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남북 가계부 전격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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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처음 시작하는 방송인데, 우리가 신년이 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신년 계획이라는 걸 세우죠.

이해연 : 새해 첫 달이 되면 결심을 많이 하잖아요. 올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돈 관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우는 달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우리 해연 씨의 신년 계획을 듣고 싶어요.

이해연 : 아직은 젊다 보니까, 좋은 직장에 취업도 하고 돈 많이 벌어서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선배님은 신년에 어떤 계획을 세우셨어요?

박소연 : 해연 씨를 통해 10년 전 저를 보는 거 같아요. 그때도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계획을 16절지에 써서 냉장고에 딱하고 붙여 놨어요. 그리고 한 달에 100만 원씩 적금해서 일 년에 1,200만 원을 만들겠다는 굳은 맹세를 다졌어요. 그런데 지금의 나는 신년에 맹세 같은 건 없어졌어요. 세상일이 원하는 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됐네요. 지금의 신년 계획은 본전만은 허물지 말자는 것입니다. (웃음)

이해연 : 북한에서는 본전이란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남한에서는 본전이란 말을 잘 안 하고, 자산이나 자본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박소연 : 본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북한에서는 농사꾼은 죽어도 종자는 배고 죽는다, 장사를 하려면 본전이 있어야 하고 본전을 까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죠. 그리고 다 큰 자녀를 키우면서, 3년 전부터는 적금하겠다는 말이 쏙 들어갔어요. 환경이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이제는 있는 거라도 잘 지키자… 이렇게 다짐을 바꿨습니다.

이해연 : 저는 아직 혼자이니까 돈을 벌면 그나마 계획대로 실천할 수 있고 지출을 조절할 수 있어요. 만약에 제가 한 달에 100만 원을 번다면 절반은 적금하고 절반은 지출하는데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서 덜 쓰고 더 많이 저금하는 것도 가능한 것 같아요. 지출도 고정 지출이 있고 변동 지출이 있어요. 고정 지출은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을 말하는데요, 남한에서의 고정 지출은 어떤 자산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집 관리비와 월세, 타치폰 요금 같은 것은 매달 고정 지출로 나가는 거죠. 그리고 식비 등 생활비로 지출하는 돈은 조율하면서 지출해 나가요.

박소연 : 싫든 좋든 무조건 내야 하는 고정 지출이 또 하나 있지 않아요? 남조선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에서 내던데…

이해연 : 세금이요?

박소연 : 아뇨, 보험! 보험도 고정 지출에 속해요. 한 번 가입하면 무조건 나가잖아요.

이해연 : 저는 아직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어요. 이런 보험도 종류가 여러 지인데요, 기본적으로 회사에 다니면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큰 병원 치료를 대비해 들어 놓는 실비보험이나 암 보험 등 여러 가지가 있더라고요.

박소연 : 맞아요. 이런 것들은 고정으로 나가잖아요? 그리고 해연 씨가 좀 전에 유식한 얘기를 하셨는데… 변동 지출은 뭐예요?

이해연 : 변동 지출은 매달 금액이 바뀌는 지출이요. 예를 들어 이달 식비를 30만 원을 쓰려고 계획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찾아와서 식사대접을 하게 되면서 예상했던 금액보다 좀 더 쓸 수 있잖아요?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돈이 나가서 일정하지 않게 지출하는 경우를 변동 지출이라고 합니다.

박소연 : 그럼 이쯤에서 솔직한 답변이 필요한 질문을 해볼게요. 1년 동안 힘들게 돈을 모아서 관리하다가, 연말이 되면 괜히 소비심리가 폭발한대요. 열두 달을 아웅다웅 살아왔는데 나에게 과연 무엇을 해줬냐면서 심장에 손을 대고 물어보다가 갑자기 큰 지출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이해연 : 직장 다니시는 분들은 특별히 소득공제 때문에라도 12월에 지출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년에 어차피 살 걸 연말에 미리 사놓고 세금 공제를 받자는 생각인 거죠.

박소연 : 와! 저는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연말이 되면 지출액이 넘쳐나는군요. 해연 씨는 어때요?연말에 자신에게 선물 같은 것도 하고 그러나요?

이해연 : 주변 친구들은 명품 가방이나 새로 나온 신상 동복을 사더라고요.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패딩을 샀을 때 즐겁다면 당연히 나를 위한 선물이 되겠죠. 그런데 저는 패딩을 사는 것이 그렇게 즐겁진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만의 방식대로, 저를 위한 선물로 내년에 좀 더 분발해서 일할 수 있도록 적금을 들었어요. 예전에는 적금 하나만 들었는데 이번에는 두 개를 들었어요. 좀 버겁긴 하지만 일단 들어 놓으면 좀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 같고, 희망적인 생각도 많이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은 특별히 금리도 높잖아요.

박소연 : 해연 씨는 정말 모범생이네요. (웃음) 하지만 정착 초기라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사람은 더 살아봐야 해요. 저도 정착 초기 연말에 TV에서 사람들을 보면 명품 매장에 줄을 서서 손바닥만한 가방을 3만 달러나 주고 사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처음에는 욕을 했어요. 저렇게 해서 어떻게 세간살이를 하겠는가고. 저런 여자들 북한에다 보내면 다 굶어 죽는다면서.... 남한 정착 10년이 되니까 이제는 이해해요. 그리고 명품 가방을 살 때는 돈이 많이 드니까 그럴 때는 할부라고 달마다 돈을 쪼개서 내기도 하죠. 그러면서 나오는 말이 할부와 대출이 살아가는 의미라는 거죠. 왜냐하면, 갚아야 할 빚이 있으면 열심히 살게 된다는 얘깁니다.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공감을 해요. 그리고 새해 초에서는 신년 계획도 세우지만, 돈을 얼마나 벌고 쓰는지 가계부를 쓰잖아요. 해연 씨는 가계부를 쓰고 있어요?

이해연 : 저는 매일 가계부를 정리하고 있어요.

박소연 : 북한에서처럼 장부를 쓰나요?

이해연 : 아니요! 그건 북한식인 것 같고요. 핸드폰에 자산을 관리해주는 가계부 앱, 일종의 프로그램이 있어요. 자산이나 소유하고 있는 은행 통장이나 카드를 입력하고 연결해 놓으면 수입이나 지출이 발생할 때마다 가계부 앱에 자동으로 입력이 됩니다. 저는 지출은 빨간색으로 해놓고 입금은 파란색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렇게 관리를 해서 매일, 매주, 매달마다 보기 때문에 연말에 따로 정리를 안 해도 통계에 들어가면 바로 전체를 볼 수 있어서 엄청 편해요.

박소연 : 저는 처음 알았어요!

이해연 : 한 번 사용해보세요. 편리해요. 혹시 선배님은 아직도 장부에 적는 거예요?

박소연 : 그럼요. 지금 1월이잖아요. 그러면 1월 생활비 현황이라고 적고, 이달에 벌 수 있는 돈은 안 적어요. 고정 지출 항목들을 위에다 적고 그 아래 변동 지출 예상 금액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필요한 소비를 하고 있어요.

이해연 : 선배님은 옛날부터 하던 방식이라서 그게 더 편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권유하고 싶네요. 가계부 앱을 사용해서 익숙해지면 좀 더 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번만 입력하면 알아서 다 자동으로 입력이 되거든요.

박소연 : 앱을 쓰면 저는 신경질이 날 것 같아요. 해연 씨는 혼자잖아요. 결심만 하면 어떻게든 소비를 줄일 수 있고 충동구매만 안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나갈 돈이 너무 많아요. 부양해야 할 자식한테 나가야 할 돈이 어마어마해요. 보험료에 핸드폰 비용도 있고, 청약통장에 그 모든 걸 보호자인 제가 전부 부담해야 하니까요.

이해연 : 가계부 앱이 그런 지출을 좀 더 세부적으로 볼 수 있어요. 100만 원을 식비로 책정해 놓으면 전부 식비로 나간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지출을 세부적으로 설정해 놓으면 이달에 문화생활에 얼마 썼고 식비는 얼마 썼고, 부모님께 얼마 보냈고, 세금, 이자가 얼마나 나갔는지 한눈에 볼 수 있어요. 통계를 보면서 충동구매가 좀 덜해지고 항목별로, 월별로 비교하면서 다음에는 이 항목에 지출을 좀 줄여야겠다는 각성을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듣고 보니 찔리네요. (웃음) 항상 월말이면 벼락 맞은 소고기처럼 어디에다 돈을 다 썼을까 하면서 자신과 싸워요. 나름대로 돈을 아끼면서 생활했는데 어디에다 어떻게 지출했는지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다 보니 늘 의문이 들었어요. 해연 씨처럼 하면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해연 : 원인을 찾을 수 있죠. 그런데 저는 너무 심하게 짠테크하면서는 안 살고 싶어요. 그래도 형식상 그렇게 해 놓으면 좀 자제를 할 수 있더라고요.

박소연 : 짠테크가 뭐예요?

이해연 : 북한에서 짠순이, 짠돌이 그러잖아요. 남한에서는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버는 것도 내가 행복하려고 버는데 너무 아끼면서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아요. 낭비는 하지 않지만 합리적으로 소비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북한에는 ‘총명한 머리보다 낡은 문서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서로는 가계부를 꼽을 수 있는데요. 사소한 소비도 깨알같이 기록된 가계부를 보면서 알뜰하게 세간살이를 하게 되죠. 딱 한 가지 쌀 구매는 고정 지출이었어요. 변동 지출은 상황이 좋으면 누릴 수 있는 호사 같은 것이었고요. 저도 얘기하면서 오랜만에 옛날 가계부를 들춰보며 옛날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지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