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BTS가 북한에서 ‘방탄 배낭’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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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북한 왕재산경음악단에는 90년대 활동했던 렴청이란 가수가 있어요. 그분은 머리부터 시작해서 북한 사람답지 않았어요. 왕재산 경음악단이 한 때 백두산 삼지연, 혜산을 한 바퀴 돌았어요. 공연이 절정에 다다르니까 사람들이 와~ 하고 다 일어난 거예요. 저도 일어나긴 했는데 순간, '이래도 되나? 누가 잡아가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정일 원수를 칭송하는 노래라 발광을 했는데도 안 잡아가더라고요. (웃음) 저는 그때 느꼈어요. 우리가 이렇게 흥에 겨워도 당과 수령과 연결되는 노래에 춤을 추면 아무 일도 없이 괜찮다는 것을요. 해연 씨도 렴청 알죠? 북한에서 렴청 모르면 간첩입니다. (웃음)

이해연 : 네, 그럼요. 노래 잘 알죠. 직접 가서 본 적은 없는데 텔레비젼으로는 봤거든요. 북한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 놀랍네요. 사실 북한 사람들도 이렇게 노래를 좋아하고 흥이 있는데, 그럼 마음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런 답답함을 이번 콘서트에서 다 날려버린 것 같습니다.

엉덩이를 흔드는 디스코를 추면 비판서를 쓰던 90년대, 지금은?

“20대들은 누구네 집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남한 노래에 춤을 추죠.

망은 엄마가 봐줍니다 "

박소연 : 이건 20년 전 일인데요, 그때 북한에서 흥겨운 노래들이 많이 나왔었어요. 휘파람 같은… 당시 예술 전문학교에 다닐 때 무용반과 같이 연습하면서 무대에서 '휘파람' 노래를 부르다가 너무 흥에 겨워서 다들 엉덩이를 흔들며 디스코를 춘 거예요. 그런데 누군가가 학교 교무부에 이걸 고발했습니다. 부교장 선생님이 저희 열 몇 명 모두를 불러서 갔더니 누가 엉치춤을 췄냐 다그치는데… 사실 다 췄거든요? 그런데 나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누구누구가 췄다고 고발하는 바람에... 그 중에서도 가장 신나게 췄던 5명만 비판서를 썼어요. 거기다 '사회주의 지키세'란 노래를 하루에 10번 넘게 불렀어요. 그때 어린 마음에 '아무리 흥겨운 노래라도 공공장소에서 춤을 추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부터 조심했죠. 그래서 지금도 노래에 어깨를 들썩이다가도 주변을 둘러봐요. 2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잊히지 않네요.

이해연 : 그런 분위기는 지금 좀 바뀌었어요. 3.8 부녀절이 있잖아요? 여자들 명절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모여서 춤을 추는데요, 아무리 디스코를 추면서 놀아도 이제는 잡아가고 그러진 않아요. 북한 노래에 춤을 추니까요. 그런데 20대 같은 경우에는 북한 노래엔 흥이 안나니… (웃음) 그런 날에 같이 어느 한 집에 모여서 문을 걸어놓고 남한 노래를 틀어놓고 몰래 디스코를 추는 거죠.

박소연 : 지금도 디스코라고 해요?

이해연 : 지금도 디스코라고 하죠.

눈치 보지 않고 놀려고 녹음기 들고 산속으로…

“그렇게 단속해도 젊음은 어쩌지 못했던 것 같아요”

박소연 : 우리 때 그렇게 하면 봉변당했어요. 그래도 젊음은 억제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우리 때는 산속 나무 밑으로 가요. 거기서 가지고 온 보자기를 펴놓고 춤을 추는데, 그때 무슨 노래가 유행했느냐면요, 남한 노래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었어요. 그때마다 양쪽으로 두 명이 망을 봐야 했어요.

이해연 : 저희들은 엄마들이 망을 봐줬어요. (웃음)

박소연 : 한 친구가 정말 재밌었는데 바지를 추켜올리고 '육체적인 건강에 좋은 아름다운 디스코!'라고 외치고 춤을 시작하죠. 그 순간 우리는 너무 행복한데, 모두 눈치를 보면서 박수를 치는 거예요. 제가 최근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된 남자애한테 '내 이래 봐도 90년도에 디스코 친 여자다' 하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털기 춤과 꺾기 춤을 춥니다. 디스코를 추는 사람들은 이제 한물간 사람입니다' 이러는 거야. 이제 저는 한물간 사람이 됐답니다. (웃음)

방탄소년단의 북한 애칭은?

박소연 : 그러니까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어리면 어린 사람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면 또 나이 먹은 사람들의 음악을 좋아했어요. 근데 남한에 와서 그 기준들이 다 깨졌어요. 제가 내일모레면 50이거든요. 그런데 20대인 방탄소년단을 좋아해요. 방탄소년단은 북한에서는 '방탄 배낭'이라고 하더라고요.

이해연 : 처음 들었어요. 왜 그렇게 불러요?

박소연 : 남한에서 넘어온 유명한 전자제품이나, 아이돌 그룹들 이름을 그대로 부르면 북한에서는 단속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다 암호화를 해서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남한에 와서 방탄소년단 음악을 들어보면 몸에서 기운이 솟아요. 젊은 아이돌의 춤을 보면 1초에 동작이 몇 개가 왔다 갔다 하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지러웠어요. 저게 뭐지? 무슨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점점 박력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가 너무 좋은 거예요.

이해연 : 와, 선배님 지금 20대 아닌가요? (웃음)

박소연 : 이제 음악에선 특별히 나이대가 없어진 거예요. 북한에서라면 20대 아이들이 춤추는 거 보면, '저럴 시간이면 빨래를 해야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남한에 와서는 그게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이해연 : 20대 노래를 좋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아까 해연 씨가 북한에서 남한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출 때 엄마가 망을 봐주면서 조심스럽게 췄다고 했잖아요.

이해연 : 그렇게 몰래 숨어서 했기 때문에 더 재미있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정말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다 가려놨어요.

그렇게 눌러도 우리는 화물차 꼭대기에서 춤을 췄죠 .

떨어져 죽을 판인데 …"

박소연 : 북한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다 가려놔요. 특히 남한 거라면 좋은 걸 봐도 반동입니다. 그렇게 자꾸 누르니까 호기심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우리 민족이 흥이 많잖아요. 북한에서 장사 다닐 때, 화물차 꼭대기가 얼마나 위험해요. 잘못하면 떨어져 죽을 판인데 그 꼭대기에서 글쎄 춤추며 노래 불렀다니까요. 제가 40년을 북한에서 그렇게 살았어요. 이렇게 흥이 있는 사람들을 옥죄니까 분출하고 싶어도 못 하고, 응어리가 계속 쌓이는 거 같아요.

이해연 : 맞아요. 그런 억압된 분위기의 북한에서 살다가 탈북해서 자유로운 남한에 오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탈북민들이 처음에 오셔서 여기저기 많이 놀러 다녀요.

박소연 : 탈북민들이 남한에 오면 산에 가서 북한 노래도 부르고 남한 노래도 마음껏 부르면서 정말 즐겨요. 농마국수를 눌러 먹고 인조 고기밥도 해 먹으면서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 그렇게 즐겁게 노는 모습들을 영상을 SNS(인터넷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은 영상을 보면서 '북한 같으면 다 선선한 데 갈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신났구만' 합니다. 행복한 거죠. (웃음)

이해연 : 네, 행복한 모습이죠.

박소연 : 해연 씨가 싸이 흠뻑 쇼에 다녀오셔서, 한 시간 넘게 자랑을 뿡뿡하셨는데 이제는 만족하십니까? 또 가고 싶은 공연이 있어요?

이해연 : 아직도 만족을 못 합니다. 그럼요. 한 번 갔다 오니까 또 가고 싶은 거 있죠.

박소연 : 맛을 들였네요. 그러면 어떤 가수의 공연을 또 보고 싶으세요?

이해연 : 남한은 유명한 가수분들이 많잖아요. 다음에는 현아 님의 라이브를 꼭 보고 싶어요.

박소연 : 라이브라는 게 무대에서 하는 걸 직접 가서 보는 거잖아요.

이해연 : 네, 직접 가서 보면 얼마나 흥겨운 지 벌써 기대가 큽니다.

박소연 : 그때도 지금처럼 양심 없이 또 혼자 가실 건가요?

이해연 : 그때는 꼭 우리 다 함께 가요.

박소연 : 그래요. 다음에는 꼭 우리 피디님을 뒷좌석에 태우고, 우리 둘은 좀 더 젊었으니까 앞에 타고… (웃음) 콘서트 보러 고고싱 해서 갑시다!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오늘은 특별히 음악을 들으면서 마무리하면 좋을 거 같아요. 마침 해연 씨가 '싸이' 가수를 좋아하잖아요. '싸이'의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마무리할까요?

이해연 : '어땠을까?'란 노래를 추천하고 싶어요.

박소연 : 이 노래로 인사드릴게요. 함께해 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