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한국이 북한보다 연애하기 어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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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 봄입니다! 해연 씨 표정이 봄처럼 활짝 폈는데… 연애하시나요? (웃음)

이해연 : 연애를 하지 않아도 얼굴은 활짝 필 수 있습니다. (웃음)

박소연 :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는데 연애를 안 하는 겁니까 아니면 못 하는 겁니까! 이 꽃다운 나이에 뭐하는 겁니까! (웃음)

이해연: 솔직히 말하면 못 하는 거 같아요. 연애해야겠다는 결심을 적극적으로 서지 않는 것도 있지만 남한의 환경이 북한이랑 좀 다릅니다. 남한이 생각보다 이성을 만날 기회가 북한보다 많이 없습니다.

박소연 : 그게 참 이상하죠? 남과 북의 인구를 보면 남한은 인구가 5,000만 명으로, 2,500만 명인 북한보다 인구가 두 배로 많습니다. 그리고 자유롭고… 그래서 이성을 만나기가 훨씬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반대라는 얘기잖아요?

이해연 : 사람이 많다고 해서 쉽게 만날 기회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연애에 대한 마음가짐과 생각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미래에 대해서 이해타산을 많이 하다 보니 쉽게 만남으로 이어지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가 올해로 정착 4년 차 정도 되죠? 정착 과정도 그렇지만 연애도 거의 비슷한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탈북민들은 남한 정착 초기에 결혼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다가 누군가가 중매를 서면 곧바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고요. 반면에 남한 사회를 좀 알고 난 뒤에 결혼해도 늦지 않다며 열심히 일만 하시는 분들도 있죠. 그러면 연애가 더 힘들어집니다.

이해연 : 저도 공감합니다. 처음에는 이성을 만나는 게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안 했습니다. 언제든 마음먹으면 연애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1~2년이 지나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지면서 생활이 편안하고 연애도 멀리하고, 이성을 만날 기회도 만들지 않게 됐습니다.

박소연 : 아무래도 남한이 북한과 많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그것도 영향이 있죠. 오히려 북한이 연애하기는 더 편하지 않았나… (웃음) 북한에서는 정말 연애할 기회가 많아요. 동창들도 있고, 그 동창들이 또 서로 소개해 주잖아요. 온 동네가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고, 그 집 딸들 성격은 어떤지 다 아니까 중매가 많이 들어왔어요.

이해연 : 네, 맞습니다. 일단 남한은 우리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니잖아요. 그런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북한은 같은 학교를 졸업하면 편하게 동창이라며 서로 모여서 놀기도 하고, 심지어 이웃 학교 학생들까지 같이 와서 어울리는 게 정말 쉬운데 남한은 그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부분인 것 같고요.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는 그냥 동료입니다. 남한은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사귀는 사람들을 사내 연애한다고 말하는데 대부분은 꺼리더라고요. 직원들도 연애하다 헤어지면 불편하니 꺼리고 회사에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박소연 : 해연 씨 얘기를 들으면서 저 혼자 계속 웃게 되네요. 이건 연애와 관련된 어이없는 경험인데요. 탈북민들은 탈북 후 중국, 태국 등 제3국 이민국감호소, 국정원, 하나원을 거쳐서 사회에 나오는데 그 과정에 근거 없는 소문들이 난무했어요. 북한 여성들이 남한에 가면 정말 인기가 많고 하나원을 수료할 때면 남한 남자들이 꽃다발 들고 철 대문에 다닥다닥 파리처럼 붙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실제로 하나원을 퇴소할 때 버스에서 내려다보니 철문에 남자는커녕 동네 강아지들만 오락가락했어요. 그때 망상이 다 깨졌죠. (웃음)

이해연 : 저는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나름 연애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어떤 기념일에 꽃다발을 챙겨주고, 어디 멋진 곳을 데리고 가서 촛불을 하트 모양으로 켜서 꾸며놓고, 장미 꽃잎을 뿌리며 프러포즈를 받고 싶었는데…

박소연 : 북한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봤던 남한 드라마에는 항상 가난한 여자 앞에 잘 사는 부잣집 아들이 나타났어요. 길에서 우연히 어깨를 스치며 지나다 돌아보면서 연인이 되면서 행복한 연애를 하는 장면을 봤어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건 드라마입니다. (웃음) 드라마와 현실이 다르다는 건 남한에 온 지 몇 년 지나서 바로 깨우쳤어요.

이해연 : 현실은 좀 더 냉정합니다. 요즘 남성들은 좀 이기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한에서는 남녀가 만나는 걸 데이트라고 하는데요. 그 비용을 아까워하는 남자도 있다니까요!

박소연 : 요즘 세대들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남한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말하면 북한 사람보다 계산적이고, 좋게 표현하면 현실적이죠. 데이트할 때 북한에서는 어땠어요? 당연히 남자가 100% 다 해줬어요. 저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남자를 소개받아 만나게 되고 식사를 하게 되면 밥값을 만일 남자가 계산했잖아요? 그리고 다음에 카페 가서 차를 마시면 이번 계산은 여자가 내야 하는 눈치인 거예요.

이해연 : 그럴 때는 조금이라도 있던 좋은 감정이 싹 사라져요.

박소연 : 그렇죠. 북한 사람은 첫 만남에 호감을 사려고 자기를 과시해요. 뭐든 사주고 뭐든 해줄 수 있다고… 지금도 저는 밥값을 계산할 때 주저하면 제 마음에서 영원히 지워버려요. 해연 씨는 어때요? 이런 경험이 있나요?

이해연 : 있어요. 정착 초기에 남한 남자분을 소개받아 식사를 했어요. 당연히 처음에는 남자가 계산할거라고 생각했어요. 말하기가 약간 조심스럽지만 그때는 당연히 그 사람이 낼 거로 생각했는데 더치페이하자고 해서 충격받았습니다… 남한에서는 각자 먹은 걸 각자 계산하는 것을 더치페이라고 하더라고요. 만나는 것도 먼저 만나고 해서 만났는데 정말 당황스러웠고요. 지금은 저도 더치페이 문화에 익숙하지만 그때는 더 충격이었습니다.

박소연 :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식으로 나눠 내는 것이 일반화된 것 같지만, 이건 너무 심했어요… 저는 12년 전 해연 씨와는 조금 다른 상황 때문에 당황한 적이 있어요. 소개팅으로 만난 남성과 밥을 먹고 커피까지 마셨어요. 여기까지는 좋았어요. 문제는 그 분이 갑자기 저한테 영화 보러 가자는 겁니다. 영화관은 연인들끼리 가는 장소로 알고 있는 터라 당황했어요. 그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사람이 나를 완전히 호락호락하게 보나, 내가 얼마나 굳건한 여자인데 감히 함부로 넘봐' 괘씸하게 생각하고 다시 안 만났어요. 지금 같으면 영화 보러 가자고 해도 내가 마음에 들면 가겠죠. (웃음)

이해연 : 얘기를 듣다 보니 선배님은 정말 북한 분이 맞는 것 같네요. (웃음) 우리 보통 튕긴다고 하잖아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일단은 거절을 하는 거죠. 한두 번 정도 거절하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처럼 밀고 당기기를 하는 건데… 선배님도 그분의 첫인상이 사실 안 좋은 건 아니었던 거죠? 살짝 한번 거절했는데 그냥 가버린 거 아닙니까?

박소연 : 그런 거죠. 솔직히 첫인상은 괜찮았어요. (웃음) 알고 보니 저만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었어요. 주변에 똑똑하기로 유명한 고향 친구가 있는데 20대 초반에 남한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대학에 정말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어느 날 데이트 신청을 하더래요. 이상형이었답니다. 그 친구는 속으로 너무 좋았지만 바로 답하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지금은 시간 안 된다고 했답니다. 마음 속으로 한두 번 더 거절하고 세 번째는 OK 해야지 했는데, 남자가 알았다고 하더니 글쎄… 다른 여자를 만났답니다. 그 친구가 바보 같이 이상형을 놓쳤다고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웃음)

이해연 : 이게 약간 말하는 방식의 차이인 듯합니다. '시간 없어요'라고 잘라 말하는 것보다 '이번 주는 좀 바쁠 것 같긴 한데, 일단 시간을 한번 내보도록 할게요'… 약간 두리뭉실하게 얘기하는 게 남한 방식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단칼에 거절하면 남한 남자들은 시간 낭비 하지 않아요. 얘기하다 보니까 더치페이도 그렇고 남북한의 연애 문화는 확실히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럼요. 하늘과 땅 차이인 것 같아요. '싫습니다. 나를 만만히 봅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건 남한에서는 약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이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예의 없다고 생각할 공산이 큽니다. 대신에 약간 에둘러서 '제가 다음 주에 시간이 좀 빠듯하지만 한번 시간을 내볼게요'… 이런 게 남한식 표현이 되는 거죠. 어렵죠? (웃음)

[클로징]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과거 북한에는 연애를 하면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만약에 자유연애를 하다 헤어질 경우 여자는 과거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뒷말이 따라다녔고 그래서 연애 기간 중에 실망해도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남한에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람을 소개해주며 ‘부담 갖지 말고 가볍게 만나봐’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가볍게 만나는 게 도대체 뭔가? 처음엔 저도 혼란스러웠는데 바로 이런 태도때문에 남한은 연애의 시작과 끝이 결혼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북한의 하늘과 땅, 연애 이야기… 나머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제작: 이현주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