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오늘 인사는 북한식으로 하고 싶어요. 올해도 돼지 꼬리만큼 남았습니다.(웃음) 무슨 뜻인지 아시죠.
이해연: 알죠. 알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그래요. 연말이 되니까 즐거움도 있고 좀 아쉬움도 있는 거 같아요.
이해연: 맞아요. 해마다 느끼는 건데, 이 시기에는 항상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또 한 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덕분에 한해 끝이지만 외로움이 좀 덜하지 않나 싶어요.
박소연: 그런 면이 분명히 있어요, 근데 해연 씨 크리스마스가 뭔지 알아요?
이해연: 크리스마스는 서양에서 들어 온 명절로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죠? 그렇지만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연말 분위기로 많이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맞아요. 해연 씨가 올해로 정착 2년 되죠? 그 정도면 진짜 잘 알고 있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성탄절이라고 불러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로 전 세계적인 명절입니다.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탄절을 보내는데 그날이 12월 25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전날인 12월 24일을 크리스마스이브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잠깐! 12월 24일 하면 우리가 머리에 벽돌 맞은 것처럼 번쩍 떠오르는 날이 있죠? (웃음)
이해연: 김정숙 어머님의 생일이잖아요. 그래서 정치행사로 연말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반면 남한은 또 다른 분위기로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저는 남한 정착 초기에 성탄절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들썩거리는 것을 좀 고깝게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탄생이라는 말이 되게 거슬렸어요. 북한에서는 맨날 1912년 4월 15일만 되면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의 탄생일'이라고 해서 '탄생', '탄생'만 듣다가 남한에서만큼은 그런 말을 듣지 않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크리스마스 날이 예수님 탄생일라는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저에게 그렇게 확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이제 한두 해 시간이 지나면서 거부감이 사라지더라고요. 연말이 되면 도시 곳곳에 잎갈나무 위에 장식품, 전구들을 잔뜩 걸어 놓잖아요?
이해연: 맞아요. 그걸 크리스마스트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트리를 만들게 된 의미가 깊더라고요. 옛날에 농부들이 곡식 모양으로 그 나무 위에 하나씩 모양을 달아 놓는 그런 풍습이 있었대요. 한해를 또 무사히 잘 지냈다는 감사의 표현으로 이런 장식을 이웃들끼리 서로 모여서 만들고 장식했다고 합니다.
박소연: 남한에서는 성탄절은 어른도 기다리지만 특별히 아이들이 엄청 기다리죠. (웃음)
이해연: 선물은 기다리는 것이죠? (웃음)
박소연: 그렇죠. 해연 씨는 북한에 있을 때 혹시 산타 할아버지라는 얘기를 들어보셨어요?
이해연: 들어봤어요.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요. 주인공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선물을 주는데요…
박소연: 아~맞아요. 진공 유리관 속에 인형 들어있는 거 맞죠? 노래도 나오고…
이해연: 사람이 움직이면서 눈이 내리는 것도 있고, 캐롤도 나왔는데 그 노래가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갖고 싶어서 예쁜 장식품을 선물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사귀겠다고 할 정도로 정말 당시에 북한 젊은이들한테 인기가 많았어요.
박소연: 성탄절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명절인데요. 연인들은 성탄절을 즐기면서 연애를 하고, 온 가족이 부모님들을 모시고 좋은 데 가서 식사도 합니다. 그리고 이날은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장갑이나 양말, 목도리 같은 선물해 주는데 엄청 기다리더라고요. 저는 남한 정착 두 번째 해, 크리스마스 전날이 기억에 남아요. 그날 밤에 누가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놀라시겠지만 남한은 인민반장이 없습니다! 우리는 친척도 없고, 온 지도 얼마 안 돼서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했어요. 알고 보니 남한 생활이 낯선 탈북민들한테 선물을 주려고 교회에서 조직해서 저희 집으로 온 거예요. 그때는 선물에 대한 개념이 없었는데,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한테 공짜로 받아도 되나 반신반의하면서도 막상 선물을 받으니까 마음이 좋더라고요. 그 이후부터는 성탄절에 대해서 좋은 날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해연 씨 어때요?
이해연: 저는 코로나가 유행할 때 와서 거리에 나가면 트리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붐비는 모습은 못 봤어요. 하지만 반짝이는 트리가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연말이 되면 올해 내가 뭐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 돼서 생각이 많은 때지만 예쁜 것을 보면서 마음도 좀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박소연: 저는 해연 씨의 그 느낌, 공감해요. 캐롤은 북한 주민들도 들으면 알 거예요. 북한에서는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이 크리스마스 노래가 왜 좋은지 이유를 몰랐어요. 그냥 좋다… 왜냐하면, 북한에 살 때 연말이면 충성의 노래 모임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만 귀에 못이 박히게 듣다가 남한에서 경직되지 않은 노래를 들으면서 그냥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한에 오니까 이맘때 사람들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고 명절날에 하는 인사말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데 뜻도 모르고 좋은 거예요. 내가 정말 북한 사회를 떠나서 모든 게 다른 남한 사회에 왔구나 하는 걸 그때 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고요.
이해연: 아름다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걸 통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적응해 가는 것 같습니다. 또 크리스마스로 인해 올해 한 해가 다 갔다는 아쉬운 연말 분위기가 아니라 좀 더 즐거운 연말이 되지 않나 싶어요.
박소연: 북한에 살 때는 이맘에 항상 올 한 해도 죽지 않고 잘 버텼구나, 다행이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어요. 늙고 싶지 않고 그냥 10대에서 멈춰있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는 연말이면 '아,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하다가 남한에 왔죠.
이해연: 반대로 저는 북한에 있을 때는 시간이 너무 안 갔어요. 한국에 오니까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거예요. 예전에 비해 남한에서는 바쁘게 살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를 하고 않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지 마는지 별로 느끼지를 못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빨리 간다라고 느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잖아요. 여기에 얽힌 재밌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아이들은 간절하게 갖고 싶은 선물을 종이에 적어놓는데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그날 밤 굴뚝 안으로 들어와서 선물을 놓고 간다는 약간 동화 같은 얘기들을 해요. 아이들에게 말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오는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모님들이 미리 준비하신다고 하네요. 북한에 있었을 때는 정말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직접 선물을 준비하고 가져오는 줄 알았어요.(웃음)
박소연: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하죠.
이해연: 그때는 어리지 않았어도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드라마에서 보는 게 전부이다 보니까 정말로 가져온다고 생각한 거죠. 저는 남한은 잘 사는 나라라서 국가에서 선물을 준다고 생각했죠. 어쨌든 아이들은 기대하는 마음이 클 것 같아요. 자다가 깨어나면 원하는 선물을 받는다는 기대감… 부모님들은 한 달 전부터 아이들이 울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안 오시니까 울지 마라' 라며 이용을 하는 현상들도 좀 있더라고요.
박소연: 크리스마스 선물의 역사는 아름답잖아요. 근데 좀 변질된 것 같아요.
이해연: 맞아요. 아이들을 위한 것도 있지만 이제는 어른들도 선물을 주고받고 하잖아요. 연인들이 더 많이 즐기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크리스마스 얘기를 하면 북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뉴스를 보니까, 북한에도 교회나 성당들이 평양을 중심으로 많이 생겨났더라고요. 한국 인터넷에서 사진을 봤는데 크리스마스 날, 북한에 있는 교회에서 외국인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이해연: 그럴 리가요? 저는 한 번도 못 봤는데…
박소연: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몰라요.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라는 개념조차 없으니까요.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외국 사람들이 와서 이상한 조형물을 해놓고 사진을 찍네' 이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 북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겼더라고요.
이해연: 정부의 배려였을까요?
박소연: 저는 북한당국이 우리도 신앙의 자유가 있고 사람들에게 신앙을 금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고 생각했어요. 북한을 세계에서 인권 탄압국이라고 낙인을 찍고 있잖아요. 우리도 이러한 사실을 남한에 와서야 알게 된 거죠. 인권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절이나 교회, 성당도 자유롭게 선택하여 다니고 있어요. 신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인권이지만 북한은 노동당만 믿으라고 강요하고...그 상황을 인정해버리면 인권 탄압국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는 '아니다.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봐라. 교회도 있고 성당도 있고 절도 있다'.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으로 봅니다. 북한 주민들은 해연 씨처럼 그곳에 살면서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거죠. 어쨌든 북한에서는 크리스마스 명절을 전체 인민이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면 성탄절을 성대히 기념하는 게 맞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이 사실만 놓고 봐도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없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고 북한당국은 세상에 대고 거짓말을 하는 거죠…
저는 30년 전 북한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서 처음 캐롤을 들었습니다. 가사는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흥이 나서 어깨춤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골목에서 아이들이 캐롤을 합창으로 부르면 어른들이 달려와 미국 놈 노래라고 부르지 말라고 야단을 치곤했습니다. 그 노래, 부르지 말라던 어른들은 그 노래가 뭔지, 왜 부르지 못하는지 그 이유는 알고 있었을지 그것도 궁금하네요. 따뜻하고 설레는 성탄절의 노래,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있겠죠?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함께해준 해연 씨 고맙습니다.
이해연: 고맙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