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선배님은 아들 때문에 중국에 다녀왔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말고 해외로 나가신 적은 없으세요?
박소연 : 없어요. 사실 아들을 데리러 중국에 간 것은 여행이라기보다 목숨을 건 모험이었죠.
이해연 : 사실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대부분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해외여행을 떠나시는 분들이 많은데, 선배님은 그동안 왜 한 번도 안 가셨는지 궁금하네요.
박소연 : 저는 남한 정착을 빚으로 시작했어요. 정착 생활 1년도 안 돼서 아들을 데려오느라 한국 돈으로 500만 원 정도의 빚을 졌어요. 달러로 5,000달러 정도의 금액인데요. 그래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어요. 열심히 일해서 빚을 다 갚은 후에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도와줘야 했고요. 그것 말고도 남한에서 혼자서 아이 한 명을 키운다는 게 쉽지 않고요. 저는 아직 홀몸인 해연 씨가 너무 부러워요. 대신 국내 여행을 자주 다녀오는 편인데 해연 씨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어요.
이해연 : 선배님의 사연을 들으면서 시간이 걸리고 순서가 좀 바뀔 뿐이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드님이 성장해서 독립하면 그때는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웃음)
박소연 : 북한에 '살만하니까 환갑이더라' 하는 말이 있어요. 너무 공감합니다. 10년 후면 저도 환갑이잖아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전 내 집을 마련 때문에 은행에서 대출받았어요. 대출금을 갚고 나면 환갑이 될 것 같아요. 그때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해연 : 살다 보면 항상 풍족하고 만족한 순간은 없어요. 대담하게 계획을 잡으시고 실천해야지 여유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요.
박소연 : 맞아요. 이거는 돈과 여유로움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 차이인 것 같아요.
이해연 : 남한은 해외여행 한 번 다녀왔다고 당장 다음날 먹을 게 없는 환경은 아니죠. 노력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일단 해외여행을 결심하고 떠났어요.
박소연 : 해연 씨의 용감무쌍한 결단력이 부러워요. 해외여행을 다녀온 분들이 그러더라고요. 외국의 좋은 풍경을 보고 하얀 소파에 '척'하고 누워 있으면,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벌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동기부여가 된대요.
이해연 : 네, 열심히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이 기분을 느끼려고 돈을 벌고 있다는 동기부여도 되고요. 돈을 버는 이유를 모르고 그냥 살면 사는 게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해연 씨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선을 그을게요. 저는 돈을 모으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여자입니다. (웃음) 해연 씨랑 저의 대화는 평범한 가정의 엄마와 딸 같아요. 철없는 딸이 해외여행 가느라 하늘에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 같아 엄마는 걱정하고, 딸은 '내 삶이 먼저야' 라면서 반항하는 것 같아요.
이해연 : 남한은 엄마랑 딸을 떠나서 모든 사람이 다 즐길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배님도 많이 즐겨야 합니다!
박소연 : 노력해볼게요. 해연 씨가 이번 여행에서 사진이랑 동영상도 많이 찍어 오셨던데 필리핀을 여행하면서 즐거웠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해연 : 이번에 3박 5일 해외 일정이 너무 아쉬웠어요. 떠날 때는 5일 동안 길어서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막상 가보니 아름답고 즐길 것이 정말 많은 거예요. 옥빛이 나는 바다를 갔을 때… 마음 아시죠? 바다를 보는 순간 그냥 뛰어들고 싶었어요. 스킨스쿠버라고 산소통 매고 바다 밑에도 들어갔어요. 스킨스쿠버는 영화로만 봤었어요. 꼭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바다에 들어가려니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주춤거리다 남들이 다 하는데 못 할 게 뭐 있나 뛰어들었는데요, 바닷속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바다 밑에서 물고기도 직접 만질 수 있고 거기다 한국에서 맛보지 못했던 현지 음식도 맛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박소연 : 좋은 경험을 하셨네요. 저는 10년 전 아들을 데리러 중국에 갔을 때 당황한 경험을 했었어요. 한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중국 버스가 인적이 드문 곳에 갑자기 멈추더니 가이드가 여행자들을 내리라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버스가 지나가는 노선에 화장실이 없어 길에서 노상 방뇨를 하라는 겁니다. 물론 중국 전체가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만 눈앞에서 경험하니 놀라웠어요.
이해연 : 공감합니다. 이번에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지도 없고 식당에서는 물티슈를 안 주는 겁니다. 한국 식당은 식사 전 손을 닦으라고 기본적으로 물티슈를 주는데 말이죠. 또 있어요. 남한은 화장실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잖아요. 필리핀은 화장실을 사용할 때 돈을 내더라고요. 자연이나 풍경은 아름답지만 남한만큼 깨끗한 환경은 아니었어요.
박소연 : 해외여행도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네요. 해연 씨가 여행을 경험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하여튼 이번에 좋은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이번 해외여행은 처음엔 신나서 갔지만 예상외로 새로운 걸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라던가… 저는 필리핀을 보면서 북한이 많이 생각났어요.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물건을 팔면서 소리를 치는 모습도 북한과 닮았고…. 그리고 장사하는 분들이 한국말로 '싸다'라든지 '예쁘다'란 말을 정말 많이 하시더라고요. 예쁘다고 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없잖아요. 이것도 다 영업의 비법인 건데… 저도 한 번 이 영업의 비법에 걸렸습니다. 바닷가에서 어떤 남자분이 다가와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빛과 동작으로도 소통이 되더라고요. 그분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거예요. 이 나라 사람들 정말 친절하고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다 찍고 나서는 그분이 과일을 사라고 막 조르는 거예요. 역시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는 걸 다시 경험했습니다. (웃음)
박소연 : 저는 해외여행 경험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해외 여행프로그램을 많이 봅니다. 해연 씨처럼 해외에 갔다 온 분들이 영상도 남기고 인터넷 공개 게시판 같은 곳에 글을 올려요. 예를 들면, 필리핀에 갔는데 그곳 사람들은 우리처럼 '빨리빨리' 문화가 아니더라. 느긋하고 되게 여유가 있더라. 또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잘 웃더라. 모르는 사람인데도 인사를 잘하는데 이런 게 참 인상적이다. 이런 후기들을 많이 올려요. 남한은 정말 빠듯한 사회라고 늘 생각했거든요. 남들이 다 빨리빨리 가는데 나만 늦게 가면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되는데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여유 있게 사는 걸 보면 한 번쯤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더라고요.
이해연 : 네, 진짜로 필리핀을 여행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은 참 느리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처럼 너무 빨리빨리 하다 보면, 성격도 급해지고… 오히려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도 스트레스 안 받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박소연 : 그런데 해연 씨도 저도 빨리빨리 민족의 후손들이잖아요. (웃음) 북한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빠르지 않으면 내가 죽고 가족이 죽죠. 남한은 북한처럼 사활을 걸 정도는 아니지만 남한테 뒤질까 봐 '빨리빨리'라는 환경에 따라가는 거예요.
이해연 : 누구나 다 그렇게 빨리빨리 사니까, 나는 빠른 사람이 아니어도 덩달아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런 걸 덤이라고 하죠. 빨리빨리 열심히 살면서 생기는 보상으로 여행을 다니고 그러면서 또 다른 보상을 받기도 하고요…. 어쨌든 여행은 좋은 거죠? 남한에는 '여행은 학교다',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보내라' 이런 말들을 합니다. 여행을 통해서 견문이 넓어지고 많은 걸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이해연 : 북한에 있을 때 어른들이 많이 하시던 말이 생각나요. '발은 자기 나라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봐라.'
박소연 :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생전에 한 얘기잖아요. (웃음)
이해연 : 이 말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북한에 살고 있다면 특히 더요. 눈과 발이 같이 가야 세계를 볼 수 있죠. 어떻게 발만 붙이고 눈은 세계를 봐요?
박소연 : 10년 전에도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뒤에서 흉을 많이 봤어요.
이해연 : 만약에 북한 주민들이 해외로 여행을 다닌다면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세상을 보면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기 때문에 북한당국이 발이 세계로 못 가도록 통제하는 것이겠죠.
박소연 : 정답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해외로 나가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게 됩니다. 북한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결국 북한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게 되겠죠. 그래서 북한 당국은 사람들한테 세계를 보라고 하면서도 장막을 치고 있는 거예요.
이해연 : 솔직히 북한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었어요.
박소연 : 우리는 그곳을 벗어나 남한으로 왔기 때문에 북한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저와 해연 씨가 남조선 여행은 참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웃음) 이쯤에서 해연 씨가 앞으로 또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는 어딘지 듣고 싶어요.
이해연 : 다음 여행지는 베트남 다낭으로 정했습니다. 다낭은 아주 예쁜 곳이더라고요. 바다가 있고, 문화가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언어도 접할 수 있겠죠. 거기에다 맛있는 음식도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다낭으로 가고 싶습니다.
박소연 : 이건 제가 해연 씨보다 한 수 위인 거 같네요. 저는 유럽으로 진출합니다. (웃음) 프랑스 파리에 가고 싶어요. 10년 전 하나원에서 생활할 때 심리 상담사 선생님이 '하나원을 나가게 되면 해외 어디에 제일가고 싶으세요?' 물어봤어요. 파리에 있는 에펠탑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어요. 에펠탑은 1889년에 세워졌고 높이가 301미터로 아주 높은 철탑입니다. 탑 아래서 '북한에 사는 박소연이가 드디어 파리에 왔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다음에 파리의 세느 강가에서 샌드위치에다 콜라를 먹으면서 그냥 멍때리고 싶네요.
이해연 : 주저하지 말고 마음 단단히 먹고 한 번 다녀오세요.
박소연 : 알겠습니다. 만일 제가 파리에 가면 우리 방송을 프랑스에서 해볼게요.
이해연 : 프랑스에 가시게 되면 제가 영상통화를 걸겠습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저한테 꼭 보여주셔야 해요.
박소연 : 프랑스의 아름다운 전경들, 다양한 문화를 방송을 통해 청취자분들에게 꼭 전달해 드리기 위해 빨리 실천에 옮기고 말겠습니다.
이해연 :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박소연 :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해연 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