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한국에만 있는 가을 단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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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가을 하면 남한에서는 사람들이 단체복을 입는 계절이잖아요.
해연 씨, 혹시 그런 거 눈치 못 챘어요?

이해연 : 아, 뭔지 알아요.

박소연 : 가을에는 등산 많이 하는데 다들 등산복을 입죠. 세계 어느 나라 가서도 등산복 입은 사람을 잔등 탁 치면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있어요. 보게 되면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 한국 옷은 흑색이어서 좋아했어요? 중국옷은 빨강, 노랑 막 이런데 한국 옷은 흑색이나 흰색으로 튀지 않았거든요. 근데 한국 옷도 가을에는 아닙니다. 빨갛고 노랗고 풀색 옷을 많이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등산복입니다! 가을이면 정말 산 앞 도로를 가득 메우죠.

이해연 : 저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어요. 왜 굳이 단체복을 입고 다니나… 한국에는 단체복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긴 자유잖아요. 저는 행사 때 입던 단체복이 너무 싫습니다!

박소연 : 아! 해연 씨, 그게 사실 단체복이 아닙니다. (웃음) 다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 단체복 아니고요. 그냥 등산복이 비슷해 보이는 것뿐이죠. (웃음) 사실 가격도 엄청 비싼 옷들이고요. 그런데 이 등산이라는 거 자체가… 제가 탈북민들을 만나서 등산하느냐고 물어보면 열 명이 한 명도 간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 북한에서 이제 산은 너무 올라다녀서 진저리가 난다… 이구동성으로 그러죠.

이해연 : 저도 굳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박소연 : 그중에도 등산을 다니는 분들이 있긴 합니다. 그분들은 등산이라는 것을 그냥 아줌마들이 막 히닥닥 놀러 가는 말돌이가 아니고 진짜 운동으로 가고 취미 활동인데요. 일단 산에 가만 머리가 비워지고 정상에 오르면 성취감도 있다고 하고요. 근데 저는 아직도 등산은…

이해연 : 한 번도 안 가보셨어요?

박소연 : 아니죠. 가보긴 했으나… (웃음) 같이 간 한국분들은 무슨 보온 밥통 같은 데다 커피 같은 걸 가지고 올라와서 그걸 정상에서 마시는데 너무 행복해하는 거예요.

이해연 : 높은 데서 단풍 빨갛게 든 산을 내려다보며 먹는 거… 저는 한번 가보고 싶어지는데요?

<해연의 유행통신>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바뀐 것이 있다면

오늘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등산’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즐기는 운동이었던 ‘등산’에

젊은 세대들도 동참하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바뀐 것이 바로 복장입니다.

등산복으로 움직일 때 자유롭고 땀을 배출하면서

바람은 막아주는 넉넉한 기능성 옷을 주로 입었는데

젊은 친구들, 특히 여성들은 몸에 딱 붙는

남한에서 ‘레깅스’라고 불리는 옷을 입고 산을 오릅니다.

남한에서는 요가 등 운동을 할 때 몸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입는 운동복인데 북한에서의 걸개 바지, 생각하시면 됩니다.

북한에서는 걸개 바지 위에 치마나 다른 옷을 입지만

레깅스는 그냥 바지로 입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 옷을 입고 밖에 돌아다니는 남한 여성들을 보면 기절할텐데

남한 어르신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앞에 가는 젊은 여성들의 복장에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불평도 많이 나오지만...

저는 오히려 남의 시선보다

자기 취향과 만족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인식이 부럽습니다.

산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고

그걸 즐기는 것은 방법은 저마다 다른 것이니까요.

<박소연의 라떼는>

북한에서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취미 활동으로 등산을 한다면

먹고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겁니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일상이 생업을 등에 쥔 등산길이었기 때문에 이걸 운동으로 한다는 건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립니다.

그리고 산에서 등산하려면 당연히 편안하고 넓은 바지를 입고 다니지

왜? 딱 달라붙은 걸개 바지를 입고 다니나구요!

요즘 젊은이들은 집에서 있는 옷, 밖에서 입는 옷 전혀 구분을 안 합디다.

등산도 밖에서 하는 외출의 일종인데...

우리 때는 그 차림으로 밖에 나다니면 시집도 못 간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어요.

그런데 요즘 남한 젊은이들은 옷차림 때문에 뭐라고 하면

사생활 침해한다고 난리 나죠.

원하는 옷은 마음대로 입는 것도 역시 개인의 권리이긴 합니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등산로는 공공장소입니다. 함께 이용하는 곳

이왕이면 남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정상에 올라 느끼는 그 해방감으로 산에 오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박소연 : 저희가 프로그램 시간이 늘어서 중간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혜연 씨는 '유행 통신', 저는 '라떼는' 이란 건데요. 여기서 라떼가 뭐냐면, 옛날 얘기할 때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살았어… 그러잖아요? 그걸 한국에서는 '라떼'라고 하더라고요.

이해연 : 라떼는 커피의 한 종류죠?

박소연 : 맞아요. 옛날 사람들이 나 때는 이랬어, 저랬어… 이렇게 말하는 건 비유해서 재밌게 그런 식으로 부릅니다.

이해연 : 사실 우리가 가을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가을 하면 단풍을 또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여긴 단풍 구경을 그렇게 멀리들 가더라고요. 나는 왜 사람들이 이렇게 아까운 기름을 써가며 멀리까지 가서 단풍을 보는지 이해 못 하겠습니다.

박소연 : 저는 지금은 가는 게 자연스럽죠. 근데 정착해서, 해연 씨 정도 됐을 때 설악산에 갔어요. 그때도 단풍 들 때였어요. 정말 온 나라 차들은 다 강원도 설악산에 온 거예요. 설악산까지 4킬로 정도 남았는데 차가 10분 있다가 조금 가고 10분 있다고 조금 가고… 제가 혁명 정신에 피가 끓는 겁니다. 아니, 내가 왜 소중한 시간에 저 산에 있는 풀 잎사귀를 보겠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냐 싶어서 차를 돌려 달랬어요. 나중에 보니까 가을에 온 가족들이 단풍 보러 설악산같이 유명한 곳에 가는 게 일종의 가을 문화였습니다.

이해연 : 한국 사람들은 좋은 곳은 가서 즐기는 게 일종의 문화이고 자연스러워요.

박소연 : 아니 근데, 진짜 휘발유 1g도 안 나오는 남한에서 차들을 그 먼 곳까지… 그래서 저는 그때 첫해 그런 생각을 했어요. 북한에서 가을 휘발유가 금값이잖아요? 북한의 가을이면 곡식 거둬들이느라고 차고에 서 있던 자동차들까지 다 동원이 되잖아요. 그래서 피 같은 휘발유를 넣고 다닌다 이런 말을 했는데 남한에 오니까 그 피 같은 휘발유를 길거리에 뿌리면서 산에 단풍 보러 가는 겁니다.


이해연 : 사실 길거리에 기름을 뿌리긴 하지만 그걸 보러 가서 얻는 것도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을걷이 가면 현물로 얻어오죠. 하지만 단풍을 보러 갔을 때 얻어 오는 건 내가 일상에서 힘들었던 것을 그런 산에 가서 다 털고 또 일상으로 돌아갈 힘 같은 걸 얻을 수 있잖아요. 눈에 안 보이는 거지만 분명 중요한 것이죠. 이런 것들이 남한 사람들에게 곡식보다 안 중요하다고 할 순 없고요. 남한 사람들은 또 이런 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걸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남북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치를 두는 기준이 서로 다른 것이죠.

박소연 : 그런 면이 있죠. 남한에는 항상 그런 말을 해요. 꼭 가을이어서가 아니라 즐기면서 살자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즐기면서 살자'가 아닙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라 이런 말을 더 많이 하죠. 특히 가을철 같은 때는 동네에서 빈둥빈둥하고 놀면 인민반 사람들이 저 안까이(여편네) 저렇게 가을에 질펀해있다 겨울에 새끼들을 굶어 죽인다는데… 이렇게 비판적으로 보잖아요.

이해연 : 지금 사실 북한도 좀 바뀌었어요. 엄마들이 너무 이제 친구들과 모여서 구월산 놀러 가고 막 이러는데요. 저는 그게 좋더라고요. 맨날 그렇게 벌기만 하는데 벌어도 남는 게 없어요. 인생에 남는 게 정말 없잖아요.

박소연 : 북한에 있을 때는 그렇게 아글타글 살았던 이유가 뭘 남기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그 순간이 중요하니까,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내 새끼들 굶어 죽으니까. 내 삶이 행복한가… 이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네요. 하지만… 저만해도 올해 남한 생활 10년이 넘어가는데요, 남한 사람들 사는 것도 그렇게 편하지 않아요. 그냥 있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진 않거든요.

이해연 : 저는 어떤 면에서는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박소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냥 그 와중에도 좀 나를 위해 즐기면서 살자, 코로나 같은 병도 돌고 이러는 세상에서 순간순간을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자 그러죠. 그게 중요한 의미 같아요. 생각해보면 북한에서 그렇게 얘기하던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이런 얘기는 북한에서는 헛소리고 남한에서 현실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가을은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잖아요? 생각도 자연스럽게 많아지고요.
근데 그 생각의 대부분은 고향 생각입니다. 우리는 고향 생각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이 한 해가 또 거의 가잖아요? 바람이 있다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진짜 매일매일 사느라고 고생하는 어느 한 순간이라도 나한테 좀 선물을 주는 그런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좀 그런 자기를 위한 즐거운 인생으로 좀 살았으면 좋겠다. 다 건강하고 올해도 또 다른 일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박소연 : 맞죠. 그 바람은 20대 혜연 씨나 40대 박소연이나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북한에서 가을 이삭주의 하지 말고 등산 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웃음) 그렇게 바쁜 가을이지만 한 번쯤은 좀 이삭주의 배낭을 내려놓고 그 돌 꼭대기에 앉아서 한숨 쉬면서 자신한테 휴식을 주는 그런 순간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다가오는 새해에는 이제 나를 위해서 뭐 좀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런 걸 고민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을 가진 얘기였습니다.

이해연 : 고향 얘기하면 어떤 주제든 항상 먹먹하게 끝나네요.

박소연 : 남한엔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가을이 깊어진다'. 우리가 깊어지는 가을의 한 가운데서 깊어지는 마음속에 고향 생각을 전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고요,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신 혜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