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에서 더글로리를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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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저는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그중에서 '가을동화'는 북한 전체 주민들이 다 봤을 정도로 인기였어요. 특히 주인공 은서를 좋아했어요.

이해연 : 북한에서 '가을동화' 안 봤으면 간첩이죠. (웃음) 저희 때도 주인공 은서를 너무 좋아했어요. 남한에 가면 꼭 은서를 만나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니까요.

박소연 : 10년 전에도 북한 주민들은 남한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많은 남한 드라마가 북한에 유입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해연 씨는 북한에서 즐겨보았던 남한 드라마가 있어요?

이해연 : 탈북 전 북한에서 인상 깊게 본 남한 드라마는 '태양의 후예'였어요. 이 드라마 역시 주인공이 송혜교 배우였어요. 혹시 선배님도 보셨어요?

박소연 : 당연히 봤죠. '태양의 후예'는 남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어마어마했어요.

이해연 :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에 홀딱 빠졌었어요. 북한에서 너무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남한에 와서도 다시 봤는데 역시 재밌더라고요.

박소연 : 지인이 '태양의 후예'가 한창 방영되던 시기에 북한에 있는 가족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 짧은 통화에서 북한 가족이 "송중기와 은서(송혜교)가 마지막에 결혼하냐?"고 묻더래요. (웃음) 너무 황당해서 "아직 남조선 텔레비에서도 방영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냐"고 대답했다고 해요. 그 정도로 북한에 남한 드라마가 실시간으로 전파됐던 거죠.

이해연 : '태양의 후예'는 드라마 내용이 북한 주민들의 취향에 맞아서 더 인기 있었던 것 같아요.

박소연 : 취향도 취향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드라마에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더 찾아보고 그러잖아요? 송혜교 배우가 '가을 동화'를 찍을 때는 20대 초반이었고 지금은 40대지만 얼굴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전기다리미로 쭉 다린 것처럼 주름도 없고...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여서 북한 주민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남한은 송혜교 배우가 출연한 다른 드라마로 난리입니다.

이해연 : 맞아요. 송혜교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요즘 대박입니다. 넷플릭스로 보고 있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박소연 : 넷플릭스는 텔레비전 통로(채널)가 아니죠?

이해연 : 넷플릭스는 인터넷을 통해서 드라마, 영화 등을 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이런 걸 OTT라고 불러요. OTT에는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다양한 서비스들이 있어요. OTT에 구독하면 남한 드라마를 비롯한 외국영화나 드라마, 예능까지 검색해서 볼 수 있어요. 액션 영화나 코미디도 원하는 시간에 검색해, 시청할 수 있어서 남한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 구독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제가 조금 더 설명해보면 OTT는 북한 조선중앙티비와는 다릅니다. 남한에도 유명한 텔레비전 방송으로 KBS, SBS, MBC 있어요. 이건 말하자면 북한의 조선중앙티비과 비슷한 방송이죠. OTT는 이런 방송처럼 시간을 정해서 텔레비전을 틀면 오는 방식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이미 방영되었던 영상물을 한곳에 모아놓은 영상 저장고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인터넷만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이런 서비스에 접속하여 원하는 영화,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해연 : 아, 그리고 중요한 점이 OTT는 TV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트텔이나 타치폰을 통해 장소에 상관없이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볼 수 있어요. 타치폰으로 영상을 보다가 답답하면 TV에 연결해서 화면을 크게 볼 수도 있고요.

박소연 : 남한은 TV나 OTT를 통해 볼 수 있는 영상물이 정말 많습니다. 뭘 볼까 찾아보다가 하룻 밤이 다 가죠. 반면 북한은 일 년에 조선예술영화 한 개도 제작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제가 10대에 봤던 '언제나 한마음' 영화를 38살이 됐는데 또 보고 있으니까요.(웃음) 남한은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들이 계속 나와요. 물론 재방송하는 사례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드라마는 월, 화 혹은 수, 목 드라마로 방송되고 끝나면 새 드라마를 방영합니다. 그런데 TV를 통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시간이나 요일이 정해져 있어 일을 하고 퇴근하면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 OTT를 통해 검색하면 쉬는 요일에 보고 싶은 영상물을 한 번에 쫙~몰아서 시청할 수 있어요.

이해연 : 그게 좋죠. 그리고 기분에 따라 선택해서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기분이 울적한데 괜히 무거운 영화를 보면 우울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 다 부숴 버리는 액션 영화를 본다든가, 혹은 웃기는 코미디 영화를 보면 좋아요. OTT는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영화, 드라마를 선택해서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박소연 : 요즘에는 OTT를 모르면 북한말로 축에 못 끼우더라고요.

이해연 : 선배님은 구독하셨어요?

박소연 : 처음에는 구독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면, 남조선에는 텔레비전 통로만 수백 개가 돼요. 통로만 돌려도 차오 시앙~ 이러는 중국 영화도 나오고, 외국영화는 대부분 화면 아래에 번역까지 해줘요. 저는 저희집… 돈 들어가는 구멍인 아들이 구독하자고 해서… 아, 구독이란 매 달마다 시청 요금을 내야하는 걸 말합니다. 다시 말해 매달 돈이 나간다, 이런 의미죠. 처음에는 딱 싫다고 했어요. 넷플릭스는 한 사람이 구독하면 같은 계정으로 최대 4명까지 시청이 가능한 요금도 있어요. 마침 주변에 넷플릭스를 구독해 보는 지인이 있어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보내라고 명령했어요. 반협박이죠. (웃음) 그런데 아들이 저에게 '엄마는 개념도 없고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왜 남의 돈을 내고 보려고 하냐? 차라리 엄마가 돈을 버니까 구독하고 당당하게 보면 되지 않냐'고 막 항의하는 겁니다! 순간 일전도 못 버는 아들 녀석이 도리어 큰소리친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는데 한편으로는 공짜로 보려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해연 : 아드님은 자본주의 사람이네요.(웃음) 선배님은 아직 반반인 것 같아요.

박소연 : 정확하게 봤네요. 그래서 반성하고 지금은 단독으로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시청하고 있답니다.

이해연 : 저는 지금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친구의 계정에 끼어서 보고 있어요. 그런데 월 요금이 궁금하네요. 선배님은 매달 얼마나 내세요?

박소연 : 구독 요금은 사람마다 달라요. 남한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통신사에 따라 할인을 해줘요. 저는 통신사 할인으로 월 15달러정도의 구독요금을 내고 있어요. 돈을 내지만 구독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잠이 오지 않으면 새벽까지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봅니다. 넷플릭스 채널에는 정말 '고양이 뿔' 내놓고 다 있습디다…

이해연 : 정말 많죠… 솔직히 남한 분들은 새로운 영상들을 자주 보면서 살았기 때문에 크게 관심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북한에서 본 영화나 드라마를 남한 사람들이 오히려 못 봤다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제 생각엔 북한 사람들은 북한 당국이 보지 못하게 통제를 하니 보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것 같고요. 거기에 남한 드라마는 현실 생활과 가까운 내용들이 주로 나오는 게 크죠. 공감이 가잖아요?

박소연 : 10년 전에도 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북한 사회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있어요. 남편은 올 방자를 틀고 앉아서 재떨이 가져오라, 밥상을 차리라고 아내에게 명령조로 말해요. 남한 드라마를 보면서 남편이 아내 가방도 들어주고 함께 집 일도 하는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했었어요. 우리가 누리지 못했고 죽어서도 이룰 수 없었던 소원을 드라마로 볼 수 있었어요. 북한 영화는 오직 수령님과 당을 위해 충실해야 한다는 내용들만 가득한 데다, 시작을 보면 끝을 알 수 있잖아요.(웃음) 영화 속 간첩은 못생기고 좋은 사람은 잘생기고... 남한 드라마는 나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잘 생겼고 반전에 반전이 있어서 보는 맛이 났어요. 그래서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남한 드라마는 사회주의 사상을 좀 먹는 마약이라고 선전했고요.

이해연 : 저도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볼 때는 문을 꼭 잠그고 봤어요. 밤인지 낮인지 모르게 창문을 담요로 가리고 문을 딱 걸고 보는데 드라마 한 편을 보느라 며칠 밤을 새웠어요. 남한에 온 후에야 드라마나 영화를 마음 놓고 볼 수 있었어요. 특히 새로 나온 드라마를 TV 채널로 보려면 시간대를 맞추기도 어렵고 요일별로 방영하다 보니 기다려야 하는 사정이 있는데요. OTT를 구독한 이후에는 보고 싶은 영상들을 기다리지 않고 한 번에 쭉 시청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박소연 : 새 드라마는 한 주일을 기다려야 되지만 OTT에 속해 있는 넷플릭스나 쿠팡, 디즈니 같은 서비스는 기다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으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여기서 잠깐! 나쁜 점도 있어요. 보고 싶은 영상을 자지 않고 눈이 빨개서 보면 다음 날 출근해서 졸려서 죽을 맛이 나요. 잠을 깨느라 커피를 마시고 난리잖아요. (웃음)

이해연 : 완전 공감합니다. 가끔은 너무 빠지면 안 되겠다 싶어 드라마 말고 영화를 선택해 보곤 합니다.

박소연 : 최근에 OTT를 통해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나 드라마가 있어요?

이해연 : 너무 많지만 대표적으로 '오징어 게임'이나 요즘 인기가 많은 '더 글로리'?

박소연 : '더 글로리'에서 나오는 '잘한다. 박연진!' 이 대사가 너무 유행이죠. (웃음) 드라마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어렸을 때 학교폭력을 당했던 주인공이 성장해서 가해자들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내용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폭력은 분명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교양적인 가치가 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연 : '더 글로리'라는 제목은, 맹목적인 선의와 윤리는 허울뿐인 영광, 그뿐이더라는 뜻이라는데요. 학교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사람들이 OTT를 통해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를 많이 보는 이유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피해자들에게는 위안을 주고 가해자들은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속 시원한 해답을 주기 때문이죠. 남한 사회는 현실에서도 학교폭력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있어요. 아무리 유명한 운동선수라고 해도 과거에 학교폭력 가해자 경력이 있으면 무조건 국가대표에서 탈락시킵니다. 북한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무질서하고 강자가 약자를 누르면 세상이라고 인식하고 살았는데 정작 와보니 다른 면이 이런 점입니다.

이해연 : 저는 '오징어 게임'을감명 있게 봤습니다. 남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었잖아요. 어딜 가도 영화 속 대사들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지어 영상 속 출연자들이 입었던 풀색 운동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한 발의 총알은 한 사람의 심장을 뚫지만 한 편의 영화는 천만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북한에 살 때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던 선전 문구입니다. 여러분은 오래전에 제작된 혁명 영화를 수 십년을 보면서 정말 심금이 울렸나요? 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것은 강요나 선전이 아닌 내 마음을 알아주고 감동시키고 위로하는 ‘공감’인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다면 내 돈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OTT… 이 넓은 세상 속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