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지난해 12월 3일 저녁, 남한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가 이를 해제한 직후 남한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하라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아마 해연 씨는 남한에 와서 이렇게 큰 시위는 처음 봤죠? 해연 씨 또래가 가장 많던데…
이해연 : 그렇더라고요. 저는 가지는 않고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로 지켜봤습니다.
박소연 : 시작하자마자 총화부터 해야겠네… 가지 않고 보기만 했어요? (웃음)
이해연 : 저 아니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어서…(웃음) 제가 진짜 필요로 할 때 갈게요!
박소연 : 시위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2월 초의 시위는 노동신문에도 보도됐더라고요. 대통령 탄핵 시위 사진을 무려 20장 넘게 보여주며 남한은 '아비규환'이라고 했어요.
이해연 : 최근에는 보도에서 남한을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북한 주민들은 그 보도를 통해 뭔가 싶었을 겁니다. 동시에 탄핵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국민들이 대통령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 같고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북한에서 뉴스가 나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알려주지 않고 남한 사회가 이렇게 복잡하다는 식으로 얘기했죠. 보통 주민들은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한에 대한 환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이었던 같습니다.
박소연 : 이런 소식이 북한에는 좋은 먹잇감이죠. 과거에도 북한은 9시 보도가 끝나고 날씨를 알려주기 전에 꼭 남조선 소식을 전해주곤 했어요. TV 화면에는 매일 남한 사람들이 시위하는 장면이 나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음성도 그대로 들렸어요. 그때마다 봐라, '남조선은 지옥 같은 땅이다', '우리식 사회주의야말로 인민이 주인된 사회다' 그랬죠.
이해연 : 북한 주민들은 외부 소식을 찾아볼 수 없으니 그냥 정권의 선전을 믿게 되는 거죠.
박소연 :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과거에 북한은 북한이 좋은 세상이라는 걸 부각하기 위해서 시위투쟁 소식을 보도했지만 지금은 좀 달라 보입니다. 남한은 아비규환 같은 세상인데 그래도 니네 탈북할래? 이런 메시지를 인민들에게 주는 거죠.
이해연 : 막상 중요한 얘기는 빼놓고 안 해주니 안타까운 생각도 있지만 저만해도 어른이 돼서는 다 믿지는 않았습니다.
박소연 : 중요한 건 남한은 시위의 자유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항상 시위가 많습니다. 북한은 이 사실을 숨기고 그냥 사회가 혼란하다는 식으로 선전하지만요. 해연 씨, 아까 방송을 시작할 때 탄핵 시위를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했는데 화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이해연 : 저는 시위라면 어느 정도 정치를 많이 아는, 연배가 되시는 분들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시위 현장에는 20대 청년들과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나와서 열분을 토하더라고요. 고등학생이 무대에 올라와 연설하는 장면을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어린 학생인데 어쩜 그렇게 맞는 말만 하나요… '우리 청년들이 미래가 안 보인다. 나라를 불안하게 만들어놓은 대통령은 더는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는데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조리 있게 자기 의견을 딱 말하는지 놀랐습니다.
박소연 : 사실 북한에도 시위가 있어요. 충성의 결의 모임, 당에 드리는 궐기 모임 같은 시위를 하는데요, 보통 토론할 사람들이 미리 정해져 있어요. 간부들과 모범혁신자 같은 사람들이 지정된 순서에 맞춰 준비한 원고를 읽는 방식이지만, 남한의 시위는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뛰어 올라가 연설을 해요. 이번 시위 현장에서 어린 소녀가 휴대전화에 하고 자기가 싶은 말을 정리해서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데… 제가 얼마나 홀렸던지 그 학생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네요. (웃음) 사실 저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웠거든요. 이 사회가 어디로 가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학생들을 보면서 큰 위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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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 남한 사람들은 여기서 태어났고 자랐기 때문에 어린 세대라 해도 기본적인 걸 다 알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북한 체제에서 늘 억눌리면서도 불만을 토로하지 못해서 남한에 와서도 자기 생각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솔직히 저건 아닌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당당하지 못하고 주춤해요. 지금도 표현하기보다는 경청하는 편이에요. 함부로 말을 못 하겠는 거예요. 근데 남한 분들은 말 해요. 자기 생각이 틀려도 말을 합니다. 근데 저희는 맞아도 속으로만 생각하지 남한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표현을 못해요. 아마 북한 사회에서 세뇌당하고 주춤해서 살았던 방식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해연 :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이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공부한다고 해도 정치를 찾아보진 않고요. 또 남한의 정치 역사를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배님, 지금 하고 몇 년 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를 많이 비교하잖아요? 좀 다른 게 있습니까?
박소연 : 그때는 정말 추웠던 기억이 납니다. 유별나게 추웠어요. 종이컵에 초를 꽂고 추위에 사람들이 손을 호호 불면서 서 있는 장면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어요. 이번 시위는 촛불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응원봉을 들고 합창하는데 가수 공연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웃음) 남한에는 가수, 배우, 운동선수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팬이라고 하고요. 특히 아이돌 가수들은 그 가수를 상징하는 각양각색의 응원봉이 있고 공연에서 팬들은 자기 가수의 응원봉을 흔들며 호응하는데요. 그게 이번 시위에 등장한 거죠. 그래서 시위 현장에 등장하는 노래도 과거에 비해 엄청 밝아졌어요. 대중가요가 나오고 함께 부르며 응원봉을 흔들며 방방 뛰며 구호를 외칩니다. 그 모습에 마음은 덜 무겁습니다.
이해연 : 저는 시위는 남한에 와서 처음 보지만 역시 남한은 시위도 즐겁게, 대한민국 사람들답게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응원봉은 색깔도, 모양도 다 다르잖아요. 그런 다른 것이 하나의 뜻으로 뭉친다는 것도 의미 있어 보였습니다.
박소연 : 혹시 해연 씨는 선결제라고 들어봤어요?
이해연 : 이제는 뭔지 알죠. 선결제는 말 그대로 물건을 받기 전에 결제를 먼저 하는 걸 선결제라고 하는데 이번에 보도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박소연 : 현장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료수, 따뜻한 국밥을 먹고 힘내라고 이름도 밝히지 않고 시위 현장 주변의 식당들에 선결제를 했답니다.
이해연 : 함께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여러 사연 중에 제가 기억나는 건 어떤 중학교 학생들이 용돈을 모아서 커피를 사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기 돈은 피같이 여긴다는데…
박소연 : 이번 시위는 따뜻하고 해연 씨 말처럼 즐거웠지만 그 사안은 기가 차게 엄중합니다. 남한은 북한처럼 유일 당이 아니잖아? 여당과 야당이 크게 대립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를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지를 표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대합니다. 저는 남한에 정착해서 12년 동안 두 번의 탄핵 시위를 경험했는데요, 물론 투쟁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클로징] 북한의 국가 이름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여러분은 민주주의의 진짜 의미를 알고 계시나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저와 해연 씨는 민주주의의 어려운 과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나머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