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지난 시간에 우리가 여행의 즐거움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는데… 해연 씨가 바로 여행의 즐거움을 직접 체험하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이팔청춘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건가요?
이해연 : 필리핀에 있는 보라카이 섬을 다녀왔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입니다. 보라카이는 비행기, 버스와 배를 갈아타면서 서울에서 한 4-5시간 정도 걸리고요, 아름다운 옥빛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박소연 : 필리핀이면 북한에 살 때 세계 지리 시간에 들어봤던 나라죠. 솔직히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정도만 배웠지 한 번도 거기에 갈 수 있다고 생각도 못 했는데 해연 씨는 직접 다녀왔네요.
이해연 : 그러네요. (웃음)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여권을 발급받고 너무 좋아서 당장이라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여권을 들고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를 가는 상상을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서 나오던 길이 기억합니다.
박소연 : 저도 10년 전에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여권을 발급 받았죠. 근데 해연 씨처럼 자유의 날개를 펼치고 해외를 가겠다는 꿈이 아니라, 중국에 가야 아들을 데려올 수 있기에 당시는 여권을 발급받는 게 즐겁지 못했어요.
이해연 : 아! 그런 사연이 있으셨네요… 저는 이번에 알았는데 외국에 나갈 때는 비자를 꼭 받아야 가는 줄 알았어요. 한국 여권은 필리핀뿐 아니라 많은 국가에 입국할 때 비자를 면제받더라고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비자를 사증 혹은 여행통행증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대한민국 여권은 비자가 없어도 많은 나라에 무사통과할 수 있대요. 그만큼 세계적으로 위상이 있다는 얘기죠.
이해연 :인터넷에서 봤는데 '훔치고 싶은 나라 여권' 1위가 대한민국 여권이라고 합니다. (웃음) 요즘은 또 코로나가 상황이다 보니까, 입국할 때는 코로나 예방접종 확인서를 제시해야 했어요. 핸드폰 앱을 통해 발급받는데, QR 코드라는 것을 통해 확인시켜 줄 수 있어요.
박소연 : QR코드라는 게 쉽게 말하면 화면 도장, 컴퓨터 도장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어요. 작은 추상화 같은 그림 안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죠. 여행 준비는 어떻게 했어요?
이해연 : 한국은 인터넷을 마음대로 쓸 수 있잖아요? 인터넷에는 해외여행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검색 창에 '필리핀 여행 준비'라고 검색하면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요.
박소연 : 해외여행은 비행기를 타는 즐거움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처음 대한민국에 입국할 때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비행기에서 밥을 줘서 제일 좋았습니다. (웃음)
이해연 : 맞아요. 밥을 먹지 않아도 비행기만 타도 얼마나 좋은데요. 거기다 비행기 안에서 먹는 밥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웃음)
박소연 : 그런데 해연 씨, 우리 솔직히 말합시다. 양이 너무 작지 않습니까?
이해연 : 그렇죠! 근데 정말 맛있었어요.
박소연 : 북한처럼 커다란 밥사발에 주는 게 아니고 너무나 작은 그릇에 여러 가지를 주는데, 또 체면도 있으니까 더 달란 말도 못 하고 말이죠. 북한에 살 때는 우리 집에서 20리 떨어진 농촌에 가도 강냉이 밥을 허리에 차고 가잖습니까?
이해연 :항상 벤또(도시락)를 가지고 다녔죠.
박소연 : 그런데 이렇게 먼 나라를 가는데도 도시락을 안 싸도 된다는 게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해연 씨! 필리핀 갈 때 먹어본 기내식은 어땠나요?
이해연 : 아, 그런데 이번 비행기는 기내식을 예약한 사람들에 한해서 판매한대요. 저희는 몰랐어요. 대신 예약을 안 해도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라면이나 간단한 쿠키 같은 거는 살 수 있더라고요. 옆에 있는 분들이 어찌나 냄새를 풍기던지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컵라면을 하나 시켜서 먹었습니다.
박소연 :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들이 놀라실 것 같아요. 땅에서도 아니고 하늘에서 꼬부랑 국수를 먹는다고?
이해연 : 맞아요. 더구나 라면은 뜨거운 국물이 있는 거잖아요. 북한에서는 열차를 타도 너무 흔들리기 때문에 도중 식사로 국물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죠. 그런데 비행기조차도 라면을 먹을 수 있게 안정적으로 운행합니다.
박소연 : 요즘에는 알뜰 항공이라고 해서, 기내식은 따로 팔고 대신에 비행기표 가격은 눅은 것이 있던데 해연 씨가 이번에 알뜰 항공을 탔나보네요.
이해연 : 네, 맞습니다.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그런 방법을 다 알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 해외여행이 처음이라서 놀랐던 점들이 많았어요.
박소연 :남한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활용 잘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왜 모를까? 모를 수밖에 없죠…
이해연 : 당연해요. 북한주민들도 남한사람들처럼 어릴 때부터 부모들과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면 경험이 쌓이면서 잘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어디라도 여행을 다녀봤나요?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좋게 생각하면 모르는 게 오히려 좋을 부분도 있습니다. 매 순간, 이런 것도 있구나… 새로운 걸 알게 되는 희열도 있고요. (웃음)
박소연 : 하지만 그건 북한에 밖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얘기지요.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청취자들은 모를 즐거움이라는 게 안타깝네요.
이해연 : 그런 면에서 남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어서 너무 부럽습니다.
박소연 : 남한 아이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잖아요. 그리고 해외에 나가서 일상에서 배운 영어를 현실에서 사용한단 말이에요. 그게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이해연 :그러게요. 북한은 사실 해외여행이라는 개념이 없거요. 해외로 나간다고 하면, 다 일하러 나가거나 유학, 사사여행으로 나가고 있어요. 솔직히 사사여행은 잘사는 중국친척들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으러 가는 사실상의 동냥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반 사람들한테는 해외여행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 낯선 단어입니다.
박소연 : 제가 탈북하기 전에 혜산 편직 공장에서 중국으로 해외 노동자들을 파견했어요. 편직 공장이 자재 부족으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20대 젊은 사람들로 구성해서 중국 길림성에 가서 일을 해주는 건데요. 글쎄 해외노동자로 선발된 여성들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이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일해서 번 돈도 본인이 몇 %만 받고 다 나라에 바치는 거잖아요.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물으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게 얼마나 좋으냐고 하는 겁니다. 하루에 열두 시간 힘들게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북한을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들떠 있었어요.
이해연 : 북한에서 해외에 파견된다고 하면 주변에서 정말 부러워하죠.
박소연 : 동네 엄마들의 자랑거리죠.
이해연 :대가를 받아서가 아니라 일단 해외로 나간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한 거죠. 저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박소연 : 해연 씨랑 이렇게 1년 넘게 얘기를 하면서 느낀 건데, 저의 둘의 생각은 세대나 나이차에 따라 생각하는 게 조금씩 다를 뿐이지 전반적인 북한의 환경은 10년 전이나 현재나 거의 변화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도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해연 : 남한에는 MG세대와 X세대들 사이에 세대차를 느끼지만, 북한은 세대 차이를 별로 못 느껴요. 해외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은 거의 다 한국드라마를 보고 알게 돼요. 드라마 장면 중에 연인끼리 싸우다가 기분이 안 좋으면 바로 비행기 표를 끊고 캐리어를 끌고 다른 나라를 옆집 드나들듯 쉽게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해외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웠어요.
박소연 : 10년 전에도 저도 역시 드라마를 통해서 알았어요. 과거에도 현재도 공통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해외 정보는 드라마 밖에 없기 때문이죠. 저도 해연 씨랑 10년 전에 비슷한 생각이었는데요, 주인공이 연인하고 헤어졌는데 주변에서, '너, 다른 나라에 가서 마음 좀 정리하고 오라'라는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때 실연당한 돈 많은 한국 사람들은 외국에 가서 놀다 오면 아픈 상처를 회복하는가, 정말 부르주아들이라고 부정적인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해연 : 스트레스 푸는 것을 꼭 다른 나라로 가서 굳이 풀어야 하나 싶었고… 사실 저는 너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서 솔직히 부러웠고 그렇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박소연 : 우리 세대 사람들은 욕을 했어요. '야, 같은 동포가 여기서 배를 쫄쫄 굶고 있는데 친한 사람이랑 싸웠다고 저렇게 수천만 원을 하늘에다 뿌리면서 해외를 가냐, 그 돈으로 우리나 좀 도와주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해연 : 쓸데없는 돈을 쓰는 것 맞죠. 하지만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고, 저도 만약에 연인이랑 헤어지면 갈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정말요?
이해연 :이번에 필리핀 여행을 하면서 이래서 여행을 가는구나 느낀 점이 있어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바다를 향해 소리쳐도 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 정리를 하며 표현할 수 없는 홀가분함을 느꼈기 때문인데요… 진짜 좋았습니다.
박소연 : 이쯤에서 해연 씨, 진짜 궁금한 거. 이번에 여행 갔다 오는 데 비용은 얼마나 들었습니까?
이해연 : 1,600달러 정도 들었습니다.
박소연: 와! 그 액수라면 북한에선 한 집 식구 1년 먹을 쌀을 살 돈입니다.
이해연 : 저에게도 큰돈입니다. 하지만, 막상 갔다 와보니 아깝진 않더라고요. 그만큼 즐거웠고, 아름다운 것을 눈에 담고 가치 있게 썼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하는 중에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그래서 이렇게 예쁜 곳을 많이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박소연 : 저도 해연 씨처럼 그러고 싶어요. 우리가 필리핀에 가면 그 나라 말을 모르잖아요. 그런 데 가서 내가 북한말을 아무렇게나 해도 어디서 왔냐고 아무도 안 물어볼 것 같아요.
이해연 : 남한 분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저는 여행을 가기 전에 필리핀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고, 언어도 물론 다를 거라고 했죠. 그런데 여행지에서 맛집을 갔는데 옆에도 남한 사람, 앞에도 남한 사람인 거예요.(웃음) 정말 남한 분들이 여행을 많이 다닌다는 사실을 또 한번 실감했습니다. 우리가 탈북해서 한국에 들어올 때는 긴장 속에서 비행기도 타고, 버스도 탔지만 혹여 경찰이 오지 않나 싶어서 즐거움보다는 두려움이 가득했잖아요? 이번 여행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모든 게 여유롭고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탈북할 때는 뭘 봐도 그곳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의 거리에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구호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발을 땅에 붙이고 어떻게 눈만 세계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보면 진짜를 볼 수 있을까요? 주민들은 어디도 떠나지 못하게 만들고 당국만들어 놓은 일종의 변명 같이 느껴집니다.
해외여행에 관한 얘기는 다음시간에 이어갈께요. 저희는 이만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