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재고의 삶

0:00 / 0:00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한국은 12월에 김장을 끝낸 지역도 있는가 하면 지금 한창인 지역도 있잖아요. 북한은 지금이면 김장이 이미 끝났죠.

이해연 : 벌써 끝났죠. 지금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을 것 같아요. (웃음)

박소연 : 해연 씨는 남한에 온 지 2년 됐잖아요. 혹시 김장해요?

이해연 : 사실 김장을 했다고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간편하게 했어요. 왜냐하면 이미 절인 배추를 가져다가 양념도 제가 만들지 않고 버무리기만 했거든요. 편하긴 한데요 김장했다는 실감은 나지 않더라고요.

박소연 : 그랬겠네요. 그럼 절임 배추를 사신 거예요?

이해연 : 사지는 않았고요. 고맙게도 하나센터에서 지원해 주셨어요.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탈북민들에게 김장 배추는 신청하래서 보냈더니 절임배추하고 양념이 왔더라고요.

박소연 : 좋은 땝니다. 10년 돼보세요. 묵은돼지는 안 줍니다! 아예 부르지를 않아요. (웃음) 지금 해연 씨가 얘기한 하나센터는 서울, 경기도, 제주도를 비롯해 남한의 각 지역에 다 있어요. 각 센터는 관할 거주 지역에 살고 있는 남한 정착 1년부터 5년 사이의 탈북민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을 해줘요. 그런데 지금은 과거하고 좀 달라졌어요. 10년 전에는 다 완성된 김치를 10킬로짜리 박스에 담아서 줬어요. 정착 초기에는 무려 네 박스나 들어온 거예요. 동사무소에서도 주고 시청에서, 하나센터에서, 심지어 경찰서에서까지 보내주셔서 쌓인 거죠. 그때 제가 그 박스들을 보면서 야, 북한 같으면 김치 장사를 해도 되겠다… 했는데요. (웃음) 그 정도로 남한에 금방 정착을 시작한 탈북민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정말 많은 도움의 손길을 줘요.

이해연 : 솔직히 저도 온 지 2년이 좀 지났잖아요? 작년만 해도 사실 세 박스 정도가 들어왔었는데, 올해는 달랑 한 박스더라고요. (웃음)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혼자 사니까 한 박스라고 해도 충분히 먹으니까 고맙게 잘 받았어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만약에 들어오는 양이 줄면 아니, 내가 아직 5년이 안 됐는데 왜 그러냐고 의견이 있을텐데 해연 씨는 혼자니까 괜찮다고 받아들이시네요.

이해연 : 적당히 필요한 것만큼 생겼으니까 됐죠, 너무 많아도 어디다 둘 데도 없잖아요.

박소연 : 맞죠. 저는 한국에 와서 좋은 게 그거 같아요. 북한에서는 '재고'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비록 다 먹지 못해도, 엉덩이 밑에 깔고 있을지언정 버린다는 개념이 없잖아요. 김치가 썩어서 버린다는 말은 북한말이 아닙니다.

이해연 : 그렇죠. 잘 사는 집들 경우에 김치가 남으면 시장에서 팔기도 하고, 가끔 나눠주는 집들도 있긴 한데 그러기는 좀 드물죠.

박소연 : 그만큼 북한에서는 김치가 삶에서 너무 중요하고, 더군다나 남한에 오니까 지금 해연 씨 얘기를 들어보면, 김치의 의미가 북한하고는 좀 다른 거 같죠? 그러면 해연 씨는 보통 김치를 어느 정도 드세요?

이해연 : 한 20킬로그램 정도?

박소연 : 한달에? 1년에? 아니 1년에 20킬로그램밖에 안 먹는다고요? 북한에서는 두 살짜리 아이도 그보다 더 먹어요. (웃음)

이해연 :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남한은 북한보다는 풍족하잖아요. 그래서 반찬을 김치 한 가지만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까 아무래도 북한에서보다는 적게 먹어요.

박소연 : 그래서 김장도 남북이 의미가 많이 다를 거 같아요. 틀에 박힌 얘기지만, 북한에서 김치는 반년 식량이잖아요. 그래서 10월에 김치를 담그면 그다음 해 4월 15일까지 먹어야 김장을 제대로 했다고 하죠. 그 기간이 정확히 6개월인 거예요. 그래서 봄철인 4월 15일 이후부터 시장에 김치가 나와요. 정말 금값입니다. 그 정도로 북한은 김장을 담그지 못하면 반년 식량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북한에는 통통한 배추가 흔치 않지만 남한에는 속이 꽉 들어찬 육백공수(덩치가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북한식 표현) 배추가 많아서 놀랐어요.

이해연 : 맞아요. 남한 배추가 뚱뚱하죠. (웃음) 그런데 북한도 선배님이 살 때랑은 좀 다르긴 해요. 저희 때는 중국 배추가 많이 들어왔어요. 하얀 배추라고 하죠? 그래서 한국에 와서 배추를 보고 그렇게 놀라진 않았어요. 그리고 다르게 느껴지는 건 남한은 배추도 유기농인지 아닌지를 따지잖아요.

박소연 : 그러니까 비료를 쳤냐, 안 쳤냐 이걸 엄청 따지더라고요.

이해연 : 남한 사람들은 건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반면 북한은 눈에 보기 좋아야 해요. 시각적으로 보기 좋아야 되고 양도 많아야 하는 거죠.

박소연 : 또 다른 부분은 남한에는 배추 등 농수산물에 대해 생산한 원산지를 꼭 밝히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법에 걸리는 것 같아요. 심지어 식당에서도 배추가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다 밝혀야 해요.

이해연 : 그런데 저는 그건 진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중국 배추가 남한 배추보다 훨씬 싸잖아요? 사실 다른 나라에서 배추를 수입해 들여오면 세금이 붙을 건데 왜 국내산이 더 비싼지 이해할 수 없어요.

박소연 :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중국도 북한에서 보면 정말 잘 사는 나라예요. 그런데 한국은 중국에 비해서도 더 잘 산다고 봐야 되죠. 그러면 돈 가치도 그만큼 높겠죠. 한국에 들어와서 돈을 버는 중국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니 한국산이 아무래도 중국산보다 비쌀 것이고요. 또 남한 사람들은 국내 농산물을 좋아해요. 그러면서 더 비싸진 것 같고요.

이해연 : 북한도 잘 사는 가정들은 맛보다 '눈맛'을 생각하면서 보기 좋은 배추를 많이 선택하고 있어요. 해마다 그런 가정들이 많아지면서 국내산 배추는 겨울에 순댓국이나 시래기 국거리로 쓰는 거 같아요.

박소연: 그리고 또 다른 부분은… 남한 사람들은 서울에 살아도 해남 바닷물에 절인 배추김치를 먹고 싶으면 주문해서 살 수 있고, 강원도 고랭지 배추를 사고 싶으면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북한은 양강도 사람이 황해도 배추를 살 수 있던가요?

이해연: 없죠. 들어올 수가 없어요. 황해도 지역에서 생산된 배추는 그 지역에서만 소비되고요. 또 배추를 싣고 이동하려면 휘발유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양강도에서 황해도 배추로 김치를 담가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맞아요. 그리고 제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재료입니다. 특히 소금. 북한은 김장철이면 시장 분위기가 달라져요. 소금 가격이 올라가거든요. 김장철이 되면 소금 매장에 사람 설 자리가 없어요. 그런 상황을 북한 말로는 안고 돌아간다고 하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리가 나면 거기로 들어가야 할 만큼 사람이 없다는 얘기죠. 남한 시장은 365일 비슷해요. 김장철이라고 소금 매장이 북적이고 그러지 않던데요. 그래도 살다 보니까 김장철이면 떨어진 배추 잎사귀를 모르고 밟아서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이해연: 사람들이 장화를 신고 부산하게 오가고…

박소연: 그리고 아줌마들이 새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손을 쳐들고 다니 잖아요. 이 집 가서 양념 버무려주고 나면 또 저쪽 집에 가서 버무려주느라고. (웃음) 시장 여기저기에 고추를 파는 사람들이 소리를 치잖아요. '왜 이게 비싸요?'라고 하면 '그러면 다른 데 가서 사시오' 이러면서 난리고. 그런 풍경이 북한에 있을 때는 어지럽고 '왜 저렇게 강냉이밥 먹고 고함칠까?'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와서 10년을 살면서 김장철이라 해도 그런 분위기를 못 보니까, 또 꼰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데, 좀 그립기도 합니다. (웃음)

이해연: 저는 뭐 그렇게 그립다는 생각은 아직 못 하겠어요. 너무 편한데요. (웃음) 무조건 김장할 때는 온 집안이 달라붙어서 해야 하니까. 혼자서 할 수 없는 양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소금 얘기를 하셨잖아요. 정말 선배님이 있을 때는 소금이 그 정도로 귀했나 봐요?

박소연: 제가 북한에서 살 때는 소금이 엄청 귀했어요.

이해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도 엄마들은 아까우니까 소금물을 돌려 쓰긴 하지만 그건 아까워서 그런 것이지 소금을 못 구할 정도는 아니고요.

박소연: 옛날부터 북한에서는 소금을 집안의 '간세'라고 했어요. 어르신들은 간세가 많아야 풍족하게 굶지 않고 산다 해서, 김장철에는 배추 못지않게 소금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고 김장철에 소금 독에 소금을 가득 채우고 그랬죠… 정말 근데 우리는 북한 얘기만 나오면 누가 우릴 끄집어내 줘야 빠져나오네요. (웃음) 근데 저는 올해 남한에서 금리가 오르고 해서 배추 가격도 하늘처럼 오르지 않을까? 김장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있더라고요.

이해연: 배추가격이 작년보다도 하락세를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박소연: 네, 그럴 줄 알고 미리 간부 요해 사업(사전에 알아보는 것)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올해는 배추 한 포기당 가격이 한국 돈으로 3,235원으로 작년보다 23%나 낮아졌어요.

이해연: 약 2.4달러가 되네요.

박소연: 남한에는 또 '한국 물가 정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통계를 내요. 전통시장 기준으로 4인 가족 김장 비용이, 한국 돈으로 306,000원이 드는데, 큰 대형마트에서 사면 356,300원이 든답니다.

이해연: 약 226달러 정도가 되네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김장하려면 4인 가족 60달러 정도 들었습니다. 남한 물가가 거의 3배가 비싸네요.

박소연: 그렇게만 얘기할 순 없어요. 보통 60달러를 벌려면 북한에서 얼마나 일해야 해요?

이해연 : 나가서 거의 2달은 벌어야 합니다.

박소연: 한국은 최저임금이 9,160원이니 한 달이면 한 180만 원 정도 벌거든요? 한 달 일하면 김장을 6번 하겠네요. 일단 숫자로만 계산하면 그렇습니다.

이해연 : 그렇게 따져보니까 북한에서 김장의 가치를 더 잘 느껴지네요. 그런데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왜 가격이 달라요?

박소연 : 시장은 가격을 후려치기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야, 배추가 너무 비쌉니다. 많이 사는데 깎아주세요' 이러면서, 대형마트는 깎아 달라고 얘기할 곳도 없어요! (웃음)

방송 녹음을 먼저해서 눈이 펑펑 오는 한 겨울에 김장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지금쯤 통배추김치 한 독은 다 비우셨죠? 지금은 압록강에서 절인 배추를 씻고 무거운 함지를 이고 언덕에 오를 일은 없지만 오지독에서 갓 퍼낸 시원한 고향의 김치 맛은 항상 그립습니다. 남한 사람들에게도 이 맛 한번 선보일 날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김장 얘기는 다음 시간에 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고 정리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