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사는 게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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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잖아요?

이해연 : 먹는 즐거움, 여행 가는 즐거움, 쇼핑할 때 즐거움 등 다양하게 너무 많죠.

박소연 : 그 중에 저는 요즘에 배우는 즐거움에 빠졌어요. 바리스타 아시죠?

이해연 : 커피를 만드는 분들을 바리스타라고 하는데 그걸 배우시는 건가요?

박소연 : 네, 맞습니다. 바리스타는 커피점에서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또 다양한 음료들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실 바리스타에 도전하게 된 것은 남한 정착 3개월쯤 됐을 때, 그러니까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그때 아주 잠깐 커피점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했는데, 그때는 내가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있고 생소한 직업이라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해연 : 커피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박소연: 그렇죠. 가짓수가 너무 많고 커피에 관한 이름들이 전부 꼬부랑글자잖아요. 카라멜 마키야또, 카푸치노, 아메리가노 등이요. 말이 어려워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10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때가 그리웠어요. 지금은 고정 직업이 있지만 어느 순간에 약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한 정착 10년 동안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웠을까 생각해보니 10년 전에 커피점에서 일했을 때더라고요. 취직하면서 고작 3개월 안에 바삐 끝내다 보니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고, 그래서 정식으로 배워 보기로 했고 벌써 한 달 정도 됐어요.

이해연 : 도전하셨다는 자체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배워야하며 어디서 교육을 받으시는지 궁금해요.

박소연 : 남한에 김포공항이라고 큰 비행장이 있어요. 김포공항 바로 옆에 너무나 예쁘고 작은 커피 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대표님이 계시는데 북한 출신분이세요. 작년에 취재 과정에 만나게 되었어요. 솔직히 커피점에 일하는 바리스타는 20대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소연 씨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나도 언젠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고 지금은 커피점에서 현장 교육을 받고 있어요. 바리스타는 어떻게 보면 기술직이에요. 원두라는 재료를 가지고 적절한 온도에서 커피를 내리고, 카페라테는 커피에 우유가 들어가요. 그렇다고 또 우유를 그냥 콸콸 쏟기만 하면 되냐, 그것도 아니에요. 우유 양도 중요하지만, 스팀 봉을 우유 그릇에 넣고 처음에는 우유에 공기를 주입해서 거품을 만들다가 다음에는 그 거품을 깨서 90도가 될 때까지 적절한 온도를 맞춰야 되요.

이해연 : 커피숍에 가서 돈을 내고 주문하면 바로 쉽게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선배님 덕분에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지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선배님이 커피를 이미 완벽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일에 도전을 안 하시겠죠. 지금은 배우는 과정이라 즐겁다고 하시는 거 같아요.

박소연 : 네, 정답이에요. 모르니까 배우는 거예요. 그런데 해연 씨도 만만치가 않던데요. 요즘에 이상한 거 배우던데? (웃음)

이해연 : 이상한 건 아니고요! (웃음)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습니다. 필라테스는 기구 위에서 운동하면서 근육을 단련해서 단단하게 세워주고 늘려주는 거예요. 우리가 살다 보면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다양한 직업군들에 따라서허리도 많이 구부러져 있고 자세가 틀어져서 많이 아프고 결리곤 하잖아요. 그런 걸 바르게 펴주는 운동입니다.

박소연 : 남한에는 배우고 싶은 분야들이 세상천지에 널려있는데, 왜 하필 필라테스에 도전하신 거예요?

이해연 : 처음에 접하게 된 동기는 단순합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필라테스 하러 다니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게 좀 부럽기도 했고, 그래서 하고 싶기도 했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기도 했어요. 고민하던 찰나에 마침 친구가 나한테 그 운동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추천을 하는 거예요.

박소연: 아, 친구가요?

이해연 : 예. 운동해서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 이걸 직업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그 친구가 미래를 설계해 줬네요.

이해연 : 제가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친구의 말 한마디로 용기를 갖게 된 거예요. 북한에 있을 때는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잖아요. 그래서 대체 어떤 운동인지 검색을 했더니 기구에서 하는 운동이더라고요. 주변에 있는 학원을 검색한 후에 일단 가서 먼저 등록을 했습니다. 우선 배워봐야 내가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요.

박소연 : 그런데 필라테스는 젊은 분들에게 맞는 운동 같아요, 저는 못하겠어요. 근육이 다 굳어서요.

이해연 : 아닙니다.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제가 가서 등록을 하는 날 상담을 했는데, 거기에 오시는 분 중 20대가 오히려 더 적었어요. 30대, 40대, 50대가 주로 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나이 드신 분들이 무슨 운동을 저렇게 하실까? 잠깐 북한식으로 생각을 했었어요. 정말 많이 오셔서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박소연 : 그래서 운동은 재밌어요?

이해연 : 그럼요. 제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자주 하고 싶다, 부럽다고만 생각했었던 거를 지금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즐겁고요. 운동하고 나면 몸이 펴진 것 같고, 키도 커진 것 같은 그런 희열이 있거든요. 비록 할 때는 힘들지만, 하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그런 느낌이 좋아요. 남한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정말 많은데도 그중에 내가 선택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선택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다 온 저로서는 특별하게 느껴지고 또 큰 즐거움입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필라테스 학원을 얼마 동안 다니신 거예요?

이해연 : 사실 아직은 초기라서 얼마 안 됩니다. 2주 정도 됐습니다.(웃음) 아직 풋내기에요.

박소연 : 이제 겨우 2주 정도 됐는데 벌써 직업까지 생각하셨다니 너무 앞선 거 아닐까요? (웃음) 그만큼 좋았나보네요.

이해연 : 맞아요. 그렇기도 하고, 처음에는 배울 때 항상 설레잖아요. 아시죠?

박소연 : 맞아요.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것처럼.

이해연 : 선배님은 바리스타를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선배님은 얼마 동안이나 배우셨어요?

박소연 : 저는 달수로는 두 달이고요. 날수로 하면, 거의 한 달 정도 배웠어요.

이해연 : 저보다는 선배님이시네요. (웃음)

박소연 : 그래 봬도 저는 10년 전에 과거 경력이 있는 여자예요.(웃음) 사실 2주냐 4주냐 하는데,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스마트 시대에는 하루가 귀중하잖아요?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즐거움에 가득 차 있잖아요.

이해연 : 일단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고, 더구나 즐거우면 또 다른 일도 기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소연 : 맞아요. 우리 둘 다 어떻게 보면 배우는 과정이잖아요. 그런데도 벌써 이렇게 북한말로 입이 빠르게 즐겁다, 직업으로 삼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해연 씨는 북한에서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이해연 : 없었어요. 배울 때는 의무 교육이니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배우는 즐거움은 상상도 못 해봤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는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그냥 돈을 좀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직업보다는 시장에서 장사할 생각밖에 없어요. 국가가 운영하는 공장이나 사무실에 다니게 되면, 국가가 정한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직업을 선택하고 즐겁게 일하자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어요. 그냥 국가가 정해 준 직업에 대충 자리를 걸고 뒤로는 장사해서 돈 벌 궁리만 하느라 이런 식의 즐거움은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남한에 오니까 기준이 달라요.

이해연 : 북한에 있을 때는 무엇인가를 배울 때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배우는 거죠. 그러나 돈과 관련이 없으면 아예 도전도 안하고 배울 생각도 안 했었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지금 해연 씨나 저나 오히려 자기 돈을 쓰면서 배우고 있어요.

이해연 : 그렇죠. 이게 배움에 대한 즐거움인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생계를 위해서 무조건 배우는 거였지만, 남한은 삶의 질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직업을 선택하잖아요. 그래서 무조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아무 일이나 하진 않는 것 같아요.

박소연 : 해연 씨는 지금 사회 초년생이잖아요. 그래서 배우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게 많을 수 있어요. 제가 바리스타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제2의 직업을 고민하다가 선택을 한 거예요.

이해연 : 선배님이 지금 제2의 직업이라고 하셨잖아요. 투잡을 얘기하신 거에요?

박소연 : 보통 지금까지 했던 일을 은퇴하고 그 뒤에 갖는 새로운 직업을 의미합니다. 제2의 직업은 남한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과 연관이 있는데요, 남한은 보통 60세에서 65세까지 정년퇴직해요. 지금은 100세 시대로 적어도 70~80세까지는 활동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년퇴직 후 10년 20년 동안을 뭘 하고 지내겠어요. 정년퇴직한 분들이 집에서 노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한대요.

이해연 : 뭐니 뭐니 해도 바쁠 때가 좋아요.

박소연 : 그렇죠. 출근할 수 있는직장이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퇴직한 분들이 얘기해요. 회사에 다니다가 퇴직한 분들이 제2 직업으로 택시 기사나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북한에는 “배우는 나이는 따로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는 것도 때가 있으니 그때 열심히 해라”… 이런 의미죠. 반면 남한에서는 ”배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늙는 것도 더디다“라는 말이 있어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서 오는 성취감과 즐거움이 가는 세월도 붙잡는 모양입니다. 배움을 통해 얻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