈 수 있느냐를 판단하기 위해서 정보를 많이 찾아본 후에 투자해야 하는 거죠.
박소연 : 그래서 어렵다고 하는 것이네요. 제가 처음에 남한에 왔을 때는 해외 주식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국내 주식 거래하듯이 하잖아요? 그리고 주식 계좌를 여는 것도 증권사에 직접 찾아가야 했고요. 그래서 저는 주식은 경제 박사들만 하는 줄 알았어요. 가끔 뉴스에서 주식에 재산 다 말아먹고 지하철 노숙자가 됐다는 보도를 듣고 겁도 났고요. 그러잖아도 진짜 맨손으로 와서 피를 물고 출발하는데 저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은행에만 매달렸습니다.
이해연 : 주식은 은행에 하는 적금이나 예금보다는 조금 더 위험성이 있는 투자이긴 해요. 주식은 그 회사를 믿고 투자하는 거잖아요. 내가 선택한 회사가 과연 전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서 투자하는 건데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건 때문에 회사에 타격을 받으면 한순간에 주가가 떨어지기도 하고요. 최악의 경우 투자한 원금 손실도 날 수 있지만 신중한 판단을 하며 모험하고 도전하는 거죠.
박소연 : 주식이 어렵지만 공감은 해요. 남한에는 주식에 대해 애들도 알 만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또 TV를 틀면 주식에 대한 정보가 너무 자주 나와요. 가끔 주식을 해본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면, 주가가 오르면 좋겠지만 떨어져도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조언을 하는데 아니, 100달러에 산 주식이 지금 30달러가 됐는데 그 누가 조바심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당장 빼는 거죠.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려서 이익을 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만 정말 사람의 심리를 거슬러야 하는 어려운 결정 같습니다.
이해연 : 생각해 보면 주식은 우리 인생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도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듯이 주식의 도표를 보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마음공부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요. 주식 투자는 어쨌든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잘 맞는 것 같은데요, 저도 기다리는 걸 잘 못 하는 편이지만 주식을 시작하면서부터 기다릴 줄 알게 됐습니다. 차분해졌달까...(웃음)
박소연: 차분함도 필요하지만, 배짱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자기 판단에 따라 투자를 할 수 있는 배짱. 해연 씨는 계속 '주식을 공부한다'고 그러는데 요즘에는 어떤 공부를 하는 거예요?
이해연 : 일단 이 돈을 잃어도 크게 부담이 안 될 정도의 돈을 투자해서 사보기도 하고 또 팔아보기도 하는 식으로 연습을 해요. 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식이 어떤 건지, 인터넷에서 주식 관련해 사람들이 올리는 댓글들을 훑어보면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어요. 또 경제 뉴스나 기사들을 찾아보면서 주식의 전망을 판단하지만 100% 맞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클로징] 주식과 관련한 인터넷 공개 게시판에 누군가 ‘주식투자는 일확천금인가요?’라는 질문을 남겼어요. 그랬더니 ‘주식 투자는 많은 공부와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에 일확천금은 아닙니다. 정말 운이 좋으면 큰 돈을 한번에 번 사람도 있을 테지만 대한민국에서 20년에 한 명은 나올까 말까 합니다’라는 답글이 달렸습니다. 주식 투자는 도박이 아니라는 얘기죠. 참, 요즘은 주식보다 더 뜨겁고 큰 투자가 있는데요.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