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꼰대 공화국에서 온 MZ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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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저희가 지난 시간에 자산 관리 얘기를 했잖아요. 그 와중에 저는 심각한 세대 차이를 느꼈어요.

이해연 : 어떤 점에서요?

박소연 :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시간에는 세대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일단 질문 자체가 굉장히 민감하니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웃음) 솔직히 해연 씨도 저와 세대 차이를 느끼죠?

이해연 :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실 줄 몰랐어요. (웃음) 답변이 조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얘기해보겠습니다. 선배님은 옛날얘기를 많이 하시잖아요? 옛날 수공업으로 살던 때를 그리워하고, 그때가 편했다 그립다는 얘기를 자꾸 하시는데요. 저도 그리운 것까지는 공감해요.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지난번에 세탁기 얘기를 하면서도 옛날에 손으로 빨래하던 때가 그립다고 하시고… 굳이 빨래를 손으로 하지 않아도 지금은 세탁기와 건조기가 알아서 빨래를 척척 해주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굳이 싫다고 하잖아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이런 경우에 '정통을 맞았다'고 하죠. (웃음) 저는 정말 세탁기… 특히 건조기는 햇빛이 버젓이 있는데 왜 괜히 전기를 써가면서 빨래를 말려야 하나 이해가 안 되고 빨래는 비누칠을 짝짝해서 거품을 낸 다음, 두 손으로 빡빡 문질러야 마음의 때도 쑥 빠진다고 지금까지도 믿고 있습니다!

이해연 : 아 진짜…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웃음)

박소연 : 해연 씨 세대는 빠른 발전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만 저는 사실 그 변화가 힘들고 가끔은 싫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을 다룰 줄 알고 또 배워야하는데 그럴 때 마다 뇌가 딱 정지되는 느낌이 있다고 할까요…

이해연 : 저는 오히려 새로운 것에 대한 신기함과 기대감이 더 먼저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 접할 때마다 얻는 기쁨이 더 크고요. 선배님은 왜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더 나이 든 분들도 하시는데요… 일단 시도해보세요. 남들이 5분에 한다면 나는 10분 동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 제 나이 한번 돼 보세요.(웃음)

이해연 : 그런가요? 저는 고정관념이란 말조차도 너무 싫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다가 왔잖아요. 늘 틀에 박힌 관념을 강요 받았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는 것 같고요. 저는 북한이란 나라가 아직 발전을 못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두려워 말고, 따라 하면서 열심히 달리고 변화에 민첩한 세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는 거죠.

박소연 : 해연 씨 말도 맞죠. 그러나 해연 씨는 고정관념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고, 저는 고정관념은 다지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죠. 세대 차로 생기는 이런 생각의 차이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남한에서는 젊은 세대를 영어로 MZ세대라고 부르던데…

이해연 <유행통신> MZ 세대

남한은 뭐든 이름 붙이는 걸 참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특히 일정 기간에 태어난 세대를 묶어서 이름을 붙이는데요. 이런 분류에 따르면 저는 MZ 세대입니다. 아마 요즘 남한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남한의 20, 30대를 모두 포함하니 남한의 5천만 인구 중 약 33% 가 MZ 세대라고 볼 수 있고 또 전체 세대 중 생산과 소비 능력이 가장 높은 주력 세대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 세대보다 타치폰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유행에 민감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느끼기엔 자유롭고 개인적인 성향이 분명한 것이 MZ 세대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에선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선 의견을 분명히 말하고 퇴근 시간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을 MZ 세대 직장인의 특징으로 봅니다. 회사의 발전보다는 개인적인 발전을 위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이런 성향 때문에 이전 세대보다 직장을 떠나는 비율도 높다고 합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주는 것만큼 일한다는 MZ 세대들의 개념에 공감합니다. 일부에서는 이기적이라고 지적하지만 생각해보면 자기를 위한 것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일정 세대가 분명한 특징을 갖는 건 남한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한데요 . 과거 세대가 이해 못 할 부분도 젊은 세대의 특성이라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시대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사회의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소연의 라떼는> 천리마 세대와 장마당 세대

남한에는 19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을 X세대라고 부릅니다. 남한에서 빠른 경제성장의 이익을 가장 많이 맞본, 풍요로운 세대로 분류됩니다.

그 이전엔 386세대도 있었죠. 386세대는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19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30대들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2020년 기준으로는 586세대로 쓰이기도 하며 나이대를 빼고 86세대라고도 합니다.

반면에 북한 사회에 안에서는 세대를 나누지 않죠 . 하지만 북한에도 천리마 세대와 장마당 세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북한에서는 천리마 시대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죠.

1956년 시작된 천리마 운동 당시는 온 사회가 천리마를 타고 내달려 사회주의 완전 승리를 이룩하자는 분위기였는데요. 북한 노동당의 구호를 받들어 당에 충실한 세대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마당 세대는 남한에서 붙인 말입니다 .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노동당이 아닌 장마당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살아가는 시대에 태어난 북한 젊은층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천리마 세대의 특징이 ,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면 1990년대에 태어나 시장에서 장사하는 부모의 덕으로 살아온 장마당 세대는 당과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는데 익숙한 세대입니다.

천리마 세대는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노동당에 입당하고 당 간부가 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 장마당 세대는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우선입니다. 말하자면 장마당 세대는 지금 남한의 MZ 세대처럼 북한 사회의 주력인 젊은 세대들인데요.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을 우선시하는 장마당 세대이지만 북한 사회의 특성상 남한의 MZ세대처럼 살기는 힘듭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북한에서 장마당 세대는 앞에서는 국가에 충성하고 뒤에서는 개인에게 충실한 이중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는 세대라고 느껴집니다.

박소연 : 요즘 젊은이들이 저희 같은 세대들을 두 글자로 표현하더라고요. 기분 나쁘게시리. 뭐라고 표현하죠?

이해연 : 좀 눈치 보이지만… 꼰대? (웃음)

박소연 : 그렇죠! 그런데 해연 씨도 꼰대라고 하면 한숨부터 쉬잖아요.

이해연 : 죄송합니다! (웃음)

박소연 : 꼰대는 늙은이를 이르는 말로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가 항상 옳다고 여기는 권위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박소연이를 짚더라고요. (웃음)

이해연 : 자기주장이나 의견이 맞는다고 우기는 모습이 보통 꼰대들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부분이 힘들죠. 사람마다 자기의 주장이 다 있잖아요. 내가 좋아하거나 상대방이 좋아하는 부분은 서로가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 있어요. 그걸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경험해온 것만을 토대로 이렇게 하라고 지적하면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박소연 : 그게 꼰대들이 특징이죠. 내가 다 해봤는데 이게 제일 좋더라. 사실 근데 이렇게 되면 20대 세대들한테는 창의성이 나오기 힘들잖아요? 세상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생각하는 방식이 다양해서 20대들의 의견도 어린 친구들이지만 존중해야 하겠죠.

이해연 : 맞아요. 예전에 살아오던 방식대로 살면 지금까지 부모님들이 살아왔던 것처럼 살고 발전이 없는 거죠. 어쨌든 지적하고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꼰대의 행동은 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박소연 : 그렇죠. 남한에서는 그런 행동들을 권위적인 행동으로 부정적으로 봅니다. 반면 북한에서 권위적이라는 표현은 대단한 칭호입니다. 예를 들면 북한 간부들은 아주 점잖고, 후배들에게 좋은 경험을 알려줄 수 있는 모범적인 사람으로 권위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해연 : 권위적이라는 말이 북한에서는 높은 사람을 일컬어서 얘기할 때 쓰는 말인데, 남한에서는 꼰대를 가리켜 권위적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더라고요. 같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거죠.

박소연 : 남한에서 '저 사람은 권위적이다'라고 말하면 일종의 비난이에요. 그 사람을 욕하는 거죠. 현실에 맞지 않는 꼰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인데, 북한에서 권위적인 사람은 인격과 품성을 갖춘 사람이라는 말이잖아요? 그 차이는 사회적인 환경과 연관이 있는 거 같아요. 북한은 사회주의라 모든 것이 하나로 움직이지만, 남한 사회는 모든 사람의 개성을 중시합니다.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무시하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만, 북한에서는 오히려 권위적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해요. 저 사람의 말이 교과서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남북이 권위적이란 말 한마디를 가지고도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게 흥미롭네요.

이해연 : 그러고 보면 우리가 북한에서 살 때 나이 드신 분들은 다 꼰대였던 거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그렇죠. 북한은 알고 보면 꼰대 공화국이에요. 그리고 해연 씨가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꼰대 입장에서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정말 버릇이 없어요.

이해연 : 버릇이 없다는 기준이 뭔가요?

박소연 :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주장을 어른들 눈치도 안 보고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옛날에 윗사람이 말하면 할 말이 있어도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했어요. 그 말을 뱉는 순간 예절이 없고 위아래를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기 때문이었죠.

이해연 : 버릇이 없다는 말에 공감을 못 하겠어요. 버릇이 없다기보다는 자기주장이 확실한 것 아닐까요? 회사나 공동생활을 할 때, 약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윗사람이 얘기한다고 말도 못 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 그런 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직장생활에서 상사에게 미움을 받고 쉽게 해고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게 좀 걱정이 되거든요.

이해연 : 윗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모두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무리 나이가 많고 살아온 삶이 길다고 해도 신이 아닌 이상, 인생의 답을 다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 따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잘리면 다른 데 가면 되지 않을까요? (웃음)

박소연 : 와~ 저 배짱! 근데 사실 20대들이 당당한 이유가 북한말로 어깨에 달린 짐이 없어서 그러지 않을까요? 꼰대들은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어요. 잘리면 바로 생계가 위협을 받거든요. 그에 반해 20대는 홀몸이잖아요.

이해연 : 그런 이유도 있긴 하지만 아직은 살아야 될 날이 많은 나이이기 때문에, 이 회사 아니면 다른 회사 들어가면 되고 경험 하나 쌓았다 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와… 겁이 없다. (웃음)

이해연 : 솔직히 20대라고 해서 깊이 생각을 안 하고 말부터 무조건 뱉는 건 아니에요. 생각를 해서 이 말은 해도 괜찮겠다 싶으면 하는 거죠. 그 해야 할 말의 범위가 좀 다를 수 있고요. 일상생활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젊은 층에 속하니까 같은 생각입니다.

박소연 : 지금의 해연 씨를 보면 남한의 젊은이들 생각과 별로 차이가 없거든요. 거의 똑같아요. 그런데 만약 해연 씨가 지금 북한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요?

이해연 : 아마 그렇게 말하지 못할걸요. 저도 여기 와서 바뀐 부분이 많죠… (웃음)

세대 차이를 확실하게 느낀다는 것은 남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새로운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 가며 생기는 것일 텐데요. 저와 해연 씨는 왜 남한에 와서야 이 모든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걸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