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소란한 자유, 조용한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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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으로 촉발된 시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얘기 이어 갈게요. 지난 시간, 저희가 북한의 강성대국 얘기를 하면서 마쳤습니다. 저는 생생히 기억하는데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하면서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10년만 허리띠를 조이면 '강성대국의 문이 활짝 열린다'고 선전했어요. 그것도 안 열리자 정말 주민들에겐 악만 남은 거죠.

이해연 : 맞아요. 2013년에 강성대국의 문이 열린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이렇게 흘러왔는데 갑자기 강성대국의 문이 열린다고 우리들의 생활이 변할까? 갑자기 변할 것 같으면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배급을 주든지 해야지, 어디 묻어놓은 금이나 저장해둔 식량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2013년이 딱 되었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박소연 : '고난의 행군'이 끝나자 '혁명의 진펄길을 간다'는 구호를 내걸었어요. 몇 해 전 우연히 2005년 탈북한 동창생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왜 지금까지 북한에 있었냐'고 묻길래 '강성대국 문이 열린다고 해서 기다렸다'고 말했어요. (웃음) 저보고 바보처럼 그 말을 믿었냐며 한심스럽게 보더라고요. 친구는 안 믿었기 때문에 먼저 탈북을 했고 저는 믿고 기다리다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 기진맥진한 다음에 탈북한 것이죠.

이해연 : 그러니까요. 사실 북한 사람들이 바람은 너무 소박하잖아요. 기껏해야 굶지 않고, 이밥에 돼지 국밥만 먹여주면 불만이 없을 것 같아요. 기본적인 먹는 문제조차도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지금은 '악'만 남은 거죠.

박소연 : 그 감정은 개인 상호 간의 '악'이 아니라 북한 당국에 대한 원망이 '악'으로 남은 거예요. 북한에 살 때 우리 동네에서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전원이 와서 다그쳤는데, 사람들이 오히려 안전원을 상대로 삿대질하며 대들었습니다. 안전원이 당황해서 도망치듯 갔고요. 그러면 사람들은 농담 삼아 '내 오늘 저 안전원한테 시위했다'고 얘기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시위란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막 그랬죠. 북한에서 시위라면 당을 위해서 맹세를 다지는 궐기 모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국가에서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개인이 안전원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나죠.

이해연 : 북한은 개인 시위란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만일 하게 되면 큰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히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위란 집단으로 모여서 하는 것이 시위라고 생각을 하실 텐데 남한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공공장소에서 표출하는 것이 모두 시위입니다. 그래서 1인 시위라는 것도 있어요. 불만이 있으면 혼자라도 가서 시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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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남한은 시위할 권리가 헌법으로 명시되어 있어요. 남한은 법이 현실에 반영이 되는 국가입니다. 물론 북한도 모든 공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헌법에 명시는 되어 있지만 이는 그냥 국가에서 하는 강제 시위에 참여하라는 의미입니다. 각 도당에 가면 신소과 민원실이 있어요. 신소함이 도당 청사 수부(접수실)에 걸려있어요. 거기에 개선할 내용이 있으면 편지지에 적어서 함에 넣으라는 건데, 괜히 넣었다가는 오히려 제재를 받아요. 실제로 신소함에 당간부 누가 일 처리를 잘못한다든지, 억울한 일이 있다고 써넣었다가 도리어 간부한테 당해서 추방당한 사례가 있거든요.

이해연 : 신소과에 편지를 써서 올리잖아요. 신소 편지는 직급이 높은 사람이 보라고 쓰는 경우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한 주민이 최고 영도자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지만 간부들이 미리 검토해서 보고를 올려야 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서 자꾸 자르기 때문에 결국 해결이 안 돼 중간에 포기하고 많습니다.

박소연: 이렇게 사람들이 억울한 일이 있어도 나라에 전달해서 풀 간단한 방법조차 없는 겁니다. 모든 것을 개인적인 악감정으로 생각하고 도리어 신고한 사람을 제재합니다. 처음부터 불만의 싹을 자르는 거죠. 그러니 북한 주민들 자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 뜻을 반영한다는 것은 조선말로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누군가 목소리를 내는 남한에서 걱정되는 일도 없는 건 아닙니다. 개인들이 각자 주관적인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며, 우기며 시위가 난립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지 않습니까?

이해연 : 그렇죠. 시위의 자유를 이용해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을 요란하게 표출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박소연 : 길에서 메가폰을 들고 소리치면 주변에 사는 아파트 사람들이 소음 공해로 편치 않고 또 저는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니는데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시위하면 열차들이 제시간에 못 다니고 불편한 때도 있거든요.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개인적인 생각을 사람들이 사람들 많은 횡단보도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호소하는데… 가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해연 : 다 좋을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저는 두 사회를 겪어 보면서 좀 시끄러워도 민주주의가 더 좋습니다. 개인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으면, 그걸 혼란스럽다고 막으면 북한처럼 독재적으로 자기 맘대로 할 거 아니에요. 우리가 그런 세상이 싫어서 왔잖아요? 좀 복잡하고 불편하더라도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는 남한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저도 정착 초기에는 해연 씨처럼 할 말 다 하는 세상에 와서 무작정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2년을 사니까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시위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가끔 보면서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거예요. 민주주의 사회도 어느 정도의 질서나 규칙은 정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덕이나 질서를 벗어나지 않고 정의롭게 시위가 진행되게끔 상한선을 그어 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연 : 북한은 개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지만 남한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건에서 모든 것이 발전해 왔잖아요? 갑자기 어떤 선을 만든다고 사람들이 조용히 입 닫고 따라올까요? 특히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국회의원들이 발의하는 법들이 전부 현실과 부합하는 적절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 예리한데요. 웃기는 얘기지만, 아마 남한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해연 : 국회의원도 국민이 뽑잖아요. 그들이 받는 월급도 국민들이 낸 세금입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불만이 더 많고 시위를 하는 것 같아요. 우리 돈을 가져가서 세비를 받으면 국민을 위해서 일을 잘해야 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서 올바른 정치를 해야지 이게 뭐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 월급이 우리 지갑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면 좀 달라질 수도 있겠죠?

박소연 :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려 있어요. 좀 더 각성해서 국회의원을 뽑을 때 신중한 한 표를, 정말 국민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데 행사해야지 그냥 무턱대고 도장만 찍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이해연 : 그러니까 공부가 답이라는 얘기네요.

박소연: 그렇죠. 아까 시위와 관련해 상한선을 그어야 한다고 했는데, 남한에서도 그런 문제들이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상한선을 누가 그어야 공정한가? 그런 문제도 있거든요.

이해연 : 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분명하게 좋은 것도 있고 안 좋은 것도 있고요, 결국 민주주의는 조용할 수는 없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민주주의잖아요. 제 생각에 민주주의라는 것도 그렇게 완벽한 최고 정점의 제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최고를 목표로 다 같이 가는 제도인 거죠.

이해연 : 북한은 명목은 사회주의, 사실은 독재 국가인 것이고요.

박소연 : 그런 면에서 민주주의는 최악의 독재 국가가 되는 것을 예방합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들을 보장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연: 결국, 조용한 민주주의는 없다? (웃음) 복잡함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요. 지금 남한 사회가 겪는 혼돈, 혼란, 이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꾸고 좀 더 성숙한 사회로 가는 층층 계단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박소연 : 그동안 저희가 방송을 마무리할 때는 북한도 좀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끝냈는데, 오늘은 좀 다르게 이 말을 소개하면 인사드립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일은 어렵지만 가능합니다. 세상의 진정한 변화란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도록 나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세상을 바꾸려 하기 전에 세상에 의해 바뀌지 맙시다'. 저희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