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 주민이여 자신을 ‘덕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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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저희가 지난 시간부터 팬, 북한말로 애호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가수, 배우 같은 인물 또는 어떤 물건을 특별히 애호하는 팬 또는 은어로 덕들이 존재한다고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렸어요. 남한에서는 사실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닌 대중 문화인데요, 오늘도 얘기 이어가 보죠.

이해연 : 선배님이 지난 시간에 누군가의 팬을 하는 것도 장단점이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사람이 어떤 특정한 것에 열정을 쏟고 맹목적으로 깊이 빠져드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저도 동의해요. 우리가 누군가나 무엇을 좋아할 때는 이유가 있잖아요. 성인이 되면 더 그렇고요. 그런데 팬질은 정말 맹목적인 사랑일 것 같습니다. 또 남한에는 성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팬으로써 성공하는 것, 즉 덕질을 해서 성공한 사람을 '성덕'이라고 부르는데요, 사실 바로 코 앞에 앉아있는 해연 씨가 그 성덕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해연 : 그렇네요, 생각해 보면 제가 남한이 오게 된 계기도 드라마를 통해서 그걸 너무 좋아해서 왔잖아요. 정말 성덕이 맞습니다.

박소연 : 저는 유치원 때부터 방송원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어요. TV를 보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령'이라는 방송원의 말투를 매번 집에서 연습했어요. 결론적으로 저는 지금 남한에 와서 12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성덕이죠.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민이 현재 3만 4천여 명이 되는데, 그중에는 해연 씨처럼 처음부터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남한을 동경해서 온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분들은 대부분 가난해서 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려고 중국에 갔다가 신변 문제로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결국, 행복한 세상에 가서 살고 싶다는 그 꿈 때문에 온 것이잖아요. 북한에서 출발할 때 탈북을 선택한 이유는 다 달랐지만, 행복을 찾아왔고 지금은 잘 살고 있기 때문에 탈북민 모두가 어떻게 보면 다 성덕인 것이네요.

이해연 : 그럼요. 사실 북한에는 팬질, 덕질이라는 단어는 없는데 그와 유사한 일들은 많습니다. 강제적으로 팬을 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예를 들면 김정일, 김정은을 억지로 좋아해야 하고 안 좋아도 좋아하는 티를 내며 살아야 합니다.

박소연 : 북한은 수령님에 대해서는 한없이 사랑하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모든 주민들이 수령과 당에 충성하라고 하는데, 저는 '강'덕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앞에 '강'자를 붙여야 해요. 그리고 저희 때는 최삼숙이라는 인민 배우를 정말 다들 좋아했어요. 북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제가를 그 분이 불렀는데요,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에는 보천보 전자악단을 좋아했고요. 그때는 골목을 지나다가 녹음기가 있는 집들에서 '우리 세월이 좋아'라고 노래가 흘러나오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지나갔어요. 알고 보면 우리도 알게 모르게 덕질했네요.

이해연 : 북한에는 사실 남한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북한에 살 때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이 노래를 어른들이 많이 부르시길래 처음에는 북한 노래인 줄 알았어요. (웃음) 나중에 남한에 왔는데 그 노래를 사람들이 부르고 방송에도 자주 나와서 놀랐습니다. 남한 노래였어요!

박소연 : 북한에는 남한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아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남한 노래를 심하게 단속하지 않았어요.

이해연 : 그때가 북한에 녹음기가 유행하던 시기잖아요? 제가 아주 어릴 때 저희 집에도 카세트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연변 노래와 한국 노래를 가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들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단속이 시작되고 지금은 다 없애버렸습니다.

박소연 : 저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남한 노래가 있어요. 해연 씨보다 더 어릴 때 들었던 노랜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하는 노래를 듣는데, 제가 전날 친구하고 싸우고 집에 와서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후회했는데 바로 이 노래를 들은 거예요. 그 노랫말이 제 얘기 같아 그래서 남한 노래들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남한 노래는 곡도 좋지만, 가사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박소연 : 거기에 정치적인 색깔이나 사상성이 없어요. '북한을 때려 부수고 우리가 승리하자'라는 내용이 없잖아요. 그냥 사랑, 이별 내용의 노래만 있어서 북한에 있을 때는 내가 실연당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그 주인공인 것처럼 감정에 빠져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한 거예요.

이해연 : 맞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웃음)

박소연 : 오늘 주제로 방송 10부까지 하면 안 될까요? (웃음) 너무 할 얘기가 많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북한에서도 남한 음악의 덕후였네요.

이해연 : 북한에서 남한 노래와 드라마의 덕후였다가 여기 와서 다시 보고 들어도 역시 좋습니다. 북한에서 남한 노래를 들으면서 '왜 이걸 단속하지? 단순히 나의 상황과 삶의 내용에 맞게 노래한 건데'. 항상 '왜?'라는 의문을 정말 많이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당연히 의문을 가졌을 겁니다. 북한은 '우리의 혁명적 음악은 천만 인민의 심장을 울린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한 번도 울려본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근데 남한 노래는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죠. 그러니까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어쩌겠어요. 사람은 마음이 가는 곳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그러면 자본주의 날라리 사상이 골수에 차게 되고 사회주의 노래를 싫어하게 된다는 거죠. 북한 당국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제정하고 시장 입구에다 포고문으로 붙인 것이고요.

이해연 : 정치색도 없는데 좀 들으면 정말 안 되는 건가요.

박소연 : 생각해 보면 북한 음악은 사람들을 교양 개조하기 위해서 만든 선동 도구죠. 근데 남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감정과 생각의 표현이고 이를 북한 사람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며 세계적인 팬덤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이게 산업이 돼서 외화를 벌죠. 북한에서도 익히 알고 있는 BTS, 북한에서는 방탄 배낭이라고 부르던데 BTS 팬의 모임 이름은 아미입니다. 영어로 군대라는 뜻인데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공연을 보면 외국에서도 모두 한국말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릅니다. 그럴 때면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이해연 : 선배님은 확실히 저보다 팬질이 더 심하신 것 같아요. (웃음)

박소연 : 인정합니다. 해연 씨는 아마 모를 거예요. 제가 20대 때 동네 50대 중년 엄마들이 저를 보면서 내 마음은 너랑 비슷하다고 하면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니까 이제 알겠습니다. 마음만은 젊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겠어요, 집에 앉아서래도 덕질해야죠. (웃음)

이해연 : 열정적인 덕질은 정신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정신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정말 음악이 주는 힘은 세계적으로 나라를 홍보하는 선한 영향력도 있지만, 결국 이런 가수를 배출한 나라가 부흥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근데 북한 음악은 경제 부흥과 연관시킬 수가 없어요. 단지 인민들을 선전 선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니 가능하겠습니까.

이해연 : 북한 노래를 들으면 심금을 울리기보다는 당과 수령님에 관한 내용이 항상 들어가다 보니 가사 표현이 너무 강력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살짝 무서운 기분마저 드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저는 지금도 북한 노래를 가끔 들어요. 눈을 감고 들어보면 북한 가수들 목소리가 정말 좋아요. 만일 이 사람들이 남한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멋진 가수가 되었을까 생각합니다. 남한의 심수봉이나 이미자 같은 가수들이 되고도 남을 사람들이에요.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기 명성이 아닌 국가의 선전도구로 그친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이해연 : 저는 어쩌다가 우연이라도 북한 음악을 듣게 되면 오글거려서 바로 넘깁니다. (웃음)

박소연 :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살았던 그 젊었던 시간이 그리운 거죠. 생각 같아서는 환갑 때까지 이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고 싶은데 벌써 마칠 시간이 됐네요. 마지막 마무리로 우리 청취자분들도 꼭 이런 덕질은 꼭 해보시라고 추천해볼까요? 해연 씨가 추천해 주세요.

이해연 : 북한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우선 자신에 대한 덕질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박소연 : 정답!

이해연 : 북한에서는 정말 자신을 너무 아끼지 않아요. 국가 공동체, 집에서는 가정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기 힘듭니다. 그런 게 문제라고 누가 얘기하는 사람이 없고요. 그래서 그 누구보다 먼저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에 대한 덕질을 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박소연 :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요.

이해연 :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사랑해 준대요 그래서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내 사진을 초상화처럼 예쁘고 크게 뽑아서 걸어 놨어요. 그걸 바라보면서 '내가 나여서 참 좋다'라는 말을 자주 해요.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내가 나를 인정 안 해주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 줘요? 북한은 영도자만 사랑해야 하니까 그냥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하시고 진짜는 본인을 제일 사랑하라는 당부를 전하며 정말 아쉽지만, 오늘 방송을 마칠까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제작:이현주

에디터:양성원

웹편집: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