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에서 온 선택 장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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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저는 정년퇴직이 아니라 일찍 명예퇴직을 하고 싶은 거죠. 그렇다고 놀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종전과 다른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에서 제2의 직업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해연 : 선배님이 너무 부럽네요. 저는 아직 제1의 직업도 없는데...

박소연 : 저는 오히려 해연 씨가 부러워요. 젊음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으니까요. 지금은 배우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지금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해연 : 저랑 인생을 바꿀까요? (웃음)

박소연 : 해연 씨 나이 또래의 남한 친구들 중에는 제1의 직업도 없는데, 북한으로 말하면 너무 복잡하게 이일 저일 찾는 친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이해연 :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자기한테 맞는 일, 적성을 찾기 위해선 이것저것 많이 해봐야 알죠.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이 직종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잖아요. 경험을 통해 다양한 일을 체험하고 배워본다는 겐 소중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버려지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고요.

박소연 : 맞죠. 나의 머릿속에, 내 재산으로 남는 것이지만 북한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북한에서 무슨 직업을 하겠다고 돈을 들여서 배웠는데 그만두면 사람질 못한다 그러죠. 저는 10년 동안에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가정폭력 상담사 과정도 배웠어요. 그렇다고 지금 그 직업을 갖진 않았죠. 그러나 그때 배웠던 지식들은 온전히 내 것으로 남아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돼요. 그리고 남한에서는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관심하면 안 돼요. 여러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합니다.

이해연 : 선배님은 지금까지 뭘 많이 배웠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이것까지 배워봤다… 좀 황당했거나 신기했던, 특이한 걸 배우신 게 있나요?

박소연 : 연기학원을 6개월 동안 다녔어요. (웃음)

이해연 : 연예인 하실라고요?

박소연 :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그냥 기회가 생겨서… 학원 수료증을 받았지만, 사실은 좀 황당하기도 해요. 연기학원 같은 반 학생들과 같이 대본을 보고 연기를 연습하고 영상으로 찍어 자신이 연기를 화면으로 보기도 합니다. 좀 황당했지만, 너무나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일단은 연기학원을 수료했기 때문에 북한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면 그 학원에서 저를 추천해 줘요.

이해연 : 그럼 앞으로 또 제2의 직업을 연기 쪽으로 가셔도 될 거 같네요. 수료증도 있고 직접 해보기도 했으니까요. 제가 필라테스 운동을 시작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배우는 시간은 짧은데 그 시간 동안에 운동을 다 소화할 수 없습니다. 일단 용어가 너무 어려워요.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서 유튜브로 다시 찾아보고 동작이 생각이 안 나면 몇 번이고 찾아보고 또 연습해보고... 정말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돈을 내면서 배우기 때문에 좀 더 열심히 하는 게 있고요…

박소연 : 그렇죠. 내 카드에서 돈이 짜잔~ 하고 빠져나가잖아요.

이해연 :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가 좋은 것 같아요. 사회주의는 돈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그냥 시간만 때우고 오면 되는데 내가 돈 내고 배우니까 좀 더 열심히 하게 돼요.

박소연 : 해연 씨가 정말 좋은 얘기를 했네요. 북한은 배워도 전부 내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돈을 내고 배우면 내 것이 돼요.

이해연 : 내 것이 될 것만 배우는 거니까요.(웃음)

박소연 : 그렇죠. 북한에 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적성에 맞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못했어요.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해연 :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거죠.

박소연 : 중요한 건 배우고 싶어도 배울 환경이 안 되잖아요. 하늘에 올라가서 배울 순 없고요.(웃음) 남한은 어때요?

이해연 : 남한은 배울 것이 너무 많고 조건들이 잘 되어 있어요. 학원들도 많고 다양한 직업에 관한 진로를 상담하는 데도 있고요. 여러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나에게 맞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한에 와서 제일 어려웠던 것이 내가 나의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것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너무 많고 심지어 경험도 못 해봤기 때문에 그중에서 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박소연 : 그래서 탈북민 대부분이 선택 장애가 생길 정도입니다. (웃음) 북한은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각 도의 로동국에서 '이해연 동무는 방직 공장에 가시오'… 이렇게 직장을 정해주면서 식량 정지를 발급해주잖아요? 말하자면 직장을 선택해야 할 고민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남한은 직장을 알아보러 사는 곳 인근의 취업 센터에 가면 직업상담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나한테 다시 물어봐요! 그다음엔 적성검사라는 걸 하는데 처음에는 그 질문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이해연 : 저도 그 질문이 부담스러웠어요! 무엇을 좋아하냐? 하고 싶은 일이 뭐냐… 그렇게 물어보는데 그걸 알았으면 제가 여기 왔겠냐고요! (웃음)

박소연 : 간만에 의견이 맞아서 행복합니다. 해연 씨는 20대라 어리고 똑똑해서 선택 장애 안 왔다고 할 줄 알았는데, 10년 전 저랑 똑같아서 친밀감을 느껴지네요.

이해연 : 솔직히 남한 정착 초기에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죠. 이런저런 직업을 체험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선택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일단 아무거나 해보자, 어떤 아르바이트이든 하자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선택 장애는 남한 정착 초기에 탈북민들이 똑같이 겪는 어려움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 많아서 장애가 오는데... 여기서 힘들다고 그만두면 남한 정착을 못 하잖아요. 이런 고민은 탈북민 누구나 다 겪는 성장통인 것 같아요.

이해연 :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할 거라고 믿으니까요.

박소연 : 그렇죠. 저는 이미 그 일을 찾은 상태이고, 해연 씨는 배움을 통해 찾아가는 과정이고요. 이쯤에서 제가 좀 어이없는 질문을 할 텐데요. 미래에 생각하는 해연 씨의 가장 마지막 직업은 뭘까요?

이해연 : 갑자기요? 너무 당황스러운데요. 아직 노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박소연 : 그렇죠. 아직 20대이니까요.

이해연 : 현재가 중요하기 때문에 노후까진 생각을 안 해봤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의 마지막 직업은, 무조건 돈만 좇아가는 것보다는 여유롭고 여행도 가끔 갈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박소연 : 저는 나이가 들어 60이 넘으면 이걸 꼭 직업으로 해보고 싶어요. 남한에 정착한 60~70대 탈북민들은 집에서 잘 나오지 않고 TV나 보면서 혼자 지내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들을 위해 '말하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어요.

이해연 : 와~ 너무 좋은데요.

박소연 : 보통 도서관이라고 하면 책을 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남한 노인하고 북한 노인을 한 공간에 모셔가지고 우리가 북한에서 살아왔던 삶을 책처럼 얘기하며 인생 말년에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일을 제가 해 보고 싶은 거예요.

이해연 :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저를 직원으로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웃음) 역시 나 혼자만 행복한 것보다 누군가와 같이 행복할 때 더 큰 행복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남에게 도움이 되려고 해도 내가 아는 게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더 많이 도전하고 배워서 경험을 쌓아볼게요.

박소연 : 우리 해연 씨는 꼭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확실해집니다! 제1의 직업도얼른 찾으시길…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아쉽게도 끝낼 시간이 됐네요. 저희는 이만 인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 뵐게요.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RFA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