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OTT는 일종의 동영상 저장소라고 볼 수 있어요. 텔레비전으로 보는 일반 방송과는 다르게 스마트 폰, 타치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종류도 넷플릭스, 디즈니 등등 엄청 많고요 저는 매달 돈을 내고 구독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대표적으로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남한은 물론 인터넷을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동시에 시청할 수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넷플릭스를 구독한 사람들은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아니라 재밌는 게임이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을 주제로 만들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어요. 특히 미국에서부터 굉장한 인기를 끌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OTT 플랫폼에 올라갔던 한국 드라마들이 덩달아 같이 인기를 얻었어요. 외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봤는데 너무 재밌으니 어느 나라 드라마인지 궁금했고 한국에서 만든 걸 알게 되면서 다른 드라마를 찾아보게 되는 거죠. 이렇게 유명해지면서 북한에도 알려졌나 봐요.
이해연 : 정말요?
박소연 : 조선중앙TV와 '메아리'라고 부르는 조선 대외 선전 매체가 있어요. 북한 주민들은 대외 선전 매체는 잘 모르잖아요. 북한 당국은 두 매체를 통해 '오징어 게임'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불공평한 남한 사회를 반영했다고 비판했답니다.
이해연 :만약에 저도 북한에 있었다면 '오징어 게임'을 보고 남한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웃음) 하지만 북한이 강자만이 살아남는 사회라고 비판했다면 저는 그것도 황당하네요. 진실로 약자를 괴롭히는 나라가 북한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박소연 : 북한에는 '똥 묻은 개가 흙 묻은 개를 흉본다'는 말이 있어요. '오징어 게임'이 불공평한 남한 사회상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냥 '게임'을 주제로 만든 드라마일 뿐입니다. 작가나 감독들이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든 드라마가 실제 남한사회 모습은 아니거든요. 이것에 대해 다른 나라가 비판을 했다면, 그래도 들어줄 만한데 북한이 그럴 자격이 있나요? 북한이야말로 정말 강자만 살아남는 세상이잖아요. 당 간부들은 살기 좋지만 약자에 속하는 백성들은 하루 벌어 겨우 살아가면서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그런 사회가 남한을 비판한다고 하니까 좀 황당하죠? 북한에서도 젊은 청년들이 '오징어 게임'을 몰래 시청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발각돼서 총살당했다는 기사가 남한에서 많이 나왔어요. 기사를 보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영화라서 북한 정권이 총살까지 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연 : 솔직히 지금 제가 남한에 와 있으니까 하는 말일 수 있지만, 남한 드라마들을 북한 분들이 더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북한에 살 때도 남한 드라마나 외국 영화들을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울 수 있었거든요.
박소연 : 사실 OTT 플랫폼에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 영화도 있지만 노래 프로그램도 볼 수 있어서 돈을 주고 구독해도 아깝지가 않아요. 최근 남한에는 '미스트롯'이라는 트로트 음악 프로그램 열풍이 있었죠?
이해연 : 남한 트로트가 특히 북한에서 엄청 인기가 많죠.
박소연 : 북한에서 미스트롯 우승자인 송가인 가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송가인 씨 외모를 보면 턱선도 둥글둥글하고 복스러운 모습이 완전 북한 여성상입니다. 노래도 북한 사람들의 취향에 너무 잘 맞을 겁니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담긴 CD를 북한에 전달해 주는 사람이 말하기를, 북한에서 드라마만큼이나 남한의 트로트 음반을 많이 갖다 달라고 주문이 쇄도한답니다. 그런 상황들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 남북한이 서로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이해연 : 사실 OTT는 매달 구독료를 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그만큼 값어치는 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최근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면 극형에 처한다는 것을 법으로 제정해서 통제한답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라고 자본주의 나라, 특히 남한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거나 유포하면 최고 형벌에 처한다는 내용이 법으로 제정했다고 하죠. 해연 씨가 북한에 있을 때는 이런 법이 있었나요?
이해연 : 비슷한 법이 당연히 있었죠. 그런데 구체적인 조항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요. 일단 남한 드라마를 봤거나 유포하면 죄가 더 커지고요. 그것 때문에 총살까지 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박소연 : 총살까지? 직접 봤어요?
이해연 : 네, 봤습니다. 북한은 공개처형장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무조건 많은 사람들을 대열을 지어 세워 놓고 시범적으로 그 광경을 보여주잖아요?
박소연 : 그렇죠. 학생들을 제일 앞에 앉히고 어른들은 그 뒤에 세우고요. 해연 씨가 목격했던 사형수의 죄명이 뭐였어요?
이해연 : 남한 드라마를 보고 다른 사람들한테 유포했다는 게 죄목이었죠.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남한 드라마를 좋아합니까. 친한 친구들끼리 공유해서 몰래 시청하잖아요? 저는 처형을 지켜보면서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을 총살까지 해야 하나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소연 : 그때가 언제였어요?
이해연 : 2014년쯤 될 겁니다.
박소연 : 9년 전이면 해연 씨가 중학교에 다닐 때가 아니었어요?
이해연 : 맞아요. 학생들이 제일 앞줄에서 앉게 했었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 총살까지 당해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박소연 : 북한은 정말 인권이 없는 국가라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한창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성장해야 할 아이들에게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저도 90년도에 사형하는 모습을 봤어요. 비행장 앞 넓은 잔디밭으로 줄을 세워서 데려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학교 행사가 있는 줄 알고 갔어요. 도착했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넓은 공간 앞쪽에 말뚝이 네 개가 박혀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앞줄에 앉고 뒤에는 어른들이 서 있었는데 잠시 후 국방색 트럭이 오더니 자동 소총을 맨 군인들이 적재함에서 사람들을 질질 끌고 말뚝 앞에 세웠어요. 그중에는 남한 드라마를 유포한 사람도 있었죠. 사형수 4명의 죄명이 다 달랐는데, 처형되는 모습을 보고 당시 어린 제 기억으로는 남조선 영화를 보면 조선 인민의 철천지원수가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도 간부 자식들이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적발되면 뇌물을 주고 꺼냈어요. 돈 없는 노동자 자식들만 죽은 거죠. 최근에는 반동사상,문화를 유입하면 계급에 관계없이 극형까지 처한다는 내용으로 법이 제정된 걸 보면 점점 처벌 수위가 올라가는 거죠. 그런데 강한 처벌 조항으로 옭아맨다고 북한 사람들이 정권을 무서워하면서 남한 드라마를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아니잖아요. 해연 씨도 북한에 살 때 그렇게 생각 안 했다고 했잖아요?
이해연 :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인 것 같아요. 정권에서 보지 말라고 해도 다 몰래 보고 그랬어요.
박소연 : 해연 씨는 중학교 때 남한 드라마를 유포한 사람이 사형당하는 모습을 봤잖아요. 어린 마음에 무서웠을 것 같아요.
이해연 : 무서운 것보다는 조심해야겠다, 들키지 않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저는 무서웠어요. 저 사람은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왜 남한 드라마를 봤을까생각했어요.
이해연 :어릴 때는 좀 무서웠어요. 하지만 크면서는 무섭다는 생각보다 내용이 가식적이지 않고 현실적이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걸 왜 굳이 단속할까, 오히려 이런 거를 배워서 사람들의 의식을 깨게 하면 좋을텐데... 그게 이상했습니다. 사실 통제하는 이유는 북한보다 나은 환경에서 사는 다른 나라를 알게 되고 결국은 탈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소연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한국 드라마에서 북한을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잖아요? 시어머니한테 화가 나면 말대꾸도 하고, 남편한테 배추로 싸대기도 날리고... 사상이 없이 재미있기만 한데 왜 보지 말라 하는지... 저는 그걸 30대가 돼서야 이해했어요. 사실 10대 때는 무서웠죠. 저희 때는 통하는 사람끼리 남한 드라마 CD를 돌려봤어요. 얼마나 많이 돌려봤는지 녹화기에 CD를 넣으면 찌지직 소리가 날 정도였어요.
이해연 : CD로 보셨군요! 저희 때는 USB로 많이 봤어요. CD로 보면 들킬 수 있는 확률이 높았어요. 갑자기 검열대가 들이닥치기 때문에 CD를 빼려면 버튼 누르는 과정이 많잖아요. USB는 꽂았다가 바로 뽑으면 되니까 빠르죠. 크기도 작으니까 숨기기도 쉽고요.
박소연 : 저희 때는 USB가 없었어요. 들어보니까 확실히 10년 차이가 나는 게 느껴지네요. 저희 때는 한국 드라마가 북한에 들어올 때 CD에 포스터가 붙어있어요. 예를 들어, 가을 동화면 송혜교와 송승헌 배우 얼굴이 붙어 있던 거죠. 북한에서 녹화기 검열을 할 때는 우선 검열 지역에 전기를 보내요. 영문을 모르는 북한 주민들이 불이 왔다고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죠. (웃음) 그리고 이때다 싶어 녹화기에 남한 드라마 CD를 넣고 신나게 보는데 이때 갑자기 정전이 됩니다. 그리고 검열대원이 인민반장을 앞세우고 불시에 녹화기 검열을 시작해요. 그러면 녹화기에서 미처 CD를 꺼내지 못해서 걸리는 거죠.
이해연 : 그것도 재빠르게 뽑는 방법이 다 있습니다.
박소연 : 처음에는 모르니까 다 들켰어요. 결국 보위지도원에게 비싼 담배를 뇌물로 먹이고 넘어가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머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밀수꾼들은 중국 대방에 전화해 한국 드라마 CD에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은 '백알'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겉으로 봤을 때는 남한 영상물인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녹화기 뚜껑을 아예 열어놓은 채 드라마를 보다가 정전이 되면 수동으로 꺼내죠. 만약에 백알을 보다가도 보위원이 들이닥치면 CD 알을 깨버려요. 무슨 영상이냐고 물어보면 동물이 나오는 영상이라고 우기는 거죠. 물론 보위원에게 싸대기가 몇 대는 맞을 각오를 해야 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한국 드라마를 지혜롭게 시청했어요.
이해연 : 저희 때도 CD는 있어요. 카드 아시죠? 북한에서는 주패라고 불러요. 주패를 녹화기에 넣으면 딱 걸리는 데가 있는데 바로 그때 카드로 당기면 CD가 바로 나와요. 저희 때는 그런 방식으로 꺼내서 감추고 그랬어요.
박소연 :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말하는데 한편으론 슬퍼요. 왜 북한에서는 목숨 걸고 남한 영상을 봐야 해요? 남한에선 시간이 없어 못 보는데... 갑자기 갱년기 화가 확 올라오네요!
왜 우리는 북한에 대한 비방도 , 사상도 전혀 없는 남한 드라마를 목숨 걸고 봐야만 할까요?
북한을 벗어난 다른 세상을 아는 순간 , 정체된 주민들의 의식이 변하기 때문이겠죠. 지금 이 순간도 당국의 단속을 피해 몰래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고 계실 여러분! 저와 해연 씨가 경험한 OTT세상 속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다음 시간에 더 많은 드라마, 영화 얘기 전해드릴게요.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