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여기서는 노력하면 수입의 절반은 저금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일을 하면 대가가 남아야 하는데 다 써버리면 정말 허무잖아요.
박소연 : 해연 씨가 말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정착 초기에는 지금보다 돈은 적게 벌었지만 저금은 많이 했어요. 북한에서의 또순이 정신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밥에다 김치만 먹어도 살 수 있겠다 싶어서 고기를 산다는 건 생각도 못 했죠. 드라마에서 남한 사람들이 겨울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보면 먹고 싶었어요. 막상 사려니 제 기준에 아이스크림이 비싼 거예요. 안 먹었죠. (웃음) 그런 부수적인 데는 돈을 쓰지 않고 돈 모으며 희열을 느꼈습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마치 지구를 다 산 것 같이 정말 뿌듯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허리띠 조여 매려고 남조선 온 거 아니고 인간처럼 살려고 왔는데 뭐 하는 건지, 이렇게 궁색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북한 사람으로 말하면 정말 호강에 겨운 소리지만, 남한에 와서 살다 보니 남한 물에 젖게 되더라고요. 남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거예요. 정착 초기에는 한국 돈으로 5,000원에서 10,000원짜리 하는 옷을 주름을 쫙 펴서 입었는데, 지금은 주름이 없는 바지를 입는 거예요. 주름이 있는 게 촌스럽다는 것을 알 만큼 눈이 높아졌죠. 또 그에 따라서 지출도 점점 많아졌죠. 하지만 지금은 그걸 다시 돌려세우긴 힘든 것 같아요.
이해연 : 나중에 저도 그럴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모아놓은 돈이 없고, 또 아직은 젊기 때문에 명품을 입지 않아도 예쁘잖아요? (웃음)
박소연 : 와…이건 자랑이다 (웃음) 제가 북한에서 20대를 보냈잖아요. 돈을 많이 쓸 때가 지금 해연 씨 나이 또래죠. 그때 신경을 써야 시집을 잘 간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남한에 온 20대 해연 씨는 저하고 반대되는 생각으로 살고 있네요.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더 많이 소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해연 : 앞으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무작정 돈을 모으거나 쓴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중요한 것은 내가 돈을 쓰면서 행복을 느낄 때 돈의 가치가 더 올라가잖아요. 돈을 좀 모으게 되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것도 사면서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박소연 : 좋은 욕심이네요. 지금은 김밥 한 줄에 3,000원이지만 2012년 당시 지하철에서 김밥이 1,500원이었어요. 지하철 밖에 나가면 1,000원을 했어요. 양은 좀 적었지요. 500원을 아끼겠다고 지하철 밖에서 파는 김밥을 사 먹었어요. 그러면서 어떤 욕심이 생기냐 하면, 돈이 쌓이는데 그 목표가 십만 원이 백만 원이 되고 다시 그게 천만 원이 되고. 만약 천만 원을 들고 북한에 가면 쌀 수십 톤을 살 수 있고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록 북한에는 못 간다는 건 알지만 늘 북한하고 연결하여 생각했고요. 돈이 모이니까 남조선 왔는데 남들처럼 자동차도 타보고, 운전도 멋있게 한 손으로 후진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마침 또 남한과 북한의 역사적인 일이 터졌죠. 남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으로 서로 오가면서 회담도 했잖아요. 그걸 딱 보는데, 갑자기 내가 그래도 몇 년 전에 고향을 떠나왔는데 이제 승용차 한 대 몰고 고향에 가야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질러버린 거죠.
이해연 : 그런 소비는 항상 응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못 해본 게 많잖아요. 그건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지금은 아니지만요.
박소연 : 그러면 언제쯤 누릴 거 같아요.
이해연 : 제가 원하는 게 한 가지만은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올해 중에 해결할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꼭 하세요. 그런데 해연 씨, 제가 온 10년 전에는 물가가 좀 낮았어요. 물론 지금은 최저임금도 많이 올랐지만 물가가 오르면 돈을 모으거나 살아가기가 힘들거든요. 어떠세요?
이해연 :맞아요. 아무래도 지출할 돈이 더 많아지니까요. 그래도 계속 그렇게 살다 보면 적응이 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물가가 올라가고 갑자기 김밥 가격이 500원이나 올랐다고 쳐요. 그러면 처음 하루 이틀은 동요가 되겠지만 며칠 지나면 또 그냥 적응하잖아요. 그렇게 적응해야죠.
박소연 : 우리는 보통 물가가 오르게 되면 돈을 아끼고 절약하려는 심리가 작동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남한 사람들을 보면 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과 상관없이 삶의 질은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돈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지출을 줄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어차피 우리가 필요 없는 곳에 돈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맛있는 거 먹고, 문화생활을 위해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지출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해연 씨는 어때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지출의 대부분이 식비로 나가다 보니 솔직히 문화생활 같은 건 별로 없는 게 아니라, 전혀 없었어요. 기껏해야 옷을 사거나 머리 미용에 조금 쓰긴 하는데 그것은 매달 나가는 게 아니라 가끔이죠. 또 옷도 잘 안 사잖아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가계부를 정리해보니 품목이 너무 많아졌더라고요. 가계부는 보면서 생각한 것인데요,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는 어느 나라도 중요하지만 남한에서는 먹는 것보다도 안정적인 문화 정서 생활을 위해서 지출하는 비용이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렇죠. 남한은 대부분 사람들이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껴요. 즐기며 살자는 의미는 앉아서 TV만 보면서 누리는 즐거움은 아니잖아요. 반드시 돈이 따르는 즐거움이잖아요. 남한 정착 초기에는 상상도 못 했어요. 사회생활 연한이 늘면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됐어요. 남한에서는 일단 먹는 문제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대신 100세까지 오래 살기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하죠. 그러면서 여가 생활에 돈을 많이 투자하죠. 저만해도 10년 전에 가계부에 있던 지출 품목이 이제 10년 차가 되니까 피라미드형으로 쫙 늘어나요. 지금은 솔직히 걷잡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의 운명의 주인은 나다. 내가 즐겁게 살아야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나가는 돈이 그렇게 아깝지는 않습니다.
이해연 : 맞아요. 옛날 북한에 있을 때, 엄마들이 자기 옷 하나 사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자식들은 다 사주면서도 막상 자기를 위해서는 부들부들 떨면서 결국 못 사고 말잖아요. 그런데 여기 남한에는 엄마들이 여가 생활도 기꺼이 즐기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입니다.
박소연 :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있죠. 제 경우 정착 초기보다 10년이 지난 지금 지출이 계속 늘어가고 있어요. 이게 비단 저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10년 전에 살았던 내 주변의 남한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지금이 훨씬 더 여유로워졌어요. 그 이유가 국가의 경제가 계속 성장 발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이 여유로워진 거예요.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는 3차 5개년 계획을 200% 완수했다고는 하는데 우리 생활은 오히려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갔잖아요. 남한에서는 국가의 경제 성장이 100%는 아니지만 국민들 생활에서 느껴지죠.
이해연 : 그렇죠. 올해도 물가가 올라간다고 낙심하기보다는 이런 지출들이 다 나를 위한 것이고. 또 더 분발해서 돈도 많이 벌어서 더 행복한 지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도 올해 꿈꾸는 예상 지출이 있어요?
이해연 : 올해는 자동차를 사고 싶어요.
박소연 : 어쩐지 아까부터 구구절절 자동차 얘기를 자꾸 하시더니.(웃음)
이해연 : 남한에 온 첫해부터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어서 면허증부터 취득했어요. 그렇다고 무작정 차부터 사고 빚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돈을 좀 모은 후에 나를 위해 자동차를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박소연 : 우리 청취자분들, 올해도 힘든 한 해가 예상됩니다. 남한도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가끔 자신을 위해서 맛있는 간식도 좀 사드시고, 두꺼운 동복도 몇 벌 살 수 있는 그런 작은 여유가 올해는 우리에게 차려지길 바라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