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남한의 유명한 가수가 부른 '고장 난 벽시계'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뜬구름 쫓아가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흘러간 청춘,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한 구절 한 구절이 그냥 심장에 팍 꽂히는 것 같아요. 해연 씨, 벌써 12월입니다.
이해연 : 그러네요. 언제 한 해의 끝자락에 왔나 싶게 벌써 12월이네요.
박소연 : 올해 마지막 달을 보내면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멋들어지게 총화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남한에서는 연말이면 10대 뉴스라고 해서 한 해 동안 일어난 주요 뉴스들을 뽑아서 보도하는데, 우리는 10대 뉴스는 너무 많으니 각자 5대 뉴스를 뽑아보는 건 어때요?
이해연 :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5대 뉴스까지는 안 나오네요. 기껏해야 2대 뉴스가 될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5대 뉴스를 뽑을 만한 일이 없다는 그 자체가 올해의 뉴스가 아닐까요?
이해연 : 그런 것 같습니다. 큰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범하게 흘러갔다는 거잖아요. 좋은 한 해였다는 얘기니까 저에게 다행한 일입니다. 2024년 저의 2대 뉴스는 첫 번째는 대학입학, 두 번째는 얼마 전에 얘기했던 교통사고입니다.
박소연 : 두 소식 모두 청취자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 방송에서도 다뤘잖아요. (웃음) 저는 올 한 해, 복잡 군중의 삶이었던 것 같아요. 북한으로 말하면 다사다난한 일들이 많았어요. 카페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가 정직원이 됐고, 대학에 들어간 아들에게 차도 사줬고… 여기까지는 아주 좋아요. 그다음부터는 지옥입니다. 글쎄 입주하려던 새 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졌어요. 입주가 몇 년 늦춰졌고, 얼마 전에 귀에 못이 박히게 방송에서 떠들었던 교통사고.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는 러시아에 북한군이 파병이 저에게는 가장 큰 충격적인 5대 뉴스에 속할 만큼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해연 : 저도 러시아 북한군 파병이 남의 일 같진 않았지만, 저에게 올해 일어난 큰 사건에 속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은 크게 느끼셨나 봅니다.
박소연 : 저에게는 조금 달랐어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의 나이가 제 아들 또래와 비슷합니다. 지금 남한에 오지 않고 북한에 살았더라면 목숨 거는 전장에 내 아들이 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이해연 : 그 뉴스가 개인의 인생에 꼽힐 만큼은…
박소연 : 북한을 벗어나 남한에 살면서 어떤 것이 정의고 어떤 것이 불의라는 걸 알 수 있는 안목이 생겼잖아요. 북한 내부에서도 북한 군 러시아 파병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어요. 남한이나 다른 나라처럼 아들을 파병 보내면 그에 대한 합당한 요구나 신변 안전 등을 요구할 수가 없는 게 북한이잖아요. 그러니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딸들이 죽으면 그냥 그 차디찬 땅에 묻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속이는 것을 밥 먹듯이 하잖아요. 파병 나갔던 북한 군인들이 전장에서 죽었다고 해도 부모들이 국가에 어떤 큰소리를 칠 수가 없죠. 단지 조국을 위해서 한 몸 바쳤다는 말만 들을 뿐이겠죠.
박소연 :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 대한 소식이 세계에 전파되면서 뉴스가 많이 나왔잖아요. 단순 총알받이라고요. 남한에 정착해 있는 군 출신 탈북민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제발 총알받이가 되지 말고 자기의 삶을 찾으라는 공동 성명도 내고 편지도 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침략국인 러시아에 힘을 보태니 국제적으로도 나쁜 여론이 막 생기는 거죠. 그 점도 너무 속상하지만, 총알받이가 간부들이 아닌 무고한 일반 주민들의 아들들이라는 관점에서 보니까 제가 억울할 수밖에요.
이해연 : 남한에서도 북한의 파병에 대해서 의견들이 정말 많아요. 남한 청년들은 총알받이로 나가 불쌍하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얘기와 함께 걱정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올해는 국제적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정말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그 한복판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올 한 해 국제적으로 일어난 큰 사건을 꼽아보면 2024년 한 해가 순탄한 일 년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가장 큰 것이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고 이로 인해 세계의 모든 나라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불안해졌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환율이 오르고 채소, 고기, 유류 등 물가가 오르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힘들어지고 불편해졌어요.
다음으로는 북한 주민들도 익히 알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78세에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건입니다. 북한은 한 번 대통령이 되면 죽을 때까지 대통령이고, 심지어 아들한테 넘겨줘서 현재 3대까지 권력을 쥐고 있죠. 민주주의 나라들은 다릅니다. 미국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이고 다시 선출되면 연임할 수 있는데 8년밖에 못해요.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는 전에 했다가 중간에 4년을 다른 사람이 한 후에 다시 도전해서 당선된 거죠.
이해연 : 트럼프 대통령 재선에서 북한 분들이 놀랄만한 부분은 78세라는 트럼프 나이인 것 같습니다. (웃음) 그 나이에 대통령에 도전한다는 게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죠. 북한에서 78세는 일어나지도 못할 나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부분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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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이런 세계적인 뉴스들이 실제로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이해연 : 솔직히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진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세계적인 뉴스를 접하지도 못할뿐더러, 설사 접하더라도 실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않으니까요. 북한은 다른 나라와의 교류도 많지 않고 일반 주민이 당국의 승인이 없이 작은 규모의 개인 무역도 할 수 없는 환경이잖아요? 실생활과 직접 와닿는 일이 없으므로 관심도 없을 것 같아요.
박소연 : 굳이 비유한다면 철창이 높은 집에 갇힌 사림이 옆집에 불이 났다고 뛰어나갈 수는 없잖아요. 옆집에서 총을 쏘며 전쟁을 해도 북한 주민들은 철창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니까 변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세계정세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고, 우선 내 생계가 답답한 사람이 언제 국제 정세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할 겨를도 없는 거죠.
이해연 : 이런 환경은 사실 크게 잘못된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가 4년에 한 번씩 대통령이 바뀌는 걸 보고, 왜 우리는 아직 3대로 이어가면서 계속할까 하는 의문도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환율이 왜 오르고 내리는지 알 수 있고요.
박소연 : 북한에도 로동신문 5면과 6면에 국제 소식을 보도하긴 하죠. 남한처럼 어떤 나라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있는 그대로 소개해 주는 게 아니라 북한과 사이가 좋은 나라에 관한 것만 일방적인 주장으로 보도하다 보니 주민들이 본다 한들 올바른 인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남한의 경우에는 뉴스가 너무 넘쳐나니까 거기에는 사실도 있고 거짓말도 있어 가끔은 혼란스러울 때도 있어요. 아예 모르면 불안하지 않잖아요. 거기에다 과장된 뉴스까지 나오니까 어느 걸 믿어야 할지 몰라서 가끔 판단력이 흐려질 때가 있어요.
이해연 : 맞습니다. 뉴스를 들으면서도 이게 맞는다는 확신이 서기까지는 일단 의심을 해봅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근데 몰라서 좋은 것보다 몰라서 당하는 게 많지 않을까요?
박소연 : 사람들이 해연 씨 같아서 안 알려주는 것이겠죠. 알면 '왜?'라는 물음표가 생길텐데 북한 사람들은 물음표를 달면 안 되잖아요. 북한에는 느낌표만 있어야 하는 나라예요. 세계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북한을 비판하는데, 실상 북한 주민들은 본인들이 언론의 자유가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 자체도 인지를 못 해요.
이해연 :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면서 왜 이걸 못 보게 통제하지? 내용을 아무리 봐도 그렇게 나쁜 사상은 없거든요. 제 기준은 그랬습니다.
박소연 : 바로 그거죠. (웃음) 뭔가를 보면 그런 질문이 나오잖아요. 북한 당국은 그게 싫은 거죠.
이해연 : 저도 '왜?' 라는 질문이 자꾸 생겼고 어찌 보면 그 의문점을 파헤치기 위해서 남한에 온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확실히 20대 MZ세대인 해연 씨는 저랑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해연 씨 같은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이런 방송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일어난 큰 사건들과 뉴스들을 전달했는데 그러면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생각해 볼까요?
이해연 : 우리가 지금 녹음하고 있는 시점에는 올해의 모든 뉴스가 전부 나온 건 아니지만 지금 10대 뉴스를 보도한 매체를 인용해 정리해 볼게요. 첫째는 한국의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둘째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셋째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 넷째는 의대 정원 증원과 이로 인한 반대 행동, 다섯째 대통령 부인 관련 사건, 여섯째 대통령 측근 고발 사건, 일곱째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도 나왔고요. 여덟째는 여소야대의 총선 결과도 있었고요. 아홉째 삼성전자 주가 하락 마지막으로 프로야구의 흥행 등이 꼽혔습니다.
박소연 : 북한 주민들도 노벨문학상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받는 특별한 상으로 알고 있어요. 그 대단한 상을 올해 남한의 한강이라는 여성 작가가 탔어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가 내년 1월 하순부터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는데요. 청취자분들은 미국에서 대통령이 선출됐는데 남한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생각하실 수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왜 남한에서 큰 관심사가 되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남한과 남북한은 정전협정 중입니다. 러시아와 북한이 파병해서 같이 하게 되면 앞으로 한반도의 남한 정치와도 무관할 수가 없거든요. 앞으로 더 큰 전쟁으로 번질 수가 있으므로 한국에서는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클로징] 저희가 이 방송을 녹음하고 바로 다음 날,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비행 계엄을 선포했고 국회가 이를 해제했는데요, 이게 올해의 가장 큰 뉴스가 될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 남한 사람들도 연말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한 해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연말이면 ‘올해도 죽지 않고 잘 버텨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외웁니다. 그만큼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쟁 같은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죠. 올해는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특별한 사건들도 많았지만 올여름 탈북민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준 가슴 뭉클하고 벅찼던 감정은 쉽게 잊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