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한국은 물가가 많이 오르면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죠. 그런데 해연 씨, 우리가 북한에서 물건값이 올랐다고 투쟁해 본 적이 있던가요? (웃음)
이해연 : 감히 못 했죠. (웃음) 만약에 그랬다가는 감방에 끌려갔을 겁니다. 투쟁은 혼자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데 북한은 그런 환경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박소연 : 남한 국민에게 국가는 뭔가 불만이 있으면 몰려와 칠 수 있는 동네북? (웃음) 북한에 살 때는 기차가 정상적으로 다니지 않아 과일 가격이 오르면 전기 사정으로 기차가 연착돼서 그런다고 생각했어요. 시장에서 쌀, 맛내기, 생필품 가격이 오르면 밀수가 막혀서 가격이 올랐다고 자체로 판단하고 이해했어요. 기차가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못한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해연 : 공감합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주민들이 물가가 오르는 등 무슨 일이 생기면 국가를 대상으로 투쟁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 공무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서 그런 것 아닙니까?
박소연 : 북한도 세금이라는 이름만 없는 거죠. 다 백성들이 낸 것으로 먹고 사는 겁니다. 사실 북한 주민들이 국가에 대해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유는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지 않아요?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긴 목이 잘리니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남한에 와서도 투쟁하는 쪽보다 투쟁하는 사람들 밑에서 콩고물을 얻어먹으며 살고 있어요. (웃음)
이해연 : 앗, 선배님이 조금 비겁해 보입니다! (웃음) 남한에서는 물건값이 비싸다고 사람들이 각자 인터넷 뉴스에서 댓글 한마디 달아도 그게 국민 여론이 되는 것이고 내가 여론 형성에 동참하는 것이 돼요.
박소연 : 그게 남한에서는 여론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같은 행동도 당과 조국에 대한 불만을 품은 반혁명 분자가 되는 길이죠. 이것만 봐도 남과 북의 물가 상승 대처법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남한과 북한에서 물가를 잡는 주인공이 누굴까요?
이해연 : 남한은 국민? 북한도 물론 주민들이 물가를 잡기는 해요. 중국과의 개인 밀수를 통해 물건을 들여와서 물가를 잡는 거죠. 남한은 국민의 목소리인 여론에 의해서 국가가 정책을 시행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물가를 잡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주민들이 각자가 살 방도를 찾아가죠. 지난 '고난의 행군' 시기 국가를 믿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굶어 죽었어요. 자립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고요. 지금 북한 주민들은 물가가 오르면 어느 정도 힘들어 하지만 예전처럼 큰 타격은 없어요. 지금은 집집마다 온 가족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소금이며 된장, 소토지에서 수확한 낟알을 보관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오르면 식량이나 물건을 사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이해연 : 남한은 코로나 이후부터 물가가 급격하게 오른 것 같습니다. 남한 정부에서 코로나 장기화가 시작되면서 국민에게 엄청나게 지원금을 많이 줬는데요, 제가 막 남한에 도착했을 시기에 정부가 코로나 지원금을 줬습니다. 처음에는 공짜로 돈을 받으니까 마냥 좋았는데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리기 시작하면 물가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걸 지금에 알았습니다.
박소연 : 이렇게 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말이죠. 한 마디로 통화량이 팽창해서 화폐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가 계속 올라서 일반 국민의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물가가 내려가는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고 불러요. 남한에 와서 경제를 배우면서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어요.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고요. 보통 우리는 물가가 올라가면 경제가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만 물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올라가는 게 오히려 제대로 된 흐름이라고 하더라고요.
이해연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걱정입니다.
박소연 : 남한에 와서 느낀 건데, 북한의 경제는 무식하고 간단했어요. 물가가 오르면 살기 힘들고 물가가 내리면 살기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식 경제 관념이었어요. 남한에 와서야 물가 상승은 한 나라 안에서만이 아닌 세계적인 추세와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북한의 물가 상승은 오직 중국과의 관계에만 연관성이 있지만 외국과의 경제교류가 많은 남한은 경제가 복잡합니다. 혹시 해연 씨, 탈북 전 북한 시장에서 쌀 1kg에 얼마였는지 기억하세요?
이해연 : 제가 나올 때 북한 돈 5,000~5,300원 정도였어요. 지금은 6,500원이더라고요.
박소연 : 12년 전에 북한 시장에서 쌀 1kg에 북한 돈으로 5,100~5,300원 안팎이었어요. 12년과 지금 쌀 가격 차는 1,200원 정도로 큰 차이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12년 전 중국 돈 100위안으로 25kg짜리 쌀 한 가마니를 샀어요. 지금은 중국 돈 100위안으로 좋은 쌀 8kg 정도, 안 좋은 쌀로는 10kg 정도밖에 못 산 답니다. 12년 전에 비해 북한 내부에서 중국 돈의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해연 : 북한과 중국과의 무역이 활성화가 될 때 중국 돈의 가치가 보존되는 거예요. 근데 코로나를 전후로 북한이 중국 국경을 다 막았잖아요. 국경이 막히면서 개인 밀수도 중단되고 국가적인 무역도 줄어들면서 중국 돈도 가치가 떨어진 거죠. 사실 북한도 사회주의라고 강조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본주의예요. 왜냐하면, 쌀 1kg에 북한 정부가 제정해 놓은 가격이 있잖아요. 그러나 그 금액으로는 시장에 나가서 살 수 없는 거죠. 결국 쌀 가격은 국가가 아닌 시장에서 장사하는 개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걸 보면 북한도 자본주의가 맞다고 해야죠.
박소연 : 제가 있을 때도 그런 얘기 했어요. '조선은 껍데기만 사회주의'라는 얘기를 많이 했고요, 시장에서 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경제잖아요. 사회주의는 국가가 시장경제를 주도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실제로 북한 시장은 개인들의 물건들로 꽉 차 있어요. 그런데도 사회주의 체면은 유지하려고 북한 정권이 안간힘을 쓰는 거죠. 12년 전에도 북한 시장 입구에는 커다란 칠판이 있었어요. 거기에 쌀 가격이 쓰여 있고, 그 가격을 초과해서 팔면 무상 몰수한다고 쓰여 있어요. 쌀 장사꾼들 입장에서는 국가가 제정해 준 가격으로는 중국에서 넘겨받지도 못하는데 그 가격에 물건을 팔라고 하니 말이 돼요?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국가가 정한 가격표를 매대 앞에다 붙여놓기만 했어요. 장마당 인근 개인 집에 쌀을 보관하고 국가가 정해준 가격이 아닌 실제로 개인이 정한 가격에 몰래 팔았어요.
이해연 : 최근 북한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양곡 판매소'에서 쌀을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국가에 쌀이 없어 개인들이 판매소에 쌀을 채운다고 해요. 쌀 가격도 국가가 정한 가격이 아닌 개인들이 정한 가격으로 팔리고요. 국가가 쌀도 없으면서 왜 이런 판매소를 운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박소연 : 경제적으로 다르지만 제일 다른 건 이거예요. 북한에 있을 때는 경제적으로 힘들면 앞이 새까맸어요. 꽉 막힌 세상이라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반대로 남한은 물가가 올라도 돈을 절약해서 알뜰하게 소비하면서 나만의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렇게 알뜰하게 살다 보면 분명히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 같아요.
이해연 : 저도 선배님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 물가가 올라 상황이 어려우면 저도 아르바이트를 하나라도 더 하든가 다른 방법을 찾게 되겠죠. 남한은 나만 노력하면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는 게 저에게는 고마운 일입니다.
박소연 : 이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북한의 상황이 어렵지만 지금 주변의 국제 정세를 볼 때 중국과의 문도 조금 열릴 것 같아요. 부디 희망을 잃지 말고 산다면 지금보다 분명히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확신과 함께 용기를 드리면서 방송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