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저는 직장에서 상사가 약속이 있는데 야근하라고 한다? 그럼 얘기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저보다 회사를 더 다녔고 나이가 많다고 항상 옳은 건 아니잖아요?
박소연 : 이야… 용감하다. 나는 그렇게 못 했을 거예요. 아이가 있잖아요. 회사에 잘 붙어있어야 아이랑 밥을 먹고 살 수 있고… (웃음) 근데 해연 씨, 해연 씨가 북한에 있었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해연 : 절대 못 했죠. 여기 와서 저는 많이 바뀌었어요.
박소연 : 나는 여기서 중간 총화를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저는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대기는 해도 꼰대는 꼰대입니다. (웃음)
이해연 : 사실 제가 한국에 온 지는 겨우 2년밖에 안 됐죠? 진짜 병아리 수준이지만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했다는 것을 종종 느낄 때가 있어요. 주변 환경과 연관된 것도 있지만 살면서 남한 젊은이들의 생각에 공감하게 됐어요. 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서 살아왔잖아요. 그게 너무도 답답했던 순간들이 많아서 여기 와서 남한의 젊은 세대의 문화를 더 빨리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런 영향도 분명 있죠. 그렇지만 어느 사회에도 세대 차이는 존재하고요, 제가 북한에서 와서 그런 게 아니라 남한에서도 저 같은 40대와 해연 씨 같은 20대의 차이는 분명 있어요. 그런데 저도 남한에 와서 10년 살면서 많은 변화를 느껴요. 북한처럼 모든 걸 못 보게 하거나 볼 것이 없다면 더디게 변했겠지만, 남한에 와서 20대랑 똑같이 인터넷도 사용하고 주변 환경을 보게 되죠. 그래서10년 전과는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여전히 아직 머릿속에서 뿌리를 박고 있는 게 있어요. 북한은 그럼 어떨까요? 현재 저와 해연 씨가 북한에서 살고 있다면 세대 차이를 느꼈을까요?
이해연 : 있긴 하죠. 그런데 북한은 남한처럼 그렇게 큰 차이는 못 느낄 것 같아요. 왜냐면,
남한은 인터넷 접속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잖아요. 북한은 외부 정보를 전혀 모르고 살아온 대로 가치관은 좀 다를 수 있어도 남한만큼은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 살 때 맞은 켠 집에 딸이 셋이 있었어요. 그 애들이 저희 집을 불이 나게 잘 다녔던 이유가, 얼굴이나 옷차림에서 나이 차이를 느꼈을 뿐이지, 생각에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어요. 남한에 와서는 그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느껴졌어요. 특히나 같은 북한에서 온 해연 씨와 얘기하면서도 이렇게 큰 차이를 느끼잖아요.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북한이라는 사회가 소랭이(대야)에 담긴 물 같아요. 누가 흔들지 않으면 소랭이 밖으로 물이 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하니까 큰 차이가 없잖아요. 그러나 남한이라는 사회는 무한대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다 열려 있고, 20대들이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세계를 일주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잖아요. 남한을 벗어나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가치관이 변하는 거예요. 남한의 20대들도 분명한 층이 나뉜다고 생각해요. 남한에서만 살았던 사람들, 세상을 돌아다녀 본 사람들의 가치관도 서로 다른데, 저같이 북한에서 살다 온 사람이 남한에 딱 오니까 체감하는 세대 차이가 어떻겠어요? 북한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너무나도 큰 차이를 느끼는 거죠.
이해연 : 맞아요. 세대 차이는 가치관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데… 선배님 혹시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랑 일단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을 느껴보신 적 있으셨어요?
박소연 : 있어요 있어! 그 사람들이 말하는 뜻 자체를 몰라요.
이해연 : 사실 저도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무조건 배워야 소통할 수 있으니까...
박소연 : 여기서 큰 걸 깨달았어요. 해연 씨도 처음에는 몰랐잖아요. 저 같으면 욕을 해요. 아름다운 조선말이 가뜩한데 뭐가 잘 못 돼서 자꾸 말을 줄이냐고! 그런데 지금 해연 씨는 따라가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따라가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해연 : 그래서 모르는 말이 나올 때마다 메모지에 기록해요. 주불이라고 혹시 아세요? 주불이 뭐예요? '주소 불러'의 줄임말입니다.
박소연 : 주소를 불러달라고요? 와… 처음 듣습니다. 이래서 20대 사람들하고 마주 서는 걸 싫어해요. 해연 씨처럼 말이 나오면 사전에 찾아보고 영어인지, 줄임말인지 알아봐야 되는데 그냥 싫은 거예요. 한 번은 스물 된 제 아들이 밤 10시에 문자가 왔는데 '엄마 나 생파, 먼저 자' 이러는 거예요. '야는 지금이 어느 땐데 밭에서 생파를 뽑는가?'… 이렇게 생각했다니까요. (웃음) 알고 보니까 생일 파티의 줄임말이랍니다. 지금은 이해하는데 그때는…. 아들이 엄마 줄임말을 알아야 현대인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화가 나서 '야, 그럼 엄마가 지금 고구려 시대 사람이란 말이야?' 이렇게 화를 냈는데요, 사실 제가 화가 난 이유는 젊은 아이들의 추세를 따라가기는 너무 싫고 귀찮고 버거웠던 거예요. 굳이 그렇게 줄임말을 안 해도 살아갈 수가 있는데 말이죠.
이해연 : 살아가긴 하죠.
박소연 : 그냥 편안한 길을 선택을 하다 보니까, 그냥 꼰대로서의 삶이 계속 이어지는 거 같아요.
이해연 : 아니 근데 이해가 안 되고 모르면 물어보시면 되는데 어른들은 물어보질 않아요.
박소연 : 우린 안 물어보지. 요즘 MZ세대는 저희와 방식이 다르더라고요. 젊은 세대들을 모르는 거를 감추거나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고 모르는 게 죄냐… 이럴 정도로 너무 당당한 거예요.
이해연 : 솔직히 북한에 있었을 때만 해도 조금 내성적인 성향이 좀 있어서… 모르면 괜히 부끄럽고 죄를 지은 것 같은 생각을 가졌는데, 남한에 와서는 '모를 수도 있지, 무조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되나? 모르면 그냥 물어봐서 알면 되고, 그래서 배우는 거지' 이런 식으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일종의 자기 위로일 수도 있죠.
박소연 : 와~너무 좋은데요.
이해연 :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남한에 오니 모르는 게 정말 너무 많은 거예요. 모르는 걸 계속 모른다고 방치하고 회피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이제는 그냥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웬만하면 다 배우려고 노력하죠. 그렇다고 무작정 무제한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려고요.
박소연 : 남한에 와서 많이 들었던 얘기 중의 하나가 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 모르는 걸 감추는 게 죄래요. 북한에서는 '야, 모르는 게 자랑이야?'라고 말하거든요. 이런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모르면 해연 씨처럼 당당하게 모른다고 물어보는 게 안 되더라고요. '나이도 있는데 모른 걸 이렇게 꼭 티를 내야 할까? 이런 나를 알면 남들이 얼마나 만만하게 볼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해요.
이해연 :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어요. 남한 사회에서 적응해 살려면 배워야 하는데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를 해야 누군가가 나한테 알려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이 얘기하면 해연 씨가 저한테 또 꼰대라고 하겠는데… 해연 씨 나이에 '전 몰라요'라고 하면 사람들이 귀엽게 봐줄 거 같은데, 제 나이에 모른다고 말하면 '저 나이가 되도록 아무것도 모르고 뭐했지?'라고 비웃을 것 같아요. 아직도 꼰대인 것 같아요.(웃음)
이해연 : 에이 근데, 사람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이 있고 20대들과 소통할 때 대화가 안 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남을 너무 의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 이런 주제를 가지고 방송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나도 꼰대가 아닐까? (웃음) 찾아보니까 인터넷에 꼰대 테스트가 있더라고요.
박소연 : 테스트라는 것은, 북한말로 실험, 시험 같은 것이죠.
이해연 : 그렇죠. 다행히 결과는 꼰대가 아니더라고요. (웃음)
박소연 : 오~ 정말요? 저도 방송을 준비하면서 꼰대의 특징을 한번 찾아봤는데요. 이에 관해 우리 허심탄회하게 한번 얘기해 봅시다. 일단 꼰대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말을 하면 꼰대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어요. 가장 명확한 특징은, 능력이나 인품, 신분 등을 모두 무시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적은 사람을 마주했을 때, 같은 인격체로 대해 주지 않고 일단 반말부터 먼저 하는 사람이면 꼰대고요. 또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면 '요즘 애들은 정말 버릇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꼰대랍니다. 달라진 사회적 가치관들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을 꼰대라고 해요. 이런 결과를 보면서… 해연 씨는 제가 꼰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해연 : 확실한 꼰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웃음) MZ세대라 그냥 직설적으로 얘기한 겁니다.
박소연 : 맞습니다. 다른 말을 기대하진 않았어요. 그럼 이 중에서 어떤 것이 저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해연 :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주장하거나 권유하는 거요.
박소연 : 해연 씨를 작년에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10년 동안 살아봤는데, 이렇게 하는 게 좋더라'라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1시간을 말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꼰대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오늘에야 깨달았네요.(웃음)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해연 씨는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조언을 요청했답니다. 아마 저 같으면 남한 정착 10년 경험을 토대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겠죠. 대부분 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요. 한 남한의 젊은 친구만 영~ 다른 얘기를 하더랍니다. 저도 그 얘기를 들으며 무릎을 딱 쳤는데요, 솔직하고 거침없으며 정곡을 찌르는 그 조언이 무엇이었는지…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